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1화 (101/214)

쾅-

“아가씨!”

2학년 3반 교실의 뒷문이 거칠게 열리며 검은색 정장을 입은 여성이 다급하게 들어왔다.

그 뒤로 십여 명의 비슷한 복장을 착용한 여성들이 들어왔고 이어서 수아를 보호하듯 주변에 포진하기 시작했다.

“경호원 언니?”

그녀를 본 수아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곤 입을 열었다.

“피하셔야 합니다. 지금부터는 제 지시를 따라주세요.”

“저, 저기……. 무슨 일이시죠?”

수업 중인 교실에 갑작스럽게 난입한 경호원들 덕분에 당황한 수아의 담임선생님은 잠시 멍한 표정으로 그들을 보다가 급히 정신을 차리고 그들에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가까운 거리에 균열이 발생했습니다. 이해를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균열이요?”

균열.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자들에겐 일상이나 마찬가지인 균열 때문에 이 난리를 피웠다는 것은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누구인지 아는 선생은 이 상황이 평소와는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모셔!”

“네!”

“자, 잠시만요!”

급히 수아를 데리고 반을 떠나려는 자들을 멍하니 보던 수아의 담임은 정신을 차리곤 급히 입을 열었다.

그들의 행동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 위험한 상황이라면, 이들은 학교에 있는 아이들과 선생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였다.

물론 고위급 자제들이 많이 다니는 학교였기에 자체적으로 운용하는 경호팀이 상주하고 있긴 했지만, 이들에게 비교하기는 많이 모자란 수준이었다.

“무슨 일이시죠?”

“그, 그게……. 꼭 떠나셔야 하는 건가요? 이곳에는 많은 아이가 있어요.”

“죄송합니다.”

제대로 된 상황설명도 없이 대뜸 사과하곤 수아를 데려가려는 경호원의 다급해 보이는 모습에 그녀는 균열의 등급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안 돼요!”

그때 수아의 외침이 교실을 뒤흔들었다.

“아가씨?”

“친구들이랑 같이 있을 거예요!”

수아가 친구들을 둘러보며 크게 외쳤다.

아이들은 지금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지만, 수아는 경호원들의 행동에서 충분히 어떤 상황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떠나면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위험하다는 것을.

“아가씨, 정말 죄송합니다.”

수아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경호팀장.

그 모습에 선생은 한 줄기 희망을 보았지만, 이어지는 경호팀장의 행동에 표정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수아의 뒤에 대기하던 다른 경호원에게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과 그를 확인한 경호원의 손날이 수아의 목덜미를 향하는 모습.

평소라면 그녀가 볼 수 없어야 정상이겠지만, 다급한 상황이 그녀의 집중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경호원의 행동이 슬로우모션처럼 천천히 재생되며 찰나의 시간 동안 그녀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생각만이 이어졌다.

저 손이 수아의 목에 닿는 순간 자신을 비롯한 아이들의 안전이 불확실해진다는 것.

점차 가까워지던 손날과 수아의 목덜미의 거리가 종이 한 장 차이 정도 남았을 무렵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응?”

수아를 기절시키려던 경호원의 손이 제 할 일을 마치지 못한 채 그대로 멈춰 버렸고.

이어서 경호원의 팔에 초록색의 손이 나타났다.

“키엑!”

바로 고블린.

수아의 경호를 담당하는 또 하나의 팀.

“꺄악!”

“으앙-”

고블린의 모습이 교실에 나타나자 선생이 비명을 터트렸고, 그에 반응한 아이들 역시 깜짝 놀라며 하나둘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응? 블린아!”

“키엑!”

고블린을 부르는 수아와 그에 화답하는 고블린.

선생과 아이들이 보기에는 상황이 많이 이상해 보일지 모르지만, 수아에게 고블린은 일상이었다.

“뭐 하는 거야! 지금 상황이 어떤지 몰라?”

“키엑!”

경호팀장은 갑작스럽게 끼어드는 고블린을 보며 따지듯 소리쳤고, 그에 고블린 역시 그녀에게 화를 내듯 소리쳤다.

대화가 통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이없게도 둘은 말다툼을 하듯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너 정도면 지금 상황을 충분히 파악했을 텐데?”

고블린에게 소리치는 경호팀장의 머릿속에 하나의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 그 고블린이라면!

전에 수아를 보호하던 녀석.

그러니까 홉일이라는 녀석이었다면 이런 상황이 애초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켁! 키엑!”

경호팀장의 말에 고블린 역시 지지 않고 받아쳤지만, 그 뜻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경호팀장의 입장에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수아를 지켜야 했다.

설령 그것으로 인해 이 학교의 아이들이 전부 목숨을 잃는다고 해도.

