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해볼까?
내가 군주라 믿게 만든 후 지배를 건다 해도 성공할 확률이 높지는 않아 보였지만, 그럼에도 빨리 처리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대공이라는 녀석의 생각을 알아야 앞으로 대처하기가 편할 테니까.
-이봐. 룩산이라고 했나?
-그, 그렇다.
집사가 진명을 받았다는 사실에 녀석의 태도가 조금이지만 변했다.
뭐랄까? 조금 조심스러워졌다고 할까?
-어떻게 하면 내가 군주라는 사실을 믿을 거지?
-그, 그럴 리 없다! 내가 뵌 분은 진짜 군주님이란 말이다.
아마 저 말은 사실일 거다.
난 군주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녀석의 앞에 있는 건 나였다.
그 군주가 아니라.
-혹시 이런 거 본 적 있냐?
순간 내 손바닥 위로 피어오르는 파괴의 마력.
그 모습을 본 룩산은 멍하니 입을 벌린 채로 굳어버렸고.
잠시 후.
-구, 군주님의 히, 힘을 어떻게?
-뭘 어떻게야? 당연히 내 힘이니까 이렇게 내 손바닥 위에 솟아오른 거지.
파괴의 마력에 정신을 빼앗긴 룩산을 보며 조금만 더 하면 넘어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 룩산에게서 이상한 의념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설마? 정말 군주님? 그, 그럼 그자는 누구지? 설마 대공님이 내게 거짓을? 그, 그럴 리 없어. 그분이 어째서 내게 그런 거짓을 말한단 말이야? 하지만 그자는 군주님의 힘을 보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 어째서 스스로를 증명하지 않은 거지? 설마 정말 가짜이기 때문인가?
룩산은 혼란에 빠져 자신의 생각이 의념을 통해 흘러나온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래. 조금 이상하긴 했어. 진명을 하사했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그것이 누구인지 아무도 본 마족이 없다고 했어. 거기다 지배의 의식 역시도 단 한 번도 보이신 적이 없었고.
일이 잘 풀리는 듯했다.
룩산은 내가 보인 파괴의 마력 덕분에 거의 없다시피 했던 군주라는 자에 대한 의심이 생겨났고, 그건 점차 불어나기 시작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줄 테니 잘 생각해 봐.
혼란에 빠진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룩산에게 의념을 보낸 나는 그대로 등을 돌렸다.
지금은 내가 없는 것이 녀석의 의심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거다.
혼자 계속 의심하고 의심하며 불신을 키워가던 녀석은 결국 폭발할 거다.
나에게 다시 군주의 힘인 파괴의 마력을 보여주길 원할 테고, 확인이 끝난 녀석은 나를 군주라 믿기 시작하겠지.
그때 내 지배를 건다면 그나마 확률이 올라갈 테고, 결국, 녀석은 나에게 지배당하게 되겠지.
물론 일주일이란 시간 동안 나는 전력을 다해 정신력을 키울 생각이었다.
더는 지배할 병사가 남아 있지는 않았지만, 그거야 병사가 아닌 마족들을 병사로 만들면 그만이었기에 충분히 정신력을 증폭시킬 수 있을 거다.
“세바스찬. 영지민 중에 그나마 강한 자들을 선별해서 내게 보내. 그들에게도 진명을 하사할 생각이니까 최대한 강한 녀석들로 선별해.”
-저, 정말이십니까?
“어.”
-바,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 * *
“힘들어 죽겠네.”
3일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새롭게 지배한 마족의 수는 총 380명이었다.
첫날 마족을 지배한 수가 70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내 정신력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둘째 날 120이라는 수를 지배하고 오늘 190이라는 수를 지배한 것을 보면 정신력이 거의 세배는 늘어나야 정상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정신력의 회복속도 역시 같이 늘어난 탓에 190이라는 수가 가능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 같았기에 조금 안심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놈은 뭐해?”
-어제와 다르지 않습니다. 생각에 빠져 뭔가를 물어도 대답조차 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습니다.
“그래? 일단 가만히 내버려 둬. 놈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런데 지안이는 어때? 가끔 나오긴 해?”
마족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던 지안이는 어느 순간 모습을 감추고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룩산의 도전이 있을 당시에도 자리에 없었는데, 이유를 알지 못했던 나는 지안을 찾아보려 했지만, 현지의 만류에 포기해야만 했다.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고?
현지는 그 말만을 반복하며 지안이 지금 무엇을 하는지 알려주지 않았는데, 예상하기로는 벽을 넘을 방법을 찾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한 번도 방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좀 살펴봐. 그렇다고 들어가 보란 소리는 아니야. 그냥 밖에서 지안의 기척이 느껴지는지만 확인해. 알았지.”
-네!
