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땅 초입에 도착한 나는 곧장 공간 확장 주머니에서 상급 악마종의 파편, 그러니까 살덩이들을 꺼내 미리 깔아둔 돗자리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되겠지? 일단 이걸 먹여보고 안되면 악마석을 복용시키자.”
“네.”
“알지? 진화할 것 같으면 전부 회수하는 거?”
“그런데 뚱이가 진화를 시작하면 마력을 전부 방출해도 되는 거 확실해요?”
“어. 그냥 마력을 방출하면 뚱이가 알아서 흡수할 거야.”
왕눈이의 경우 내가 방출한 마력을 전부 흡수했을 뿐 아니라 인피니티 링에 저장해둔 마력까지도 흡수했기에 현지와 지안에게 부탁을 해둔 상태였다.
마력을 전부 방출해 달라고.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나야 모르지. 너희들이 직접 보고 판단을 해봐. 어떻게 가능한 건지.”
“네.”
둘의 대답을 들은 나는 뚱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일단 이것부터 먹어.”
“쿠오!”
잔뜩 신이 난 뚱이는 빠르게 다가와 주저앉더니 살덩이들을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고, 그에 나와 현지, 지안은 살짝 물러난 채 상황을 주시했다.
계속해서 살덩이를 씹어먹는 뚱이.
“정말 맛있게 먹네요. 한입 뺏어 먹고 싶어질 정도로.”
지안이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열었다.
“저게 맛있게 먹는 거야? 게걸스럽게 먹는 거지?”
“그걸 맛있게 먹는다고 하는 거야.”
현지 말대로 뚱이는 맛있게 먹는 것과는 좀 거리가 있었다.
양손을 이용해 살덩이들을 집어 그대로 입으로 가져가는 뚱이는 내 눈에도 충분히 게걸스러워 보였으니까.
“응? 갑자기 안 먹네요?”
갑자기 먹던 것을 멈춘 뚱이는 몸을 일으키더니 나에게 다가와 나를 멀뚱멀뚱 바라봤고.
“악마석 달라고?”
“쿠오!”
“잠깐만.”
현지와 지안에게 눈짓하자 둘은 재빨리 돗자리로 다가가 살덩이들을 각자의 확장 주머니에 넣기 시작했다.
“다 넣었어요.”
지안의 대답에 손에 쥐고 있던 악마석 조각을 뚱이에게 건네며 뒤로 물러나자 뚱이가 그대로 악마석 조각을 꿀꺽 삼켜버렸다.
쿠웅- 쿠웅- 쿠웅-
잠시 시간이 지나자 역시 왕눈이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뚱이.
진화가 시작되었다.
“일단 물러나자.”
혹시 악마석 조각이 부족할지 몰라 상황을 살피던 나는 진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급히 입을 열며 뚱이와 거리를 벌렸다.
“정말 주변의 마력을 빠르게 끌어들이고 있어요.”
“진짜 신기하네?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마력을 끌어올 수 있는 거지?”
내 옆으로 자리를 옮긴 둘은 뚱이를 보며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언제 마력을 방출하죠?”
“조금만 기다려.”
뚱이가 마력을 끌어들이는 영역이 구축될 때까지 기다린 후 마력을 분출할 생각이었기에 둘에게 기다리라 지시한 나는 뚱이의 모습을 살피며 조용히 기다렸다.
뚱이를 중심으로 빠르게 말라가는 식물들과 쩍쩍 갈라지기 시작하는 땅바닥.
점차 영역을 넓혀가는 모습을 보던 나는 영역 구축이 끝났다는 것을 깨닫곤 둘에게 소리쳤다.
“지금!”
내 외침과 동시에 곧장 마력을 방출하기 시작하는 둘과 함께 나 역시도 인피니티 링에 저장해 둔 마력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마력이 방출됨과 동시에 순식간에 뚱이에게 흡수되어 버리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던 나는 생각해 두었던 것을 실행해보기로 했다.
과연 뚱이는 파괴의 마력도 흡수할 수 있을까?
상급 악마종과의 전투 중 왕눈이의 마력이 내 파괴의 마력과 닮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소환수들이 진화하는 도중 파괴의 마력을 흡수하면 어떻게 될지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과 지금의 상황을 토대로 생각해 본다면 진화 도중에도 내 소환수들이 마나를 분별해서 흡수한다는 걸 알 수 있었는데, 만약 흡수할 수 없다면 뚱이는 파괴의 마력 끌어들이지 않을 거다.
제발 아무 일 없기를…….
소량의 마력을 파괴의 마력으로 변환시킨 나는 천천히 파괴의 마력을 방출하기 시작했고, 뚱이 역시 내 마력을 느낀 건지 다른 마나에 비해 느릿한 속도지만 계속해서 파괴의 마력을 끌어들여 흡수하기 시작했다.
점차 뚱이에게 흘러 들어가기 시작한 파괴의 마력.
뚱이를 관찰하며 혹여 무슨 일이 생긴다면 바로 멈출 생각을 하던 내 눈에 뚱이의 피부색이 점차 변하는 것이 포착되었다.
