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만! 바하무트가 뭔데?”
-균열이 달을 집어삼키며 나타났던 존재가 바로 바하무트입니다. 파괴의 의지만을 품은 사상 최악의 재앙입니다.
“재앙? 그럼 지금 그놈은 봉인된 상태란 말이야?”
-네. 아직은 군주님들의 힘으로 봉인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아직? 그 말은 봉인이 풀릴 수도 있다는 말이네?”
-그렇긴 합니다만, 바하무트가 힘을 전부 회복하게 되면 어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 말이 진짜라면 내가 진짜 걱정해야 할 것은 마족이나 군주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군주라는 자들에게 고마움을 느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지금까지 잘 막아냈다며.”
-두 분의 군주님이 사라지신 후 남은 군주님들께서 녀석을 막아내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강하길래 군주라는 자들이 봉인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하는 거야?”
신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 군주들조차 벅차다니?
도대체 얼마나 강해야 그런 것이 가능할까?
-처음 녀석이 나타났을 때만 해도 녀석은 군주님들의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균열에서 계속해서 튀어나오는 놈들 때문에 저희 마족들이 막대한 피해를 입는 것을 보시고 달을 만들어 균열을 막아버리시는데 많은 소모하시는 바람에…….
마력의 구를 만들기 위해 큰 힘을 소모하는 바람에 녀석에게 밀리기 시작했다는 건가?
이야기를 듣던 나는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놈을 그냥 없애버린 후 막으면 되는 거 아니야?”
바로 이것이었다.
쉽게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다면 녀석을 소멸시켜 버리면 간단히 끝날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맞습니다. 분명 군주님들께서 바하무트를 소멸시켰죠. 하지만 그 위대한 군주님들조차 모르는 사실이 존재했습니다. 바하무트는 불멸의 존재라는 것이었죠. 놈은 소멸이 되어도 어디선가 다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놈이 소멸하고 일만 년이 조금 더 지난 시점에서 녀석이 부활했고, 그제야 놈이 불멸의 존재라는 것을 깨달으신 군주님들께서는 다시 녀석을 소멸시킨 후 놈의 사념들을 모아 봉인을 하신 것이었죠.
“봉인을 시켰는데 어째서 군주가 소멸을 각오해야 할 정도의 일이 발생한 거야?”
힘겹긴 하지만 군주 다섯이서 봉인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라는 소리는 일곱이라면 무난하게 녀석의 봉인을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것은 저도 모릅니다. 그 일에 대해서는 어떠한 말도 없었으니까요. 아마 그 일은 군주님들만 알고 계시겠죠.
‘근데 생각보다 군주라는 자들이 착한 것 같네?’
마족들을 위해 대륙도 옮겨주고 달도 옮겨주고 거기다 지켜주기까지.
생각했던 것만큼 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어 보였기에 조금 안심이 되긴 했지만, 바하무트라는 괴물이 마음에 걸렸다.
놈이 봉인을 풀게 된다면 지금으로서는 막을 방도가 없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배의 군주라는 자가 다시 나타났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마족뿐만 아니라 인류 역시도 사라질 위험이 있었기에 조금이지만 안심을 할 수 있었다.
‘근데 이제 난 뭐 하지?’
마족은 그저 자신들의 삶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뿐 인간을 어떻게 할 것 같지는 않아 보였기에 딱히 내가 뭔가를 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혹시 모르니 일단 이 성에 존재하는 마족들을 지배한 후에 생각해보는 게 좋겠네.
* * *
“이제 끝이지?”
-네.
총 536명의 병사를 전부 지배한 나는 기쁨을 참지 못하는 집사를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좋아?”
-물론입니다. 이제 저희 영지도 어엿한 백작의 영지가 되었으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야? 겨우 500 정도로 무슨 어엿한 백작의 영지란 거야?”
-겨우 500이 아닙니다. 중급 마족의 수가 무려 500이 된 거죠.
마족의 등급은 최하급, 하급, 중급, 상급, 최상급 마지막으로 고위 마족이 존재했다.
병사가 될 힘을 가진 존재부터 하급이라 칭하고 그 밑으로는 전부 최하급의 마족이었다.
중급은 악마종과 비슷한 힘을 가진 마족을 중급 마족이라 불렀고 상급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최상급의 마족은 남작부터 백작까지였고, 고위 마족의 경우 후작 이상의 힘을 가진 마족을 고위 마족이라 칭했다.
그리고 대공이란 존재가 있었는데, 군주의 성을 대신 관리하는 자들을 대공이라 불렀다.
군주는 군림할 뿐 지배하지 않는다는 성격을 띠는 존재였기에 대공이라는 존재가 군주 대신 영역 전부를 관리했다.
그런 대공이란 존재를 바로 왕급 마족. 그러니까 마왕이라 불렀고.
그나저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마왕이란 호칭이 군주보다 높아 보이는데 이거 제대로 부르는 거 맞아?
그냥 신이라 부르지 왜 군주라 부르는 건지 모르겠다.
