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돌아왔다!”
“맨날 라면만 먹어서 지겨워 죽는 줄 알았어요!”
미호의 공간의 문을 이용해 순식간에 유명시의 거처까지 이동한 지안과 현지가 기쁨의 감정을 드러내며 환호했고, 레이가 바뀐 환경을 살피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일단 집으로 가자. 그전에 현지야, 나가서 레이가 쓸 만한 모자 하나 구해와.”
“네!”
대답과 함께 모습을 감춘 현지는 1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모자를 가지고 왔다.
토끼 귀가 달린 토끼 머리 형태의 모자를 가져온 나는 레이에게 모자를 씌워 주었다.
“레이야 답답해도 조금만 참아.”
“응!”
“어?”
의념이 아닌 육성으로 대답한 레이를 보며 잠시 당황하던 그때 지안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놀랍죠. 레이는 한국말을 할 수 있어요.”
“벌써?”
“물론 완전하지는 않지만,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 정도는 될 거예요.”
“이 정도면 천재 아니야? 한글을 배운 지 이제 1개월 정도 된 것 같은데? 아니, 육성으로 소리를 내는 것도 얼마 안 됐잖아?”
“제가 말했잖아요. 습득력이 천재 수준이라고. 거기다 레이의 경우 다른 마족들보다 훨씬 습득력이 빨라요.”
“레이 천재야!”
레이의 말대로 레이는 천재가 틀림없었다.
1개월 만에 한국어로 말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로.
“그래. 레이가 천재구나?”
“응! 히히-”
수아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 같다는 생각에 기분 좋은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그럼 가 볼까?”
“네.”
지안과 현지 레이를 데리고 방을 나선 나는 곧장 게이트로 향했다.
게이트 바로 옆에 지어져 있는 건물이라 얼마 지나지 않아 게이트를 통과할 수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 실장을 마주할 수 있었다.
“돌아오시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 근데 무슨 일 있어? 왜 이리 어수선해?”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게이트를 통과하기 위해 밖에 잠시 있었던 나는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음을 금방 느낄 수 있었다.
“그건 천천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일단 아버지랑 어머니부터 뵙고 이야기하자.”
“저기 그런데…… 이 아이는?”
레이를 보며 의문이 담긴 눈으로 묻는 김 실장을 보며 짧게나마 설명을 해주었다.
“이번 여정에서 알게 된 아이야. 내가 말했지. 마족이란 존재들이 존재한다고. 이 아이가 바로 마족이야.”
“네? 마족이라고요? 아무리 봐도 인간의 아이로 보입니다만?”
“그렇지? 근데 분명히 마족이야. 레이야 모자 좀 벗어 보겠니?”
“응!”
레이가 모자를 벗자 머리 위에 자그맣게 솟아 있는 뿔이 부각되기 시작했고, 그를 확인한 김 실장은 신기한 표정으로 뿔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뿔이 있네요?”
“그래. 인간과는 다르게 마족에게는 뿔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물론 뿔만 빼면 인간이라고 해도 되겠지만, 모든 마족이 레이처럼 인간과 비슷한 건 아니야.”
“정말 신기하네요. 저는 어비스의 주인이라길래 흉악한 괴물들을 떠올렸는데…… 전혀 아니었군요.”
“그 이야기는 차차 하도록 하고 일단 아버지와 어머니부터 뵈어야지. 어디 계셔?”
“두 분 다 서재에 계십니다.”
“그래? 그럼 조금 이따 봐. 아! 수아는?”
“수아 아가씨도 서재에 있습니다.”
“알았어. 가서 볼일 보고 있어.”
“네.”
김 실장의 인사를 뒤로하고 곧장 서재로 향하던 나는 지안과 현지에게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먼저 쉬도록 해.”
“네.”
“네.”
대답과 함께 급히 떠나는 현지와 지안을 보며 레이와 함께 서재로 향했다.
똑똑똑-
“아버지 저예요.”
