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4화 (94/214)

“이제 괜찮다니까요?”

“그래도 좀 더 안정을 취하거라.”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벌써 다시 움직이려 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 듯하셨다.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것도 아닌 내가 죽음의 땅으로 향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찾아오셔서는 며칠째 나를 붙잡아 두고 있었으니까.

“정말이라니까요. 오히려 전보다 더욱 힘이 넘쳐요.”

“그래도 안 돼!”

내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마력을 비롯해 육체 능력이 전에 비하면 비약적으로 상승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3배 이상은 강해진 듯 보였고 지금도 육체가 회복되며 계속 강해지는 중이었기에 완전히 회복하면 얼마나 더 강해질지 기대가 될 정도였으니까.

“그럼 오늘까지만 쉴게요.”

“그것도…….”

“그렇게 하거라.”

“여보!”

어머니가 아버지를 보며 소리쳤지만, 아버지는 어머니를 향해 고개를 저으셨다.

말려봐야 소용없다는 걸 아시는 모양이었다.

사실 지금 당장에라도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이것 역시도 많이 양보를 한 것이었다.

두 분에 왜 이러시는지 알기 때문에.

별일 없을 거라던 아들이 갑자기 초주검이 되어 실려 와 한 달 넘게 정신도 못 차리고 있는 꼴을 봐야 했던 부모님의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두 분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나를 찾아오셨고, 잠들기 전까지 나를 걱정하며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형 역시도 바쁜 시간을 쪼개 밥 먹는 시간만큼은 꼭 이곳에 와서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나를 걱정했다고 한다.

내가 깨어나지 않았다면, 평생을 그러셨을 거라던 김 실장의 말에 조금 울컥했을 정도로 두 분과 형이게 정말 죄송스럽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가장 미안한 건 수아였지만.

“저 많이 걱정하셨던 거 알아요. 하지만 해야 할 일이 있어요. 그러니 두 분이 조금만 이해해 주세요.”

“그래. 대신 오늘까지는 푹 쉬어야 한다.”

“네.”

* * *

“오! 엄청난데?”

“그렇죠? 쟤도 아직 회복 중이긴 한데 은연중에 뿜어내는 기세가 장난 아니에요.”

나에게 당했다던 상처가 완전히 회복이 되진 않았는지, 수호자급 불의 정령의 투명한 몸체 여기저기에 흐릿한 부분이 드문드문 보였다.

“이거 왕눈이보다 강한 거 아니야?”

“더 강하진 않고 비슷한 수준인 것 같아요. 그때의 왕눈이는 전력을 다한 게 아니니까요.”

“아니라고?”

“당연하죠. 왕눈이가 전력을 다했으면 거기가 전부 날아갔을지도 모른다고요. 도련님이 떠나지 않으셨기에 전력을 발휘하지 못한 거죠.”

‘내가 민폐였네? 괜히 거기 남아서 왕눈이가 전력을 다하지 못하게 했던 거였어?’

왕눈이와 비슷한 수준이라면 현지가 끼는 것만으로도 녀석을 처리하는 데 문제는 없었을 거다.

물론 둘 다 크게 다쳤을지도 모르지만.

“물론 그랬다면, 수아 아가씨가 저 녀석을 얻지 못했겠지만요.”

“그렇지? 맞아. 내가 가길 잘했다니까.”

만약 내가 나서지 않았다면 수아에게 저 녀석을 붙여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지금의 내 강함도 얻지 못했을 거다.

“그래도 너무 위험하셨어요!”

순간 지안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잘못했다가는 상무님이 죽을 수도 있었다고요!”

“맞아요! 다음부터는 절대 그러지 마세요.”

“알았어. 다음부터는”

이상하게 전과 상황이 많이 바뀐 것 같았다.

전에는 내가 둘을 혼내는 역할이었다면, 지금은 그 반대로 내가 혼나는 역할이 된 것 같았다.

“그나저나 내가 준비해 두라고 한 건?”

“준비 끝났어요. 출발만 하면 돼요.”

나는 현지에게 미호를 데리고 죽음의 땅 깊숙한 곳까지 탐험을 해두라 지시를 내려둔 상태였다.

