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득- 으드득- 쿰척- 쿰척-
뚱이와 니안이 방금 사냥한 최하급의 악마종을 뜯어먹는 것을 보던 나는 5시간이 지났음을 확인했다.
한 마리만 더 잡고 돌아갈까?
전과 다르게 8시간이라는 제한을 걸어 두어 아직 3시간이나 남아 있었지만, 너무 깊게 들어왔다는 생각에 마지막으로 한 마리만 더 잡은 후 돌아가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최하급 3마리에 하급 1마리인가?’
전보다 한 마리를 더 잡았음에도 마음에 차지는 않았다.
이왕이면 하급 이상이길 바라며 움직였건만, 한 마리를 제외하면 전부 최하급뿐이었다.
‘현지, 이것은 도대체 얼마나 깊숙이 들어갔길래 중급을 사냥해 온 거야?’
솔직히 사냥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5시간이라는 시간 전부를 악마종을 찾는데 할애했음에도 4마리밖에 찾아내지 못했다는 걸 생각하면 현지의 결과물은 놀랍다고 할 수 있었다.
거기다 지안 역시 전의 결과를 보면 나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펜릴을 타고 움직였음에도 현지보다 적은 수를 사냥했다는 것은 현지가 나나 지안과는 다르게 숲 깊숙이 들어가 사냥을 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우웅-
“응?”
생각에 잠겨 있던 사이 한쪽에 갑자기 열려 버린 공간의 문에 고개를 갸웃한 나는 그 안에서 다급한 표정으로 나오는 현지와 펜릴을 탄 상태의 지안을 보며 의문에 잠겼다.
무슨 일이지?
“미호야!”
이어서 지안은 자신의 어깨에 매달려있는 미호의 분신에게 소리쳤고, 이어서 또 하나의 공간의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긴 유명시인데?’
아무 말 없이 둘이 하는 짓을 바라보던 나는 이것들이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란 생각에 잠겨 들었다.
“빨리 들어가세요.”
지안의 말에 일단 공간의 문을 통과한 나는 나머지 멤버들을 기다렸다.
이어서 내 소환수들이 공간의 문을 통해 나타났고, 이어서 지안이, 마지막으로 현지가 공간의 문을 통과하자 지안이 급히 미호를 보며 소리쳤다.
“빨리 닫아!”
지안의 말에 곧장 공간의 문이 닫혀버렸고, 그에 나는 둘에게 고개를 돌리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제 설명을 좀 해줄래?”
“상급으로 추정되는 녀석이 저를 감지한 것 같아요. 어떻게 할까요? 왕눈이와 함께라면 충분히 처리 가능할 거 같은데요.”
이유를 설명하는 현지를 보는 내겐 먼저 물어봐야 할 것이 있었다.
“너. 도대체 어디까지 들어간 거야?”
“네? 그게……. 도련님보다 조금 더 들어갔을걸요?”
뻔히 보이는 거짓말이었다.
현지 이것은 분명 내가 있던 곳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깊숙이 들어간 것처럼 보였으니까.
내가 있던 곳에서 조금 더 멀리라면 절대 상급의 악마종이 튀어나올 수 없었다.
5시간을 이동했음에도 발견되는 악마종 대부분이 최하급인 걸 보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거다.
이건 내 생각이지만, 그곳에서 5시간을 같은 속도로 이동한다고 해도 상급은커녕 중급조차 보기 힘들 거란 것이 당연해 보였기에 현지의 말은 뻔한 거짓말일 거다.
“에휴- 왕눈이랑 함께 공격하면 그놈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겠냐?”
물론 그걸 탓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좀 궁금했을 뿐.
“순식간이요?”
“그래. 10분 안에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아?”
“음- 적어도 한 시간은 필요할 거 같아요. 경우에 따라선 그것도 부족할지도 모르고요.”
“그럼 내버려 둬.”
“네? 왜요?”
둘이 오기 전 떠올렸던 생각을 현지와 지안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녀석과 싸우다 보면 당연히 주변에 있던 녀석들이 모여들 테고 시간이 좀 더 지난다면 멀리 떨어져 있는 중급을 비롯한 다른 상급 악마종이 상황을 파악하고 현장으로 향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같은 등급들의 전투는 놈들에게 기회나 다름없었다.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기회.
