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8화 (88/214)

“갑자기 왜 그러느냐?”

“그 여자 제 어머니가 아닐지도 모른다고요!”

“뭐라?”

설마 정신계 능력자인가? 지금껏 속고 있었던 거야?

“정신계 능력자일지도 모른다고요.”

“이, 이런!”

아버지는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하시곤 김 실장을 불러들였다.

“찾으셨습니까?”

“지금 당장 그 여자 찾아!”

“네? 그 여자라 하시면?”

“천우희 말이야!”

“아! 알겠습니다.”

“당장 출국 금지 신청하고, 그 여자에 대한 기록 전부 가져와! 어떻게 입국했는지. 입국하기 전에 있던 나라는 어디였는지. 입국한 후에 어떻게 움직였는지까지 당장!”

“네!”

대답과 함께 급히 움직이는 김 실장을 보던 아버지는 나를 보시며 이어서 입을 여셨다.

“너 정도 되는 아이가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을 정도면 보통 수준이 아니라는 말인데, 이거 큰일이구나.”

“설마 중국 쪽일까요?”

“아마 그렇겠지.”

“정신계 능력자를 숨기고 있을 거라곤 생각했지만, 설마 이렇게 대범할 줄은 몰랐네요.”

정신계 능력자를 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이유는 능력이 무섭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것만큼 그들이 뛰어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정신계 능력자는 정신계 능력자만이 막을 수 있었다.

물론 각성자가 아닌 일반인에 한해서만.

한번 정신을 지배당하면 그는 평생을 지배자의 꼭두각시로 살아가야만 했다.

이를 풀기 위해서는 다른 정신계 능력자가 필요했기 때문에 각 나라는 자신들의 정신계 능력자를 꼭꼭 숨겨두고 보호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너를 속일 정도라면 아주 강한 능력자라는 소린데, 잡기만 하면 저쪽에 아주 큰 타격을 줄지도 모르겠구나.”

“그렇죠.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어요.”

만약 그녀를 사로잡을 수 있다면, 그녀가 지금껏 지배한 모든 존재를 이쪽의 손아귀에 넣을 수 있다는 소리였다.

물론 저쪽도 대비하고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도 큰 이득을 볼 수 있었다.

나에게 영향을 끼칠 정도의 힘을 가진 존재의 지배를 풀기 위해서는 죽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 테니까.

아마 중국의 고위 관료들이 떼죽음을 당하겠지.

이쪽이 사로잡은 각성자를 죽이거나 탈환은 불가능할 테니까.

“그나저나 대단하구나. 설마 정신계 능력으로 너의 소환수를 훔쳐갈 줄이야.”

“네? 그게 무슨……. 어?”

“왜 그러느냐?”

“자, 잠깐만요. 생각 좀 해보고요.”

그녀가 정신계 능력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너무 놀라 한 가지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바로 내 소환수를 데려갔다는 것.

내 소환수는 정신계 능력자가 지배할 수 없었다.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내 소환수에게만큼은 정신지배를 걸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지배를 걸지 못한다는 것보단 통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맞을 거다.

전생에 실험 아닌 실험을 해 봤으니까.

그것도 최강의 정신 능력자라는 안나 크래프트에게서.

어비스를 돌아다니던 나는 의뢰를 받고 찾아간 영국의 한 게이트 도시에서 10강 중 일인인 안나 크래프트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녀는 조금 오만한 성격이었는데, 그녀를 대하는 내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았는지 나를 골탕 먹이려 한 적이 있었다.

내 소환수를 빼앗아 버림으로써.

자신만만하게 뚱이에게 정신지배를 걸고 미소짓던 그녀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뚱이를 보며 당황한 적이 있었다.

분명 정신지배가 먹혀들었다며 뚱이에게 명령을 내렸지만, 뚱이는 그녀에게 신경도 쓰지 않았었다.

아니, 보긴 했다.

살기를 담아서.

“그럴 리가 없는데?”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이냐.”

“제 소환수들에게는 정신지배가 소용이 없어요.”

“뭐? 그게 무슨 말이냐?”

“아무리 대단한 정신계 능력자가 정신지배를 걸어도 말을 듣지 않는다고요.”

“그걸 네가 어찌 아느냐? 확인해 본 것도 아니지 않으냐?”

“아무튼 그래요. 이건 확신할 수 있어요.”

확신한다는 말에 아버지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다가 갑자기 표정을 굳히셨다.

“그럼 그 여자가 진짜란 말이냐?”

“그래서 저도 이상하다는 거예요.”

그녀가 정말 내 어머니라면 이건 일이 보통 심각해지는 게 아니었다.

이미 아버지는 그녀의 정신지배에 걸려 있는 상태라는 말이었으니까.

잠깐? 이것도 이상한데? 그럼 어째서 아버지는 그녀를 미워하는 거야?

정신지배에 걸린 자는 절대 정신지배를 건 대상을 미워할 수 없었다.

아무리 자신을 미워하란 명령을 내린다고 해도 무의식적으로 계속 그 대상을 떠올리며 그리워하기 때문에.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말이다.