악마종들이 득실거리는 곳은 아니더라도 그 가까운 거리까지.

“그곳 수준은?”

“일단 제 부하들 정도 되는 애들이 좀 많아요. 홉일이 급도 드문드문 보이고 가끔이지만 니안 정도 되는 애들도 보이고요.”

“왕눈이급은?”

“없진 않을 거예요.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면 느껴지긴 할 테니까.”

“그래. 그럼 내일 출발할 거니까 준비 끝내 놔.”

이번은 새로운 악마종을 늘리려는 목적보다는 기존의 녀석들을 강화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정말 괜찮은 능력을 가진 녀석을 발견하면 지배를 할지도 모르지만.

“정말 괜찮으신 거 맞으시죠?”

“왜? 아직 아파 보여?”

“아니, 그게 아니라 그때처럼 변하시는 거 아니냐고요.”

“그건 걱정할 것 없어.”

그때야 두려움에 젖어 나도 모르게 파괴의 마력을 한계 이상 끌어올려 버린 거였고, 지금은 그때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해진 상태였기에 그때처럼 두려움에 빠져 미쳐 날뛰는 일은 없을 거다.

아마도…….

* * *

“되게 어둡네?”

“그렇죠. 아마 조금 더 들어가면 아무것도 안 보일지도 몰라요.”

해가 진 직후와 비슷한 어둠을 품고 있는 숲의 풍경과 마나에서 풍겨 나오는 진한 어둠이 본능을 자극하는 듯 음산한 기운을 풍겼다.

“일단 주변 정찰부터 끝내고 시작하자.”

“네.”

이번 탐험은 길드원들을 데려오지 않은 상태였다.

악마종이라 불리는 것들이 득실거리는 이곳은 그들에게 너무 위험했으니까.

거기다 지금 그들은 내 명령에 따라 타락한 대지에서 정령을 상대로 훈련을 진행하는 중이었고, 수아 때문이라도 데려올 수 없는 상태였다.

수아는 지금 나를 지키겠다며 정령들을 계속해서 정화하는 중이었다.

수호자급 정령을 데리고 공간의 문을 통해 타락한 대지와 유명시를 계속해서 이동하며 하며 정령의 수를 급격히 늘리고 있는 상태.

그 수가 벌써 천에 다다를 정도로 빠르게 정령의 수를 불려가는 중이었다.

물론 수아가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수호자급 정령이 그 옆을 지키고 있는 이상 위험에 처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기에 일단은 지켜보기로 했다.

“상무님. 안으로 좀 더 진입해야 할 것 같아요.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대부분 몬스터네요.”

“그래? 그럼 천천히 진입해 볼까?”

“네.”

이곳으로 출발하기 전 현지와 지안에게 악마종에 대한 설명을 해둔 상태였다.

악마종을 몬스터가 아닌 새로운 종으로 지정하여 일반 몬스터와 악마종을 구별해 이곳에서 상대해야 할 녀석들의 범위를 확실히 정해 두었다.

언제까지고 내 소환수들을 뚱이급 왕눈이급으로 부를 수 없는 노릇이기도 했고, 앞으로의 탐험이나 전투에 착오가 생길 위험이 있기도 했기에 이 기회에 확실히 악마종에 대한 개념을 잡아주었다.

“그런데 도련님은 왜 창을 들고 계신 거예요?”

“나? 나도 싸워보려고.”

“네?”

“왜 나는 싸우면 안 되냐?”

“그건 아니지만…….”

오늘은 뒤에서 지켜만 보지 않을 생각이었다.

나 역시 강해진 힘을 시험해 보고 싶었으니까.

“그나저나 현지 너 제대로 확인한 거 맞아?”

“뭐가요?”

“악마종은커녕 일반 몬스터조차 느껴지지 않잖아? 왕눈이를 데려온 것도 아닌데 말이야.”

이동 속도가 느린 편이긴 했지만, 이곳은 죽음의 숲 초입과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장소였다.

몬스터와 악마종들이 우글거려야 정상이었음에도 느껴지는 것이 전혀 없었기에 의문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아! 제가 도련님께 말씀 안 드렸나요?”