“녀석을 처리하려면 최대한 멀리 끌고 와야 한다는 거네요?”
“그래. 최소 초입까지는 끌고 와야 한다는 건데 녀석이 거기까지 올까? 상급이라면 지능이 인간보다 떨어지지 않을 텐데? 녀석이 뻔히 유인한다는 것을 알면서 따라올지 불확실해. 거기다 유인에 성공한다고 해도 문제야.”
“네? 왜요?”
“전투의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모르니까. 잘못했다가는 유명시까지 여파가 올지도 모르잖아.”
“아! 그러네요.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도 왕눈이의 파괴력이면 거기까지 여파가 미칠지도 모르겠네요.”
나 역시 상급의 악마종을 사냥하고 싶었다.
전력을 단숨에 상승시킬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위험성이 너무 커서 쉽게 결정을 내릴 수는 없었다.
“상무님. 그런데 어째서 상급의 악마종이 현지를 노리는 걸까요? 현지는 인간인데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 현지를 자신들과 같은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같은 존재라면 악마종으로 본다는 말이에요?”
“나는 악마석도 없는데?”
아마 나나 지안은 상급 악마종에게 들켜도 큰 위험은 없을 거다.
애초에 자신보다 급이 낮은 존재에게는 반응하지 않는 녀석들이었으니까.
그뿐만이 아니었다.
중급의 악마종 역시 나나 지안의 존재를 깨달아도 당장 달려오지는 않을 거다.
현지와 우리의 차이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예상을 해보자면 상급 악마종은 일반 생명체가 감히 넘볼 수 없을 정도의 강함을 가지고 있기에 그에 필적하는 현지를 악마종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착각을 하는 거겠지. 현지가 자신들과 비슷한 존재라고.”
“어째서요?”
“솔직히 현지는 좀 말이 안 될 정도로 강하잖아. 인간이 어떻게 저런 괴물 같은 힘을 가질 수 있겠어. 정확하지는 않아도 지금 현지의 강함은 왕눈이에게 조금 떨어지는 수준인데,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그건 그렇네요.”
내 말에 지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현지는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빼애액- 소리쳤다.
“뭐라고요? 지금 저보고 괴물이라고 하신 거예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누가 너보고 괴물이래?”
“맞아. 말이 그렇다는 거지. 왜 그걸 가지고 화를 내는 거야?”
“뭐? 너 두고 봐. 너도 금방이야! 여기까지 오는데. 그때도 네가 괴물이라고 말할 수 있나 보자!”
“나는 거기까지 안 가고 바로 앞에서 딱 멈출 건데?”
“그게 마음대로 멈추고 싶다고 멈춰지는 줄 알아? 흥!”
그 이후로도 둘은 계속해서 말다툼을 이어갔다.
주로 지안이 현지를 놀렸지만, 지안의 표정 역시도 살짝 굳어 있었다.
아무래도 괴물이라는 표현을 괜히 사용한 것 같았다.
* * *
“저놈 처리해야겠는데요?”
“그러니까 내가 너무 깊숙이는 들어가지 말라고 했잖아!”
도망치듯 죽음의 땅을 벗어난 다음 날, 다시 죽음의 땅으로 향한 우리는 또다시 도망치듯 되돌아와야만 했다.
현지를 찾기 위해 발광하는 상급의 악마종이 너무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온 상태였기에.
“언제쯤 저놈이 돌아갈까요?”
“그걸 알면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겠냐?”
결정을 내려야 할 때인 듯싶었다.
사냥터를 바꾸든가 그놈을 처리하던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옮겨야 하나? 아님, 그냥 저놈을 처리해 버릴까?”
“그런데 상무님. 어디로 옮겨요?”
“원래 사냥하던 곳을 기준으로 동쪽이나 서쪽으로 이동하면 될 것 같긴 한데 말이야?”
비록 어비스의 땅덩어리가 길쭉한 뱀의 모양이라고 해도 땅덩어리가 자체가 작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지구와 비교해도 꿇리지 않을 정도의 면적을 가지고 있는 어비스였다.
그것도 탐험이 이루어졌던 땅만으로 지구에 살짝 못 미치는 수준이었기에 전체를 생각한다면 아마 지구를 가볍게 넘어설 거라는 학자들의 발표가 있었다.
