소설리스트

86화 (86/214)

“뭐? 전부 죽었다고?”

“네. 도련님이 떠나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고 합니다.”

김 실장의 보고를 듣던 나는 생포한 중국 측 각성자들이 모두 죽었다는 말에 벌떡 일어났다.

“왜?”

“이유는 아직 파악 중입니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마력이 줄어들수록 숨이 약해져 갔고 결국 사망했다고 합니다.”

“시간은? 얼마나 걸렸는데?”

“약 한 시간 정도라고 합니다. 어떻게든 숨을 붙여놓으려 했지만, 이번에 개발된 엘릭서급 포션도 소용이 없었다고 합니다.”

“엘릭서급도?”

“네.”

‘이건 말이 안 되는데?’

전에 인수했던 제약회사에서 새롭게 출시한 엘릭서급 포션은 죽은 자조차 소생할 수 있다는 말이 돌 정도로 대단히 뛰어난 포션이었다.

무려 마정석을 갈아 넣었을 뿐 아니라 그 외에도 정령석, 슬라임 결정 등 희귀하고 값비싼 재료들이 들어간 것으로 이미 숨이 끊어진 자도 10분 안에만 복용시키면 숨을 다시 되돌릴 수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일반 포션들과 달리 일반인에게도 효과가 뛰어나 또 하나의 목숨 또는 신의 눈물이라고 불리는 만들어낸 유물이었다.

물론 가격 역시도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아직 정식 출시가 되지 않았지만, 한 병의 만드는 데 들어가는 재료비만 무려 100억을 가볍게 넘어서고 있었다.

“이건 진짜 말이 안 되는데?”

“뇌사상태의 환자조차도 깨어나게 할 정도로 대단한 물건입니다만, 어째서인지 그들에게는 독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합니다.”

“독이라고?”

“네. 복용하자 갑작스럽게 발작을 하며 숨이 끊어졌다고 합니다. 일단 해부를 해봐야 할 것 같지만, 온몸의 혈맥이 모조리 터져버린 것이 아닌가 판단 중입니다.”

내가 사용하는 파괴의 마력과 비슷한 건가?

엘릭서급 포션으로도 파괴의 마력으로 망가져 버린 내 육체를 바로 회복시키지 못했기에 비슷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그 기술이 자폭기술인가? 그럴 리가 없는데?’

만약 그 기술이 자폭기술이라면 최강준이 도망간 이유가 설명되지 않았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도망가서 뭐하겠는가? 설마 그놈 벌써 뒤진 거 아니야?

“일단 그건 제대로 확인 한 후에 다시 알려줘.”

“네.”

“그나저나 현지에게는 아직 연락 없었지?”

“아직은 연락이 없습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그들이 돌아갔을 리 없었다.

“아! 맞다. 오늘 게이트 공개한다고 했잖아?”

“네. 오후 2시에 공개할 예정입니다. 이제 3시간 남았군요.”

“준비는 잘 돼가?”

“네. 모든 준비가 끝난 상태입니다만, 회장님께서 도련님도 참가하길 바라시고 계십니다.”

“난 또 왜? 내가 거기서 또 뭘 하라고?”

유명시 주변에 풀어놓은 내 소환수만 5천이 넘었다.

그 5천을 채우기 위해 난 또다시 죽음의 숲으로 향해 미친 듯이 몬스터를 지배해야만 했다.

1만 2천이라는 몬스터를 새롭게 지배했지만, 그건 중국의 게이트를 틀어막는 데 사용해야 했기에 공개일에 맞춰 5천이라는 수를 채우기 위해 내가 한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미호의 게이트를 이용해 죽음의 숲과 남단을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하며 쉴 틈이 없었던 나는 지금에 와서야 겨우 숨 좀 돌리려 하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내가 쉬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신 모양이었다.

딱 맞춰서 베이징을 틀어막던 녀석들이 빠져서 그나마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아마 지금도 계속 몬스터를 지배해야 했을 거야.