“뭘?”

“여기부터 나오는 놈들은 대부분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이쪽 영역에 있던 녀석을 처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쪽으로 넘어온 녀석들이 없는 것 같네요.”

“여기 있던 놈 처리했어?”

“네. 안전을 위해서 처리해 두었어요.”

현지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악마종뿐 아니라 S급의 몬스터들조차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으니까.

“그럼 악마석은?”

“제 부하들 줬는데요?”

“그러냐? 잘했다.”

현지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가던 길을 가기 시작했다.

“도련님.”

“왜?”

“저쪽에 하급으로 추정되는 녀석이 있어요.”

“거리는?”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에요. 어떻게 할까요? 바로 처리할까요?”

바로 처리하냐는 현지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해본 나는 지금의 방식은 효율이 너무 떨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지와 지안 그리고 나.

뚱이와 니안, 미호, 펜릴.

이 모두가 함께 다니는 것은 전력의 낭비라 생각한 나는 둘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좀 떨어져서 행동할까?”

“떨어지다뇨?”

“솔직히 전력 낭비란 생각 안 드냐? 하급 하나 때문에 모두가 우르르 몰려가는 건 시간이 아깝잖아. 그러니까 여기서 헤어지자고.”

“하지만 그럼 상무님이…….”

“나는 뚱이랑 미호와 함께 다닐게. 현지, 너는 니안이랑 다니고, 지안이는 하던 대로 펜릴이랑 다녀. 5시간 후에 여기서 만나기로 하고.”

내 말에 현지는 잠시 생각을 하는 것 같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제가 혼자 다닐게요. 도련님이 니안이도 데려가세요. 저는 혼자가 편하니까요.”

“그게 좋겠네요.”

“네가 그렇다면야.”

솔직히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기에 현지의 배려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럼 저는 먼저 출발할게요. 위험하시면 바로 신호탄 발사하세요.”

“그래.”

“저도 그럼 가볼게요.”

현지가 사라지고 잠시 후 지안이 펜릴을 타고 날아올랐다.

“우리도 가볼까?”

“쿠워!”

“키릭!”

* * *

콰앙-

내 주먹에 턱을 강타당한 쥐의 얼굴을 한 악마종이 숲의 나무들을 부수며 튕겨 나갔다.

최하급 악마종을 발견한 나는 소환수들에게 끼어들지 말란 말을 남기고 곧장 쏘아져 나가 녀석을 후려쳤는데,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그대로 공격을 허용하는 녀석을 보며 정말 많이 강해졌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전이었다면 목숨을 걸어야 했을지도 모를 상황이었지만, 놀랍게도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파괴의 마력을 끌어올렸음에도 육체가 손상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전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파괴의 마력을 끌어올려 육체를 강화한 상태였다.

물론 내 마력의 100분의 1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최하급 악마종을 상대하는 것이 정말 쉽게 느껴졌다.

이 정도면 전생의 적응력을 넘어섰다고 봐도 되겠어.

마력의 양은 진작에 전생을 넘어선 상태였지만, 육체적 강함이나 파괴의 마력에 대한 적응력은 그때에 비하면 정말 별것 아닌 수준이었기에 미소가 절로 입가에 떠올랐다.

“뭐해? 안 덤벼?”

단 한방의 공격을 허용했음에도 겨우 정신을 차린 악마종은 아직도 충격이 심한지 함부로 덤비지 못한 채 당황한 눈으로 나를 탐색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키악!”

도발에 걸려들었는지 울부짖으며 빠르게 쇄도하는 쥐의 형상을 한 악마종을 보며 자세를 잡은 나는 녀석의 공격을 가볍게 피하며 그대로 배에 주먹을 꽂아 넣음과 동시에 반 바퀴 회전하며 팔꿈치를 이용해 녀석의 턱을 그대로 후려쳤다.

퍼억- 쾅-

“쿠웨엑-”

내 공격에 녀석의 두 눈이 초점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던 나는 마무리를 하기 위해 그대로 다리를 들어 올려 녀석의 머리통을 향해 내려찍었고 그 반동으로 녀석의 머리가 땅에 처박히며 터져 버렸다.