“그것도 좀 이상하구나. 얼마 전 정신감정에서도 정상이라 나왔을 뿐 아니라 지금껏 단 한 번도 나에게 이상이 있다는 결과지를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요.”

“일단 그녀를 잡아놓고 확인을 해봐야 한다는 말이구나.”

“잠시만요.”

나는 곧바로 눈을 감은 채 그녀가 데려간 소환수들과 연결된 붉은 선을 찾아보았다.

이건가?

머릿속에 떠오른 두 개의 붉은 선에 집중하자 선과 연결되어있는 두 마리의 소환수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분명 연결이 끊기지 않았는데?

니안을 지배하기 위해 고생을 했던 나는 그 이후로 소환수와 연결된 선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고, 소환수들이 있는 방향까지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연결된 실을 따라가기만 하면 소환수가 나올 거다.

피곤한 일이긴 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역시 저와 연결이 끊기진 않았어요.”

똑-똑-똑-

“들어오게.”

아버지의 말이 떨어지자 문을 열고 김 실장이 들어와 곧장 아버지에게 보고를 시작했다.

“출국 금지 조치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바로 사람을 풀어 천우희 씨를 찾는 중입니다.”

“그녀에 대한 정보는?”

“여기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서류를 건넨 김 실장은 설명을 이어갔다.

“천우희 씨는 미국에서 입국한 것처럼 위장하였지만, 확인결과 중국에서 출발해 미국에 잠시 체류한 후 국내에 입국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입국 후 바로 로열 호텔 스위트룸에서 약 3일 동안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는 아시다시피 유명에 연락을 시도했고, 그 이후로 저희 쪽에서 감시를 붙여 놓았지만,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녀를 감시했던 자들 전부 정신감정 진행하게.”

“설마 그녀가 정신계 능력자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럴 거라고 추정 중이네.”

“바로 실시하겠습니다. 일단 저도 받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김 실장 역시 그녀를 만났기에 정신감정을 받아야 할 듯싶었다.

“저도 움직여야겠네요.”

“그래.”

김 실장과 대화하는 아버지를 뒤로한 나는 곧장 내 소환수들을 호출했다.

내 소환수들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방향만 대충 파악할 수 있었기에 급히 준비를 마치고 출발했다.

* * *

“이상하네?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그녀가 데려간 소환수와 연결되어있는 실을 따라 도착한 곳은 어이없게도 한남동에 위치한 거대한 저택이었다.

“여기가 정말 맞아요?”

“그런 모양인데. 저 안에서 소환수의 기척이 느껴지는데? 거참 이상하네?”

분명 곧장 중국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인천으로 향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이없게도 그녀는 한남동에 머물고 있었다.

“혹시 모르니까 준비하고 있어. 함정일지도 모르니까.”

“네.”

지안과 샤크, 고블린 3개 조를 데리고 온 상태였다.

마음 같아서는 니안이나 뚱이, 펜릴도 데려오고 싶었지만, 모두 어비스에 있었기에 일단 집에 상주하고 있던 애들만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일단 부딪혀 보도록 할까?”

차에서 내린 나는 커다란 대문 앞으로 이동해 벨을 눌렀다.

-누구세요?

곧장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혹 실례가 안 된다면 뭣 좀 물어보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말씀하세요.

“혹시 이곳에 천우희란 분이 머물고 계신가요?”

-누구시죠?

“아! 저는 유선우라고 합니다.”

-잠시만요.

이미 고블린들이 저택을 완전히 포위한 상태였기에 당당히 이름을 밝혔다.

탈칵-

순간 잠금이 풀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들어오시래요.

“네.”

열린 문 속으로 지안과 함께 들어선 나는 정원의 가로질러 미리 나와 있는 젊은 여성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안녕하세요?”

“아! 그 유선우 씨가…… 안녕하세요.”

나를 보며 놀란 여성은 내가 누구인지 알아본 것 같았다.

각정자는 아닌데? 그냥 일하는 분인가?

“안내를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네? 네! 이쪽으로 오세요.”

그녀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선 나는 거실에 나와 있는 그 여자를 발견했다.

“혹시 이 엄마가 보고 싶어서 온 거니?”

“어, 엄마? 아! 그래서?”

나를 안내한 여성이 놀라며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창밖을 통해 커다란 창고가 눈에 들어왔다.

‘저기에 내 소환수가 있나 보네?’

그녀를 슬쩍 바라본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따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이리로 오렴. 차 한잔 부탁해요.”

“네.”

“지안아 너는 여기서 대기하고 있어.”

“네.”

아무 거리낌 없이 나를 안내하는 어머니.

서재 비슷한 곳으로 나를 데려온 어머니는 나에게 자리를 권하곤 곧바로 소파에 앉았다.

“그래. 무슨 일이니?”

“물어볼 말이 있어서요.”

역시 각성자가 맞아.

그녀는 역시 각성자가 맞았다.

S급 최상위의 각성자.

“나에게? 뭐가 궁금하니?”