“회장님께서는 혹시나 몬스터들이 말을 듣지 않을 경우를 생각하시는 모양입니다.”

“말 잘 듣는다니까? 내가 그렇게 지시해 놨다고 했잖아. 아버지를 나처럼 생각하라고. 거기다 알잖아? 소환수들은 내 혈육의 말은 지시 안 해도 잘 듣는다는 거.”

“하지만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5천의 몬스터들은 지금 장벽 너머에 잘 훈련된 정병처럼 정렬해 있는 상태였다.

아버지의 말 한마디로 인해 유명시를 지키기 위해 넓게 퍼져 나가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몬스터를 정렬시켜 놓으라길래 왜 그런가 했더니 모두가 아버지 자신이 빛나기 위해서였다.

“아버지는 도대체 요즘 왜 이래? 전에는 분명 이러지 않았잖아?”

“재미가 들리신 거지요. 지금까지 그 흔한 취미 하나 없이 지내오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가?”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미술품을 조금 모으는 것을 제외하면 딱히 취미라고 할 만한 것이 없으셨다.

“네. 지금껏 일만 하셨지 그 어떤 취미도 붙이시지 않으셨던 분이시죠.”

“그래. 그건 넘어가기로 하고,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말씀하시지요.”

“아까 말이야. 아버지의 표정이 조금 굳어있던 것 같던데, 무슨 일 있어? 형도 좀 굳어있던데?”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두 모여 아침 식사를 하는 자리였음에도 아버지와 형의 표정이 조금 굳어있는 걸 보고 조금 의아했었다.

수아가 함께 있는 자리였음에도 말이 거의 없는 형과 아버지.

“그게…….”

응? 이거 정말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인데?

“무슨 일인데 그래? 내가 알면 안 되는 일이야? 설마 형이랑 아버지가 싸우기라도 한 거야?”

“그건 아닙니다만, 이걸 말씀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심각한 일이야?”

난감한 표정을 짓는 김 실장.

“심각하다면 심각한 일입니다. 가족분들 모두와 연관이 있는 일이니까요.”

“수아도?”

“물론입니다.”

“그럼 들어야겠네. 무슨 일이야?”

“음- 회장님께서는 말하지 말라 하셨지만, 이건 도련님도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으니 말씀드리겠습니다.”

김 실장은 굳은 결심을 한 듯 표정을 살짝 굳히고는 이어서 입을 열었다.

“천우희 님께서 국내에 입국하신 상태입니다.”

“천우희? 그게 누군데?”

“도련님의 어머니 되시는 분 이름입니다만?”

“어머니라고? 그 여자가 지금 한국에 있단 말이야?”

“네……. 도련님을 만나게 해 달라며 매일 찾아오는 중입니다.”

“도대체 왜? 지금까지 혼자 잘도 사셨던 분이?”

나의 어머니란 사람은 죽은 게 아니었다.

아버지와 이혼하고 집을 나간 것이지.

내가 초등학교 5학년 즈음 모두를 버리고 떠나셨던 분이 바로 나의 대단하신 어머니였다.

아직도 그때의 어머니는 선명히 기억난다.

나와 형을 위해서라도 제발 떠나지 말아달라 부탁하시던 아버지의 모습.

울며불며 매달리는 나를 차갑게 외면한 채 집을 나서던 어머니.

슬픈 표정으로 어머니를 바라보며 나를 달래던 형.

아마 이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하겠지.

그뿐인 줄 아는가?

전생에 아버지와 형의 장례식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어머니였다.

너무 힘들어 어머니를 찾아간 적이 있었지만, 얼굴조차 보여주지 않았던 사람이 바로 내 어머니란 사람이었다.

“그것이…….”

“왜? 뭐 때문인데?”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괜찮으니까 말해. 내가 그 여자를 몰라?”

