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3화 (113/214)

“괜찮으신 거…… 맞으시죠?”

“어? 아! 지금은 괜찮아.”

걱정 혹은 의심의 표정으로 나를 보는 현지를 안심시킨 후 조금 전 있었던 일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찾았다는 강렬한 의지.

그건 도대체 뭐였을까? 도대체 왜 내 의지처럼 느껴졌던 걸까?

그것은 분명 다른 뭔가의 의지가 아닌 바로 나 자신의 의지였다.

거기다, 분명 그 순간 느꼈던 이상한 희열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극한의 희열이었다.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조금 전의 현상을 느끼기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벌어졌던 모든 변화는 오로지 파괴의 마력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전 느낀 변화는 파괴의 마력 때문이 아닌 나 자신 때문에 일어난 변화였다.

나 자신도 모르는 무언가 혹은 나 자신이 잃어버렸을지 모르는 기억 같은 것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깊은 고민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똑- 똑- 똑-

“응? 들어와.”

생각에 잠겨 있던 사이 노크 소리가 들렸고, 그에 정신을 차린 후 입을 열자 문이 벌컥 열리며 다급한 표정의 김 실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역시 여기 계셨군요?”

“역시?”

“그게……. 현지 양을 찾고 있었습니다.”

김 실장의 말에 고개를 돌려 현지를 지그시 바라보자 현지도 모르는 일인지 의문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 또 무슨 사고 쳤냐?”

“아니요. 저 도착하자마자 바로 도련님 방으로 왔는데요? 사고 같은 거 안 쳤어요.”

“일단 이걸 보시죠.”

현지의 말이 끝나는 순간 김 실장은 품에서 태블릿 PC를 꺼내 들어 나에게 건넸고, 태블릿 PC의 화면 속에는 유명시를 찍은 여러 개의 사진 목록이 있었다.

그중 하나를 터치하자 사진이 확대되며 내 시야에 들어왔고.

“이건 현지 사진인데? 이게 왜?”

현지가 기다란 뿔을 한 손에 쥔 채 질질 끌며 거리를 가로지르는 모습과 겁먹은 모습으로 그 뒤를 따르는 수많은 각성자의 모습이 담긴 사진.

이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현지가 거지꼴을 한 채로 유명시에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았으니까.

“어? 저 맞아요.”

나와 현지가 동시에 김 실장에게 고개를 돌리자 김 실장은 한숨을 내 쉰 후 입을 열었다.

“설명해 드리기 전에 우선 현지 양에게 하나만 묻겠습니다. 혹시 저 때 평소와 다른 뭔가를 하지 않았습니까?”

“다른 거요? 음- 아! 그러고 보니 기운을 조금 방출한 상태였어요. 살기도 조금…….”

현지는 그제야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닫고는 말끝을 흐렸다.

유명시에 들어온 현지는 게이트까지 움직이며 힘을 방출한 상태로 이동한 모양이었다.

“그 때문에 지금 길드들에게서 문의가 미친 듯이 오고 있습니다.”

“무슨 문의요?”

“현지 양에 관해서 문의가 빗발치는 중입니다. 특히 현지 양의 소속을 묻는 문의가 빗발치는 중입니다.”

“어휴- 어째 너는 돌아오자마자 사고를 치냐?”

김 실장이 다급히 나를 찾을 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지에 대한 일은 유명 내에서도 극비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물론 알 만한 사람은 다들 알고 있었지만.

“현지 양에 관해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지 난감한 상태입니다.”

“뭘 어떻게 해? 그냥 호위팀장이라고 설명하고 끝내.”

“하지만…… 알겠습니다.”

제대로 된 설명을 원한다고 해서 이쪽이 그에 맞춰줄 필요는 없었다.

“왜? 또 뭐 있어?”

나갈 줄 알았던 김 실장은 나가지 않은 채 모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모양.

“그게, 혹시 저 뿔에 대해 알 수 있을까요?”

“뿔? 아! 저거? 저건 왜?”