물론 전생의 이야기였지만.
“들키지 않을까요?”
“일단 옮겨보고 그래도 안 된다 싶으면 녀석을 처리하도록 하자.”
어차피 처리해야 할 놈이긴 했다.
내 소환수들을 강화하는데 놈만 한 사냥감은 없었으니까.
다만 확실히 하고 싶었다.
녀석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소환수를 잃거나 유명시에 막대한 피해가 간다면 잡느니만 못한 결과가 나올지도 몰랐으니까.
“미호야. 일단 초입으로 문을 열어줄래?”
“끼웅!”
“일단 가자.”
공간의 문을 통해 죽음의 땅 초입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그대로 동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보이는 몬스터라고 해봐야 지금 우리의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기에 마음 놓고 전력을 다해 달려나갔다.
‘잠깐만? 내가 왜 얘들이랑 같이 달리고 있는 거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라도 미호를 적당한 장소에 데려가기만 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이렇게 모두가 움직일 필요조차 없이.
“스톱!”
생각이 끝나자 곧장 멈추어서 입을 열었다.
“왜 그러세요?”
“현지야. 네가 미호 데리고 장소를 찾아봐.”
“저만요?”
“어. 어차피 모두 움직일 필요는 없잖아. 그냥 너 때문에 이렇게 됐으니까 네가 해결한다고 생각해.”
“그럴게요.”
순순히 하겠다고 대답하는 현지의 모습을 보자 이상하게 불안해져서 나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또 이상한 짓 하지 말고!”
“네.”
* * *
“시작할까?”
“네.”
동시에 대답하는 현지와 지안을 보며 새로운 장소에서의 사냥을 시작하려던 나는 곧장 사라지려는 현지를 말리며 급히 입을 열었다.
“제발 적당히 해라. 적당히.”
“네!”
대답과 함께 그대로 모습을 감추는 현지와 이어서 펜릴의 등에 몸을 싣고 떠나는 지안을 잠시 지켜본 후 나 역시 사냥을 하기 위해 어두운 숲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나저나 미호 같은 악마종 하나 더 얻으면 좋겠는데.’
미호나 하임 같은 유틸성이 좋은 악마종은 생각보다 쓸모가 많았다.
공격력이 특별히 강한 것은 아니었지만, 미호의 공간을 건너다니는 능력과 분신은 쓰임새가 대단했다.
지금처럼 마음을 놓고 사냥을 할 수 있는 이유도 모두 미호의 분신과 공간이동능력 덕분이었으니까.
생각에 잠겨 일직선으로 쏘아져 나가던 내 감각에 하나의 생명체가 포착되었고, 이어서 나는 곧장 소리쳤다.
“뚱이야!”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뚱이가 나를 지나치며 앞으로 쏘아져 나갔고 잠시 후 굉음이 터져 나왔다.
뚱이와 악마종의 충돌.
속도를 높이며 그곳으로 향한 나는 뚱이의 발에 밟힌 채 꿈틀거리는 악마종을 발견했다.
최하급으로 보이는 녀석은 특이한 능력은 없는 것으로 보였기에 뚱이에게 바로 지시를 내렸다.
“처리해.”
푸확-
뚱이가 놈을 머리를 밟고 있던 발에 힘을 주자 그대로 머리가 터져나가는 모습에 살짝 인상을 찌푸린 나는 이어서 악마석을 찾아 주머니에 넣고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그나저나 아무리 최하급이라지만 너무 약한 거 아니야?’
분명 내뿜는 힘은 최하급이 맞았지만, 이상하게도 내 지배하에 있는 악마종에 비하면 솔직히 많이 떨어지는 수준이었다.
하급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지금껏 사냥한 하급의 악마종은 총 두 개체였는데, 같은 등급인 홉일이와 그 둘의 무력을 비교해 보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심각한 차이를 보였다.
둘이 동시에 홉일이에게 덤빈다고 해도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물론 홉일이는 악마석을 복용하면서 중급에 올라서기 직전의 상태가 되긴 했지만, 그 전이었다고 해도 둘은 상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응?”
생각에 잠겨 한참을 이동한 나는 멀리서 느껴지는 강한 기운에 그대로 자리에 멈춰섰다.
