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태는 어때?”
-그날 이후로 계속 혼란스러워하는 상태입니다.
룩산이 갇혀있는 감옥을 찾은 나는 들어서기 전 집사에게 룩산의 상태를 물었다.
혼란스러워한다는 집사의 대답에 내 방법이 통했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생긴 나는 그대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생각은 좀 해봤나?
-다, 당신은…….
가만히 앉아있던 룩산은 내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조차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생각이 많아 보였는데, 내 물음에 정신을 차리곤 급히 입을 열었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은 표정을 지으며 말을 꺼낸 룩산.
하지만 그는 말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자신의 주인에 대한 믿음 때문이겠지.
주인이 자신에게 거짓을 말했다고 믿고 싶지 않을 테니까.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도 되는데?
내 물음에도 입을 꾹 닫은 채 쉽게 입을 열지 못하는 그를 보자 주인에 대한 믿음이 정말 견고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보통의 인간이었다면 분명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했겠지만, 그는 아니었다.
더는 흔들리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참는 모양새였다.
그의 태도에 나는 다시 한번 그를 흔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마력을 끓어 올렸고.
-아!
그는 내 손바닥 위로 피어오른 파괴의 마력을 본 후 더는 참지 못하겠는지 결국, 입을 열었다.
-다, 당신이 정말 지배의 군주님이십니까?
-이걸 보고도 인정을 하지 못하겠다는 건가?
-그, 그건 아닙니다만, 너무 혼란스러워서.
전과 달리 룩산의 태도가 많이 변한 것을 깨달은 나는 슬쩍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의념을 보냈다.
-믿고 싶지 않다면 믿지 않아도 돼. 하지만, 지금부터 나는 너에게 지배를 걸 거다. 그건 거절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강제로 지배를 하는 것은 나 역시 기분이 좋지 않거든.
-저에게 지배의 의식을 행하시겠다는 겁니까?
-왜 싫어?
-그, 그건 아닙니다만, 어째서 저를?
-내 맘인데?
그간 내가 한 일은 병사들을 지배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집사에게 지배의 군주에 대한 성격이라거나 그의 취향 등등 그에 대한 정보를 들으며 그를 모방하기 위해 연습을 좀 했는데, 지배의 군주라는 자는 정말 특이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그와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리라.
일단 결정을 내리면 그것이 잘못된 일일지라도 절대 그 뜻을 꺾지 않았으며, 다른 군주들조차 전혀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마음대로 행동했으며, 심지어 심심하다는 이유로 정체를 숨기고 최하급 마족인 척 연기하며 여러 영지를 돌아다니다가 최하급 마족 수십에게 진명을 하사하는 기행을 일삼는 특이한 존재였다.
그는 최하급 마족에게 있어 돌아다니는 로또나 다름없었다.
그런 그였기에 그를 연기하는 것은 별로 어려울 게 없었다.
그냥 모든 일에 대한 설명을 내 마음이라 변명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아! 정말 군주님이십니까?
-그렇다니까?
-그, 그럼 제가 뵌 그분은 도대체 누구란 말입니까? 만약 당신이 정말 군주님이시라면 지금 대공과 그자가 전 마족을 상대로 거짓을 퍼트리고 있다는 말인데, 대공께서는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닙니다!
하소연인가?
마치 나에게 하소연을 하는 듯한 그를 보던 나는 그에게 조금 미안하다는 감정이 들었다.
그에게 대공이란 존재는 모든 것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존재이겠지.
그런 존재를 의심한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가슴은 무너져 내리고 있으리라.
그의 말이 사실이고 내 말이 거짓이라는 것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기에 그에게 미안함이라는 감정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진실을 밝힐 생각은 없었다.
일단 이쪽을 먼저 도발한 것은 저쪽이었으니까.
-그건 내가 상관하고 싶지 않은데? 나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뿐이야. 혹여나 누군가 나를 사칭한다고 해도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마음대로 하라고 해. 지배의 군주? 그딴 건 너희들이 붙여준 이름일 뿐이야. 나는 그저 나일 뿐이니까.
-아! 저, 정말 군주님이…….
내 말이 끝나는 순간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던 룩산의 눈빛이 순식간에 변하며 믿음이라는 것이 담기기 시작하는 것을 보던 나는 내 말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었다.
아마 지배의 군주라는 자가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를 연기했는데, 그것이 통한 모양이었다.
“음- 이제 해도 될 것 같다. 준비해.”
“네.”
“네.”
현지와 지안이 대답과 함께 앞으로 나섰고, 그를 보던 나는 한쪽에 균열을 열어버렸다.
-균열……?