내가 망나니가 되는데 적어도 80% 이상은 그 여자의 영향이 있었을 거다.

그 여자가 떠난 후 1년 정도는 슬퍼했다.

하지만 그 슬픔은 금방 분노로 변해버렸다.

그 분노는 특이하게도 어머니에게만 향한 것이 아닌 어머니를 막지 못한 아버지에게까지 향했고, 이어서 여성이라는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만들었다.

내가 여성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어머니란 존재 때문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황당한 이유길래 김 실장이 말을 못 해?”

내가 궁금해하며 묻자 김 실장은 결국 입을 열었다.

“그게…… 도련님의 소환수를 좀 달라고…….”

김 실장도 황당한지 말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뭐? 그게 10년 만에 아들을 찾아온 이유라고? 그것도 나만? 형은?”

“큰 도련님에 대한 말은 없었던 거로 기억합니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형과 나는 배다른 형제가 아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같다는 말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내가 수아를 생각하는 것의 반만 되어도 절대 그럴 수 없을 텐데 말이다.

“와~ 진짜 대단하시네. 이건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아버지에게 내가 안다는 말은 하지 말아줘.”

“어쩌시려고요?”

“뭘 어째? 만나서 몬스터 몇 마리 주고 보내야지. 집안 분위기 망치기 전에.”

“그럼 언제쯤 만나시겠습니까?”

“오래 끌 거 있어? 오늘 당장 만나서 해결하면 되지.”

“그럼 바로 준비해 두겠습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는 그 여자를 꼭 만나야 할 이유가 있었다.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었으니까.

* * *

유명시의 공개 영상을 뉴스로 보던 나는 아버지가 나오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장벽에 올라서서 몬스터를 향해 외치는 아버지의 모습은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얼굴이 화끈거렸으니까.

지키라고. 인류의 방패가 되어달라고 몬스터들을 향해 연설 아닌 연설을 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내 손과 발을 도저히 펴지 못하게 만들었다.

“취미라고 하시니 이해는 해 드리겠다만, 정말 저렇게까지 하셔야 하나?”

“왜요? 전 보기 좋으신데?”

“그러냐? 난 도저히 모르겠다.”

지안이나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아버지가 멋있어 보일지 몰라도 나에게만은 그럴 수 없었다.

언제나 근엄하셨던 아버지의 저런 모습은 역시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전 왜 부르신 거예요? 설마 이거 보라고 부르신 거예요?”

“아니. 그건 아니고.”

아직 제한구역의 일이 끝나지 않았지만, 지안이 필요해 부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이젠 지안이 없어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진행된 상태였으니까.

“누구를 좀 만나려는데 혼자 가기 좀 그래서 말이야.”

“누군데요?”

“내 어머니란 사람.”

“아! 어머니 만나시는구나? 응? 어머니요?”

어머니란 말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지안은 이어서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그래. 그 여자가 나를 만나고 싶다고 하더라고.”

“그 여자라니요? 어머니라면서요.”

“그래. 10년 전에 모두를 버리고 떠난 어머니지.”

“버렸다고요? 왜요?”

“그냥 그렇게만 알고 있어.”

지안에게 모든 걸 설명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만나러 가는 사람이 내 어머니란 것 정도면 충분했다.

이후 만날 일은 없을 테니까.

“그나저나 이상하네요. 저는 왜 도련님의 어머니에 대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까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지안이뿐 아니라 대중들 역시 유명의 안주인에 대한 이야기하지 않았으니까.

아버지는 어머니가 떠난 후 그녀의 흔적을 모조리 지워버렸다.

그 여자에 대한 말이 형이나 나 아버지의 귀에 들어오지 않도록.

“됐고, 너는 그냥 나 따라와서 혹시나 내가 폭발하면 말려주기만 하면 돼.”

“네…….”

* * *

카페에 들어선 나는 주변을 살피다 익숙해 보이는 얼굴을 발견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미모의 여성.

‘하나도 안 변하셨네?’