고블린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그녀와는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수아를 지켜야 하는 것은 같았지만, 고블린들의 경우 수아의 몸에 어떠한 해도 입지 않게 수아를 지켜야 한다는 것.

당연히 수아의 몸에 손을 데는 것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는 고블린이었다.

“수, 수아야. 혹시 저 고블린도 수아의 경호원이니?”

“네. 선생님. 아빠 부하들이에요! 멋있죠!”

수아의 말에 그제야 안심이 된 선생님은 아이들을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팀장! 시간 없어요! 이러다 정말 큰일 난다고요!”

“이익! 나도 알아! 하지만 방법이 없잖아!”

수아는 절대 떠나려 하지 않았고, 고블린 역시 수아의 말을 따르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자신들이 수아를 데리고 떠날 방법은 없다고 해도 좋았다.

“아가씨. 상황이 많이 위험합니다. 급히 자리를 피해야 해요.”

“하지만……. 그럼 친구들하고 선생님이 위험해지잖아요.”

팀장은 수아를 어떻게든 설득을 하려 했지만, 친구들과 선생을 보며 꿈쩍도 하지 않는 수아였다.

“아가씨의 아버님이 많이 걱정하실 겁니다.”

“맞다! 아빠가 그랬어요. 수아가 제일 쎄다고!”

“네?”

어이가 없었다.

물론 그녀 역시 수아가 각성자라는 걸 알고 있었고, 정령의 소환이 가능하다는 것 역시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령을 소환한다고 해도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수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녀는 아직 수아가 대규모의 정령을 정화해 소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었다.

어비스에서 수아를 경호하는 자들은 따로 있었고, 그때의 일 역시 그녀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으니까.

물론 경호팀장은 얼마 전 수아가 균열에서 나온 타락한 정령을 정화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긴 했지만, 최상급 정령 한 개체로는 악마종을 상대할 수 없었기에 수아의 말을 어린아이의 치기로 생각할 뿐이었다.

“아가씨!”

콰앙-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창밖에서 굉음이 터져 나오며 학교 건물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꺄악!”

그에 선생을 비롯한 아이들에게서 비명이 터져 나왔고, 이를 본 수아는 뭔가 결심한 듯 옆자리의 친구를 보며 눈을 빛내곤 입을 열었다.

“내가 혼내줄게!”

“팀장, 어떻게 할 거야?”

“아! 정말…….”

수아를 말려야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저 고블린만 없었다면, 벌써 수아의 안전을 확보했을 거다.

“저, 저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그녀에게 선생이 다가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네. 말씀하시죠.”

“도대체 균열의 등급이 얼마나 되길래 경호원님들이 이렇게 걱정하시는 거죠?”

균열의 등급이 아무리 높아도 이곳에 있는 존재들이라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 선생은 의문이 가득한 눈으로 물을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얼마나 무시무시한 균열이 열렸기에 이들이 이러는지.

보는 건 처음이었기에 잊고 있었지만, 저 고블린은 분명 보통 고블린이 아니었다.

S급 몬스터라 해도 저 고블린에게는 상대조차 되지 않을 거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으니까.

“측정 불가 등급입니다.”

“네? 측정 불가요?”

“S급을 벗어나는 몬스터. 그러니까 이번에 새롭게 정의된 악마종이라는 존재가 나오는 균열을 측정 불가 등급이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서, 설마 얼마 전에 뉴스에 나왔던 그 괴물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여의도에 출몰했던 괴물과 같은 등급을 말하는 겁니다.”

얼마 전 유명그룹에서 악마종이라는 새로운 존재를 발견했다는 뉴스가 나온 적이 있었다.

몬스터의 상위개체 그러니까 어비스의 진짜 주인이라는 괴물들에 대한 발표가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를 뒤흔든 적이 있었다.

“아!”

순간 다리가 풀려 주저앉으려던 선생을 부축한 경호팀장은 스마트폰을 꺼내며 급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네, 실장님. 접니다. 네. 네? 그럴 리가?”

통화를 하던 팀장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돌려 수아를 바라보았다.

“정말인가요? 네. 알겠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들은 듯 그녀는 흔들리는 눈동자를 수아에게 고정한 채 한동안 말이 없었는데.

“팀장? 뭐래?”

“걱정하지 말라는데? 수아 아가씨가 있는 이상 위험한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지?”

밝은 미소를 지으며 친구들을 안심시키던 수아는 팀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언니! 그런데요. 수아는 발이 느려서 저기까지 갈 수가 없어요. 어떻게 하죠? 차를 타고 가야 할까요?”

계속해서 굉음이 발생하는 장소를 가리킨 채 입을 연 수아는 고민이 되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그게…….”

“아! 그냥 친구를 보내면 되겠다!”