“서, 선우냐? 들어오거라!”
노크와 함께 입을 열자 안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장 먼저 나에게 뛰어와 안기는 수아였다.
“수아야, 아빠 많이 보고 싶었어?”
“응! 이만큼 보다 더! 더! 보고 싶었어요!”
“하하하. 아빠도 수아가 정말 보고 싶었단다. 아! 아버지 어머니, 다녀왔습니다.”
“그래. 생각보다 오래 걸렸구나.”
“잘 다녀왔니? 어디 다친 데는 없고?”
“네, 잘 다녀왔어요. 응?”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던 나는 다리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감각에 고개를 내렸다. 그리고 레이를 보며 아차! 했다.
“아! 이쪽은 레이라고 이번에 제가 입양한 제 딸이에요.”
“응? 입양?”
“뭐라? 설마 또 사고를 친 것이냐?”
“아니에요. 이 아이는 인간이 아니에요. 마족이죠.”
“마족? 설마 그 어비스의 진짜 주인이라던 그 마족을 말하는 것이냐?”
“네.”
“오랜만에 돌아와서 이 아비를 놀리는 것이냐? 아무리 봐도 인간의 아이 것만 그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란 말이냐?”
역시 보통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정상이겠지?
아무리 봐도 레이는 인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정말이에요. 레이야 모자를 좀 벗어 보겠니.”
“응!”
레이가 모자를 벗자.
“헛!”
“뿔?”
아버지와 어머니가 레이의 이마에 있는 뿔을 보며 살짝 놀라시는 모습을 보이셨다.
“설명해 드릴게요. 그러니까 제가 그곳에 가서…….”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마계라는 곳에 도착한 후부터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마족들의 생활 방식이나 체계, 계급 등등 내가 그곳에서 겪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천천히 풀어가며 설명을 이어갔다.
“악마종 웨이브란 것이 있단 말이냐? 거기다 신과 같은 존재들이 존재하고?”
“네. 웨이브는 직접 겪어봤기에 정확히 말씀드릴 수 있지만, 신과 비슷한 존재. 그러니까 군주라는 자들은 직접 보지는 못했어요. 그리고 그들을 위협하는 바하므트란 존재 역시도 듣기만 했지 직접 보지는 못했고요.”
“어찌 그런 존재가 존재한다는 말이냐? 이거 큰일이구나. 네 말이 정말이라면 이건 인류에게 또 다른 재앙이 닥쳐온다는 말인데…….”
충격이 크신지 말을 계속 이어가지 못하시는 아버지였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그들이 인류에게 눈을 돌릴 것 같지는 않으니까요.”
“너무 장담하지 말 거라. 세상일이란 것은 항상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흐르는 법이니까.”
“저도 잘 알아요. 그래서 대비를 하려는 것이고요.”
“대비라? 정말 가능하겠느냐?”
“네. 벌써 마족들의 영지를 하나 차지한 저예요. 지금처럼 천천히 늘려가다 보면 그들에게 대항할 힘을 갖출 수 있게 되지 않겠어요?”
“그럼 다행이다만 이 아비는 걱정이 되는구나. 괜히 조용히 지내는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 같단 말이야.”
아버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괜히 마족들을 건드려 인류에게 눈을 돌리게 만들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언젠가 그들이 인류에게 시선을 돌렸을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가 레이를 데려왔잖아요.”
솔직히 말하면 레이를 데려올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레이를 데려와 인간의 사회를 가르치고 인간에 대한 좋은 감정을 품게 되면 후에 레이가 각성한 후 완전한 백작이 되었을 때 마족과 인간이 섞인 사회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가 뭘 어떻게 한다는 말이냐?”
“말했잖아요. 아직 어려 보여도 이 아이는 백작이라고. 적어도 이 아이의 영지에서만큼은 인간과 마족이 함께 지낼 수 있게 만들 수 있지 않겠어요?”
