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1화 (121/214)

-레이 준비됐니?

-응! 나도 문에 들어갈 거야!

레이를 지배하기 위해 충분한 휴식을 취한 나는 마력과 정신력을 모두 회복한 상태였다.

-그럼 시작할게.

-응!

저렇게 어려 보이는 아이의 마력량이 현지를 가볍게 넘어설 정도라니 신기하단 말이야?

마력의 질에서는 현지를 따라가지 못했지만, 마력의 총량만큼은 엄청난 수준이었다.

확인해 본 바로는 마력의 총량이 현지에 비하면 두 배 이상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솔직히 좀 어이가 없었다.

물론 현지가 변환한 마력의 파괴력은 레이의 마력에 비해 3배 이상 뛰어났기에 둘이 붙는다 해도 현지가 어렵지 않게 승리를 거머쥐겠지만.

그나저나 가능하려나 모르겠네?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며 한쪽에 마력을 집중시켜 균열을 열면서도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과연 레이를 지배할 수 있을까?

나 역시 많이 강해진 상태였지만, 레이 역시 보통의 존재가 아니었다.

현지보다 약하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내 소환수들 중 최고인 뚱이나 왕눈이에 비해서는 엄청나게 강한 편이었다.

상급 악마종 너머의 존재.

그것이 바로 레이시스 뷔 펠클라인이었다.

-와! 빨간 문이다!

균열이 완전히 열리는 순간 레이가 균열을 향해 돌진했고, 그에 따라 나 역시 준비를 해야만 했다.

마음의 준비를.

“나 기절하면 알아서 잘 챙겨줘! 그리고 혹여나 실패할 것 같으면 레이를 잘 말려주고!”`레이가 균열에 뛰어들기 직전 현지와 지안을 보며 소리친 직후 레이가 균열에 도달했고, 전과 다른 형태의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찌지지직-

균열과 레이 사이에 강렬한 스파크가 발생하며 방안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미호의 현실조작 능력에 의해 막혀 더는 퍼져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나였다.

“크헉-”

급격한 정신력의 소모로 머리가 깨질 듯 아파오기 시작했고, 한순간에 엄청난 마력이 빠져나감으로써 내상을 입어 내 입에서 핏줄기가 새어 나왔다.

문제는 이것이 시작이라는 것.

벌써 3분의 1 이상의 마력이 빠져나갔지만, 레이는 이제 머리의 반 정도가 통과한 상황.

-에잇!

“컥-”

자신을 막는 균열을 보며 왼팔을 들어 올린 레이가 균열을 향해 팔을 찔러넣는 순간.

더 큰 내상과 함께 뇌를 쥐어짜는 듯한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미호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네.’`머리가 깨질듯한 통증은 둘째 치더라도 지금 내가 입은 내상은 파괴의 마력 때문이 아니었기에 미호의 현실조작 능력으로 곧바로 치료가 가능했기에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거기다 미호의 능력은 정신력조차 조금이지만 보충을 해주고 있었다.

‘아니, 잠깐만? 뭔가 이상한데?’`균열을 열어버린 마력과 균열을 유지하는 마력은 파괴의 마력인데 소모되는 마력은 왜 파괴의 마력이 아닌 거지?

그에 의문을 느낀 나는 균열을 통과하려는 레이와 그와 함께 레이에게 흘러 들어가는 마력을 확인할 수 있었고,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았다.

‘파괴의 마력이 아니잖아?’`분명 처음 레이가 균열에 닿을 때만 해도 레이에게 흘러 들어가는 마력은 파괴의 마력이었다.

하지만 지금 느껴지는 것은 내 원래의 마력이었다.

그것을 확인한 나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소모되는 마력을 파괴의 마력으로 변환시키기 시작했고.

‘어? 편해졌잖아?’

균열이 빼앗아가는 마력을 파괴의 마력으로 변환시키자 소모되는 마력이 급속도로 줄어드는 것을 느낀 나는 머리가 깨질 듯 아파 왔음에도 희열에 사로잡혔다.

지금껏 새로운 존재를 지배할 때마다 마력의 부족함을 느껴왔기 때문에 앞으로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그 걱정은 이제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레이에게 문제가 되는 것 같지도 않았기에 더욱 기쁜 마음으로 균열에 파괴의 마력을 주입하기 시작한 내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정신력의 소모로 인한 고통보다 새로운 방법을 찾아낸 기쁨이 더욱 크기 때문일까? 나를 괴롭히는 고통은 아무렇지 않게 느껴질 뿐이었다.

-나왔다! 레이가 문에서 나왔어요!

파괴의 마력으로 변환하는 방법 덕분인지 균열을 통과하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고, 그 덕분인지는 몰라도 정신력의 소모 역시도 줄어든 기분이 들었다.

털썩-

하지만, 이미 빠져나간 마력과 정신력 때문인지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은 나는 숨을 헐떡여야만 했다.

“헉- 헉- 헉-”

“괜찮으세요?”

“괘, 괜찮아. 헉- 헉-”`“좀 쉬세요. 이제 끝났으니까.”`

“그래.”