밝은 미소로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끄덕인 수아는 이어서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자, 잠깐!”

김 실장은 그녀에게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수아의 힘을 사용하게 하라 지시했기에 급히 말렸지만, 이미 허공엔 커다란 공간의 문이 열려버린 상태였다.

그리고.

우웅-

뭔가가 문을 통해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거대한 무언가가 수아가 열어버린 문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며 교실의 한 공간을 가득 채웠고, 이어서 정령이 완전히 문을 통과해버렸다.

“상급정령?”

모습을 드러낸 정령은 상급정령으로 추정되는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우와-”

“와-”

정령의 신비로운 모습에 아이들이 놀라는 소리를 듣던 팀장은 의문이 가득 담긴 눈으로 정령을 볼 뿐이었다.

상급정령이 강하긴 해도 지금 사태를 해결하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거지?”

정령에게서 어떤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것을 깨달은 팀장은 혹시 몰라 팀원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있습니다.”

“저도…….”

“너희들도?”

정령이란 존재에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정령 자체가 하나의 마력 덩어리였기 때문에.

“수호자야! 수아 좀 도와줘!”

우웅-

화답하듯 대기를 진동시키는 정령.

“저기서 악당이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대! 걔 좀 혼내줘!”

우웅-

진동과 함께 교실의 창을 통해 곧장 밖으로 나간 정령은 이어서 몸집을 불리며 엄청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고, 이에 수아의 경호팀 전부가 깜짝 놀라며 자신들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며 뒤로 물러났다.

“이, 이게 무슨…….”

경호팀장이 정령에 대해 잘 알진 못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수아의 능력이 정령을 소환하는 능력이라는 사실을 안 후로 정령에 대한 정보를 찾아본 적이 있었기에 정령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눈앞에 있는 저 정령의 힘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엄청났다.

“최상급?”

“아니야. 이 정도의 기운을 가진 존재가 겨우 최상급일 리 없어.”

“하지만 팀장. 최상급 정령이 정령의 마지막이잖아……. 설마?”

“정령왕?”

그녀는 정령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던 중 정령왕이란 존재가 실존할지도 모른다는 자료를 본 적이 있었다.

“말도 안 돼…….”

그녀가 혼잣말을 내뱉었지만, 정령은 그녀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수아가 가리켰던 방향을 향해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꼭 혼내줘야 해!”

수아의 외침에 한참을 이동하던 수호자급 정령의 움직임이 변했다.

시뻘건 화염을 뿜어내기 시작한 정령은 학교와 거리가 어느 정도 떨어진 걸 확인하곤 뿜어내던 화염을 터트리며 한 줄기 빛으로 화해 순식간에 모습을 감춰 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쾅- 콰과과광-

거대한 굉음과 함께 후폭풍이 밀려오며 둘의 싸움을 알리는가 싶더니 멀리서 들리던 소리가 갑작스럽게 멈춰 버렸다.

그리고 잠시 후.

굉음과 함께 학교 운동장으로 뭔가가 떨어져 내렸다.

쾅-

15m 정도의 크기를 가진 거대한 몬스터.

긴팔원숭이와 비슷해 보이는 형태를 가진 녀석은 붉은 화염으로 만들어진 줄에 전신을 속박당한 채로 운동장에 내동댕이쳐져 버렸고, 그 위로 거대한 불의 정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마워, 수호자야!”

그에 곧장 창문으로 다가간 수아가 창문을 열고 소리치자 정령이 천천히 수아에게로 다가와 우웅- 거리며 기분 좋은 울림을 만들어내는 정령.

“히히히!”

수아가 소환한 정령 덕분에 지금 학교는 난리가 난 상태였다.

특히 경호팀장은 믿기지 않는 사실을 목격한 사람 마냥 정신이 나간 듯 보일 정도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처음 균열이 발생했을 때 연락을 받았던 그녀는 지금 저 운동장에 내동댕이쳐져 있는 녀석이 최소 하급의 악마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급의 악마종을 죽이지 않은 채 제압한 것도 믿기지 않은데 더 나아가 기절은커녕 상처조차 입히지 않고 제압한 듯 보이는 모습에 그녀의 눈은 정령에게 고정된 채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정령이 악마종을 제압하는 데 걸린 시간은 오래 잡아도 몇 초였다.

그게 가능하려면 최소 한 단계 이상의 등급 차이가 나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지금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지금 본 것이 꿈이 아니라면 수아의 힘이 10강에 준하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이제 9세. 초등학교 2학년.

초등학교 2학년의 아이가 10강의 힘을 가지고 있다?

이건 정말 말이 되지 않았다.

거기다 이런 힘을 가지고 있는 아이를 자신들이 경호할 필요가 있는 건지도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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