집을 나가던 그때와 똑같은 어머니란 여자의 모습.

“지안아.”

“네.”

곧장 나와 떨어져 자리 잡는 지안을 보며 심호흡을 하곤 곧장 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이죠? 아들 얼굴 보는 거?”

살짝 떨리는 목소리.

일부러 아들이란 말을 강조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니? 나는 자주 봤는데?”

“다행이네요. 그렇게라도 저를 보시긴 해서.”

10년 만에 만난 아들을 대하는 태도치고는 지나치게 평범했다.

“어머? 혹시 이 엄마에게 화났니?”

화가 났냐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건가?

“본인이 잘 아실 텐데요?”

“우리 선우가 화가 많이 났나 보네?”

“지금 우리라고 하신 건가요? 제가 왜 그 쪽에게 우리죠?”

“그렇다고 너네 선우라고 할 순 없잖니?”

“지금 시비 거시는 건가요?”

“어머? 시비라니? 농담이라고 해주면 안 되겠니?”

농담도 사람을 봐 가면서 해야 한다는 걸 모르는 걸까?

“후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편하겠네요. 제 몬스터를 원하신다고요?”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가슴이 너무 답답해 한숨이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렇지 않은 티를 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솔직히 좀 힘들었다.

화가 점차 차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정 없는 거 아니니? 그래도 10년 만에 만난 건데 꼭 그렇게 차갑게 대해야겠니?”

“정이라? 아들을 버린 어머니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어머! 지금 어머니라고 해준 거니?”

어머니란 말에 순수하게 기뻐하는 모습은 날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제 어머니가 아닌 건 아니니까요. 받아들이기는 싫지만.”

“그 말은 나를 엄마라고 생각하고 있긴 하단 말이지?”

왜 이래?

이상하게 내가 자신을 어머니라 여긴다는 것에 집착하는 듯 보였기에 의문이 생겨났다.

설마 내 소환수가 목적이 아닌 건가?

“이유가 뭐예요? 정말 제 몬스터를 원하는 게 맞긴 해요?”

“그것도 있고, 오랜만에 아들 얼굴 좀 보고 싶기도 해서 한번 들렸단다.”

“아들 얼굴을 보고 싶다라? 그럼 형은요?”

형도 어머니의 아들이었다.

형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도 하지 않아놓고 아들 얼굴을 보고 싶다고?

“신우가 나를 만나주긴 하겠니? 너야 아직 어릴 때였지만, 신우는 아니잖니.”

그러니까 나는 어릴 때 떠나서 자기를 그리워할 수도 있지만, 형은 이미 머리가 굳은 후라 자기를 원망하고 있을 거란 걸 알고 있단 소리였다.

“제가 이 자리에 나온 이유는 당신을 보고 싶어서가 아니에요. 그냥 오래전부터 궁금했던 것이 하나 있어서죠.”

“당신이라니? 그냥 어머니라 부르면 안 되겠니? 엄마면 더 좋고.”

“그걸 원했다면 최소한 연락이라도 하셨어야죠. 10년 동안 연락 한번 없던 사람이 어떻게 염치도 없이 그런 걸 바라세요?”

바라는 게 있기에 저자세로 나올 거라 생각했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하긴 그런 사람이었다면 애초에 떠나지도 않았겠지.

“그렇구나. 그건 염치가 없는 거겠지?”

혼잣말하듯 말하며 한숨을 내쉬는 어머니란 여자를 보던 나는 조금 이상한 걸 발견했다.

‘왜 저렇게 슬픈 눈빛을 하고 있는 걸까?’

표정은 전혀 슬퍼 보이지 않았지만, 나를 보는 그 눈만은 달랐다.

아련해 보이는 그 눈빛은 언젠가 한 번 봤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나는 곧 어떤 장면을 떠올렸다.

‘그래! 전생의 수아가 나를 저런 눈빛으로 바라봤던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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