앉아 있던 상태 그대로 뒤로 넘어간 나는 눈을 감으며 미소를 지었다.

힘들었지만, 전력을 더욱 강화시킬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으니까.

* * *

“응? 뭐야? 왜 아무도 없어?”`거대한 침대에서 눈을 뜬 나는 방 안에 혼자 남아 있음을 깨닫고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했다.

지안이나 현지 둘 중 누구라도 내 곁을 지킬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님에 허탈한 미소를 지은 나는 방을 벗어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마력은 전부 회복이 끝난 상태였고, 지끈거리던 통증이 사라진 걸 보니 정신력 역시 모두 회복된 모양이기에 더 누워있을 필요는 없어 보였다.

끼익-

문을 열자 거대한 복도가 나타났고, 주변을 둘러보며 복도를 따라 이동하던 나는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가 나는 것을 확인하곤 냄새의 방향을 따라 이동한 끝에 어이없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현지, 지안, 미호, 레이, 마일, 셰인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뭔가를 먹는 모습.

모두가 둘러앉아 라면을 미친 듯이 먹고 있었다.

현지와 지안은 먹다 말고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정말 황당한 장면이었다.

미호야 원래 먹는 것을 좋아하니 그럴 수 있다 쳐도 레이와 마일 그리고 셰인은 젓가락이 있음에도 손으로 라면을 퍼서 미친 듯이 입안에 넣고 있었다.

더 이상한 것은 자신들이 왜 그것을 먹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라면을 계속 집어 먹고 있다는 것이었다.

“뱃속에 거지가 들었나? 왜들 이럴까요?”`현지는 이미 내가 왔다는 것을 아는지 입을 열며 나에게 고개를 돌렸고 나 역시 그것을 알 수 없었기에 딱히 대답해 줄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보며 천천히 다가가 현지의 옆에 앉자 현지가 그릇을 하나 더 꺼내 라면을 덜어 나에게 건넸다.

“도련님도 드세요.”`“근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아무도 없어서 무슨 일 생긴 줄 알았잖아.”`“여긴 주방이라고 할 만한 곳이 없더라고요. 아무리 물어도 그게 뭐냐고 하길래 그냥 방에서 라면이나 먹으려고 했는데, 도련님이 쉬는 방에서 라면을 끓이긴 좀 그렇잖아요. 그래서 옆방에서 먹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이것들이 나타나더니 자기들도 달라더라고요. 그래서 끓여 줬더니 이러네요?”`“주방이 없다고? 그럼 마족들은 뭘 먹고 사냐?”`“그건 저도 모르겠어요.”`현지의 말에 직접 물어보려 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 듯싶었다.

라면을 저렇게 미친 듯이 흡입하는데 뭔가를 물어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치 뚱이를 보는 것 같네.

뚱이가 음식을 먹는 장면과 유사한 장면을 재현하는 듯한 마족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없어? 왜 없어?

자신의 그릇에 담긴 라면을 전부 먹어치운 레이가 냄비를 보며 고개를 갸웃하며 의념을 보냈다.

“더 줄까?”

-응! 더 줘요!

내 손에 들린 라면이 담긴 그릇을 건네주자 또다시 그릇에 코를 묻고 손을 이용해 면을 마구 퍼서 입에 넣는 레이였다.

“라면이 저렇게 맛있는 음식이었냐?”`“라면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만 저렇게까지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걸요?”`“그럼 라면이 마족들의 입맛에 딱 맞는 건가?”`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내 평생 음식을 저렇게 맛있게 먹는 장면은 뚱이를 제외하곤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아닐 거예요.”`지안은 뭔가를 아는 모양이었다.

“뭔데?”

“아마 마족들에겐 맛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해요.”`“그게 무슨 말이야?”`“아까 보니까 시녀들이 뭔가를 먹는 모습을 봤는데, 좀 특이한 것을 먹더라고요.”`“특이한 거? 그게 뭔데?”`“마석을 먹더라고요.”`“뭐? 마석을 먹어?”`지안의 대답을 듣자 황당함이 몰려왔다.

“네.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먹는다고 하더라고요. 저희 인간과 다르게 마족들은 음식을 먹음으로써 에너지를 얻는 게 아니라 마석을 먹음으로써 에너지를 얻는 것 같더라고요.”`“그러니까 마나 자체가 그들의 식량이라는 말이네?”`“네. 마석만으로도 충분히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마족에겐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는 거죠. 그 때문에 음식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거고요.”`“그럼 재들은 왜 저러는 건데.”`“이건 제 추측이지만, 저들에게도 미각이라는 것은 존재했다는 거죠. 모르고 있었을 뿐.”`지안의 추측을 듣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음식이란 것을 먹은 적이 없기에 음식이라는 것 자체를 모르고 살았던 마족들이 음식을 먹음으로써 미각이 깨어나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미친 듯이 라면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하긴 주변에 존재하는 먹을 것이라고는 몬스터나 악마종 혹은 이상한 식물들일 텐데 그 맛도 없고 독까지 존재하는 것들을 먹어볼 리가 없었겠지.

아니 먹어봤다고 해도 그걸 선택하지는 않았을 거다.