그나저나 언제 이걸 다 지배하지?
내 목표는 1천이라는 병사였다.
최하급 악마종 정도의 힘을 가진 마족 1천을 새롭게 지배해 강화하는 것이 내 목표였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힘이 들었다.
하급 병사를 중급 병사로 만드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아무래도 너무 급하게 일을 진행한 후유증인 듯싶었다.
여유를 가지고 진행했어야 할 일들을 급하게 처리하려던 것이 문제였다.
정신력의 확장과 회복력이 늘어났을 뿐 아니라 마력까지도 증가한 상태였지만, 문제는 만성피로처럼 항상 피곤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기력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온몸에 힘이 없었다.
지금이라도 좀 쉴까?
며칠 푹 쉬면 증상이 없어질 것 같았기에 그런 생각을 잠시 해 보았지만, 안될 말이었다.
내 진짜 목적은 1천이라는 병사가 아닌 룩산이었기 때문이다.
녀석을 지배하기 위해 필요한 정신력을 채우려 함이었기에 쉴 수가 없었다.
최대한 빨리 녀석을 지배해 대공이라는 자의 생각을 알아야만 했으니까.
대공이 레이의 영지와 작위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면 이쪽으로서는 최대한 준비를 해 두어야 했다.
병사의 수와 강자를 늘리는 것만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기에 좀 힘들더라도 참아내야만 했다.
물론 그냥 한번 찔러본 것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거다.
그냥 찔러만 볼 생각이었다면 자작급에 해당하는 룩산을 보내지 않았을 테니까.
룩산을 보낸 이유는 아마 확실히 영지와 작위를 빼앗기 위해서임이 틀림없었다.
남작급만으로도 영지의 상태를 살피는 것은 가능했을 테고 레이의 상대로서도 부족하지 않았을 테니까.
* * *
“마지막이지?”
-네. 1천 번째 병사입니다.
병사에게 1522호라는 이름을 지어주는 것을 끝으로 드디어 1천의 새로운 병사를 지배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드디어 백작의 영지에 어울리는 힘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500의 중급 병사.
1천의 하급 병사.
하급 병사의 수가 좀 적긴 했지만, 중급 병사의 수가 일반 백작 영지보다 많은 수준이었기에 그나마 구색은 맞출 수 있게 되었다.
“기초 훈련은?”
-기존의 교관들이 알아서 잘 가르칠 것입니다. 그리고 마일도 이번에 교관으로 들어갔습니다.
병사의 힘을 얻었다고 모두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기본적인 교육은 필요했기에 훈련을 지시했는데, 마일이 그 자리를 꿰찬 모양이었다.
“괜찮겠어? 그놈도 신병이었잖아.”
-괜찮을 겁니다. 그동안 충분한 훈련을 받았기에 병사들을 가르치는 것에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바로 룩산에게 가시겠습니까?
“아니. 조금 쉬고.”
-알겠습니다.
이 무기력증을 좀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에 조금 쉬면서 상태를 볼 예정이었다.
원래는 곧장 녀석을 지배하기 위해 움직일 생각이었지만, 무기력증이 점차 심해지고 있었다.
움직이는 것조차도 짜증이 날 정도로 지금 내 상태는 심각했다.
뭔가를 하고 싶다는 의지 자체가 사라진 듯한 느낌.
평생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할 정도로 내 지금 상태는 정말 이상했다.
어떻게 1천이라는 마족을 지배한 건지 신기할 정도로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고, 요즘 항상 멍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버티고 싶었지만, 이제 정말 한계였기에 그대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은 나는 그대로 잠에 빠져들어 갔다.
* * *
“도련님?”
“상무님?”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천천히 돌려 둘을 바라본 나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고개를 돌린 채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며 한숨을 내뱉었다.
“왜 이러시지?”
“그러게?”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상태.
아니, 아무런 생각조차 들지 않는 상태라고 하는 것이 맞으리라.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으로서는 이렇게 평생을 지내도 상관이 없었으니까.
조금 쉬면 괜찮아질 것 같았지만,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증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점차 무기력이 내 전신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지금에 와서는 뭔가를 해야겠다는 의지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도련님! 정신 좀 차려봐요!”
나를 흔들며 소리치는 현지의 움직임에 맞춰 몸을 흔들던 나는 천천히 현지에게 고개를 돌려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그-만.”
“집사! 도련님이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내 무기력한 태도에 화가 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 현지가 집사에게 따져 묻기 시작했고, 집사는 그에 나를 살피며 혹시나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무래도 군주님께 수면기가 찾아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도련님에게 수면기라니?”
현지는 어이가 없는지 집사를 보며 물었고, 그에 집사가 설명을 시작했다.
