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만에 집에 돌아온 나는 곧바로 김 실장을 호출했다.
곧 떠날 생각이었기에 그에 대한 일정을 잡아야 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내 앞에 나타난 것은 김 실장이 아닌 비서팀의 다른 직원이었다.
“김 실장님은 지금 기자회견을 준비 중이십니다.”자신을 한상훈이라 소개한 비서팀의 직원.
그는 김 실장이 지금 기자회견을 준비 중이란 말을 전했고, 그에 의문이 든 나는 한상훈 비서에게 물어야 했다.
“무슨 일 있어?”
“그게……. 얼마 전 도련님께서 지시하신 일을 진행하던 중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급히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들어갔습니다.”
“내가 지시한 일? 그게 뭐지?”내가 김 실장에게 지시한 게 있었나?
곰곰이 생각해 봐도 대단한 일을 지시한 적은 없는 것 같았기에 물음을 던지자.
“송철민 의원에 대해 지시하신 일을 처리하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송철민 의원이 같이 죽자는 식으로 사고를 쳐 버렸습니다.”
“송철민이라면 내가 묻어 버리라고 했던 사람 아냐? 그놈이 왜?”얼마 전 시리아의 인질 사건을 언론에 공개함으로써 내 신경을 건드린 놈이 바로 송철민이었다.
“송철민 의원이 언론에 유명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퍼트리는 바람에 지금 국민 여론이 화가 많이 난 상태입니다.”
“무슨 소문인데 김 실장이 직접 나서?”
“이걸 보시죠.”
한상훈 비서는 내 물음에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 PC를 건넸고 그 안에 들어있는 정보를 확인한 나는 황당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게 뭐야? 경? 지금 경이라고 한 거야?”
“네.”
어이가 없었다.
유명의 사내유보금이 경이 넘는다는 소리를 지껄인 것이 문제가 되어 국민들이 유명을 향해 들고 일어난 것이었다.
‘근데 이게 가능한 건가? 아무리 유명이 대단하다고 해도 사내유보금이 경을 넘는다고?’솔직히 말하면 나조차도 실감이 나지 않는 금액이었다.
아니, 아마 아버지나 형도 실감이 나지 않으리라.
“그런데 사내유보금이 정확히 뭐지?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현금을 말하는 건가?”
“아! 그건 제가 설명해 드리는 것보다 기자회견을 보심이 이해하기 편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시작했어?”
“네. 조금 전 시작했습니다.”TV를 틀자 김 실장의 모습이 곧바로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국민 여러분 유명그룹의 비서팀장 김건우입니다.
백이 넘는 기자들이 모여있는 기자회견장의 단상 위에 올라선 김 실장이 고개를 숙이며 첫마디를 떼었다.
-우선 지금 논란이 되는 유명의 사내유보금에 관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저희 유명의 사내유보금이 경을 넘어선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시작하겠습니다.
경이라는 돈은 나조차도 실감이 나지 않는 금액이었기에 역시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송철민 의원이 유명을 깎아내리기 위해 거짓을 말했다는 겁니까?
맨 앞줄에 앉아있던 기자는 김 실장이 질문을 받는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음에도 대뜸 김 실장을 향해 큰 소리로 물어왔다.
-그 금액이 어떻게 산출되었는지는 예상이 갑니다만, 그건 진실이 아닙니다. 그저 추측에 불과할 뿐이죠.
갑작스러운 상황이었음에도 놀라지 않고 차분히 답변하는 김 실장을 보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저거 미리 준비했던 상황이야?”
“아닙니다. 이번 일은 급히 진행되었기 때문에 따로 준비하지 못한 상태입니다.”대중들이 화가 많이 났을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 단위도 아니고 무려 경이라는 단위.
그런 돈을 유명이 사내에 쌓아두고 있다는 건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을 막고 있었다는 말과 다르지 않을 테니까.
-그럼 송 의원의 추측은 어디서 나온 건가요?
-혹시 질문하신 기자님께서는 사내유보금의 정확한 정의를 아십니까?
-듣기로는 기업이 쌓아둔 현금자산을 사내유보금이라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닙니까?
-맞습니다. 다만 사람들이 자주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현금성 자산이 현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내유보금이라는 것은 배당을 마친 나머지 이익을 주식, 저축, 부동산, 설비, 마석, 마정석 등에 투자한 상태의 자산을 말하는 것입니다. 투자가 성공해 이득이 늘어나면 당연히 사내유보금도 늘어나는 것이죠.
‘아! 그런 거였어? 어쩐지 좀 이상하다 했다.’아무리 유명에 현금이 많다고 해도 경이 넘는 현금은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말은 유명의 사내유보금 속의 현금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물론입니다. 대충 10% 내외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것도 대단한 수준 아닌가요? 1경이라면 10%만 되어도 천조가 넘는 금액이지 않습니까?