“중급?”
그랬다.
멀리서 느껴지는 이 기운은 틀림없이 중급 악마종의 기운이었다.
“얘들아 기운을 최대한 감춰. 놈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지금도 충분히 기운을 감춘 상태였지만,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은연중에 뿜어져 나오던 기운까지도 모두 숨기도록 지시한 나는 천천히 녀석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속도를 줄인 채 최대한 조용히 접근해야 했기에 녀석이 보이는 곳까지 도착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들키지 않고 녀석이 보이는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검?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멀리 보이는 악마종은 5M 정도의 크기로 보였는데, 좀 특이한 거라면 갑옷과 무기를 착용한 상태라는 것이었다.
중세시대의 기사의 모습에서 크기만 더 커진 정도라고 할까?
주변의 빛을 모두 빨아들이는 듯한 검은 갑옷과 무기.
‘아닌가? 저게 검이 아니라 그냥 손인가?’
녀석을 자세히 살펴본 나는 놈의 검과 갑옷이 녀석의 신체 중 하나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팔과 이어진 곳에는 손이 아닌 검처럼 생긴 날카로운 날붙이가 존재했고, 피부 자체가 마치 갑옷처럼 녀석을 보호하고 있는 모습.
“너희들은 내가 위험한 상황에 처하기 전까지는 절대 나서지 마.”
확인해 보고 싶었다.
정말 내 힘으로 중급의 악마종을 상대할 수 있는지.
지금껏 상대했던 최하급과 하급의 악마종은 중급에 비하면 어린아이라 할 수 있었다.
스포츠로 비교하자면 일반인과 프로 선수의 차이.
아니 어쩌면 더욱 심한 차이가 날 수도 있었기에 꼭 한번 확인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공간확장 주머니에서 창을 꺼내 쥔 나는 마력을 끌어올려 단번에 파괴의 마력으로 변환시키며 녀석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나에게서 갑작스럽게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는 파괴적인 기운에 녀석은 나를 발견하자마자 쇠를 긁는듯한 소리를 내뱉으며 도약하듯 뛰어올랐고, 그에 나 역시 녀석을 향해 땅을 박차며 쏘아지듯 날아들었다.
챙- 채채채챙-
전과는 전혀 다른 날카로운 소음이 귓가를 울렸고.
하급과는 전혀 다른 묵직함과 스피드를 확인한 나는 역시 중급이란 생각을 하며 슬쩍 미소지었다.
녀석은 자신의 갑옷을 굳게 믿고 있는 듯 방어를 할 생각조차 하지 않은 채 오로지 공격 일변도였다.
겨우 막아서야 할 정도로 묵직한 검격의 파도에 점차 뒤로 밀리기 시작하던 나는 이제 몸을 움직여 봐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면 됐나?’
공격력을 대충이나마 파악했기에 이번에는 녀석의 방어력을 확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어지는 녀석의 공격에 가볍게 창을 밀어 넣었다.
퉁-
녀석의 공격을 이용해 거리를 벌리는 것을 성공한 나는 그대로 자세를 잡고 기다렸다.
녀석의 공격이 한 점이 될 때까지.
‘지금!’
순간 내 눈에 기회가 포착되었다.
녀석의 두 팔이 교차하는 순간을 노려 강하게 일격을 내질렀고, 이어서 녀석과 나의 공격이 충돌하며 굉음을 터트렸다,
쾅-
높게 튕겨 올라간 녀석의 두 팔을 힐끗 바라본 나는 그대로 창끝을 녀석의 복부를 조준한 후 강하게 찔러 넣었다.
콰앙-
그대로 쏘아져 나간 창이 녀석의 복부에 닿자 강력한 반발력이 창을 타고 양손으로 전해졌다.
‘그래도 들어가긴 하네?’
녀석의 갑옷 같은 피부에 3cm 정도 박힌 창을 확인한 나는 창을 빼내며 뒤로 훌쩍 물러났다.
“끼기기긱-”
공격당한 부위를 바라본 녀석은 조금이지만 흘러내리기 시작하는 검은 액체를 발견하곤 쇠를 긁는 듯한 소리를 내뱉었고, 이어서 불길해 보이는 마력을 전신에서 뿜어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