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5화 (105/214)

“어린 처자라 그런지 겁이 없군.”

앞으로 나서는 천마는 전과 다르게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화가 난 모양이었다.

언제나 찬양의 말들만을 들었던 그가 언제 이런 대접을 받아봤을까?

애써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에게서 발산되는 어두컴컴한 기운을 통해 그의 감정이 조금이나마 느껴지는 것 같았다.

다만 의문이 드는 것이 하나 있었다.

현지는 천마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듯 보였지만, 천마는 현지를 자신보다 수준이 낮다 확신하고 있다는 것.

그것도 미세한 차이가 아닌 큰 차이가 난다고 확신하는 듯 보였기에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덤비기나 하시지?”

현지 역시도 그걸 느끼고 있는지 말이 좋게 나오지 않았다.

“감히!”

쾅-

천마가 소리침과 동시에 폭발음이 들리며 충격파가 퍼져나가며 연무장을 뒤흔드는 찰나 천마의 뒤에 현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서 둘의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연무장 곳곳에서 굉음과 함께 충격파가 터져 나왔지만, 둘의 모습은 그 어디서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파괴의 마력을 이용해 신체를 강화하고 나서야 둘의 모습을 겨우 쫓을 수 있을 정도로 둘의 움직임은 굉장히 빠르고 화려했다.

쾅- 콰콰콰쾅-

단검조차 빼 들지 않고 천마와 육탄전을 벌이고 있는 현지는 천마에게 전혀 밀리지 않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를 압도하는 듯 보였기에 슬며시 내 입가에 미소가 감돌던 그때.

콰앙-

둘이 정면으로 충돌했고, 이어서 거대한 폭발음이 터져 나오며 연무장 바닥이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서로의 힘에 의해 튕겨져 나온 둘은 이내 거리를 벌린 채 멈춰섰고.

“크하하하! 이거 내가 정말 잘못 생각한 모양이군! 강해! 정말 강하구나!”

천마의 입이 열렸다.

천마는 언제 그랬냐는 듯 조금 전과 다르게 현지를 보며 호탕하게 웃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그를 보던 천마신교 측 인원들은 모두 믿을 수 없는 사실을 목격한 것처럼 입을 벌린 채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거 제대로 하지 않으면 낭패를 볼지도 모르겠군.”

조용히 그를 관찰하는 현지를 보며 혼잣말을 내뱉은 천마의 육체에서 전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진한 어두운 마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껏 내가 봐왔던 천마신교 측 무인들의 마력과는 질이 많이 다른 듯한 기운.

어둡다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캄캄한 마력이었다.

주변의 빛을 모두 빨아들이는 듯 공간이 둘로 나뉘어버린 것 같은 착각이 느껴졌고, 끝없이 뿜어져 나오는 마력 때문에 입가가 바짝바짝 마르는 것만 같았다.

소설 속에 나오는 마기라는 것이 저런 것일까?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공포를 자극하는 무시무시한 기운에 현지에 대한 걱정이 올라오던 찰나.

쿵-

현지에게서도 검붉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천마와 다르게 요란하게 기운을 방출하기 시작한 현지.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소름과 함께 공포심을 느껴야 했다.

현지에게서 줄기줄기 뿜어져 나온 검붉은 마력은 이내 이리저리 움직이며 닿는 모든 것들을 소멸시키기 시작했고 이어서 현지의 모습조차도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마력에 의한 현상인지 현지의 긴 머리가 붉은빛을 내며 하늘로 치솟아 오르며 머리를 묶고 있던 끈이 터져나갔고 이어서 머리가 이리저리 흩날리기 시작했다.

괴상한 현상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현지의 두 눈.

맑았던 현지의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는 핏빛의 기운.

마치 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마녀와 같은 모습이 지금 현지에게서 재현되고 있었다.

천마와 현지.

둘이 뿜어내는 마력은 차이가 좀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만은 다르지 않았다.

바로 인간의 공포심을 자극한다는 것.

“사, 상무님. 현지가 이, 이상해요.”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지안을 비롯한 이곳에 있는 전부에게 강한 공포심을 심어주는 듯한 괴상한 마력.

나라고 다르지 않았다.

특히 현지의 모습은 도저히 인간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음-”

자신감 가득한 표정을 지었던 천마조차도 현지의 변한 모습을 보며 침을성을 내뱉었다.

그 순간.

콰앙-

둘이 뿜어내던 기운이 영역을 점차 넓혀가다 결국, 충돌해 버렸고, 이내 충돌의 후폭풍이 둘을 중심으로 터져 나오며 연무장 전체를 뒤흔들었다.

고작 여러 줄기의 기운 중 하나가 충돌했을 뿐임에도 충격파가 굉장했다.

지진이라도 난 듯 연무장 전체가 미친 듯이 떨리며 강한 바람을 동반한 기운의 잔재가 여기저기를 강타하며 일정 수준 이하의 무인들이 피를 토하며 허리를 숙이는 모습이 시야에 잡혔다.