현지가 한쪽에 내려둔 부산물을 가리키며 입을 연 김 실장 덕분에 지금껏 잊고 있던 뿔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게, 저스티스 길드에서 저 뿔을 구매하고 싶다는 문의가 들어온 상태라서요.”

“이건 안되는데요? 이거 엄청 특이한 거라 저랑 도련님 무기 만들 거에요.”

“그럼 거절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네.”

김 실장이 나간 후 나는 현지에게 고개를 돌려 현지가 가져온 뿔에 대해 물었다.

“저걸로 내 무기를 만들 거라고? 저게 도대체 뭔데?”

“그러니까 저게 뭐냐면요…….”

현지는 자신이 가져온 뿔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는데, 그 이야기를 종합해 보자면.

마족들의 도시를 빠져나온 현지는 미호의 분신이 사라진 후였기에 어쩔 수 없이 유명시를 향해 직접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동 중 중간중간 느껴지는 상급에 해당하는 악마종을 발견하면 나에게 악마석을 선물할 요량으로 하나하나 처리하며 이동했는데, 그러다 만난 존재가 바로 저 뿔의 주인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상급 악마종을 발견해 처리한 후 악마석을 꺼내던 도중 녀석이 나타났는데.

멀리서 녀석의 기운을 느낀 현지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놈이 자신해 비해 약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상급 악마종의 힘을 훌쩍 넘어서는 존재.

녀석이 현지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이어서 곧바로 전투가 벌어졌는데, 현지의 설명대로라면 녀석의 생김새는 신화 속에 나오는 유니콘과 비슷했는데, 크기와 색이 조금 달랐다고 한다.

체고만 10여 미터에 머리부터 엉덩이까지의 길이가 20여 미터를 가볍게 넘어섰고, 신화 속에 나오는 유니콘과 달리 순백의 털이 아닌 까만 색의 털을 가지고 있던 녀석.

엄청나게 강해진 현지조차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강한 녀석이었지만, 다행히 녀석의 공격이 너무 단순했기에 큰 상처 없이 녀석을 쓰러트릴 수 있었다고 한다.

현지가 거지꼴로 나타난 이유가 바로 그 녀석 때문이었다.

큰 상처는 없었지만, 전투의 여파로 갑옷이 너덜너덜해졌을 뿐 아니라, 격돌의 충격 때문에 현지의 청결을 담당하던 생체갑옷 역시 망가지면서 현지의 꼴이 거지꼴이 되어 버린 거였다.

“그러니까 저게 그 검은 유니콘의 뿔이라는 거네?”

“네. 저 뿔이 제 공격을 모조리 막아내더라고요. 아무런 피해도 없이요.”

“악마석은?”

“그게 좀 이상해요. 악마석이 나오긴 했는데, 느껴지는 힘을 보면 상급 악마석과 차이가 없더라고요. 아마 녀석의 진짜 힘은 이 뿔에 담겨있는 것 같아요.”

“공간확장 주머니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했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모습을 드러내고 이동한 거고.”

“네.”

“그럼 기운을 방출하면서 이동한 이유는 뭐야?”

뿔에 은신이 적용되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모습을 드러낸 채로 이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건 이해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힘까지 내보일 필요는 없어 보였기에 질문을 던졌다.

“아! 그것도 전부 이 뿔 때문이에요.”

“이거 때문이라고?”

“네. 이 뿔을 가지고 이동하는 동안 악마종들이 미친 듯이 덤벼들더라고요. 최하급부터 상급까지 등급을 가리지 않고 저를 찾아오는데 정말 짜증나 죽는 줄 알았어요. 이 뿔을 버리고 싶어질 정도로요.”

“그래서 함부로 다가오지 못하도록 힘을 방출했다는 거야?”

이제야 좀 이해가 되는 듯했다.

“네. 근데 힘을 드러내도 상급인 녀석들은 끝없이 덤벼들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살기를 좀 뿜어냈던 것 같아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녀석들이 찾아왔길래?”

“보실래요? 물론 챙긴 건 반도 안 되지만 그래도 엄청 많아요.”

“뭘?”