녹색의 피부가 점차 붉은 빛을 띠기 시작하더니 이어서 녹색을 전부 지우고, 피부가 완전한 붉은 색으로 변해 버렸다.
점차 진해지기 시작한 뚱이의 피부는 이어서 핏빛으로 변하며 파괴의 마력을 더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계라는 건가?
더는 흡수가 불가능한지 뚱이는 내 파괴의 마력을 더는 끌어가지 않은 채 주변에 끌려오는 마나만 흡수하기 시작했고, 이어서 주변에 존재하던 마나가 전부 사라져 버리며 뚱이의 진화가 막을 내렸다.
쿠웅-
뚱이를 중심으로 퍼져나가는 파동을 보며 그제야 안심이 되어 입가에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상무님. 끝났나 봐요.”
“그래.”
“꾸오-”
진화를 마친 뚱이는 외형이 살짝 변해 있었다.
아니 조금 많이 변해 있었다.
핏빛의 피부는 둘째치고 외모가 특히 많이 변해 있었는데, 갸름해진 얼굴형과 구멍 두 개만 존재했던 코와 귀가 새롭게 생겨났으며, 존재하지 않던 눈썹이 자랐고, 툭 삐져나와 있던 송곳니가 입안으로 자취를 감추면서 마치 사람처럼 변해버렸다.
피부색만 아니라면 훈남이라 해도 될 정도로 외모가 훤칠해진 모습.
물론 덩치는 그대로였지만.
함성을 내지른 뚱이가 나에게 고개를 돌리곤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미소를 지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이어지는 뚱이의 행동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내 앞에 도착한 뚱이가 각을 잡더니 그대로 한쪽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
마치 중세시대의 기사가 충성을 맹세하는 듯한 모습으로.
-주인!
‘주인? 텔레파시?’
입을 열지 않았음에도 머릿속으로 울리는 음성은 분명히 뚱이였다.
왕눈이와 다르게 잡음이 섞여 있는 듯했지만, 뜻은 분명히 전해지고 있었다.
“텔레파시를 보낼 수 있게 된 거야? 왕눈이처럼?”
-긍정!
“허!”
진화를 통해 변해버린 뚱이의 각 잡힌 행동은 날 기쁘게 만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뭔가 서운하다는 감정을 느끼게 만들었다.
뭐랄까? 어린아이였던 존재가 한순간에 커버린 느낌이랄까?
* * *
“우와-”
“호오-”
유명시의 장벽 너머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각양각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그들은 아무리 봐도 동양인으로는 보이지 않을 흰 피부와 검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대단하군. 이런 곳에서 문명의 흔적을 발견할 줄이야.”
“내 생각은 좀 다른데?”
“문명의 흔적이 아니면 저걸 뭐라고 불러야 한단 말인가?”
“저거 유명시잖아? 그때 영상에서 본 모습과 일치하는 것 같은데?”
“유명시라? 설마 코리아의 게이트 도시란 말인가?”
유명시라는 말에 놀란 표정을 짓던 남성은 이어서 고개를 갸웃하곤 옆에 있던 여성에게 입을 열었다.
“조금 다르지 않나? 그때 봤던 영상은 저렇게 넓지 않았던 거로 기억하는데?”
“증축했겠지.”
“저만한 장벽을 이렇게 빨리?”
“그때 봤던 장벽은 말이 된다고 생각해?”
유명시를 공개한 후 공장지대와 농업지대를 새로 만들어야 했기에 새롭게 증축을 한 것에 대해서는 말로만 떠돌 뿐 제대로 된 영상 자체가 없었기에 그들은 유명시를 보며 고민을 해야만 했다.
물러날 것인지. 진입할 것인지를.
“마스터. 유명시의 증축이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여성과 남성의 뒤에 대기한 채 대화를 조용히 듣던 자 중 맨 앞쪽에 있던 남성이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정말인가?”
“네. 확실한 이야기는 아니고 유명시의 지부에 방문했던 관리국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음-”
유명시를 처음 공개한 이후로 일반인들에게도 유명시의 출입을 허용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국내에 한해서였다.
한국인이라면 출입할 수 있었지만, 허가가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절대 짧지 않았고, 신분이 확실히 증명돼야 했으며 촬영 도구를 들고 들어가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기에 아직 유명시에 대한 영상은 처음 공개를 할 당시의 영상밖에 존재하지 않는 상태였다.
물론 유명시에 대한 이야기가 알음알음 퍼져나가긴 했지만.
“어떻게 할까?”
여성의 말에 마스터라 불린 남성은 생각에 빠져 고심하는 표정을 짓다 이내 결심을 내린 듯 입을 열었다.
“일단 이곳에 자리 잡고 생각을 좀 해보도록 하지.”
“그럼 야영준비를 하라고 할게.”
“그래.”
마스터라 불린 남성은 여성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연 후에도 한참을 장벽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몬스터?”