“백작이 중급 마족 500을 거느리고 있다는 말이야?”
-아닙니다. 백작 중 힘이 강한 자들조차 휘하의 중급 마족의 수는 200을 넘지 못합니다.
“그럼 정말 500이라는 숫자로 백작급이 된다는 말이네?”
-그렇습니다. 거기다 상급 마족의 수가 벌써 16명입니다. 마지막으로 남작급의 힘을 가진 저까지 포함하면 백작님의 각성 후 돌아오는 도전의식에서 다시 후작의 위를 넘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11명의 시녀가 전부 상급 마족이 되었고, 군을 통솔하던 5명의 중급 마족이 상급으로 올라서면서 총 16명이라는 상급 마족을 얻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단 하나뿐이던 집사가 남작급의 힘을 가지게 됨으로써 제대로 된 백작의 영지가 되어버린 것.
그 때문에 집사가 이렇게나 기뻐하는 것이었다.
다만 조금 이상한 것은 나나 현지, 지안을 그 안에 넣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아마 내가 지배의 군주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 듯싶었다.
군주란 존재는 마족이라는 영역에서 생각하는 존재가 아닌 모양인지라 그리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잘 배우고 있지?”
“네! 물론입니다.”
“오! 잘하는데?”
얼마 전부터 지안은 마족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앞으로 이곳 역시 나의 영역이 될 텐데 혹여나 인간이 이곳까지 진출할 경우 말이 통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감사합니다!”
유창한 한국어로 말하는 집사를 보자 지안의 노력이 헛돼 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
“현지는 아직도 안 나오고 있어?”
-네.
현지는 얼마 전 마족들의 훈련을 본 후 단숨에 강해질 방법을 깨달았다며 방 하나를 차지하고 들어가 아직 나오지 않고 있었다.
마족이 강해지는 방법.
그것은 바로 압축에 있었다.
마력을 압축함으로써 마력에 섞여 있는 불순물을 제거하고 마력이 압축됨으로써 마력의 파괴력과 총량을 더욱 늘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훈련법.
그것이 바로 일정량의 마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마족들의 훈련법이었다.
마력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의 크기가 정해져 있는 마족의 특성상 강해지기 위해서는 마력의 불순물을 제거한 후 압축해 더욱 많은 마력을 그릇에 담는 것으로 기존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마족만의 훈련법이었지만, 인간 역시도 같은 방법으로 강해지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인간의 경우 한계에 도달한 후에야 가능한 방법이었다.
이 방법은 아직 한계에 부딪히지 않은 인간에게는 성장 속도가 오히려 느려질 수도 있는 방법이었기에 알면서도 이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현지의 경우 이미 한계를 넘어섰기에 이 방법을 통해 더욱 높은 수준을 노릴 수 있게 되었다.
이미 막대한 힘을 가진 현지가 마력을 압축함으로써 일순간 뿜어낼 수 있는 마력의 양을 늘리는 작업이었기에 아마 순식간에 지금의 경지를 넘어서는 강함을 가질 수 있을 거다.
물론 나나 지안이 역시 이 방법으로 훈련을 하는 중이었고.
“레이는 뭐해?”
-미호와 함께 영지를 시찰 중입니다.
“왜 전에는 영지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게 한 거야?”
며칠 전 레이는 마을에 가고 싶다며 나를 이끈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함께 나들이를 가고 싶어서인지 알았는데, 알고 보니 레이는 한 번도 성을 벗어난 적이 없었던 것이었다.
-첩자들 때문에 지금까지는 영주님을 숨겨야만 하는 처지였습니다.
“첩자라? 광산 때문에?”
성의 뒤편에는 마석 광산이 있었다.
그것도 굉장히 순도가 높은 마석 광산이.
마족들에겐 마석이 바로 화폐나 다름없었는데.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마석을 가지고 영양소를 섭취하고 에너지를 얻는 마족의 특성상 마석은 마족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좀 특이한 것은 내가 알던 마석 광산과 다르게 이곳에서 생산되는 마석의 질이 정말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내가 알던 광산에서 나오는 마석의 경우 하급 마석이 대부분이었지만, 이곳에서는 무려 상급 마석을 비롯해 마정석까지도 채굴이 되는 것을 확인하곤 깜짝 놀랐었다.
물론 작위 쟁탈전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생산된 마석의 반 이상을 승리자에게 바쳐야만 했지만, 남은 마석만으로도 충분히 영지를 꾸려갈 수 있을 뿐 아니라 점점 영지의 재산이 불어날 정도였는데.
“다른 영지에서 레이를 노리는 건가?”
-그렇습니다. 아직 각성하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들의 눈에는 백작님이 정말 먹음직스러워 보이겠죠.
“보호 기간이 얼마 안 남은 것 때문이야?”
-그렇습니다. 지금 영지 안은 혼란 그 자체라 할 수 있습니다. 타 영지의 첩자들뿐 아니라 귀족이 되고 싶어 하는 주제도 모르는 것들이 영지 안에 넘쳐나는 상태입니다.