내 말이 끝나는 순간 현지가 공간확장 주머니를 뒤집었고, 그 안에서 엄청난 수의 악마석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적어도 백여 개가 넘는 악마석이 바닥에 떨어져 내리는 모습을 본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다 너를 습격했던 녀석들의 악마석이야?”

이 정도면 내 악마종들을 모두 상급으로 올려놓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호위조로 편성된 고블린과 임프들을 전부 악마종으로 만들고도 남을 것 같았다.

“네. 엄청 많죠? 근데 이거 다 해도 저 뿔 하나만도 못할걸요?”

“그 말은 저 뿔에 특이한 능력이 있다는 거야?”

“물론이죠. 저거 마력 증폭률이 장난 아니에요.”

“마력 증폭률?”

“제 앞을 막아선 악마종들의 수가 너무 많아서 홧김에 저 뿔에 마력을 주입해 휘둘렀는데 저도 깜짝 놀랐다고요. 거진 10배 이상의 마력이 증폭되는 바람에 주변 숲을 아예 날려버렸거든요.”

현지의 말을 들은 나는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마력을 증폭시켜주는 유물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유물들 대부분이 마력을 증폭시켜주었는데, 문제는 그 증폭 수준이었다.

아무리 뛰어난 유물이라 해도 2배가 한계였다.

아니 2배면 신화등급의 유물은 돼야 가능했고, 일반적인 유물이라면 높아야 50% 정도였기에 현지의 말은 더더욱 어이가 없었다.

“10배라고? 확실해?”

“그럼요. 확인해 봤는데, 적어도 10배 이상으로 증폭이 되더라고요.”

“허- 그래서 그 짜증을 참아가면서까지 직접 들고 온 거구만.”

“헤헤헤-”

아마 일반 유물 정도의 증폭률이었다면, 현지의 성격상 저 뿔을 버리고 왔을지도 몰랐다.

계속해서 현지의 앞을 막아선 악마종의 수가 적어도 2백 이상이었다.

악마석을 반도 챙기지 않았다는 말은 악마석 수의 두 배 이상이 현지를 습격했다는 말이었으니까.

“근데 이거 제련이 가능할 정도라면 내 마력을 버티지 못하는 거 아니야?”

“충분히 버티고도 남을걸요?”

“그걸 니가 어떻게 알아?”

“엄청 단단하거든요. 제가 온 힘을 다해도 흠집 조금 남는 것이 다일 정도로 대단하다고요.”

“그럼 제련은 어떻게 해?”

“하임이 있잖아요. 아마 가능할걸요?”

아! 그러네? 하임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네?

아무리 단단하다고 해도 하임이라면 가능할 거다.

이유는 모르지만, 하임은 뭔가를 부수는 데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났다.

얼마 전 내가 직접 사냥한 중급 악마종의 날붙이를 하임이 아무렇지 않게 창 모양으로 때어내는 모습을 본 나는 이것도 창 모양으로 떼어내는 것이 가능할 거란 이상한 확신이 들었다.

그나저나 현지, 이것은 이런 쪽으로는 머리가 정말 잘 돌아가네?

* * *

“뀨?”

마력을 끌어올린 채 거대한 뿔에 손을 대고 있던 하임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 뿔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안 되나 본데?”

“아! 아까워라.”

“뀨!”

나와 현지의 말에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하임이 기합과 함께 마력을 있는 대로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곤.

“뀨?”

역시나 전과 다르지 않게 뿔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나타나지 않고 있었고, 그에 화가 난 하임은 뿔을 손바닥으로 마구 치기 시작했다.

“뀨뀨뀨뀨뀨!”

“이거 방법을 바꿔야겠는데?”

“어떻게요?”

“왕눈이에게 시켜봐야지.”

뿔에서 하임을 떼어낸 나는 왕눈이를 시켜 뿔을 제련해 보려 했지만, 안타깝게도 뿔에는 조금의 흠집도 나지 않았다.

그 이후 상급 악마종들이 하나하나 나서기 시작했지만, 역시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다만 조금 특이했던 건 샤크가 뿔을 삼키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뿔을 삼키려던 순간 강렬한 스파크가 튀며 샤크에게 강한 충격을 주며 밀어내었고, 결국, 뿔을 제련하는 것을 포기해야 할 상황이 오고 말았다.

