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자가 나타났어? 도전 안 받으면 된다며?”
-그것이…… 그자가 레이 님 앞에서 영지민을 폭행하며 레이 님을 도발하는 바람에 레이 님께서 참지 못하고 나서는 바람에…….
마족은 정말 특이했다.
같은 영지민이 영지민을 괴롭히는 건 당연하다는 듯 넘겼지만, 영지민이 아닌 마족이 영지민을 괴롭히는 건 치욕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그자가 레이 님과 함께 성으로 오고 있습니다.
셰인의 말이 끝나는 순간 집사가 급히 셰인에게 물었다.
-강함은?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중급 마족 정도라 생각했는데, 이후 레이 님께서 나서시자 제가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힘이 갑작스럽게 증가했습니다. 최소 남작 이상이라 생각됩니다.
“남작 이상이라? 집사보다 강해 보였어?”
-그, 그것이…… 그렇습니다.
큰일 났네.
집사보다 강해 보인다는 소리는 적어도 남작 중에서도 최상위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최소한으로 잡았을 때 말이다.
“어쩔 거야?”
-죄송합니다. 상급 마수를 데리고 다니면 문제가 없을 줄 알았던 제 실책입니다.
상급 악마종인 미호를 데리고 다닌다는 건 최소 남작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였기에 함부로 덤비지 못해야 정상이었지만, 자작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겐 별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현지 불러줄까?”
-그, 그래 주시겠습니까?
내가 마족의 일에는 일체 나서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있던 모양이었는지 현지를 불러주겠다는 말에 화색을 띠는 둘을 보며 현지와 연결된 선을 통해 현지를 호출했다.
‘그나저나 현지가 좋아하겠네?’
안 그래도 레이에게 실망한 현지였기에 도전자를 보면 정말 기뻐하리라.
문제는 현지에게도 벅찬 상대면 어쩌냐 하는 것이었는데, 그럴 경우 그냥 튀면 그만이었다.
패배를 인정하고 영지와 작위를 넘긴 후 내 지배하에 있는 마족들을 전부 데리고 빠져버리면 문제는 없겠지.
* * *
“갑자기 무슨 일로 절 부르신 거예요? 저 바빠요.”
수련을 방해해서인지 현지는 약간 심통이 난 모습으로 나타났다.
“내가 설마 너를 방해하려고 불렀겠냐?”
“그럼 왜 부르셨는데요?”
“아주 괜찮은 상대를 소개해 주고 싶어서 불렀지.”
“괜찮은 상대요?”
내 말에 표정이 급변한 현지는 급히 나에게 다가오며 입을 열었다.
“그래. 강한 도전자가 나타났다는 모양이야.”
“도전자요? 그게 뭔데요?”
“그런 게 있어. 너는 그놈 오면 상대나 좀 해주면 돼. 도저히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꼭 말하고. 그냥 애들 데리고 빠질 거니까.”
“네!”
밝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현지를 보며 미소를 지은 나는 집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근데 여기서 싸워도 돼? 성이 날아가면 어쩌려고?”
-그건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이곳은 마계에서 가장 단단한 금속인 아다만티움으로 코팅이 되어있기 때문에 성에는 전혀 피해가 없을 겁니다.
“아다만티움? 그게 뭔데?”
지하에 위치한 사방이 막혀있는 연무장은 특이하게도 보랏빛을 뛰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집사가 말한 아다만티움이란 것이 코팅되어있기 때문인 듯싶었다.
-마계에서 가장 단단한 금속으로 마력을 흩트려버리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에 연무장을 만드는 데는 이만한 것이 없습니다.
“마력을 흩트린다고?”
-네. 마력이 닿는 순간 마력을 자연의 마나로 되돌려 버리기 때문에 아무리 강한 마력이라고 해도 아다만티움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 게 있었어?
마력을 마나로 되돌린다는 말은 마력을 다루는 자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기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럼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어진 족쇄 같은 걸 채우면 마력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말이네?”
-그건 아닙니다. 마력을 흩트리긴 하나 빨아들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다만티움을 마력 홀에 박아넣지 않는 이상 큰 소용이 없습니다. 마력이 직접 닿아야만 하기 때문이죠.
‘그러네? 마력이 닿아야만 흐트러트린다면 별 소용은 없겠네?’
족쇄를 찬다고 해서 마력과 직접 닿는 건 아니었기에 소용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잠깐만? 그럼 방어구를 만들면?’
문득 든 생각에 집사에게 급히 물었다.
“그럼 방어구를 만들면 무적이나 다름없겠네?”
-하, 하, 하 그건 또 아닙니다.
“왜?”
-엄청나게 무겁기 때문이죠.
“무겁다고? 얼마나 무거운데?”
-이곳에 코팅되어있는 무게만 해도 장난이 아닙니다. 이곳에 코팅된 아다만티움의 무게만 해도 성 전체의 무게보다 무거울지도 모릅니다.
“뭐? 그 말은 성 전체의 무게보다 이곳에 코팅되어있는 아다만티움의 무게가 더 무겁다는 말이야?”
