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1화 (91/214)

“아버지가 찾아올 거야……. 안 돼……. 절대 그렇게 만들어선…….”

어머니는 그 이후로 바닥에 주저앉아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기에 아버지가 나서서 어머니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어머니는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 아이를 어머니와 같은 처치로 만들 순 없어. 또 그런…….”

아버지의 노력에도 쉽게 진정되지 않으시던 어머니는 갑자기 정신을 차리시곤 나를 똑바로 바라보셨다.

“절대 수아의 능력을 세상에 공개하면 안 돼. 아니, 각성자라는 사실도 숨겨. 그래야만 내 손녀를, 네 딸을 지킬 수 있어. 알겠니? 세상에 공개하면 안 돼. 꼭 그리해야만 해!”

어머니는 무언가 단단히 결심한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재촉했다.

“혹시 그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그래. 이유를 알아야 내 말을 이해할 수 있겠지.”

그 이후 어머니는 수아가 아닌 외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외할머니는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란 평범한 여성이었다.

그랬던 외할머니가 어째서 천마신교라는 단체의 수장인 외할아버지와 결혼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바로 외할머니가 가진 특이한 능력 덕분이었다.

수아와 같은 잠재력을 풀어버리는 능력.

천마신교에 대대로 내려오는 신녀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던 능력이었다.

백여 년에 한 번 태어난다는 신녀.

그 신녀가 바로 천마신교를 현대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 강함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만들어 줬던 존재였다.

무를 숭상하는 무인들의 길을 밝혀주는 등불과도 같은 존재.

균열이 열리기 전부터 존재했다는 천마신교와 역사를 같이했던 존재라는 말에 나는 정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그들이 수아의 능력에 대해 알면 수아를 데려가기 위해 움직일 거란 말이에요?”

“그렇단다. 아마 아버지가 직접 움직일 것이야. 신녀는 천마신교에게 그만큼 중요한 존재니까.”

“내 손녀딸을 데려간다고? 누구 허락을 받고 그들이 감히!”

“그들에게 허락이 필요할 것 같으세요? 아마 그 사실이 밝혀지면 아버지뿐 아니라 신교 전체가 움직일 거라고요. 그러니까 어떻게서든 숨겨야 해요! 알았어요?”

어이가 없었다.

‘내 딸을 마음대로 데려가겠다고? 내가 그걸 가만히 지켜볼 것 같아?’

천마라는 자가 얼마나 대단하던 아니 천마신교 전체가 덤벼들어도 모두 막아낼 것이다.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을 모조리 저세상으로 보내버릴 것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 그렇게 약하지 않아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절대 약하지 않았다.

내 소환수가 아니라 나 자신의 힘을 말하는 거다.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한다면 그 누구도 나를 막지 못할 정도로…….

물론 일회성이긴 했지만, 그 힘을 풀어버린다면 그 누구도 나를 막아 세우지 못할 거다.

왕눈이와 같은 상급 악마종이 떼로 덤비더라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확실하진 않지만…….

* * *

“준비 얼마나 됐어?”

“얼추 준비는 끝났습니다.”

타락한 대지.

일명 정령들의 땅.

내가 그곳으로 향하려는 이유는 수아만의 힘을 키워주기 위해서였다.

수아는 정령의 문을 통해 자신이 정화한 정령을 소환할 수 있었다.

일반 정령계열 각성자가 자신과 계약한 정령을 소환하는 것처럼 수아 역시도 자신이 정화한 정령을 소환할 수 있었기에 만약을 대비해 수아에게 대량의 정령을 정화하게 할 생각이었다.

“그럼 출발하도록 할게. 수아는 아직 들여보내지 말고 사람 보내면 그때 데려와.”

“알겠습니다.”

“미호야.”

미호가 공간의 문을 열어 버렸고, 나는 곧장 그곳을 향해 발을 옮겼다.

“오셨어요?”

안으로 들어서자 현지가 남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행은 어디까지 됐어?”

“일단 보이는 모든 정령을 등급에 상관없이 붙잡아 두고 있어요. 지금까지 20개체를 속박해 이곳으로 데려오는 중이에요.”

