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오-”
불길해 보이는 마력으로 전신을 감싸버린 녀석은 조금 전과는 차원이 다른 기세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이라는 건가?”
나 역시 본격적인 전투를 위해 더욱더 많은 양의 파괴의 마력을 몸에 담아가기 시작했다.
육체가 비명을 지르기 직전까지의 마력을 육체에 담아낸 나는 흉악한 기운을 풍기는 녀석에게 선공을 취하기 위해 바닥을 박찼다.
녀석을 향해 날카롭게 찔러 들어가는 창.
하지만 녀석은 여전히 자신의 방어력을 믿는지 내 공격을 신경조차 쓰지 않고 나를 향해 차가운 날붙이를 휘둘렀다.
전과는 좀 다를 텐데?
창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파괴의 마력을 겨우 견뎌내며 내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창.
무엇도 뚫어낼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롭게 빛나며 순식간에 녀석에게 다다랐다.
슈아악- 푹-
어? 이게 아닌데?
녀석의 갑옷을 단번에 뚫어낼 생각으로 공격을 가했지만, 드러난 결과는 전과 다르지 않았다.
X발!
녀석의 갑옷을 뚫고 들어가다 멈춰서 버린 창 덕분에 녀석의 공격은 여전히 나를 향하고 있었고, 그에 급히 물러나는 선택을 해야만 했다.
코끝을 스쳐 지나가는 차가운 날붙이의 섬뜩함에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낀 나는 이어지는 공격에 급히 녀석과 거리를 벌리며 공간확장 주머니에서 한 자루의 창을 더 꺼내 들었다.
더욱 빠르게 물러나기 위해서는 창의 반발력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창은 여전히 녀석의 복부에 박혀 있는 상태였다.
“쿠오오-”
“멈춰!”
내가 위험에 처했다고 생각했는지 뚱이가 함성을 지르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아직 아니야!”
녀석의 이어지는 공격을 피하거나 막으며 뚱이에게 소리친 나는 더 많은 양의 파괴의 마력을 변환시키며 육체에 담아가기 시작했다.
육체가 비명을 질렀지만, 고통은 오히려 집중력을 높여 주었다.
그래. 이렇게 쉽게 끝나면 중급이라고 할 수 없지.
콰앙- 쾅- 쾅-
모든 신체 능력이 더욱 상승했고, 창의 위력 역시도 전과 다르게 녀석을 압박할 정도의 파괴력을 담아가기 시작했다.
창 하나 더 날아가게 생겼네.
물론 창의 내구력이 심하게 깎여 나가겠지만, 아직 많은 수의 창이 남아 있었기에 큰 걱정은 들지 않았다. 다만 조금 아까울 뿐.
녀석이 반응조차 하지 못할 정도의 속도로 움직이며 계속해서 녀석에게 상처를 입혔지만, 마음에 차지는 않았다.
또 파괴의 마력이 놈의 몸속부터 갉아먹기를 기다려야 하나?
놈의 상처로 흘러 들어간 파괴의 마력이 녀석의 내부를 파괴하고 있기 때문인지 녀석의 움직임은 점차 느려졌고, 강대했던 힘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들며 지금에 와서는 반대로 녀석이 나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며 점차 밀리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저 갑옷을 뚫어야 뭘 하든 할 텐데?
지금의 나는 녀석의 내부에서 녀석을 파괴하는 파괴의 마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 역시 내 힘 중 하나였지만, 녀석을 쓰러뜨리는 것은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한 번 해볼까?
녀석을 공격하던 것을 멈춘 나는 뒤로 훌쩍 물러나 자세를 잡았다.
창날의 끝을 녀석에게 겨누며 창을 슬쩍 뒤로 빼곤 녀석이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고통에 계속해서 쇠를 긁는 소리를 내뱉는 녀석은 역시나 곧장 나를 향해 쏘아져 왔고, 때를 기다리던 나는 녀석이 사거리에 들어오기 직전 살짝 뒤로 빼놓았던 창에 전신의 힘을 집중하며 그대로 찔러 넣었다.