쾅- 푸확-

땅을 강타한 영향으로 충격파가 일어나며 반경 수 미터가 주저앉았고, 이내 작은 떨림이 땅을 타고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하급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겠는데? 아니, 중급까지도 가능하겠는데?’

파괴의 마력을 담는 것만으로도 육체가 비약적으로 강해지는 것을 느낀 나는 어쩌면 중급의 악마종조차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차올랐다.

비록 최하급이지만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간단히 처리했기 때문에.

“미호야, 악마석 좀 꺼내줘.”

내 말에 멀리서 지켜보던 미호가 달려와 머리가 사라진 악마종의 몸을 파헤쳐 악마석을 꺼내 나에게 넘겼다.

“다시 출발해 볼까?”

그나저나 최하급 악마석을 어디다 쓰지?

내 소환수중 최하급 악마종은 고블린들뿐이었다.

문제는 그 고블린들조차 이제 곧 하급으로 올라설 것처럼 보였기에 최하급 악마종을 어디에 써야 할지 살짝 고민이 되었다.

임프를 하이임프로 진화시키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다른 고블린들을 악마종으로 만드는 게 좋을까? 샤벨도 괜찮을 것 같은데?

각자의 쓰임새가 분명했기에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이임프로 진화를 시킨다면 새롭게 올리는 장벽을 쌓는 시간이 많이 단축될 테고, 그 외에도 채굴이라던가 이번에 새롭게 시작한 농업인 마력을 올려주는 작물들과 과일을 재배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테니까.

고블린도 마찬가지였다.

조장급 고블린을 늘린다면 호위 인원을 더욱 늘릴 수 있었다.

지금의 고블린 호위조는 인원이 너무 많았다.

한 조에 30이 넘는 수가 배치되어 있는 것은 낭비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악마종이 없는 고블린들을 호위로 써먹는 것은 큰 위험을 초래할지도 몰랐기에 어쩔 수 없이 많은 인원을 배치했지만, 솔직히 조금 아까웠다.

“응?”

하급?

생각에 잠겨 걸음을 옮기던 그때 멀리서 하나의 기척이 느껴졌다.

조금 전 상대했던 최하급의 악마종이 아닌 하급의 악마종으로 추정되는 힘을 내뿜고 있는 녀석.

그나저나 좀 특이하네?

이것들은 왜 자신들의 힘을 숨기지 않고 내뿜는 거지?

분명 죽음의 땅 초입에서 발견되었던 악마종의 경우 모두가 자신들의 힘을 숨기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서 발견되는 녀석들은 자신의 힘을 숨기지 않은 채 내뿜고 있었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말이다.

“이번에도 내가 상대할 테니까. 도와 달라고 하기 전까지 너희들은 나서지 마. 알았어?”

나는 소환수들의 대답을 들으며 기척을 최대한 감추고 멈췄던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점차 거리가 가까워지는 걸 느끼던 내 앞에 드디어 하급으로 추정되는 악마종의 모습이 나타났다.

미노타우로스로 보이는 몬스터를 뜯어먹고 있는 녀석은 개미와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2m가 채 안 되는 작은 체구에 윤기가 흐르는 검붉은 갑옷이 전신을 감싸고 있었고 입가에는 날카롭게 솟아오른 한 쌍의 집게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한 쌍의 더듬이와 두 쌍의 팔, 마찬가지로 두 쌍의 다리는 마치 톱니처럼 무언가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었고 그 끝에는 아주 날카로워 보이는 여러 개의 발톱이 솟아올라 있었다.

기척을 감춰서일까?

녀석의 더듬이가 끊임없이 움직였지만, 이쪽을 찾아내지 못하는 것을 확인한 나는 천천히 몸속에 존재하는 마력을 파괴의 마력으로 변환시키기 시작했다.

조금 더 필요하겠지.

조금 전 최하급을 상대했을 때보다 더욱 많은 양의 파괴의 마력을 품던 그때.

찌릿.

육체가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물론 심한 정도는 아니었다.

조금 더 양을 늘려도 충분히 버틸 수 있겠지만, 일단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놈이 나를 파악하고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기 때문이다.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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