“생각보다 적네?”

“도련님이 가르쳐주신 방법이 정령을 상대하는 데 괜찮긴 한데, 마력의 소모가 너무 극심해서 이곳으로 데려오는 것이 좀 힘든가 봐요.”

마력을 이용해 정령을 속박한 후 이곳으로 천천히 몰고 와야 하므로 힘들긴 할 거다.

하지만 이것을 계기로 길드원들의 마력 활용력이 능숙해질 걸 알고 있기에 정령 한 개체당 최소한의 수를 유지 중이었다.

전생에 타락한 대지에서 주로 사냥하던 자들은 이상하게도 마력의 활용력이 다른 각성자에 비해 지나치게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적이 있었다.

그 이유는 당연하게도 정령을 속박하는 방법에 있었는데, 마력을 이용해 정령을 속박하는 것은 대량의 마력을 조금의 낭비도 없이 세밀하게 컨트롤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이에 익숙해지면서 마력의 활용능력뿐 아니라 마력 역시도 상승했고, 간간이 성장이 멈췄던 각성자들이 성장하는 경우가 있었기에 타락한 대지에 존재하는 정령이 씨가 말라버릴 정도로 많은 인원이 이곳으로 몰린 적이 있었다.

물론 타락한 대지의 종착역인 암흑의 바다에서 계속 나타나는 타락한 정령 덕분에 씨가 완전히 마르진 않았지만.

동쪽 끝과 서쪽 끝에 존재하는 암흑의 바다라 불리는 곳에서는 타락한 정령뿐 아니라 몬스터들이 끝없이 나타난다.

일정한 주기 없이 짧게는 3개월에서 길게는 1년 정도의 텀으로 엄청난 수의 몬스터들을 뱉어내기에 인류에게는 크나큰 위험이었다.

갑작스럽게 나타나 인류를 위협하는 몬스터 웨이브 덕에 초창기에는 어디서 나타났는지조차 모르고 큰 피해를 입어야 했으니까.

“그나저나 깜짝 놀랐어요. 아가씨에게 능력이 더 있을 줄은 몰랐는데.”

“어떻게 사용하냐에 따라 변하는 거겠지.”

어머니 때문에 아버지나 내가 수아와 함께 있는 시간이 적어져서일까?

수아는 심심했는지 어비스에 있는 최상급 불의 정령을 소환해서는 같이 놀고 있었다.

처음 그 모습을 봤을 때는 어비스에 있던 정령이 게이트를 통과해 수아에게 온 것으로 생각했는데, 정령을 비롯해 내 소환수들을 관리하던 길드원들이 정령이 갑자기 사라졌다며 보고를 해와서 정말 당황했었다.

“기존에 정령을 소환하는 것 말고도 자신이 원하는 정령을 소환한다는 건 또 다른 능력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거 아닐까요?”

“아마 정화를 통해 계약 비슷한 것이 되어서 그런 모양이야.”

수아가 정화한 정령은 아직 최상급 불의 정령 하나뿐이었지만, 둘의 관계를 볼 때 다른 정령계열 각성자와 계약한 정령의 관계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수아가 여는 정령의 문에서 나오는 정령들은 수아의 부탁을 들어주기는 했지만, 각성자들이 계약한 정령과 다르게 자유로운 편이었으니까.

하지만 수아가 정화해 준 정령의 경우 수아의 말이라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뭐든 해주는 편이었다.

“그나저나 괜찮으세요?”

“뭐가?”

“지금 하고 계시는 거요.”

나는 지금 파괴의 마력을 육체에 담아둔 상태였다.

많이는 아니고 소량이지만 파괴의 마력에 육체를 적응시키기 위해서 그날부터 계속해서 담아두고 있는 상태였다.

수아를 빼앗아 갈지도 모른다는 그 말 때문에 계속해서 미뤄두었던 작업을 곧장 시작했다.

고통이 엄청났지만, 이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수아를 위해서라면.

“괜찮아. 버틸 만해.”