유명시의 장벽을 멍하니 보던 남성의 감각에 몬스터의 기척이 잡혔고, 이어서 야영을 지시하던 여성과 준비하던 길드원 전부가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각자의 무기들을 꺼내 들었다.
“최소 S급. 준비해!”
남성의 명령에 곧장 자세를 잡은 길드원들은 이내 긴장이 되는지 표정을 굳히며 전방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메리 부탁해!”
“걱정마!”
앞으로 나서는 여성의 정체는 바로 미국의 가디언 중 하나인 세계랭커 메리 톰슨이었다.
탱커형 가디언으로 선우와 만난 적이 있던 여성이며 저스티스 길드의 부 길드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에게 부탁하듯 명령을 내린 남성.
그는 저스티스 길드의 마스터이자 10강의 일인인 존 록펠러였다.
입을 염과 동시에 거대한 금빛 방패를 내세우며 앞으로 나선 메리 톰슨은 이어서 마력을 끌어올려 방패를 감싸며 조금 있으면 나타날 몬스터를 기다렸다.
부스럭- 부스럭-
숲을 해치는 소리가 들리자 뒤쪽에서 대기하던 저스티스의 길드원들에게서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느껴지는 몬스터의 기운이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곳까지 오는 도중에 만났던 수많은 몬스터들 중 S급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 느껴지는 기운과 비슷한 수준의 몬스터는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메리가 놈의 공격을 막아내는 순간을 노린다. 다들 긴장하도록!”
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전방의 숲을 해치며 녹색의 거대한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우거? 오우거가 이 정도의 기운을 풍긴다고?”
그들의 앞에 나타난 몬스터는 바로 오우거였다.
일반적인 오우거와는 조금 차이가 있었지만, 어쨌거나 생긴 것은 오우거였다.
“쿠오?”
그들을 발견한 오우거는 고개를 갸웃하곤 그들을 조용히 주시하기 시작했다.
“바로 공격하지 않는다고?”
“메리! 조심해. 우리가 알던 오우거가 아니야!”
일반적인 오우거에 비해 크기는 많이 작았지만, 풍기는 기운은 차원이 달랐기에 그들의 긴장감은 더욱 높이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들은 오우거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곧바로 눈치챘다.
은은한 살기가 풍겨 나오긴 했지만, 그들에게 향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뭔가 이상한데?”
잠시간의 정적이 흐르고 이상함을 눈치챈 메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왜 공격을 하지 않는 거지?”
존 역시 이상함을 느끼며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였다.
오우거가 그들의 눈치를 살피더니 그들을 피해 빙 둘러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어째서 몬스터가 우리를 피하는 거야?”
메리의 말에 모두가 동의하듯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우거에게서 그들을 공격할 생각이 없음을 깨달았기에.
“설마?”
뭔가를 깨달은 듯한 메리의 혼잣말에 존이 급히 입을 열었다.
“짐작 가는 것이 있나?”
“유선우! 그의 소환수라면 가능해!”
“설마 저 오우거가 그의 소환수란 말인가?”
“너도 봤잖아. 유명의 회장이 장벽에 서서 몬스터들에게 유명시를 지키라 명령하던 모습을!”
메리의 외침에 존뿐 아니라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멀어져가는 오우거를 멍하니 바라봤다.
“모두 짐 도로 챙겨! 우리는 저 오우거를 따라 이동한다!”
존이 급히 소리치자 모두가 급히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괜찮을까?”
“너의 예상이 사실이라면 저 녀석이 우리를 그에게 안내하겠지.”
사실 존의 힘이라면 오우거를 처리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10강의 일인이자 아직 까지는 세계 최강이라 불리는 존이었으니까.
저런 오우거 10마리가 덤벼도 홀로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그는 강했다.
그들은 모든 짐을 챙긴 후 급히 오우거를 따라나섰다.
“나를 따라 이동한다.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도록!”
존이 앞으로 나서고 이어서 길드원들이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
맨 뒤에는 혹여나 모를 습격을 대비한 메리가 위치를 잡고는 후방을 살피며 천천히 이동을 시작했다.
“그나저나 저 녀석 정말 우리를 안내하는 것 같잖아?”
오우거는 이동을 하면서도 힐끔힐끔 그들을 보며 속도를 맞추기 시작했다.
정말 안내라도 하는 것처럼.
거기다 이동을 하며 마주치는 몬스터들 모두가 그들에게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 갈 길을 가는 모습은 그들을 다시 한번 놀라게 했다.
“마스터. 지금까지 만난 몬스터 모두가 S급입니다. 정말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지금껏 만난 몬스터들의 수가 적지 않았기에 그의 부관으로 보이는 자가 걱정을 했지만, 존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이쪽을 공격할 의사가 없어 보이지 않나.”
“하지만…….”
“걱정할 것 없어. 홀로 전부 감당이 가능할 정도는 되니까.”
그는 한 가지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 홀로 전부 처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지금껏 만난 몬스터가 동시에 덤빈다면 전부가 무사하지는 못할 거란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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