“하임, 왕눈아. 부탁해.”

“뀨!”

어느새 내 어깨 위로 올라와 자리를 잡고 둘의 싸움을 구경 중이던 하임이 내 명령에 팔을 내 뻗자.

나를 중심으로 연무장 바닥의 색이 까맣게 물들어가기 시작했고, 이어서 연무장 전체를 검게 물들어 버렸다.

이어서 왕눈이 역시 마력을 뿜어내며 내 주변을 중심으로 반경 10여 미터를 감싸는 반투명한 마력의 막이 나타났다.

“상무님. 저 사람들 괜찮을까요?”

“저들까지 우리가 신경 써줄 이유는 없어. 정 힘들면 알아서 자리를 피하겠지.”

“그래도…….”

지안은 피를 토하며 쓰러진 자들이 걱정되는 모양이었지만, 그것까지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일단은 적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왜 둘 다 멈춰있는 거지?’

기운의 충돌을 제외하면 둘은 미동조차 없었는데, 이에 살짝 의문이 생기려던 찰나.

현지가 뿜어내던 마력이 서서히 현지에게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고, 이어서 현지를 감싸며 불타오르는 듯한 형태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천마 역시 마찬가지.

마치 무기가 아닌 육체에 강기를 둘러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모든 준비를 마친 둘은 마침내 격돌했다.

서로를 향해 자세를 잡는 순간 자리에서 모습을 감춰버린 둘은 곧바로 서로를 향해 이빨을 들이밀었고, 단 한 번의 충돌만으로 연무장을 날려 버렸다.

하임이 강화한 연무장이 충돌의 여파만으로 날아가 버리는 모습은 솔직히 좀 충격이었다.

아무리 하임이 모든 힘을 사용해 강화를 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하임은 상급의 악마종이었다.

조금 전 수준의 강화만으로도 중급 악마종이 전력을 다해야만 조금이나마 부시는 것이 가능할 정도의 강도였는데, 그런 연무장을 단 한 번의 충돌만으로 전부 날려버린 것이었다.

“괜찮겠죠?”

“괜찮길 빌어야지.”

처음 충돌 이후 둘은 사라졌다.

분명 둘의 전투는 아직 이어지고 있었다.

계속해서 울리는 굉음과 충격파 그로 인해 점차 제 모습을 잃어가는 천마신교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아니, 건물만 부서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산을 비롯한 천산산맥이라 불리는 산맥 전체가 점차 제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다.

거기다 천마신교의 교도들 역시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몇몇 수뇌부를 제외하곤 첫 충돌에 모두 어디론가 날려가 버렸으니까.

‘그나저나 그 둘은 어디로 간 거지?’

외삼촌이라는 자들은 충돌이 발생한 후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뭔가 다급해 보이는 모습으로 사라진 둘은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된 거 내 할 일이나 해야겠다.”

“시작하시려고요?”

“어. 딱 좋을 때잖아.”

굉음이 터져 나올 때마다 재빨리 고개를 그쪽으로 돌리는 수뇌부들은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한 듯한 표정을 지은 채 하염없이 소리만을 따라다니는 그들의 흔들리는 눈동자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왕눈아, 부탁해.”

정신지배.

그들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왕눈이의 정신지배라면 그들을 지배하는 것이 가능할 거다.

특히 지금 상황이라면 더더욱.

왕눈이의 정신지배에 대해서는 진작에 확인을 마쳐둔 상태였다.

어디까지 지배가 통하는지, 어떻게 하면 더욱 수월하게 지배를 할 수 있는지 모두 실험을 해본 결과 저들에게도 정신지배가 가능할 거라는 예상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곧바로 정신을 지배해 버릴 수는 없겠지만, 천천히 단계를 밟아 나가면 충분히 지배가 가능하리라.

일단은 암시.

암시가 가장 중요했다.

나에 대한 친근한 이미지를 그들에게 각인시킨 후 반응을 보고 같은 암시를 계속 중첩하며 나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변화시켜 나를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존재로 바꿔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첫 번째 작업이었는데, 모든 작업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것만 제대로 통한다면 그 이후로는 쉬워질 테니까.

“어때? 잘 되고 있어?”

-긍정.

왕눈이의 신호에 슬며시 미소를 지은 나는 조용히 눈을 감고 왕눈이와 연결된 선을 찾아 나갔다.

얼마 전 크게 다쳤을 때 알게 된 것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연결된 선을 통해 소환수가 보거나 느끼는 모든 것을 나 역시 느낄 수 있다는 것.

선을 통해 왕눈이와 접촉한 나는 암시를 거는 왕눈이를 느끼며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점점 더 깊이 접촉해 들어갔고, 마침내 왕눈이를 완전히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오! 벌써 두 번째 암시를 거는 중이네?’

뭔가 엄청 복잡했지만, 무엇을 하는지 정도는 알 수 있을 정도의 정보가 들어왔고, 그로 인해 지금 왕눈이가 하는 작업의 진행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쉬운 모양인데?’