“저도 해봐서 아는데 고통이 장난 아닐 텐데요? 거기다 도련님은 지금 그때의 저보다 많은 양의 마력을 담고 계시잖아요.”

솔직히 말하면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엄청난 고통이 느껴지는 상태였다.

말할 때조차 극심한 통증이 계속해서 울렸지만, 참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고통스럽다고 안 할 수도 없었으니까.

“걱정하지 마. 어차피 내 마력이야.”

“하지만…….”

현지는 내 말에도 걱정이 많이 되는 모양이었다.

지금 내 표정만 봐도 걱정이 될 거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긴 하지만 그야말로 척일 뿐이었다.

표정과 행동에서 드문드문 나타나는 행동은 주변 사람들을 걱정시키기에 충분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해야 했던 일이야.”

“해야 했다니요?”

“대충 그렇게만 알고 있어. 그나저나 왜 아무도 안 나타나?”

“이제 곧 나타날 거예요. 좀 멀어서 끌고 오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뿐이니까요.”

말을 돌리기 위해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상한 꿈을 계속해서 꾼다는 말을 하면 지금보다 더욱 걱정할 게 뻔해 보였으니까.

가족들의 귀에 들어갈 수도 있었고.

“20개체라고 했지? 등급은 어느 정도야?”

“타락한 정령이라 그런지 기본 등급이 상당히 높아요. B급이 12개체고 A급이 6개체 S급이 2개체에요.”

“S급도 있어? 그것도 2마리나?”

“아무래도 처음 정리를 위해 보냈던 제 부하들이 주변 정리를 너무 심하게 한 것 같아요. 이 주변에 있는 모든 정령을 소멸시킨 것 같더라고요.”

이곳으로 길드원들을 보내기 전 혹시 모르는 사태를 대비해 고블린들을 투입했다.

주변을 대충 정리해 두라 했는데, 대충이 아니라 전부 정리를 해 버린 듯싶었다.

“그나저나 S급 두 마리는 누가 데려오는 거야?”

“지안이가 데려오고 있어요.”

“그럼 한 마리는?”

“둘 다 지안이가 데려오고 있어요.”

“정말?”

“도련님은 지안이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지안이 엄청 강해요. 마력량만큼은 저와 비슷한 정도라고요.”

지안이가 본격적으로 훈련을 받기 시작한 것이 채 2년이 되지 않았다.

당연히 그에 맞춰 지안이를 생각하고 있긴 했지만, 마력량이 현지와 비슷하다는 것은 솔직히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안의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지 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안이가 정확히 어느 정도 수준인데?”

“도련님 소환수들을 기준으로 하면 왕눈이를 제외하면 1:1로 지안이를 쉽게 이길 수 있는 녀석들은 없다고 보시면 돼요. 홉일이도 이젠 지안이에게 상대가 안 돼요.”

“그 정도라고? 뚱이나 샤크급이 아니면 지안이를 못 이긴다는 거야?”

“네. 거기다 지안이가 펜릴과 함께 덤비면 저도 조금은 고전할지도 모르고요.”

도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

악마종의 경우 등급을 쉽게 상승시켜주는 악마석이 존재하기에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지만, 지안이나 현지의 경우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악마종들보다 성장 속도가 더욱 빨랐다.

정말 내 마력이 둘을 강하게 만드는 건가?

만약 그것이 정말이라면 왜 둘에게만 그런 결과가 나오는 걸까?

이 문제는 시간을 따로 빼서라도 알아봐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환수뿐만 아니라 길드원들까지 강화를 시킬 방법이었으니까.

“아! 저기 보이네요.”

현지가 한 곳을 가리키는 것을 보고 고개를 돌리자 멀리 지안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안 뿐 아니라 그 뒤로도 계속 모습을 드러내는 길드원들과 타락한 정령들.

“가서 좀 도와줘. 힘들어 보이는데.”

“네.”

지안은 아무렇지 않았지만, 길드원들은 달랐다.

정령당 다섯의 인원이 붙어 번갈아 가며 정령을 데려오고 있음에도 그들 모두가 심하게 힘들어 보였으니까.