스아악-
한치의 비틀림도 없는 일직선의 선이 녀석과 나를 연결하는 순간 녀석의 등이 폭발하며 강력한 마력의 결정체가 일직선으로 쏘아져 나갔다.
쿠구구구궁-
일직선 상의 모든 것들을 한순간에 소멸시키며 쏘아져 나간 마력의 결정체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무렵.
쿵- 쿵- 쿵-
몸통이 사라져 팔과 다리, 머리만 남은 녀석의 신체 조각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고, 이어서 창이 가루처럼 흩날리며 모습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휴- 다행히 되긴 하네.”
조금 전 내가 했던 공격은 전생에 주로 사용하던 주력기술인 찌르기였다.
몸을 쓰는 것에 재능이 없던 나는 뭘 해도 어중간했다.
창술을 아무리 연습해도 어중간한 수준이었기에 정작 몬스터와의 전투에서는 연습했던 창술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임기응변에 기대며 힘들게 몬스터를 사냥해야만 했다.
실전을 경험하며 점차 나아지긴 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보통 재능이 있는 자들의 경우 자신과 같은 등급의 몬스터를 쉽게 처리했던 것에 비해 나는 한 마리, 한 마리를 정말 어렵게 처리해야 했다.
등급에 비해 높은 마력에 기대며 겨우겨우 몬스터를 상대해야 했기에 남들에 비해 오랜 시간 사냥을 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많은 휴식 시간이 필요했다.
그에 한계가 명확하다는 걸 깨달은 나는 절망해야만 했다.
물론 몇몇 사람들이 나를 보며 너무 큰 욕심을 부린다고 했지만, 언제 소환수가 내 곁에서 사라질지, 혹은 죽어버릴지 알 수 없었던 나는 나 자신의 강함도 필요하다 생각했다.
그러던 도중 같은 의뢰를 받아 함께 움직이던 자가 가볍게 내뱉은 한 마디에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창술의 주력은 찌르기.
그 찌르기 하나만이라도 최고가 되면 강해질 수 있는 거 아니냐는 말에 나는 그때부터 한 번의 찌르기만 죽도록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단 한 번의 찌르기로 중급의 악마종을 꿰뚫어버린 일섬이라는 기술.
누군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완성된 내 찌르기를 보며 누군가 붙여준 이름이었다.
그나저나 안 아픈 데가 없네?
한계까지 파괴의 마력을 끌어올리긴 했지만, 도를 넘어서는 고통이 느껴졌다.
몸 전체가 삐걱거렸고. 전신의 힘이 전부 빠져버린 느낌.
당연한 건가?
회귀 이후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기술을 무작정 사용했는데, 괜찮으면 그게 이상한 거겠지.
“뚱이야. 저것 좀 여기 넣어줘.”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야 할 듯싶었다.
어차피 포션으로 회복될 것도 아니었다.
수아에게 정화를 부탁해야 치유가 될 것 같았으니까.
뚱이가 녀석의 파편을 내 공간확장 주머니에 넣는 것을 보던 나는 좀 더 제대로 된 무기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파괴의 마력을 조금이지만 견뎌낸 녀석의 신체.
그중에서도 두 팔에 달린 날붙이는 드래곤의 뼈로 만들어진 창날을 조금의 흠집도 없이 받아내었을 정도로 견고했다.
“응? 뭐야 이거?”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기운에 당황해 나도 모르게 입이 열렸다.
“중급? 그것도 두 마리?”
이쪽으로 빠르게 접근하는 악마종의 기척이 느껴졌는데, 문제는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라는 거였다.
각자 다른 방향에서 이쪽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녀석들을 확인한 나는 니안과 뚱이에게 급히 고개를 돌렸다.
“준비해!”
말이 끝나기 전에 이미 준비를 마치고 앞으로 나서는 둘을 보던 나는 놈을 처리하는 데 시간을 너무 오래 끌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싸울 때는 몰랐는데 완전 폐허가 따로 없네…….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들어버리며 쏘아져 나간 마력 덕분에 눈앞이 휑했을 뿐 아니라 반경 수십 미터가 초토화가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놈과의 격돌에서 터져 나온 충격파 덕분인 듯싶었다.