김 실장의 기자회견은 제대로 된 시작도 하지 못하고 기자와의 토론으로 바뀌는 듯 보였는데, 솔직히 말하면 나쁘지 않아 보였다.
혼자 어렵게 설명하는 것보다는 기자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며 차근차근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것이 이해하기 쉬워 보였으니까.
-기자님은 유명의 사내유보금이 1경이 넘는다고 생각하시는 듯하군요.
-아닙니까?
-네. 아닙니다.
단호하게 말하는 김 실장.
-그럼 어째서 그런 말이 나온 것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저희 측에서 예상하기로는 아마 송철민 의원께서 유명시를 저희 유명의 사내유보금, 그러니까 그 중 부동산에 포함 시킨 것이 아닌가 합니다.
-네? 유명시를 사내유보금에 포함 시켰다고요?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유명시가 왜 거기에 들어가? 아! 부동산도 포함이라고 했지?’사내유보금에는 투자된 자금도 포함이 되어 있다고 했으니 유명시 역시도 그에 포함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계산을 해 봐도 경이라는 금액이 도대체 어디서 나왔는지는 저희 유명조차 짐작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세간에 알려진 유명시의 가치를 그 안에 넣어보니 계산이 되더군요.
-그, 그 말씀은 송철민 의원이 유명시의 부동산 가격을 예측해 사내유보금에 포함했다는 말인가요?
유명의 사내유보금을 유명시에 투자했기에 유명시의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 사내유보금이 같이 상승할 수밖에 없었다.
‘어? 그럼 맞는 말 아니야?’-아니라면 저희조차 그 금액이 어디서 나왔는지 계산이 되지 않습니다.
-그럼 송철민 의원이 국민을 선동하고 있다는 건가요?
-그건 제가 뭐라 말씀드릴 수 없을 것 같네요.
솔직히 말하면 그 송철민이라는 놈을 믿는다는 것도 어이가 없었다.
지금 유명이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그의 선동에 휩쓸리는 것은 솔직히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명과 연관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에 대한 기사들이 쏟아지듯 나왔음에도 유명을 믿지 못한다는 사실에 회의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럼 경이 넘어선다는 말은 사실이네요?
기자들의 침묵 속에서 이번에는 뒤쪽에 앉아있던 다른 기자가 몸을 일으키며 김 실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유명시를 유명의 자산에 포함 시킨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유명시는 유명의 것이 아닙니다.
-네? 그게 무슨……?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유명시가 유명의 것이 아니라니? 그럼 누구 건데?
설마 나도 모르는 주인이 따로 있는 거야?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유명시는 유선우 씨의 개인 소유입니다. 저희 유명그룹은 유선우 씨의 대리인으로서 유명시를 관리할 뿐이죠.
김 실장의 말이 끝나는 순간 회견장 안은 잠시간의 침묵이 감돌았다.
-그, 그게 무슨 소리죠? 유명시가 어째서 유선우 씨의 개인 소유죠?
김 실장의 말에 화가 난 듯한 기자가 날카로운 음성으로 물었다.
-기자님께서는 뭔가 착각을 하시는 것 같네요. 유명시는 대한민국에 속해있는 도시가 아닙니다.
-네? 대한민국의 도시가 아니라뇨?
-전 세계적으로 합의한 어비스 특별법에 따르면 어비스는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 주인 없는 땅입니다. 한마디로 개발한 사람이 그 땅의 주인이 되는 거죠.
-마, 말도 안 돼요!
-전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국가가 어비스에 대한 독립권을 인정하기로 합의를 한 상태입니다. 유명시를 개발한 유선우 씨에게 모든 권리가 넘어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 거였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었다.
유명시에 대해 정부가 개입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던 모양이었다.
“저 말 사실이야?”
“물론입니다. 유명시의 실 소유자는 도련님이 맞습니다.”
“언제 그렇게 된 건데?”
“언제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처음부터 유명시는 도련님의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니까 그 말이 무슨 말이냐고.”
“도련님께서 장벽을 쌓으신 후부터 유명시의 권리를 도련님이 얻게 된 것이죠. 그 외에도 시를 지키는 소환수들이라던가 자재를 생산하거나 채굴을 시작한 임프들. 그 모든 것에 도련님의 권리가 인정되는 것입니다.”어쩐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었다.
본사에 있던 상무라는 자리가 사라지고 수아 건설이라는 이상한 건설사의 대표로 이름을 올리라기에 왜 그런가 했더니 모두 이것을 위해서였던 모양이었다.
-하,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정부가 게이트 도시를 관리하지 않나요?
-그건 그 나라의 정부가 막대한 인력과 자금을 투입해 도시가 될 땅을 수호하며 도시를 건설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죠.
말문이 막힌 듯 멍하니 선 채로 움직임이 없는 기자를 보던 나는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이거 문제가 없는 거야? 분명 반응이 장난 아닐 것 같은데?”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김 실장의 발언은 너무 위험했다.
전 국민이 유명 혹은 나를 욕하는 상황이 올지도 몰랐으니까.