“허- 아깝지만 어쩔 수 없이 창고에 넣어놔야겠는데?”

“아! 너무 아까운데……”

현지가 아까운 표정으로 뿔을 바라보고 있던 그때 갑자기 내 옆쪽에 공간의 문이 나타나더니 하임이 문을 통해 튀어나왔다.

“어? 너 어디 갔다 왔냐?”

“뀨!”

내 물음을 무시한 하임이 공간의 문을 보며 강하게 소리쳤고, 하임의 뒤를 이어 공간의 문에서 수많은 임프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아! 설마?”

임프들을 보자 하임이 임프들의 힘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고, 그에 뿔을 제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생겨났다.

임프를 전부 데려왔네?

300 가까이 되는 수의 임프들과 10마리의 하이임프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하임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뿔에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뀨!”

콰앙-

수백의 임프들에게서 엄청난 마력이 한 번에 방출되며 땅을 뒤흔들었고, 이어서 하임 역시도 마력을 전부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끼기기긱-”

엄청난 마력을 한데 모은 하임이 뿔에 손을 대자 뿔에서 기괴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아! 도련님. 저번에 제가 했던 말 취소할게요.”

“무슨 말?”

“도련님 소환수 한 번에 상대할 수 있다는 말이요. 지금 보니까 이것들이 끼어들면 제가 질지도 모르겠어요. 아니,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이길 확률이 30%도 안 될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하면 지금 이 모습을 보고도 이길 확률이 30%라 말하는 현지가 엄청 대단해 보였다.

지금 하임이 다루는 마력의 양은 끝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너무 적어서 파악을 못 한다면 이해라도 하겠는데, 이건 마력이 너무 거대해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마력이 모여있는 건지 파악조차 되지 않았으니까.

“이 마력을 보고도 이길 확률이 30%라고?”

“정면으로 붙으면 절대 못 이기고 기습을 하면 그 정도라는 말이에요. 솔직히 저 마력으로 배리어만 쳐도 뚫어낼 자신은 없어요.”

임프들이 모이면 얼마나 무서운 존재가 되는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개개인의 마력이 합쳐졌다고 해도 지금 이 상황은 말이 되지 않았다.

지금 상황은 왕눈이가 마력을 증폭시키는 것처럼 임프들 역시 서로의 마력을 증폭시켰기에 가능한 것일 거다.

“끼기기기기-”

“어? 저거?”

소리가 점차 커지던 그때 뿔의 끝부분이 서서히 떨어져 나오기 시작했고, 이어서 뿔과 점차 분리되며 2미터 정도의 매끄러워 보이는 꼬챙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창이라고 하기보다는 그냥 긴 꼬챙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듯한 모습.

챙그랑-

“뀨우-”

순간 하임이 꼬챙이를 바닥에 떨어트리곤 곧바로 자리에 주저앉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고, 이어서 200이 넘는 임프들이 하임과 똑같이 바닥에 주저앉아서 헉헉대기 시작했다.

거대한 마력을 사용한 후유증이 곧바로 몰려오는 모습에 하임이 얼마나 필사적으로 노력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임아 수고했어.”

“뀨우-”

힘없이 손을 들어 올리며 대답하는 하임을 보며 머리를 쓰다듬어 준 나는 이어서 바닥에 떨어져 있는 꼬챙이를 들어 올렸다.

“음- 일반 철이랑 무게는 비슷하네?”

단단한 만큼 무거울 거라 생각했던 내 예상이 빗나갔다.

“테스트 좀 해볼까?”

“여기서요?”

“왜?”

“잘못했다간 건물이 통째로 날아가 버릴걸요?”

현지의 말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가볍게 테스트를 할 생각이기에 문제는 없을 거다.

“가볍게 해 볼 거야.”

“뭐- 그러시다면야.”

현지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며 꼬챙이에 마력을 불어넣으며 가볍게 휘두른 순간.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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