“미호야. 현지에게 문 좀 열어줘.”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현지를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곧이어 열린 공간의 문틈으로 의아한 표정을 짓는 현지를 발견한 나는 현지를 향해 손짓했다.
“무슨 일? 응?”
공간의 문을 통과한 현지는 나에게 물음을 던지려다 느껴지는 기운에 곧장 상황을 파악했다.
“중급 두 마리네요?”
“중급을 처리하면서 시간을 좀 끌었더니 이렇게 됐어.”
현지에게 간단한 상황 설명을 해준 나는 전신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표정을 일그러트리곤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도련님이 직접 처리하신 거예요? 괜찮으신 거 맞죠?”
물음을 던지는 현지는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또다시 미쳐 날뛰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는 모양.
“괜찮긴 한데 좀 힘드네. 오늘은 저것들만 처리하고 돌아가자. 처리하고 지안이도 좀 불러줘. 나는 좀 쉴 테니까.”
“네. 바로 처리할게요.”
“아니, 뚱이랑 니안한테 맡기고 너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뚱이와 니안은 같은 등급의 악마종과 목숨 걸고 싸워본 적이 없었기에 이 기회에 경험을 좀 시켜주고 싶었다.
물론 위험하다 싶으면 현지를 보낼 테지만, 거기까지는 가지 않으리라.
내 지배를 받는 악마종은 지금껏 이곳에서 만났던 악마종들과는 뭔가 달랐다.
정확히 무엇이 다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많이 달랐다.
솔직히 방금 내가 상대했던 중급의 악마종도 뚱이나 니안이 나섰다면 순식간에 처리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차이가 심하게 나는 상태였으니까.
마력의 질과 활용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해야 하나?
상급의 악마종인 드래곤을 만났을 때만 해도 그 차이를 느끼지 못했었지만, 잠깐이지만 수호자급 정령을 상대했다는 현지의 말을 들은 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악마종의 경우 등급이 높아질수록 점차 차이가 심하게 벌어졌다.
최하급과 하급의 차이보다 하급과 중급이.
하급과 중급의 차이보다 중급과 상급의 차이가 몇 배는 더 심할 정도였다.
그런데 어떻게 내 소환수가 상급의 드래곤을 상대할 수 있었을까?
내 의문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드래곤이 정상이 아닌 상태였다고는 하나 그건 내 소환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과 같은 중급이 아닌 하급이었던 상태.
아무리 대부분의 힘을 소모했다고 해도 상급의 악마종의 공격을 하급이 받아내었다는 것은 솔직히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무슨 생각 하세요?”
“응? 아니야. 그나저나 너 몇 마리 처리했냐?”
“저요? 저는 세 마리요. 하급 하나 최하급 둘이요.”
현지와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잠시 기다리다 보니 뚱이가 있는 방향에서 악마종이 모습을 비췄다.
10m를 가볍게 넘어서는 거대한 덩치의 악마종이 튀어나왔는데, 놈은 뚱이를 발견하고는 심히 당황한 상태 같았다.
아마 전투에서 느껴지던 기운과 전혀 다른 기운을 풍기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어서 뚱이가 녀석을 향해 쏘아지듯 빠르게 질주하며 전투가 시작됐다.
“어? 도련님. 반대편에서 오던 놈이 멈췄는데요?”
“니안아!”
현지의 말에 급히 외치자 니안은 내 뜻을 알아듣고는 그놈이 멈춘 방향을 향해 쏘아지듯 튀어 나갔다.
“혹시 모르니까 니안이 좀 따라갔다 와.”
“도련님은요.”
“미호 있잖아.”
내 옆에 가만히 앉아서 전투를 지켜보는 미호는 이미 마력을 이용해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
“음- 그럼 다녀올게요.”
“그래.”
* * *
새로운 곳으로 사냥터를 옮긴 지 1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내 소환수들은 몰라보게 달라져 있는 상태였다.
우선 새롭게 악마종으로 올라선 고블린과 임프들이 각각 5개체씩 추가되었고, 기존의 고시리즈들은 모두 하급 끝자락에 올라선 상태였다.