거대한 마석 광산이 있는 영지.
지킬 힘이 없는 귀족이 주인으로 있으니 더욱 탐이 날 수밖에 없겠지.
“그런데 왜 나는 그런 놈들을 하나도 못 본 건데? 아무리 봐도 강자라고 할 만한 놈들은 보이지 않던데?”
-그래서 주제도 모르는 것들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제 겨우 하급을 벗어난 주제에 자신들이 뭐라도 되는 양 영지 곳곳에서 사고를 치며 백작님이 자신들을 부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죠.
“부른다? 그게 무슨 말이지?”
-백작님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도전을 받아들이지 않으셨습니다. 병사들조차 투입하지 않았죠. 그러니 녀석들이 취할 방법은 사고를 치며 부를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죠.
좀 이상한데?
그냥 병사들이나 시녀들을 보내 녀석들을 정리하면 간단할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참 이상하게도 마족들의 세계에서는 일반 병사보다 더 강해야만 시녀가 될 수 있었는데.
이건 인간과 다르게 시녀의 역할이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주인을 모시는 것은 같았지만, 마족 시녀의 역할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바로 호위.
마족 시녀의 진짜 역할은 바로 호위에 있었다.
물론 시녀보다 약한 귀족이 존재하지는 않았지만, 주제도 모르고 덤비는 것들을 상대하는 것이 귀찮았기에 자연히 시녀 역시 강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물론 시녀가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병사라는 존재가 괜히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병사의 힘을 벗어나는 존재가 나타나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병사 다음으로 나서는 존재가 바로 시녀였다.
시녀가 막지 못하면 그 위에 있는 시녀장이 나서고, 그 이후가 바로 집사였다.
마족의 경우 높은 직위에 올라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바로 무력이었다.
아무리 능력이 좋고, 똑똑해도 힘이 부족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의미였다.
“왜 그동안 녀석들을 처리하지 않은 거야? 시녀들만 나서도 충분할 텐데?”
-첩자들과 혹여 있을지 모르는 강자들 때문입니다. 첩자들의 경우 백작님의 힘을 파악하기 위한 녀석들이 대부분이라 지금 당장 무슨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힘을 숨기고 있는 강자가 존재할 경우 지금으로써는 방법이 없기 때문에 모두 무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힘을 숨긴다고? 내가 알기로 마족들은 힘을 숨기는 것을 비열하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명예를 떨어트리는 행동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아는데? 아니야?”
모든 마족은 자신의 힘을 숨기는 것을 극도로 꺼렸는데, 그 이유가 바로 힘을 숨긴다는 것 자체가 비열한 놈이라는 인식을 만들기 때문이었다.
물론 힘을 숨긴다는 사실을 들키지만 않으면 상관이 없지만, 그것을 들켰을 경우 문제가 커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영지에 있는 모든 존재가 떠나버릴 정도로.
비열한 방식으로 영주가 되었다는 자들 대부분이 영지를 얻긴 했지만, 반대로 영지에 혼자 남게 되어버림으로써 영지가 없는 것과 다름없게 되어 버렸다는 어이없는 이야기를 마일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근데 또 이게 이상한 것이 힘을 숨기는 것은 명예롭지 못한 행동인데 도전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명예롭지 못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강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부족함에 도전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
이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마족이 조금 이상해 보일 정도였다.
이 사실을 토대로 보면 새로운 귀족이 생겨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는데 어이없게도 그건 또 아니라고 한다.
가끔 자신보다 강자가 자신에게 도전하면 강함을 인정하고 영지와 계급을 넘긴 후 그의 밑으로 들어가는 사례가 꽤 많다는 것이었다.
거기다 150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도전의식이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새롭게 귀족이 되는 자들이 많다고 한다.
그러니까 도전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도전의식에서 그 자리를 빼앗아 버리면 그만이라는 것.
마족의 수명을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최하급에서 하급 마족의 경우 평균 수명이 2500년이었고, 중급 마족의 경우 3000년 상급 마족의 경우 5000년 최상급 이상의 마족들이 1만 년이 넘어간다는 사실을 토대로 보면 150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닐지도 몰랐다.
-맞습니다. 치욕이나 다름없죠. 하지만, 그들의 진짜 목적은 작위나 영지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자들의 의뢰를 받아 영지를 빼앗아 넘겨주기 위한 목적으로 힘을 숨기는 것입니다.
“의뢰를 받아 넘겨준다고? 누구한테? 설마 다른 귀족?”
-그렇습니다. 자식이 여럿인 귀족이 모두에게 작위를 넘겨주지 못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죠.
한 명에게만 작위를 넘겨줘야만 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정말 인간하고 다를 게 없는 것 같네? 어? 뭐야?’
쾅!
누군가 빠르게 이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느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셰인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그, 그게……. 도전자가…….
아무래도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이거 괜히 레이를 밖에 내보낸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