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9화 (109/214)

“뭐 해?”

현지의 힘을 테스트하기 위해 죽음의 땅으로 향한 나는 한 방향을 보며 멍하니 있는 현지를 보며 물었다.

“그게요…….”

“뭐, 신경 쓰이는 거 있어?”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는 현지를 보며 묻자, 현지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문제가 좀 있어요.”

“뭔데.”

“어비스에 들어오면서 느낀 건데, 생각보다 강한 놈들이 많네요. 자존심 상할 정도로.”

“뭐? 강한 놈들이라고?”

“네. 멀리 있긴 한데, 자기 힘을 숨기지 않아서 그런지 놈들의 힘이 분명하게 느껴지거든요? 그런데 강함이 장난이 아니네요.”

현지의 말에 내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내 소환수 전부를 홀로 감당할 수 있다는 현지가 자신보다 위라고 분명하게 말하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황당하기 그지없는데, 그 수가 많다는 건 놀람을 넘어서 어이가 없었다.

“그 말 진짜야?”

“제가 이런 거 가지고 거짓말을 하겠어요?”

“그건 그렇지. 근데, 수가 얼마나 많길래 그래?”

어비스란 세계를 완전히 알고 있지 못했기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믿고 싶지 않았다.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등 뒤로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중이었고.

“기운이 뒤섞여 있어서 정확히 파악은 안 되는데, 정말 많아요. 적어도 천은 될 것 같아요.”

“처, 천이라고?”

“네. 적어도요.”

“거리는?”

“음…… 엄청 멀긴 해요. 여기서 타국의 게이트까지 거리쯤?”

“뭐? 그 거리에 있는 게 느껴진단 말이야?”

이건 솔직히 믿기가 좀 그랬다.

최소 만 킬로는 떨어져 있다는 소리인데, 그 거리에 있는 존재를 느낀다는 것은 말이 안 됐으니까.

“뿜어내는 힘이 워낙 커서 가능한 것 같아요. 솔직히 그 기운 말고는 느껴지는 게 아무것도 없거든요. 물론 저도 확실하지는 않아요.”

“거짓말! 여기서 타국의 게이트까지 거리가 1만 킬로를 훌쩍 넘어서는데 아무리 기운이 강해도 그 거리에 있는 게 느껴진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니?”

지안 역시도 믿기지 않는 듯 현지를 보는 눈동자에 황당함이 가득했다.

“진짜라니까?”

별것 아닌 것처럼 말하는 현지였지만,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였다.

상급 악마종의 힘을 가볍게 뛰어넘는 현지보다 강한 놈들이 천이 넘는다는 건, 놈들이 이곳으로 향하게 될 경우 인류에게 정말 미래가 없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설마 이곳이 어비스가 아니라 지옥인 건가? 그 신화 속에나 나오는 악마들이 정말로 존재하는?

물론 앞으로 최소 5년 동안은 안전할 거다.

전생의 기억대로라면 말이다.

문제는 미래가 점차 변하고 있다는 것 정도일까?

회귀 후 지금까지 벌인 일들로 인해 많은 것들이 변한 지금 앞으로의 상황이 미래와 비슷하게 흘러가지만은 않을 거란 걸 느끼고 있었기에 어떤 변수가 갑작스럽게 튀어나올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 테스트는 취소해야겠네? 만약 한다고 해도 지구에서 진행하도록 하자.”

현지가 놈들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은 반대로 놈들 역시 현지가 힘을 뿜어낼 경우 느낄 수 있다는 말이었기에, 테스트는 취소해야 할 듯싶었다.

“네. 그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 그리고 지안아.”

“네.”

“너도 현지처럼 마력 변환이 가능하면 바로 시작하는 것이 어때?”

현지가 착각한 것이 아니라면 당장 전력을 늘려야만 했다.

지금 늘릴 수 있는 최대의 전력은 지안이었다.

지안이 현지와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선다면, 조금이나마 안심이 될 테니까.

물론 나 역시도 파괴의 마력에 대한 적응에 박차를 가할 생각이었다.