두 번째로는 홉일이와 스카, 마귀가 중급에 올라서면서 전력이 한층 더 강화되었을 뿐 아니라 기존에 중급이었던 뚱이를 비롯한 니안, 하임, 펜릴, 샤크가 중급 끝자락, 그러니까 상급이 되기 직전의 왕눈이와 같은 급으로 올라선 상태였다.
다만 이상한 것은 미호였다.
미호에게 중급의 악마석을 복용시켰지만, 이상하게도 성장을 하지 않은 채 에너지를 몸속에 품고만 있는 상태를 유지했다.
아무래도 한 번에 큰 성장을 이룬 경우에는 적응 기간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예상이 들었다.
하긴 미호가 너무 빠르게 성장하긴 했지? 최하급에서 중급까지 올라서는 게 빠르긴 했지?
“준비됐지?”
“네!”
“조심해. 혹여나 너무 가까이 붙었다 싶으면 미호에게 공간의 문 열어달라고 해서 바로 빠지도록 하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생각한 나는 현지를 쫓아 온 상급의 악마종을 처리하기 위한 준비를 모두 마쳐둔 상태였다.
상급 악마석 하나만 있으면 중급 끝자락에 올라선 내 소환수들을 모두 상급으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몰랐으니까.
그만큼 상급의 악마석은 내 탐욕을 부추겼다.
“그럼 시작할까?”
“네. 출발할게요.”
현지가 공간의 문을 통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나는 곧장 지안에게 고개를 돌렸다.
“하임하고 임프들은?”
“장벽 앞에 대기시켜 뒀어요.”
“그럼 현지가 놈을 끌고 올 때까지만 기다리면 되겠네?”
“네. 준비 끝났어요.”
지안의 말에 내 뒤에 대기하고 있는 소환수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상급인 왕눈이와 중급의 악마종들.
그리고 수아에게 빌려온 수호자급 정령.
“최대한 빠르게 처리해야 해. 특히 왕눈이! 너는 애들이 시간 끄는 동안 최대한의 공격을 날려. 한 방에 처리할 수 있도록.”
계획은 정말 간단했다.
수호자급 정령을 비롯한 뚱이와 샤크가 녀석을 묶어버린 후 나머지 소환수들과 현지가 놈의 시선을 끈다.
충분히 시선을 돌렸을 즈음 놈과의 전투 현장에서 좀 떨어진 장소에 왕눈이를 투입하고 미호의 환영 능력을 이용해 왕눈이의 기운을 최대한으로 감춰버린 후 왕눈이의 필살기를 사용하는 것.
예상대로만 된다면 놈을 처리하는 데는 10분도 걸리지 않을 거다.
물론 생각처럼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지만, 오늘을 위해 여러 번 시뮬레이션을 돌려봤기에 실패 확률은 없다고 생각해도 될 거다.
“그런데 저는 정말 안 나서도 돼요?”
“임프들 통제하라니까? 왜 너도 싸우고 싶어?”
뭔가 아쉬워 보이는 지안의 모습에 슬쩍 물어보자 지안이 바로 대답했다.
“네. 저도 이번에 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해보고 싶은 거라니?”
“그게…… 저도 생각만 해본 기술이 하나 있거든요. 그거 쏴보고 싶어서요.”
지안의 말에 살짝 고민이 되었다.
어차피 임프들의 경우 지안이 직접 나서서 통제할 필요까지는 없었으니까.
길드원들이 나서서 통제해도 충분했기에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던 나는 마음을 정하고 지안에게 말했다.
“그렇게 해. 쏘고 싶으면 쏴야지.”
“정말요?”
“어.”
“와- 제가 정말 멋진 거 보여드릴게요.”
설레발 치는 지안을 보며 살짝 웃음을 지은 나는 몸을 돌려 소환수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위험하다 싶으면 무리하지 말고 빠져. 알았지.”
내 말에 각각 대답하는 소환수들을 보던 나는 살짝 흥분된 가슴을 진정시켰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 현지가 놈을 원하는 장소까지 끌고 오기만 하면 모든 것이 순식간에 정리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