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바닥을 박차며 쏘아져 나간 나는 녀석과의 거리를 일순간에 제로로 만들어버리곤 이어서 가속도를 이용해 창을 그대로 내질렀다.
파괴의 마력을 담은 채로.
스악- 팡-
창이 일정 스피드를 돌파하자 대기가 터지며 충격파를 터트림과 동시에 녀석에게 쏘아져 나갔고.
순식간에 눈앞에 나타나 창을 내지르는 것을 확인한 녀석은 창을 막기 위해 두 쌍의 팔을 들어 올렸지만, 순식간에 두 쌍의 팔을 그대로 관통해 버리며 녀석의 머리를 향해 빛살처럼 쏘아져 나갔지만, 안타깝게도 곧바로 녀석의 머리를 뚫어버리지 못하고 녀석의 입가에 솟아오른 집게에 막혀 버렸다.
-끼리리릭!
막아내긴 했지만, 고통이 심한지 특이한 비명을 내뱉는 녀석을 보며 창을 빼내려 했지만, 집게의 힘이 보통이 아닌지 꿈적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 찰나의 순간 나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창을 빼내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다만 자칫 잘못했다간 파괴의 마력에 의해 약해진 창이 박살 날 위험이 있었기에 결국, 창을 놓은 채 등을 돌리며 녀석의 머리를 향해 돌려차기를 날렸고 녀석은 내 공격을 피하고자 창을 뱉어내며 빠르게 물러섰다.
그에 떨어지는 창을 낚아채 곧장 녀석에게 따라붙은 나는 창을 회전시켜 날 부분이 아닌 반대 부분으로 녀석의 머리를 내려쳤다.
꽝-
내 공격에 고개가 아래로 꺾인 녀석을 보며 반 바퀴 더 회전시킨 창을 내려찍으려던 그때 녀석의 두 쌍의 다리 중 앞쪽의 다리 두 개가 내 배를 향해 빠르게 쏘아져 오는 것을 발견한 나는 그대로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그대로 창을 세워 곧장 머리에 꽂아 넣었다.
푸욱-
마치 두부를 뚫고 들어가는 것처럼 순식간에 머리를 관통한 창은 그대로 녀석을 관통하며 땅에 박혔고, 녀석은 사시나무 떨리듯 부르르 떨다 움직임을 정지했다.
생각보다 갑각이 단단하지 않네? 아닌가?
내 육체뿐 아니라 창 역시 파괴의 마력을 담아 창날을 더욱더 날카롭게 만들어둔 상태였기 때문에 쉽게 처리할 수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그나저나 이놈 이거 사람처럼 싸우네?
솔직히 뒤돌려차기를 날릴 때만 해도 녀석이 피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날카로운 입으로 다리를 물어뜯으려 할 거라 생각하고 다리에 파괴의 마력을 집중해 그대로 머리통을 날려 버리려 했는데, 녀석이 그걸 느끼고 피해버린 거였다.
그뿐 아니라 마지막 공격에서는 처음과 다르게 피할 수 없음을 느낀 녀석은 그대로 나를 공격했고, 내가 피할 거란 것을 예상한 녀석은 분명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역시 내 소환수들만 그런 게 아니었어.
악마종에게 이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긴 했지만, 설마 사람처럼 상대방의 수를 예측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기에 솔직히 조금 당황했었다.
그나저나 되게 상쾌하네? 항상 뒤에만 있어서 그런가? 직접 움직이는 것도 나쁘지는 않네.
녀석을 처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였다.
고작해야 몇 초?
하지만 몸을 쓰며 녀석과 대결을 펼치는 그 순간만큼은 확실히 흥분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종일 녀석과 싸웠다면 흥분보다는 짜증이 치솟았겠지만.
“이제 그만 돌아갈까?”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와 악마석을 꺼내 물고 있는 미호와 뚱이, 니안을 보며 입을 열자 뚱이가 불만을 터뜨렸다.
“우워-”
미호와 니안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햇지만, 뚱이는 좀 아쉬운 모양이었다.
하긴 내가 전부 처리했으니 지루하겠지.
“그럼 딱 한 마리만 더 잡고 갈까? 이번에는 뚱이가 해봐.”
“쿠워!”
5시간이 되려면 아직 시간이 좀 남았기에 한 마리만 더 처리하고 돌아가기로 한 나는 악마종을 찾기 위해 이동을 시작했다.
***
“왔냐? 보고해 봐.”
“저는 최하급 3마리, 하급 2마리요.”
현지가 가장 많은 악마종을 처리했다.
지안과 펜릴의 경우 둘이 움직였음에도 최하급 한 마리와 하급 두 마리로 총 3마리를 처리했고 나 역시 지안과 등급이 살짝 달랐지만 총 3마리를 처리했다.
“벌써 돌아가시게요?”
“오늘은 일단 가볍게 탐색으로 끝내려고.”
“좀 아쉽네요. 그럼 언제 다시 오실 거예요? 내일? 모레?”
“일단 상황 좀 보고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지안과 다르게 현지는 좀 아쉬운 모양이었다.