“심한 반발이 있을 겁니다. 다만 언젠가는 터질 문제였습니다. 그걸 조금 앞당겼을 뿐이니 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듯합니다.”
“걱정하지 말라고? 좀 있으면 나라 전체가 난리가 날 텐데?”
“네. 이미 어떤 사태가 와도 무리 없이 대응할 준비를 끝내 둔 상태입니다.”‘그래. 좋게 생각하자.’이왕 일이 이렇게 된 거 되도록 빨리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태가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지만, 돌아올 즈음에는 끝나 있겠지.’“그만 나가봐. 김 실장 오면 바로 나에게 오라고 전하고.”
“네. 알겠습니다.”
* * *
기자회견이 끝난 후 유명이 대한민국을 배신했다는 기사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고, 유명에 대한 안 좋은 소문들이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며 대한민국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생각처럼 상황이 안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나를 옹호하는 자들이 생각보다 많았던 것.
특히 유명시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나를 변호하며 나를 욕하는 자들을 거꾸로 욕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와 유명을 욕하는 자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김 실장이 하나의 소문을 퍼트린 후부터 상황이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와 유명이 유명시에서 철수할 수도 있다는 것.
국민이 원한다면 유명시에 대한 모든 권리와 의무를 정부에 넘길 수 있다는 것과 유명시를 보호하기 위해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있다는 거짓 소문을 퍼트림으로써 유명시에서 살아가는 자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준 것이다.
특히 얼마 전 발생했던 웨이브에 대한 영상을 대중들에게 공개한 것이 컸다.
다른 나라의 웨이브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엄청난 수의 몬스터가 유명시를 향했다는 것이 밝혀지자 유명시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들고일어난 것이었다.
만약 내가 유명시를 포기하고 물러난다면 그 몬스터들을 도대체 어떻게 막아낼 거냐는 것.
도대체 누가 자신들을 지켜줄 거냐는 거였다.
거기다 정부 역시도 대한민국 정부의 힘으로는 지금처럼 유명시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유명시는 오로지 내 힘으로 만들어진 도시라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한 거였다.
높은 장벽, 완벽한 치안, 수많은 일자리 등등 유명시의 부흥이 나란 존재로 인해서 가능했다는 것을 대중들이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대중들에게 전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가 유명시를 노리고 있다는 소문을 퍼트릴 것입니다.”괜찮은 생각인 듯싶었다.
소문이 퍼져나가기 시작하면 대중들은 유명시가 내 소유라는 것에 안도하리라.
대중들 역시 지금의 정부는 힘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까.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고. 이제 내 이야기 좀 할게.”
“네. 말씀하시죠.”
“당분간 어비스를 좀 돌아다닐 생각이야.”
“이유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음- 지금부터 들을 말은 김 실장만 알고 있도록 해. 물론 아버지와 형에게는 말해둔 상태야.”어비스의 진짜 주인은 몬스터도 악마종도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전해둔 상태였다.
“심각한 문제입니까?”
“심각하지. 잘못했다가는 전 인류가 쓸려 나가버릴지도 모르니까.”
“인류의 생존이 달린 문제란 말입니까?”
“그래. 얼마 전 현지가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운 것 알고 있지?”
“네.”
“지금 현지의 힘은 내 소환수들 전부가 달려들어도 막지 못할 정도로 강해진 상태야. 그런 현지조차도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의 괴물들이 어비스 깊숙한 곳에 똬리를 틀고 있단 말이지. 그것들이 바로 어비스의 진짜 주인인 거고.”
“하, 하나가 아니란 말씀입니까?”당황한 표정으로 묻는 김 실장에게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런 놈들이 적어도 수백, 많으면 수천이 되겠지.”
“그 말씀은 지금 인류가 위기에 처했다는…….”
“우리가 모르고 있었을 뿐 어비스가 열린 순간, 아니, 균열이 열리기 시작했을 때부터 인류의 생존에 문제가 생긴 거지.”
“도련님이 막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까?”김 실장은 요 몇 년간 너무 많이 변했다.
분명 몇 년 전만 해도 나를 무시하기 바빴던 김 실장이 어느 순간부터 내가 무슨 무적의 존재라도 되는 양 인식하기 시작했다.
“김 실장. 난 신이 아니야. 내 능력이 뛰어난 건 맞지만 모든 일을 해결할 수는 없다고.”
“하,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는 마. 지금 떠나는 이유가 녀석들을 막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확인하기 위해서니까. 분명 무슨 수가 있겠지.”
“저는 도련님을 믿습니다. 분명 어떤 해결책을 가지고 오실 거란 것을.”만약 녀석들을 지배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가능성이 생기겠지만, 만에 하나 그것이 불가능할 경우를 생각해 둬야만 했다.
불가능하다면, 인류에게 더 이상의 가능성이 없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녀석들이 인류의 땅을 침범하기 시작하면 그 누구도 그 앞을 막지 못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