-군주님들께서는 가끔 수면기에 드시는 경우가 있으십니다. 모든 것을 초월한 존재이시긴 하지만 그분들에게 삶이란 무기력의 반복이나 다름없습니다. 그것이 한계에 달하면 무기력을 벗어나고자 수면기에 드시는 경우가 계시는데, 아무래도 그런 경우가 아닌가 합니다.
나 역시 집사의 설명을 듣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니까 집사의 말은 상무님에게 수면기가 찾아왔다는 거예요?”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집사의 설명은 정말 황당했다.
‘진짜 군주도 아닌 나에게 왜 수면기가 찾아온단 거야? 설마 신을 연기하면 신과 비슷해지는 뭐 그런 건가?’
그럴 리가 없었다.
신을 따라 하면 신과 비슷해진다니?
내가 생각했지만, 황당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음- 그럴 리가 없는데?”
군주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히지 못하는 이상 집사에게 다른 설명을 하지 못하는 지안과 현지는 그저 황당하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럼 룩산은 어쩌지? 벌써 10일이나 지났는데?”
일주일에서 3일이 더 지난 상태였기에 현지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일단 조금만 더 기다려 보고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상무님을 데리고 지구에 다녀와야겠어.”
“그래. 그게 좋겠다.”
둘의 대화를 듣던 나는 그대로 누워 천장을 보며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그냥 날 평생 이대로 내버려 두면 좋겠다고.
* * *
“하암-”
기지개를 피며 찌뿌둥한 몸을 풀며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정신이 맑아진 것을 깨달았다.
“도련님? 이제 괜찮으세요?”
“어? 어.”
“도대체 왜 그러신 거예요?”
현지의 말에 대답하자 지안이 물어왔다.
하지만 전과 달리 이번에는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거? 음- 과식을 했다고 하면 될까?”
“과식이라뇨?”
“너무 많은 수의 마족을 소화도 하지 않고 지배를 하다가 탈이 난거지.”
여전히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는 지안과 현지를 보며 이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러니까 지배를 했다고 전부 끝나는 건 아니라는 소리지. 지배한 후 그것을 완전히 나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작업이 필요한데 이번에 너무 많은 수를 짧은 시간 내에 지배하게 되면서 그 작업에 필요한 의지를 너무 많이 그쪽에 할당하게 된 거지. 그 영향으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수준이 되어 버린 거고.”
“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한쪽에 너무 많은 힘을 쏟는 바람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는 거죠?”
“그래. 그거지.”
나 역시 처음에는 왜 이러는 것인지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의지가 생겨나는 것을 느끼고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내 의지와 집중력이 모두 한곳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이번에 지배하게 된 마족들과 연결된 선이었다.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느끼기로는 한 번에 너무 많은 마족과 연결된 선이 이리저리 꼬여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내 의지가 전부 그쪽으로 몰려 선을 풀며 정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 왜 예전 몬스터들 때는 이러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단순했다.
몬스터들의 선에 비해 마족의 선이 훨씬 굵었기 때문이다.
몬스터의 경우 얇은 선으로 연결해도 끊어질 일이 없었지만, 마족의 경우 몬스터보다 훨씬 이성적일 뿐 아니라 강한 힘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굵은 선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요?”
지안은 대충 이해를 한 모양이었지만, 현지는 전혀 이해가 안 되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음을 던졌다.
“잘 봐. 여기 이 공간에 선을 연결해야 하는데, 너무 많은 선을 연결하는 바람에 선들이 이리저리 꼬이게 되어 버린 거지. 그래서 그 선을 풀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쳐.”
“네.”
“근데 그 사람들이 원래는 자기만의 일들이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거야. 원래는 집을 짓거나 농사를 짓거나 하는 사람들인 거지. 근데 그 사람들이 전부 선을 푸는 곳으로 몰려가면 기존의 일들은 누가 해야 할까?”
“새로운 사람들을 데려오면 되겠죠.”
“맞아. 하지만 사람이 없으면? 그 일들은 일단 중지가 되겠지?”
“아! 그래서 도련님이 아무것도 못 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는 거예요? 그쪽으로 모든 것이 집중되어서?”
“그래. 그거야.”
쉽게 설명해주자 이해가 되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현지를 보던 나는 문득 떠오르는 것에 이어서 입을 열었다.
“아! 맞다. 지안이, 너 끝났어?”
“네!”
밝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 지안.
“네가 했던 게 마력 변환이었어?”
“네! 저도 현지처럼 모든 마력을 변환하는 데 성공했어요!”
“그래. 잘했다.”
지안의 성장으로 내 전력이 한층 강화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나에게 남은 것은 하나였다.
룩산의 지배.
놈을 지배하는 것으로 이번 여정이 끝이 날지도 몰랐기에 곧장 집사를 호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