한쪽에 열린 균열을 보며 당황한 표정을 짓는 룩산과 그에게 점차 다가가는 현지와 지안은 이어서 그의 양옆에 서서 각각의 팔을 잡고 그를 다짜고짜 균열로 이끌기 시작했다.
-어? 지금 뭐 하는?
현지와 지안이 잡아끄는 대로 끌려가는 룩산은 이해할 수 없는 눈빛으로 둘을 보다 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나를 보며 황당한 눈빛을 보내는 룩산.
하지만 현지와 지안은 멈추지 않고 그를 균열로 끌고 갔고 이어서 그를 균열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
빠지지지직-
순간 그와 균열 사이에 스파크가 발생하며 마력이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이어서 머리가 지끈거리며 정신력이 소모되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정신력의 소모가 큰데?
마력의 소모는 견딜 만한 수준이었지만, 정신력의 소모는 심각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레이와 비교해도 차원이 다른 수준의 정신력이 소모되는 것을 확인한 나는 어떻게든 버티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려 했지만, 참을 수 있는 고통이 아니었다.
뇌를 쥐어짜는 듯한 고통에 이를 악물었지만, 고통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고, 오히려 점차 커져만 가기 시작했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레이의 경우 아직 자아가 완전히 확립되지 않았기에 그나마 수월하게 지배를 할 수 있었던 것이라 예상했던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자아가 얼마나 강하냐에 따라, 혹은 나를 얼마나 신뢰하느냐에 따라 정신력의 소모가 달라진다는 것을 확신하는 이유는 바로 지금은 상급 마족이 된 백부장들 덕분이었다.
그들은 나를 신뢰하지 않았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을 지배하는 데 소모된 정신력은 집사를 지배할 때 소모되었던 정신력보다 더욱 많은 수준이었다.
그들을 지배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 바로 나를 얼마나 신뢰하느냐와 자아가 얼마나 강한가였다.
특이하게도 그들은 집사보다 자존심이 강했고, 나를 전혀 신뢰하지 않았는데, 그들을 토대로 하급 마족을 지배하며 살펴본 결과 정신력의 소모가 신뢰와 자아의 강함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이제 정신력이 바닥나기 직전인데?’
정신력이 대부분 소모된 것을 확인한 나는 룩산이 어서 내 지배를 받아들이기를 빌고 또 빌어야만 했다.
이러다 실패하기라도 하면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지배가 실패하게 되었을 경우 어떤 부작용이 발생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기 때문이다.
룩산이 더는 나를 믿지 않게 된다는 것.
그렇게 되면 룩산을 지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질지도 몰랐기에 최대한 버텨야만 했다.
“크윽-”
겨우 참아내던 신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 정신력이 바닥났음을 깨달은 나는 불안에 잠겨야만 했다.
곧 있으면 내 안에 남아있는 모든 정신력이 사라질 테고 그로 인한 후폭풍이 밀려오리라.
어째서 이렇게 막대한 정신력이 필요한 것일까?
레이를 지배할 당시의 정신력과 지금의 정신력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적어도 3배 이상.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 당황하던 그때.
비로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바로 나와 룩산의 힘의 차이.
지금 내 수준은 레이와 집사의 중간에 위치해 있었다.
레이의 경우 나와 큰 격차가 나지 않았기에 그때의 정신력으로도 충분히 지배할 수 있었지만, 룩산은 아니었다.
남작과 자작의 격차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거대했고, 그 결과 낭패를 볼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집사를 지배할 때는 정신력이 크게 필요하지 않았었던 거야?
어째서 알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그저 떠올랐을 뿐.
‘아, 안 돼!’
결국, 나에게 남아있던 정신력이 모두 소모되었고, 그 결과 눈앞이 캄캄해지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시작했으며 모든 감각이 차단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뇌를 쥐어짜는 듯한 고통조차 사라졌고, 이내 육체조차 느껴지지 않는 이상한 현상이 나를 찾아왔다.
‘여긴 어디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아무리 소리쳐 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계속 시간만 흘러갈 뿐.
이곳을 벗어나야만 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며 이상한 불길함이 나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어디야! 어딨어!’
이곳을 벗어날 방법을 찾기 위해 별별 방법을 동원해 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소환수들과 연결된 선을 찾기 위해 정신 집중도 해보고, 이곳을 벗어날 실마리를 찾기 위해 방향을 정해 끝없이 이동도 해 봤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한 채 절망감만 더욱 키워갈 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 1년, 10년.
체감상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언제까지고 이 특이한 공간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고, 시간만 계속해서 흘러갈 뿐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것.
적어도 년 단위의 시간이 지나갔다는 것은 분명했다.
‘아! 그냥 이대로 포기할까?’