“여긴 뭐예요? 호텔에 계셨던 거 아니었어요?”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별것 아닌 질문을 던지고, 그녀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몬스터를 호텔에 데리고 갈 순 없잖니? 그래서 집을 좀 구해봤는데 어떻니?”

다행히 내가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에 기뻐하기만 하는 그녀.

“나쁘진 않네요. 그런데 돈이 어디서 나서 이런 집을 구하신 거죠?”

솔직히 좀 궁금하긴 했다.

내 어머니란 사람은 아버지와 이혼하면서 땡전 한 푼 받아가지 않았으니까.

위자료는커녕 그 흔한 옷 한 벌조차 가져가지 않은 어머니가 어떻게 이런 고급저택을 구입할 수 있었을까?

분명, 이 여자는 고아였다.

그랬기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은 수많은 반대에 부딪혀야 했다.

전대의 회장님.

그러니까 내 할아버지가 두 분의 결혼을 심하게 반대했는데, 그게 어느 정도냐면 이미 회장의 자리에 오른 아버지를 끌어 내리시려고까지 했을 정도였다.

물론 형이 태어나면서 할아버지의 고집이 꺾였다고 듣긴 했지만.

다만 허락을 하셨음에도 어머니에 대한 정보는 끝까지 세상에 공개하지 않으셨다.

유명의 안주인이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이 여자가 정신계열 각성자라면 모든 게 설명이 되긴 하지만…… 그 능력을 이용해 돈 많은 노인네라도 꼬신 건가?

개인적인 질문이었지만, 솔직히 좀 궁금했다.

“혹시 이 어미가 돈을 훔치기라도 했을까 봐 걱정되는 거니?”

“그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요.”

“물려받은 재산이 좀 있다고 할까?”

“누구에게요?”

“누구긴 누구야 너의 외할머니지.”

외할머니라고? 외할머니에 대한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외할머니요?”

“엄마가 19살 때 돌아가시면서 재산을 좀 물려주셨단다. 평생 써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많은 재산을.”

사실일까?

이건 후에 조사를 좀 해봐야 할 것 같았다.

똑똑-

“들어와요.”

허락이 떨어지자 들어와 차를 내려놓고 나가는 여성을 보던 나는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설마 그걸 물어보러 여기까지 찾아온 거니?”

“아뇨. 제가 물어보고 싶은 건 따로 있어요.”

“그래 물어보렴.”

차를 한 모금 더 마신 후 찻잔을 내려놓은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각성.”

한 단어가 내 입에서 나오자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차를 마시던 그녀의 표정이 굳어지며 눈동자가 흔들리는 모습을 본 나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각성이라니?”

“모르는 척하지 마시죠. 당신이 각성자라는 사실은 카페에서 보는 순간 알 수 있었으니까. 물론 그때는 이상하다는 걸 느끼지 못했지만.”

“흐음-”

내 말에 침음을 흘리던 그녀는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고 이어서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암시를 깨트릴 수 있었는지 물어봐도 될까? 쉽지 않았을 텐데?”

“쉽지 않다라? 그 말은 저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닌가요? 이래 봬도 세계랭커에 이름을 올린 사람인데?”

“어렸을 적 걸어놓은 암시였으니까.”

“뭐……라고요?”

“말 그대로란다. 각성자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네 아버지는 물론 신우와 너, 주변 인물들 전부에게 아주 오래전에 암시를 걸어 놓았거든.”

그 말은 정말 이 여자가 내 어머니라는 소리였다.

설마 정신지배가 아닌 암시를 걸어놨을 줄이야.

정신지배가 아닌 암시는 단 하나의 사실에 한해서만 발동되기 때문에 정신감정을 통해 밝혀내기가 힘들었다.

물론 암시의 수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금처럼 한 인물에 대한 간단한 정보만을 숨기는 정도로는 정신감정으로 밝혀내지 못했다.

감정을 직접 건드리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어째서? 어째서 나와 형에게까지 그런 암시를 걸어놓은 거죠?”

“당연한 걸 묻는구나? 이 어미는 그때는 물론 지금도 네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단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정신계 각성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싶은 건 당연하지 않겠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신계 각성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아버지는 이 여자를 어떻게 했을까?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자신을 조종할지도 모르는 여자를 아니, 자신의 정신을 지배해 사랑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는 여자를 가까이 두고 싶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특히 아버지같이 철저한 분이라면 더더욱.

그나저나 아직도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아버지를 사랑한다는 그 말 정말인가요?”

“그렇단다. 이 어미에게 남자는 아직도 네 아버지뿐이란다. 너희들 역시 마찬가지고.”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이 여자에게 진심이라는 게 존재하긴 하는지 궁금했다.

“여기까지만 하죠.”

“무슨 말이니?”

“샤크!”

내 그림자 속에 녹아들어 있던 샤크는 내 부름에 고개를 내밀었다.

“응? 꺅!”

샤크를 본 그녀는 깜짝 놀라며 비명을 질렀지만, 이어진 샤크의 행동에 그녀가 내질렀던 비명은 그대로 묻혀버렸다.

샤크가 그녀를 삼켜버렸으니까.

죽진 않을 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떨어야 할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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