“저요? 근데 저는 아직 안 될 것 같아요.”

“왜?”

“현지와는 다르게 저는 불순물 같은 마력이 너무 적거든요. 현지 말을 들어보니 적어도 1% 이상은 있어야 한다는 것 같은데 저는 이제 0.1% 정도거든요.”

“너도 금방 가능하게 될 거야. 늘어나는 속도가 점점 가속화되거든.”

“그래? 그럼 조금 기다렸다가 시도를 해볼게요.”

이 방법은 지안과 현지뿐 아니라 상급 악마종들에게 시도해 봐야 할 것 같았다.

만약 가능하다면 전력이 순식간에 올라갈 테니까.

* * *

“크윽- 후우~ 후우~”

파괴의 마력에 적응하기 위해 한계까지 마력을 변환시킨 나는 지금 죽을 맛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죽을 것 같은데, 육체를 움직이기까지 해야 했으니까.

가만히 있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육체를 움직이는 것이 더욱 빠르게 적응을 시켜주었기에 최대한 노력 중이었다.

“괜찮으세요?”

“후- 말 걸지 마라. 죽겠으니까.”

수를 헤아리지도 못할 만큼의 엄청난 수의 세포들이 각각 비명을 질러대는 통에 미칠 지경이었다.

처음 적응을 하기 위해 마력을 비교했던 그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까?

머리카락을 비롯한 체모에서까지 고통이 느껴지는 것 같았기에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물론 그만큼 강해지고 있긴 했지만.

“그런데요. 도련님은 그게 어떻게 가능하신 거예요?”

“뭐가?”

“마력의 변환이요. 저도 한참을 고생해서 아주 조금씩 변환시켰을 뿐인데 도련님의 경우 한순간에 변환시키잖아요.”

“네 능력이 암살인 것처럼 내 특성이 마력의 변환이니까 가능한 거 아니겠냐?”

사실 나도 잘 몰랐다.

숨 쉬는 것과 다르지 않았으니까.

변환을 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내가 알 턱이 없었다.

그냥 변환해야겠다는 생각만으로 순식간에 변환이 되는 상황이었기에 딱히 현지에게 설명해 줄 만한 것도 없었고.

“특성이 변환이라고요? 하지만 도련님의 경우 균열을 여는 것도 있고, 지배하는 것도 있잖아요? 그럼 그것들은 다 뭔데요?”

“음- 그래서 내가 생각을 좀 해봤거든. 그 결과 얻은 것이 하나 있었어.”

“뭔데요?”

“내 특성이 두 개라는 거지.”

“네? 아가씨처럼요?”

“그래. 균열은 그냥 파괴의 마력 덕분에 열 수 있는 것일 뿐이고, 지배의 경우 그 안을 통과한 생명체가 내 마력을 받아들임으로 인해 내 지배를 받는 거지. 너처럼 말이야. 너도 내 마력을 받아들임으로써 내 지배가 통하잖아.”

“아! 그러네요. 그래서 제가 도련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는 거였군요.”

“맞아. 확실히 그렇다고는 못하겠지만, 언뜻 비슷하긴 할 거야.”

현지와 지안이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그에 대해 자세히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그 결과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똑- 똑- 똑-

“들어와.”

“지존을 뵙습니다.”

들어와 곧장 무릎을 꿇는 장로.

3장로였나?

“3장로?”

“드디어 저를 기억해 주셨군요. 이 3장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장로라는 것들은 정말 과장이 심했다.

별것도 아닌 일에 감격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는데, 그 모습을 보는 나로서는 과장이 심하다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만. 그리고 내가 뭐라 그랬어. 그놈의 무릎 좀 그만 꿇으라고 했지? 그리고 도련님이라고 부르라니까? 왜 자꾸 지존이라고 부르냐고?”

“하,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하지만이야! 내가 지존이긴 한 거야? 내 말을 듣지도 않으면서 지존은 무슨 지존이야?”

장로들에게 쌓인 게 좀 많은 상태였기에 말이 험하게 나왔다.