왕눈이의 암시는 아무런 방해 없이 그들의 정신을 파고 들어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지금 상황이 그들의 정신 방벽을 약하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두 번째 암시가 끝나고 세 번, 네 번, 다섯 번째 암시가 완성되자 멀리 있던 자들의 행동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를 힐끔힐끔 바라보며 이상한 표정을 짓는 그들.

아마 그들 자신도 지금 상황이 어이가 없을 거다.

상황이 상황임에도 자꾸 나에게 관심이 갈 테니까.

-완료.

“첫 번째 작업 끝났어?”

-긍정.

왕눈이의 대답에 곧장 다음 작업을 시작하라 지시하고 싶었지만, 조금 기다려야만 했다.

그들이 암시에 완벽하게 걸려들어 이상함을 느끼지 못할 때까지.

그 후 그들의 정신을 지배하면 끝이었다.

천마신교란 단체를 해체하는 건.

생각보다 빠르게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천마라는 자의 힘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하긴 했지만.

* * *

세 시간 째 끝나지 않는 전투에 벌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다만 해가 떠오른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정도로 이곳 상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세상이 망할 듯 여기저기서 굉음과 충격파가 계속해서 터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괜찮으려나? 괜찮겠지?’

현지에 대한 걱정에 마음이 심란하던 그때였다.

멀리서 다가오는 자가 있음을 느낀 나는 그 기운의 주인이 최강준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유선우~!”

역시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최강준이었다.

깜빡 잊고 있었음에도 제 발로 나를 찾아온 기특한 녀석.

“감히 네놈이!”

“무엄하다! 감히 소천마께 그 무슨 망발이냐, 이노옴!”

“응?”

최강준이 나를 보며 손가락질하는 모습을 보며 놈의 처리를 고민하던 그때 내 뒤에서 최강준을 향해 호통이 터져 나왔다.

고개를 돌려 살짝 뒤를 바라본 나는 상황이 조금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뒤에 일렬로 서있는 11인의 노인들은 자신들이 마치 내 부하라도 되듯 나를 모욕하던 최강준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그를 향해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대, 대장로,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이, 이놈이 어째서 소천마란 거요!”

“노, 놈이라고? 네놈이 미친 모양이구나! 감히 소천마께 놈이라니!”

곧바로 받아치는 대장로.

왜 맨 앞에 나와 있나 했더니 대장로여서 그랬던 모양이다.

“소천마는 나요! 이놈이 아니라!”

“뭣들 하나! 감히 소천마께 모욕을 저지르는 저놈의 주둥이를 틀어막지 않고!”

내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대장로의 뒤에 서 있던 노인 중 하나가 순식간에 최강준을 제압한 후 내 앞에 무릎을 꿇려 버렸기 때문이다.

‘암시가 너무 잘 됐는데?’

암시에 걸린 후부터 천천히 나에게 다가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천마와 현지의 전투 때문에 일단은 무시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들이 나에게 다가온 이유가 나를 소천마라는 존재로 인식했기 때문인 모양이었다.

“네, 네놈들이 할아버지를 배신했구나!”

“무슨 망발이냐! 소천마께선 천마의 정당한 후계자시니라! 네놈 따위가 아니라!”

“암- 이분이야말로 정당한 후계자시지.”

“그렇고말고.”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소천마란 호칭을 붙이는 장로들.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긴 했지만, 일단 내버려 두기로 했다.

득이 되면 되었지, 해가 될 일은 없을 것 같았으니까.

일단 놈을 좀 치우자.

“일단 그놈, 좀 멀리 치워놔.”

“네!”

내 말에 바로 대답한 대장로는 이어서 그를 어딘가로 멀리 치워버렸다.

“상무님. 이거 괜찮은 거예요? 저들 상태가 너무 이상한데요?”

“암시가 생각보다 잘 들은 모양이야.”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지안은 이들의 변한 태도가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솔직히 나도 좀 어안이 벙벙하긴 했다.

이렇게까지 잘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그나저나 언제 끝나는 거야? 그냥 애들을 보낼까?’

고민이 되었다.

현지에게 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곧장 나에게로 오라 말해두긴 했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심각하게 밀리는 상황에서 함부로 등을 돌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는 나였기에 계속해서 고민을 거듭해야만 했다.

“왕눈아. 혹시 너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여?”

-긍정.

“진짜 보여?”

-긍정.

“그럼 상황 설명 좀 부탁할게.”

-연결.

연결? 이게 무슨 소리지?

의미는 전달이 되었지만,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게 무슨 뜻이야.”

-나. 감응.

“아! 너랑 연결하라고?”

-긍정.

이제야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왕눈이와 접촉하면 쉽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

‘내가 이렇게 멍청했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것을 지금껏 고민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어이가 없었다.

일단 접촉부터 하자.

곧장 정신을 집중해 왕눈이와 연결된 선과 접촉을 시작했고, 이어서 왕눈이가 보는 것을 나 역시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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