맛대가리 없는 그것들을 선택하느니 그냥 마석으로 에너지를 채우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괜찮을 테니까.

-크하하하!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야! 특히 이 혀에 느껴지는 적당한 통증과 뱃속이 차오르는 듯한 이 감각! 도대체 왜 이걸 모르고 살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야!

라면이 떨어지자 냄비 주변을 기웃거리던 마일이 갑자기 의념을 토해내며 만족이란 것을 드러냈다.

-정말 그렇군요. 이런 감각은 처음 느껴봅니다. 이런 만족감은 내 평생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는데.

그에 셰인이 화답했고.

“그걸 배가 부르다고 하는 거예요.”`-이런 것을 배가 부르다고 하는 거군요! 음- 그렇군. 배가 부른 것이었군.

지안의 말에 대답한 후 배를 쓸어내리며 혼잣말을 내뱉는 마일이였다.

“근데 말이야. 조금 이상한데? 저 육체는 그럼 어떻게 구성이 된 건데?”`갑작스럽게 생겨난 의문이었다.

마석을 먹는 것만으로 저 덩치가 가능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몬스터 역시 뭔가를 먹어 에너지를 얻었고, 악마종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렇지 않은 악마종들이 있긴 했지만, 그것들은 애초에 생물로써 적합한 것들이 아니었다.

“아! 상무님. 모르셨어요?”`

“뭘?”

“마석에는 인간에게 필요한 대부분의 영향소가 함유되어 있다는 거요. 그래서 몇몇 나라에서는 마석을 생명의 돌이라 부르기도 하더라고요.”`“그 말은 인간이 마석만 먹어도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야?”`“그건 아니에요. 인간에게 독이 되는 성분들이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이 마석을 먹으면 죽어요.”`이건 몰랐던 사실이었다.

설마 마석에 그런 비밀이 있었을 줄이야.

-더 줘요! 나, 이거 더 줘요!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사이 레이가 내 팔을 잡아끌고는 냄비를 가리키며 의념을 보냈다.

“그래. 잠깐만 기다려 줄래? 현지야 라면 몇 개 더 끓여……?”`현지에게 라면을 더 끓이라 말하려던 나는 레이의 배가 볼록 솟아있는 것을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레이의 배가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것 같은데 너희들 생각은 어떻냐?”`“배가 터질 것 같은데요?”`“과식은 안 좋은데.”`역시 둘 역시 나와 생각이 일치하는 듯했다.

레이는 지금 너무 많이 먹어 충분히 배가 불러온 상태였다.

“레이야. 오늘은 그만 먹자. 그러다가 배탈 나.”`마족인 레이가 배탈이 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혹시 몰랐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처음인 레이였기에 혹시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배탈이 뭐에요?

“배가 많이 아픈 거지.”`-아파? 레이 아픈 거 싫어요!

“그래. 그러니까 오늘은 그만 먹고 내일 먹자.”`-네!

밝게 웃으며 내 품에 안겨드는 레이를 보자 수아가 떠올랐다.

수아는 지금 뭐 하고 있으려나? 혹시 나 보고 싶다고 우는 건 아니겠지?

“대충 이쪽 마무리하고 집에 다녀오자. 우선 집사부터 불러. 그놈하고 시녀들만 일차적으로 지배한 후 집에 다녀올 생각이니까.”`

“네.”

“뭐해? 빨리 안 불러와?”`지안이 대답했고, 그에 현지가 마일을 보며 눈을 부라리며 입을 열었다.

-네!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 * *

-들어가.

-알겠습니다!

왜 자꾸 집사를 보면 김 실장이 떠오르지?

이상하게 집사를 볼 때마다 김 실장이 떠올랐는데, 아마 그 이유는 그가 하는 일 때문이리라.

이 성에서 집사는 무소불위의 권력자나 다름이 없었다.

성에 대한 전반적인 일 처리부터 마석의 배급이나 군의 운용까지 대부분의 일을 집사 홀로 처리했기 때문에 누구도 그를 무시할 수 없는 것으로 보였다.

물론 그가 성에서 두 번째로 강한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그의 무력 수준은 상급 악마종 중에서도 상위에 속해있었기에 솔직히 약간 걱정이 되긴 했다.

내 지배하에 두는 것은 이제 문제가 없었지만, 이름을 주는 과정에서 어떤 결과가 발생할지 알 수 없었기에.

-그럼 진입하겠습니다.

균열의 앞에 도착한 집사는 나에게 의념을 보낸 뒤 표정을 굳히며 걸음을 떼었고, 그 결과 나에게서 마력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다만 전과 다르게 이미 마력을 변환해 둔 상태여서일까?

변환된 파괴의 마력이 우선적으로 빠져나갔기에 빠져나가는 마력의 양이 1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다만 정신력의 소모로 인해 머리가 지끈거리긴 했지만, 순식간에 균열을 통과한 덕분에 정신력의 소모 역시도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그나저나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길래 정신력의 소모도 줄어든 거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차차 생각하기로 한 나는 균열을 통과해 나와 연결되어 버린 집사를 바라보며 미리 준비해뒀던 이름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너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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