아마 아직 처음이라 어느 정도의 마력을 사용해야 할지 모르기에 필요한 마력 이상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쪽부터 정렬시켜. 서로 붙지 않게 거리 조절해서.”

한 번에 모아서 데려오는 방법이 있긴 했지만, 막대한 마력이 필요했기에 지금 길드원들의 수준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지안이나 현지라면 가능하겠지만, 길드원들의 성장을 위한다는 이유도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길드원들이 합동할 경우 서로의 마력을 한 치의 틈도 없이 이어 붙여야 함은 물론이고 그 상태로 이동까지 해야 하는 세밀한 마력 컨트롤이 필요했기에 지금으로서는 불가능했다.

“현지야 가서 수아 데려와.”

“네.”

현지는 미호가 한쪽에 열어둔 공간의 문을 통과해 사라졌고, 잠시 시간이 지나자 수아를 데리고 나타났다.

“아빠!”

“수아 왔니?”

“네! 히히.”

수아는 나에게 말하면서도 정령들이 신경 쓰이는지 계속 그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령들 역시도 수아를 발견하고는 수아에게 움직이기 위해 발악하는 중이었고.

“수아야 친구들이 많이 아파 보이는데 수아가 호~ 해주는 게 어떨까?”

“그래도 돼요?”

“물론이지.”

“네!”

대답과 함께 수아의 몸에서 눈부신 마력의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각각의 정령들을 감싸기 시작한 수아의 마력은 그들의 탁한 기운을 정화하기 시작했고, 이어서 성장까지 시키며 각자의 색을 찾아가게 만들었다.

“오-”

“오오- 정말이었어.”

힘들게 정령을 이곳까지 데려온 길드원들은 그 모습을 보며 감탄을 하고 있었다.

현지와 지안 역시도 처음 보는 광경이어서인지 감탄 중이었고.

그렇게 시간이 잠시 흐르자 등급이 낮은 정령부터 정화가 끝나갔고, 이어서 S급의 정령들까지 모두 정화가 끝났다.

다만 기대와 다르게 S급 정령들은 성장하긴 했지만, 최상급의 벽은 넘어서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정령의 경우 일반 몬스터와 등급이 조금 다르게 측정된다.

같은 등급의 정령이라도 그 힘의 차이가 상당하기에 상급 정령의 경우 강한 개체는 S급으로 측정이 되지만 힘이 조금 부족한 상급 정령이 A급으로 측정이 되는 경우 있어 등급 개편이 이루어지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는 많은 오류가 있었다.

그나저나 정화가 완전히 끝난 20개체의 정령들은 특이하게도 대부분이 불의 정령이거나 바람의 정령이었다.

불의 정령 9개체 바람의 정령 7개체 물의 정령이 3개체 마지막으로 땅의 정령이 1개체였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게 땅의 정령의 수가 부족하네?’

내가 말한 것은 지금 정화된 정령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전 세계의 각성자 중에 땅의 정령과 계약한 존재는 거의 없다시피 했기에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했어요!”

밝게 웃으며 나에게 안겨 오는 수아는 조금 지쳐있었다.

한 번에 20개체의 정령을 정화함과 동시에 진화의 버프까지 사용했기에 그런 듯 보였다.

거기다 정령의 등급도 높았기에 수아는 마력 대부분을 사용한 것처럼 보였다.

한 번에 많이 정화하는 것은 피해야겠어.

“수아야, 친구들 데리고 집에 가 있으렴.”

“아빠랑 같이 있으면 안 돼요?”

“아빠가 아픈 수아 친구들을 더 데려와야 해서 수아랑 함께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은데? 어쩌지?”

“정말요? 친구들 더 데려다줄 거예요?”

“그럼.”

“그럼 저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수아는 공간의 문을 가리키며 힘차게 말했다.

“그래. 친구들과 놀고 있으면 아빠가 친구들 더 데려와서 수아 부를 테니까. 놀고 있으렴.”

“네!”

수아는 정화된 정령들을 데리고 공간의 문으로 들어갔고, 나는 그 모습을 보다 수아가 사라진 걸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조금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자.”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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