결국, 포기를 선언한 나는 점차 나 자신이 작아지는 것을 느끼며 어둠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는데.
‘잠깐만? 작아진다고?’
느낌이 아니었다.
실제로 나 자신이 작아지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작아지는 거지? 지금의 나는 육체가 없는데? 영혼이 작아지는 건가?’
무언가 계속 작아지고 있긴 했지만, 그건 분명 영혼이 아니었다.
정신력? 마력? 도대체 뭐지?
지금껏 내 힘이라 생각했던 정신력과 마력.
그 둘 중 하나가 작아진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분명 그 둘은 아니었다.
특히 정신력은 더더욱 아니었다.
정신력은 모두 소모되었으니까.
‘그럼 도대체 뭐지? 도대체 뭐가 작아지는 거야?’
생각에 잠긴 그때였다.
작아지던 나 자신이 점차 크기를 불리고 있다는 걸 깨달은 나는 지금 나를 구성하는 이것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드디어 이곳을 벗어날 실마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작아지는 것이 멈췄어?’
실마리를 찾았다는 생각이 들자 작아지는 것이 멈춰버렸고, 이어서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처음 이곳에 빠졌을 당시의 크기보다 더욱 커진 나.
‘뭐가 달라진 거지? 지금 내가 하는 것이 뭐지? 생각인가? 아니야. 생각은 계속하고 있었어. 다른 무언가가 분명히 있을 거야.’
계속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는 나와 비례하며 커지는 나 자신.
‘설마? 의지?’
그랬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방법을 찾긴 했지만, 딱히 의지가 생기지는 않았다.
그저 화만 냈을 뿐이었다.
이상한 공간으로 이동한 사실에 대해서 화를 표출했을 뿐 이곳을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진 않았다.
이 공간을 벗어나야 하는 것은 당연했으니까.
아니, 이 공간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 당연했다.
언젠간 분명, 이 공간을 빠져나갈 것이라는 무의식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기에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의지가 솟아나지 않았던 것.
‘아! 그게 정신력이 아니라 의지였던 거야?’
이제 좀 퍼즐이 맞춰지는 듯했다.
지금껏 내가 지배해 왔던 존재들에 대한 난이도는 모두 이 의지에서 비롯되었던 것이었다.
당연히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존재들은 비교적 쉽게 지배를 할 수 있었고, 반대로 힘들지도 모른다 생각한 존재들은 정말 힘들게 지배해야 했던 것이었다.
그 모든 것이 바로 이 의지에서 비롯되었던 것이었다.
집사의 지배가 쉬웠던 이유는 당연히 지배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에 절로 의지가 일어난 것이었고, 레이의 경우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의지가 줄어들어 버린 것이었다.
상급 병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의식중에 그들이 나를 믿지 않는다 생각하며 선을 그었고, 그 결과 그들을 지배하는 것에 힘이 들었던 것이었다.
룩산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그를 지배할 수 있을까? 란 불안감이 무의식을 파고들며 그를 지배할 의지가 약해져 그를 지배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의지의 차이였다.
지배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워도 모자랄 판에 스스로 의지를 낮춰 버리니 당연히 그 결과가 이렇게 되었겠지.
정신력이 늘어난다는 것조차 모두 내 착각이었다.
늘어났다고 생각했기에 의지가 강화되었던 것이지 정말 늘어난 것이 아니었다.
‘아! 모든 것이 의지 때문이었어? 나 스스로 틀을 만들어 나 자신을 그 틀에 끼워 넣은 거였어?’
깨달음의 순간 의지가 더욱 확장되며 어둠을 몰아내기 시작했고, 이어서 육체의 통제권을 되찾은 순간, 시야가 탁 트이며 눈앞에 아직 지배되지 않은 상태의 룩산이 보였다.
아직 균열을 반조차 통과하지 않은 룩산은 순식간에 균열을 통과했고 이어서 내 지배하에 그가 들어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거였나?’
너무 쉬웠다.
룩산을 지배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을 정도로 쉬웠을 뿐 아니라 의지의 확장 덕분에 더욱 강한 힘을 손에 쥘 수 있을 것 같았다.
파괴의 마력을 다루는 것조차 의지와 관련되어 있었으니까.
-아! 정말! 정말 군주님이셨어.
내 지배를 받은 룩산.
그는 내가 군주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는지 나를 보며 의념을 터트렸고, 이어서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나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군주님께 충성을!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현지와 지안을 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 잠깐 어디 좀 다녀올게.”
“네?”
“어디를요?”
“있어. 그런 곳이.”
정확히 말하면 나도 잘 모른다.
내가 다녀올 곳은 정신 방벽 안쪽에 존재하는 그곳이었으니까.
그놈이 있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