-네. 엄청나게 무겁죠. 방어구를 만들어 입으면 무게 때문에 움직이지도 못할 겁니다.
도대체 얼마나 무거운 거야 그럼?
연무장이 크긴 했지만, 성 전체와 비교하면 먼지나 다름없는 수준이었기에 어이가 없었다.
-같은 크기의 철과 비교하면 만 배정도 더 무겁습니다.
천 배면 1kg의 철과 같은 크기가 무려 10톤이란 거야?
이게 물리적으로 가능한 무게인가?
“그럼 이걸 도대체 어떻게 코팅한 건데?”
-녹는 점이 일반 철보다 높은 수준이긴 하지만 충분히 녹일 정도이긴 해서 녹인 후 코딩을 한 것이죠.
“그래? 그나저나 대단하네? 이런 연무장이라니.”
아다만티움이 코팅된 벽을 손으로 쓸어내리던 나는 확인을 위해 마력을 주입한 후 정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마력이 마나로 변해 순식간에 흩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끼기긱-
“응? 뭐야 이거 왜 이래?”
파괴의 마력을 주입하자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금이 가기 시작한 아다만티움.
-일반 마력에 한해서입니다. 군주님의 힘을 아다만티움이 견딜 수 있을 리 없지 않습니까?
“단단하다며? 근데 이렇게 못 버틴다고?”
파괴의 마력을 많이 주입한 것이 아니었다.
균열을 열 정도만 주입했기 때문에 충분히 흩트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금이 가는 모습에 조금 어이가 없었다.
-코팅된 두께가 1mm도 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두께가 조금 더 두껍다면 좀 더 버틸 수도 있긴 하겠지만, 어떤 물체든 군주님의 힘에는 버티지 못하고 부서져 버릴 겁니다.
“그건 그렇겠네.”
이름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것도 버티지 못하는 힘.
그것이 바로 파괴의 마력이었기 때문이다.
“온다!”
강자와의 대결을 기다리며 한쪽에 앉아 눈을 감고 명상을 하던 현지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잠시 후 레이와 어깨에 앉아있는 미호가 문을 열고 들어왔고, 그 뒤를 따라 도전자로 보이는 마족이 시녀들에게 포위된 상태로 들어왔다.
집사와 비슷한 키를 가지고 있었지만, 뿔이 좀 더 긴 녀석은 등 뒤에 거대한 검을 한 자루 메고 있었다.
-호오? 당신이 내 상대인가?
연무장에 들어오자마자 집사를 지목하며 말을 꺼내는 녀석.
그에 집사가 화답하려던 순간이었다.
-뭐해? 당장 안 올라오고?
현지가 어느새 연무장 중앙에 도착해 녀석을 보며 손을 까딱거리며 의념을 보냈다.
-허! 어이가 없군. 상징조차 없는 년이 지금 나를 상대하겠다는 건가?
강함의 상징.
그것은 바로 뿔이었다.
마족은 뿔의 유무로 오리지널인지 변종인지를 파악하는데, 특이하게도 뿔이 길수록 더욱 강한 건 아니었다.
뿔의 길이는 개체에 따라 한계가 정해져 있기에 일정 수준부터는 뿔이 더는 길어지지 않았다.
물론 길이가 일정 수준 이하라면 약한 건 당연했지만, 자작 이상부터는 길이로 강함을 판별하지 못한다는 것.
-뭔 말이 그렇게 많아? 넌 주둥이로 싸울 거야?
-죽고 싶어 환장한 계집이로구나. 뜻대로 죽여주마!
쾅-
말을 마치는 순간 현지에게 쏜살같이 튀어 나간 녀석은 어이없게도 큰 타격음과 함께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쏜살같이 튕겨 나와 벽에 처박혔고.
-크아악! 감히!
자신과 똑같이 현지가 힘을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녀석은 몸을 일으키며 포효를 터트렸고, 이어서 자신의 힘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녀석에게서 막대한 마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하면서 현지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그래! 그 정도는 되어야 싸울 맛이 나지!
현지의 반응을 보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만약 녀석이 현지보다 강했다면 미소가 아닌 다른 표정이 떠올랐을 테니까.
스르릉-
등 뒤에서 거검을 뽑아 든 녀석이 자세를 잡는 순간 녀석이 다시 한번 현지에게로 쏘아지며 검을 내리쳤지만, 현지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녀석의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현지가 녀석의 허벅지에 짧은 단검을 찔러 넣으려던 순간 녀석이 재빨리 회전하며 마치 풍차처럼 검을 휘둘렀고, 그에 현지가 또다시 모습을 감춰버렸다.
이후 상황은 처음과 똑같이 흘러갔다.
뒤를 잡은 현지와 그를 알아채고 검을 휘두르는 마족.
계속해서 움직이는 현지에 비해 녀석은 멈춰선 채로 계속 뒤를 노리는 현지를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상황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마치 현지가 녀석을 가지고 노는 듯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분명 현지의 수준은 남작보다는 뛰어나지만, 자작에 비해서는 약간 부족한 게 사실이었기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가 버렸다.