얼마 전 유명시에 들렸을 때 길 한복판에서 나를 발견한 칠장로는 나에게 달려오더니 그대로 무릎을 꿇고는 방금 나를 보며 했던 행동을 그대로 했는데, 문제는 그곳에 있던 자들의 수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백이 넘는 인원이 그걸 보고 뭐라고 생각했겠는가?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은 건 당연했고, 심지어 쌍욕까지 뱉어낸 자들이 있었다.

아마 내가 아닌 다른 자가 그러는 것을 내가 봤다면 나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은 반응을 보였을 거다.

“아, 알겠습니다. 도, 도련님.”

“다른 장로들에게도 꼭 전해. 알았어?”

“말씀 받잡겠습니다.”

“그런 것도 좀 하지 말고.”

“네.”

솔직히 반말을 하는 것도 좀 그랬다.

처음에야 적의 입장이었으니 당연했다 해도 지금은 그것이 아니었기에 존중을 해주기 위해 말을 높인 적이 있었는데, 문제는 이들의 반응이었다.

내가 자신들에게 존대를 한다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며 지랄 발광을 하던 그 상황을 겪은 나는 이들에게 함부로 말을 높이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내가 상전을 받들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설득조차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에 시간이 좀 지난 후 방법을 찾을 생각이었다.

방법이 없다면 그냥 반말을 유지할 생각이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야?”

“그것이…… 도, 도련님의 허락을 받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말해봐.”

“그, 김 실장이란 자가 저희의 수족을 불러들이는 것이 어떻냐 물었는데, 저희야 좋지만, 혹여나 도련님의 심기가 불편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허락을 받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수족? 부하들 말하는 거야?”

“그렇습니다.”

음- 어떻게 해야 하지?

이들이야 일단 정신지배에 걸린 상태였기에 충분히 믿을 수 있었지만, 그 부하들은 아니었기에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믿을 만해?”

“물론입니다. 저희 장로원에 속해있는 교도들은 지존에 대한 믿음이 가장 큰 교도들입니다. 지존의 말씀이면 자신의 목숨 따위는 하찮게 여길 정도로 충성심이 대단한 아이들입죠.”

말만 들어보면 충분히 믿을 만했지만, 사람의 생각이란 것이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기에 검증이 필요할 것 같았다.

“수는 얼마나 되는데?”

“대충 200이 조금 넘습니다.”

“200이나 돼?”

“네.”

“일단 데려와. 대신 검증을 받아야 할 거야. 그리고 도련님이라고 부르라니까? 그것도 싫으면 그냥 선우라고 하던가!”

김 실장의 의견이었기에 일단은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찌 제가 지존의 존함을 부를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는 꼭 도, 도련님이라고 하겠습니다.”

“다른 장로들에게도 전하는 게 좋을 거야.”

“아, 알겠습니다. 도련님.”

* * *

“상무님 어째서 모두 모이라 하신 거예요?”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좀 있어서.”

“장로분들까지도요?”

“어.”

한쪽에 서서 대기하고 있는 장로들.

그들뿐 아니라 내 소환수들 역시 모두 모여 있는 상태였다.

“뭘 확인하시려고요?”

“별건 아니고 너나 현지처럼 저들도 내 마력을 받아들이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졌거든.”

나를 100% 믿거나 무조건적인 충성을 바치는 자들이라면 분명 내 마력이 그들에게 향하게 될 거다.

“아! 그러네요. 그래서 현지는 안 와도 된다고 하신 거였어요?”

“맞아. 현지는 이미 그 과정이 끝났으니까.”

지안에게 대답을 해주며 주변을 둘러본 나는 내 수족이라 할 수 있는 자들이 모두 모였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텅 빈 공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오오-”

“저것이 말로만 듣던 도련님의 능력?”

내가 균열을 여는 것을 처음 본 장로들의 감탄사와 찬양이 들려왔지만, 무시하며 하던 일을 하기 시작했다.