아마 내가 누워있던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항상 내 옆을 지켰기에 좀이 쑤셨을 거다.
보통 고블린들을 불러 훈련의 명목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왔지만, 내가 누워있는 동안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내 옆에 붙어 있었던 현지였으니까.
***
“등급개편?”
나와 함께 뉴스를 보던 현지의 입에서 의아하다는 듯한 음성이 튀어나왔다.
얼마 전 출범한 어비스 관리국에서 각성자를 비롯한 몬스터에 대한 등급조정이 시작되었다는 뉴스 때문에.
그 내용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각성자의 경우 대부분 등급이 한 단계 내려갔고, 몬스터의 경우 같은 종이라도 지구에 나타나는 몬스터와 어비스에 존재하는 몬스터를 나누어 등급을 만들었으며, 정령 같은 경우도 전처럼 애매하지 않게 최하급, 하급, 중급, 상급, 최상급을 각각 D, C, B, A, S급으로 정확히 나누어 버렸다.
“저럴 필요가 있을까요? 반발이 심할 것 같은데?”
“반발은 있겠지만, 각성자들의 안전 때문이라도 꼭 필요한 일이지.”
세계랭커를 제외한 모든 각성자들의 등급이 한 단계 내려갔기에 반발이 심하겠지만, 저들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거다.
전 세계의 모든 나라가 어비스의 탐험을 S급이 포함된 길드의 탐험대에게만 자격을 허락하는 중이었음에도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피해가 계속해서 발생하는 중이었으니까.
같은 등급임에도 지구에 나타나던 몬스터와 어비스에 존재하는 몬스터와의 격차가 꽤 심하게 나는 상태였기에 전과 똑같은 등급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기에 그들 역시 강력한 반발을 예상하는 상태지만, 그대로 밀어붙이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각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게이트가 열린 지금 각성자의 존재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였다.
그런 각성자들이 어비스를 탐험하며 죽어 나가는 것은 국가가 나서서 제재해야 마땅했지만, 어디 각성자들이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놈들이던가?
“하지만 저건 좀 심하지 않아요? 세계 랭커를 제외한 거의 모든 각성자들에게 등급심사를 다시 받으라뇨? 이건 기존의 S급 각성자들을 무시하는 거나 다름없잖아요.”
“무시하는 거라? 정말 그렇게 생각해?”
“당연하죠. 저도 길드 생활을 해 봐서 아는데 보통 각성자들은 등급에 목숨을 건다고요. 그걸 알면서도 저러는 건 그들을 무시하는 거죠.”
현지의 말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등급이 한 계단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수입이나 대우가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에 그들의 반발은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특히 높은 등급일수록 차이가 더욱 심하게 벌어지기에 기존의 S급 각성자들의 반발은 다른 등급의 각성자보다 심할 거다.
“네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 하지만 기존의 S급 각성자들. 그러니까 세계 랭커가 아닌 자들의 위치는 솔직히 너무 어중간하단 생각 안 드냐?”
“어중간하다뇨?”
“생각해봐. 그들의 앞에 최하급 악마종 한 개체만 나타나도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어? 그것도 그러네요?”
S급 각성자들이란 자들은 다른 등급과 다르게 악마종의 힘을 알아볼 수는 있지만, 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어중간한 존재들이었다.
차라리 A급 이하라면 도망이라도 치겠지만, 그들의 경우 두려움에 질려 꼼짝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생을 마감하게 되리라.
“물론 그들의 앞에 악마종이 나타나려면 몇 년이 걸리겠지만.”
“음- 그럼 차라리 등급을 하나 더 만드는 게 낮지 않을까요?”
“그것도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아마 더 싫어할걸?”
“네? 싫어한다고요? 누가요?”
“기존의 S급 각성자들이.”
“왜요?”
지금까지 세계랭커의 등급을 새로 만드는 것에 대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도 알고 있거든. 자신들의 한계에 대해서. 지금의 등급개편은 그나마 벽에 도달한 자들까지 S급으로 인정해 주지만, 새로운 등급이 나타나면 어떻게 될까? 아마 벽을 넘은 자들만 그 등급에 포함될걸?”
“그게 왜요? 넘으면 되잖아요.”
“너야 쉽게 넘어섰겠지만, 그들에게 벽은 절대로 넘어서지 못할 거대한 절벽이나 다름없다고. 당연히 자신들의 위에 또 다른 등급이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 할 거야.”
노력하면 최고의 등급을 얻을 수 있다는 것과 노력해도 얻지 못한다는 것의 차이를 잘 아는 기존의 S급들은 절대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을 거다.
“뭔가 되게 복잡하네요.”
이번 등급개편은 전생에 비하면 너무 빠르긴 했다.
전생에 등급개편이 이루어졌던 시기는 어비스가 열리고 2년이 지난 시점이었으니까.
아직 1년도 되지 않은 지금 등급개편이 이루어진다는 건 미래가 바뀌었다는 것이었지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등급개편에 따르지 않는 자들이 나타나겠지만, 그것도 처음뿐이었다.
개편 후 S급을 쟁취한 자들과 그러지 않은 자들의 귀환율 차이가 심하게 벌어졌으니까.