-여, 역시 현지 님이십니다. 저런 강자를 가지고 노시다니.
“집사가 보기에도 그렇지? 현지가 가지고 노는 것 같지?”
-물론입니다. 금방 끝낼 수 있음에도 일부러 전투를 즐기기 위해 끝내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집사보다 강할 거라던 마족은 정말 집사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남작을 넘어 자작 급의 힘을 가지고 있는 정도였는데, 어떻게 현지는 녀석을 저렇게 쉽게 상대할 수 있는 걸까?
설마 수련 때문에 벌써 저렇게 강해진 건가?
고작 일주일 정도 수련한 것만으로도 저 정도로 강해질 수 있다고?
나 역시 요즘 현지와 같은 방식으로 수련을 하는 중이었기에 더욱 현지의 강함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력이 늘어나는 것도 맞고 한 번에 쏟아낼 수 있는 힘이 커진 것도 맞았다.
하지만 그것은 미세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큰 차이가 없었는데, 현지는 아닌 모양이었다.
내 생각대로라면 몇 개월은 수련해야 효과를 체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저 모습은 뭐란 말인가?
현지의 전투를 구경하며 생각에 잠시 잠겨있던 그때 현지의 의념이 들려왔다.
-넌 지금부터 내 모습을 볼 수 없을 거야.
-크으윽!
마치 놀리듯 녀석의 귓가에 속삭이듯 의념을 퍼트린 현지는 잠깐씩 모습을 드러내던 전과 다르게 아예 모습을 감춰 버렸다.
그 어디서도 느껴지지도 보이지도 않는 현지 때문에 당황한 마족은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며 마력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그에 마력이 마족을 중심으로 전 방향에 쏘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구경하던 나까지 위협하는 마력에 조금 뒤로 물러나려던 그때 집사가 나서서 이쪽으로 쏘아지는 마력을 전부 쳐내기 시작했고, 그에 물러날 필요 없이 녀석의 발광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은신을 더 발전시켰을 줄은 몰랐는데?
현지의 능력인 암살은 10강 수준을 벗어난 후로 더는 발전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지금 보기에는 상급 마족에게도 통할 정도의 은신을 보여주고 있었기에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하하하하! 내가 두려워서 도망쳐 버린 것이냐!
미친 듯이 마력을 쏘아내던 마족은 갑자기 멈추더니 현지가 도망간 것이 아니냐며 레이를 보며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 어디서도 현지가 느껴지지 않기에 도망을 간 것이라 생각하는 듯 보였는데, 이건 정말 어이가 없었다.
상대조차 되지 않던 녀석을 상대로 도망을 친다니?
지나가던 개도 안 할 발상이었다.
스걱-
-크윽!
순간 녀석의 허벅지가 크게 베어지며 피가 튀었고, 그에 신음을 내뱉은 마족.
현지는 분명 녀석의 곁에 있었다.
“허! 저게 어떻게 가능하지?”
연결된 선을 통해 현지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나였기에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게 현지는 녀석의 어깨를 밟고 서 있었다.
하지만 녀석은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을 뿐 현지를 전혀 찾아내지 못했다.
-어디냐! 이년! 치졸하게 숨어있지 말고 나오란 말이다!
현지를 도발해 모습을 드러내게 할 속셈이었는지 모르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말았다.
스거거걱-
동시에 녀석의 전신이 갈라지며 피가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크윽!
전신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그대로 무릎을 꿇은 녀석의 눈동자에 공포라는 감정이 어리기 시작했고, 이어서.
-내, 내가 졌다! 그, 그만!
“졌다는데?”
“벌써요?”
-헉!
-어떻게?
녀석의 어깨 위에서 모습을 드러낸 현지가 나를 보며 묻자 모두가 깜짝 놀라며 당혹성을 내뱉었다.
-우와! 언니가 이겼다!
레이가 현지에게 뛰어가 펄쩍펄쩍 뛰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던 현지가 마족의 어깨에서 내려와 레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다가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근데 얘는 어쩌실 거예요?”
“그러게? 어쩌지?”
지배하는 것이 베스트이긴 했지만, 지금의 정신력으로 그게 가능할지가 문제였다.
마력은 이제 문제가 없지만, 정신력은 달랐다.
레이를 지배하는 것만으로도 정신력을 거의 한계까지 사용했었고 레이의 경우 내 지배를 원했기 때문에 더욱 쉽게 지배할 수 있었지만, 저 녀석은 아니었다.
그때보단 정신력이 많이 증가한 것 같은데 한번 도전을 해 볼까?
근데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실패했던 적이 없었기에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모르는 상태였기에 꺼려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실패한 영향으로 내 정신이 큰 타격을 받을지도 몰랐고, 반대로 내가 지배가 되어 버릴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지배당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거기다 정신에 큰 타격을 받는다는 것도 문제였다.
육체야 부상을 입으면 치료를 하면 되지만, 정신 쪽은 그게 불가능할지도 몰랐으니까.
“일단 저놈 저거 어디 가둬놔. 생각 좀 해보고 나서 결정할 테니까.”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