“크윽-”

하나의 균열을 더 열기 위해 이미 열린 균열의 반대 방향에 마력을 집중하려던 순간 머리가 깨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고, 이어서 또 하나의 균열이 모습을 드러냈다.

“2개를 여셨네요? 그런데 괜찮으세요?”

“괜찮아.”

머리의 고통은 금방 사라졌지만, 집중력이 엄청나게 필요한 작업이었다.

하나의 균열을 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의 집중력이 필요했기에 곧바로 하나의 균열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 많은 정신력과 집중력이 필요한 거지?

황당하게도 하나의 균열을 더 여는 순간 내 모든 정신력이 빠져나갔고, 두 개의 균열을 유지하기 위해서 엄청난 집중력이 소모되는 것을 느낀 나는 너무 심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봐! 혹시 느껴지는 것 없어?”

장로들을 향해 입을 열자 곧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정말 대단하시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역시 도련님이십니다.”

“아니! 그런 거 말고. 뭔가 흡수된다거나 하는 느낌 없냐고?”

내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장로들.

“그, 그런 것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래? 이상하네?”

장로들의 충성심이 확실하다면 곧장 나의 마력이 그들에게 향할 거라 생각 중이었기에, 당연히 곧장 알아챌 거라 예상했지만,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설마 정신지배 때문인가?

“아마 바로는 안 될걸요?”

지안은 뭔가 아는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된 게 내 능력을 나보다 더 잘 아는 듯해 보였다.

“어째서?”

“저도 그랬거든요. 이건 제 생각인데, 상대방만이 아닌 도련님의 생각도 영향을 끼치는 것 같더라고요. 마력이 흡수되던 시점에서 도련님이 저를 대하는 태도가 좀 바뀌었거든요.”

“내 태도가 바뀌었다고?”

“네. 저를 좀 더 믿으셨다고 해야 할까? 도련님의 태도가 완전히 바뀐 후부터 저에게 마력이 흡수되기 시작했어요.”

“아! 그래?”

지안의 설명은 정말 신빙성이 있어 보였다.

만약 지안의 가설이 사실이라면 장로들에게 내 마력이 흡수되지 않는 건 당연한 거였다.

난 아직 저들이 불편했으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사람 마음이란 것이 마음먹은 것처럼 쉽게 변할 리 없었다.

싫어하는 사람을 좋아하기로 마음먹는다고 곧장 그렇게 변하진 않았으니까.

“내가 문제란 말이네? 이걸 어쩌지?”

“저분들과 함께 시간을 좀 보내세요. 그러다 보면 변하지 않을까요?”

“그럴까?”

“상무님이 싫어하시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으시는 분들이잖아요. 아마 금방 믿게 되실 거예요.”

“그럼 다행이겠지만, 정말 그럴까?”

“안 되도 어쩔 수 없죠. 지금으로써는 그 방법밖에 없잖아요.”

맞는 말이었다.

그 방법 말고는 딱히 다른 방법이 없었으니까.

“상무님. 그럼 이제 끝난 건가요?”

“왜 바쁜 일 있어?”

“저 말고, 저분들이요. 김 실장님이 일 끝나면 바로 보내 달라고 했거든요.”

“그래? 이봐! 이제 할 일들 해.”

내 말에 장로들은 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곤 이곳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저들이 정말 도움이 되는 모양이네?”

“그런가 봐요. 요즘 김 실장님이 저들 옆에 딱 붙어 있을 정도라니까요?”

“김 실장이? 왜?”

“치안 유지뿐 아니라 회사 일에도 도움이 많이 되는 모양이에요.”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얘길 들어보니 저들이 천마신교에서 주로 했던 일은 황당하게도 중국이라는 나라를 경영하는 일이었다.

저들의 말 한마디에 법이 만들어지고 사라졌으며 중국이란 나라의 방향성이 결정되었을 정도로 대단한 일을 했던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유능한 건 당연한 거겠지.

저들이 유능하지 못했다면 중국은 진작에 망했을 테니까.

“어?”

순간 마력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 나는 재빨리 균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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