등급 측정을 하지 않은 자들의 경우 귀환율이 80%가 채 되지 않지만, 등급 측정을 받아 다시 S급을 쟁취한 자들은 95% 이상이 무사히 되돌아왔기에 S급이 아닌 각성자들이 알아서 둘의 차이를 비교하고 가짜 S급이라는 명칭을 만들어 내었을 뿐 아니라 그들과의 탐험을 꺼리기 시작했다.
***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 특이한 능력을 가진 녀석을 발견하면 나한테 데려오고.”
“네.”
“네.”
다시 죽음의 숲 깊숙한 곳에 온 나는 현지와 지안에게 최대한 많은 악마석을 구해오라 지시했다.
나 역시 움직이겠지만, 전과 다르게 위험에 처할 일은 이제 없다고 봐도 좋았다.
그 이유는 바로 중급으로 진화한 미호 덕분이었다.
꼬리가 하나 늘어나며 새로운 능력 역시 하나 생겨났는데, 정말 황당할 정도로 특이한 능력이었다.
바로 분신.
자신과 똑같이 생긴 분신을 최대 3마리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으로 사기적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굉장한 능력이었다.
본체와 같은 힘을 발휘하지는 못하지만 미호가 하급이었을 때의 힘을 발휘할 수 있었고, 분신이라는 능력을 제외한 미호의 모든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기에 연락을 할 수 없는 어비스에선 꼭 필요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서로가 서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든 공간의 문을 열어 이동이 가능한 사기적인 능력.
오늘 새벽 현지가 몰래 미호를 데리고 이곳에 와서 구해온 중급의 악마석을 통째로 먹인 결과였다.
“그럼 출발할까?”
“먼저 갈게요!”
현지는 어깨에 매달린 미호의 분신과 함께 곧장 사라져 버렸다.
조금이지만 자신에게 대항할 수 있는 상대와 싸울 수 있다는 것이 기쁜 모양이었다.
“그럼 저도 갈게요.”
“그래. 조심하고.”
“네. 상무님도 조심하세요.”
펜릴을 타고 떠나는 지안을 보던 나는 내 소환수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우리도 갈까?”
“쿠워!”
“키릭!”
“끼웅!”
대답을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대로 땅을 박차며 둘과 다른 방향으로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감각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채로.
그에 소환수들 역시 가볍게 내 뒤를 따라붙었고, 오래지 않아 악마종의 기척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악마종의 수가 좀 된단 말이야?
얼마 움직이지 않았음에도 악마종의 기척이 느껴지는 것을 확인한 나는 방향을 정하고 그대로 쏘아져 나가며 니안에게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니안이 해볼래?”
“키릭!”
내 물음에 곧장 나를 지나쳐 빠르게 쏘아져 나가는 니안을 보던 내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어렸다.
이대로만 된다면 내 악마종의 강화가 순식간에 이루어질 거란 생각 덕분이었다.
퍼엉- 쾅- 콰과과광-
벌써 악마종을 찾아내었는지 니안이 전투를 벌이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에 속도를 올린 나는 이미 전투가 끝나버린 현장에 도착했다.
하급의 악마종을 순식간에 피떡으로 만들어 버린 니안은 온몸에 피를 덕지덕지 바른 채로 나에게 다가와 칭찬을 해 달라는 듯 내 앞에서 머리를 숙였다.
“쓰다듬어 달라고?”
“키릭-”
고개를 작게 끄덕이는 니안.
다만 머리에 피인지 체액인지 모를 보라색의 액체가 잔뜩 묻어 있는 모습에 쓰다듬어 주기가 좀 그랬다.
내가 어정쩡한 자세로 손을 들어 올리자 니안은 그걸 눈치챘는지 마력을 이용해 몸에 묻은 체액을 태워 버렸고 그제야 나는 니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나저나 정말 이상하네? 왜 자신들의 기운을 이렇게 뿜어내는 거지?
사냥하는 우리는 그 덕을 보고 있었지만,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 그런 건가?
니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가만히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하나의 사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악마종의 경우 자신보다 약한 존재는 굳이 사냥할 필요가 없다는 것.
자신보다 등급이 낮은 악마석을 먹는다 해도 바뀌는 게 없는 악마종의 특성을 떠올린 나는 그를 토대로 추리를 해보았다.
자신의 힘을 드러내는 것은 세 가지의 이점이 있는 것으로 보였다.
강자에게는 찾아올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리고 비슷한 존재에게는 함부로 싸움을 걸지 말라는 것, 마지막으로 약자에게 까불지 말라는 의미를 전할 수 있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과 비슷한 존재에게 함부로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거란 예상이 되었다.
금방 끝나지 않을 싸움이었기에 주변의 존재들을 끌어들이게 되면 자신들이 무사하지 못할 것을 깨닫고 있는 거였다.
같은 등급이라면 승리하더라도 많은 힘을 소모해야 할 뿐 아니라 심한 부상을 입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뒤에 나타난 존재에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
악마종들이 그 사실을 깨닫고 있다는 것이었다.
악마종의 경우 일단 마주치면 싸우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이것들 지능이 보통이 아니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