“말이 백작이지 그 힘은 아직 남작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어느 세월에 백작에 어울리는 힘을 갖춘단 말이냐? 마족의 수명이 만 년이 넘는다며?”
“아! 제가 설명을 아직 안 했네요. 마족의 경우 노력이 아닌 각성을 통해 순식간에 강한 힘을 얻게 된데요. 레이의 경우 그 잠재력이 굉장히 뛰어난 수준이라 각성만 하게 된다면 단번에 백작을 넘어 후작까지도 바라보는 힘을 소유할 거예요. 물론 경험이 좀 필요하긴 하겠지만요.”
집사의 말이 정말이라면 후작이 아닌 공작까지도 바라볼 수 있을지 몰랐다.
지금껏 마족 세계에서 이 정도로 수면기가 길었던 마족은 정말 드문 수준이라고 했으니까.
아니, 없을지도 모른다는 집사의 말에 기대를 가져보기로 한 것이다.
“그게 정말이냐? 그럼 다행이긴 하겠구나. 그럼 어서 입양 절차를 밟아야 하겠구나.”
아무래도 아버지는 전 인류가 사라지더라도 유씨 가문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았다.
내가 사라진다고 해도 우리 일가는 남아있을 거란 것에 기대감을 가지는 모양이었다.
물론 마족인 레이에게 그런 것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차차 가르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내 동생이 되는 거야?”
“응? 동생?”
수아가 레이를 보며 나에게 물어왔고, 그에 당황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들었는데.
“내가 동생이야?”
“응! 레이가 수아 동생이 되는 거야! 이제부터 언니라고 불러!”
“우와! 언니다!”
분명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500년의 삶을 살아온 레이가 이제 10살이 되는 수아에게 언니라고 부르는 것은 누가 봐도 잘못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둘은 이미 관계 정리가 끝난 듯 보였다.
“레이야, 언니랑 재밌는 거 보러 가자!”
“재밌는 거?”
“응! 다크 레이디!”
“갈래! 그거 보러 갈래!”
레이가 깨어난 지 10년이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허! 참…….”
수아가 레이의 손을 꼭 붙잡고 방을 나서는 모습을 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은 나는 아버지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 부탁드릴게요.”
“그래. 입양에 필요한 절차는 내 지시하도록 하마. 그리고. 수고했다.”
“네.”
* * *
“이제 말해봐.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아버지와 어머니를 뵌 후 형을 만난 나는 정말 어떤 안 좋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버지도 힘든 기색이 조금 보였지만, 형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식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듯 보이는 형은 마치 폐인처럼 보일 정도였다.
“혹시 기억나십니까? 떠나기 전 유명시를 넘길 수도 있다는 루머를 퍼뜨린 것을요.”
“어. 기억나. 하지만 그건 그저 소문을 퍼뜨린 것뿐이잖아.”
분명 기억하고 있었다.
정부가 관리하길 원한다면 유명시를 넘길 수도 있다는 소문을 퍼뜨린 적이 있었던 것을.
“모든 문제가 거기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말은 정부가 유명시를 관리하겠다고 나섰단 말이야?”
“그렇습니다.”
솔직히 예상도 못 했다.
아니, 그건 불가능했기에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이리라.
유명시를 관리한다는 것은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명시 관리의 시작은 바로 무력에 있었다.
1만이 넘는 S급 몬스터가 수호하는 유명시의 전력을 도대체 어떻게 대체하겠다는 거지?
아니,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멀리 죽음의 땅에 존재하는 악마종들은 어떻게 상대하려고?
지금까지 악마종들의 출현이 단 한 번도 없었던 이유는 내 지배를 받는 악마종들이 일정 기간마다 죽음의 땅에 들어가 악마종을 토벌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당장 죽음의 땅 토벌을 멈춘다면 오래지 않아 악마종들이 유명시 주변까지 다가올지도 몰랐다.
전생에서는 별로 출현하지 않았던 악마종들이었지만, 현재는 그때와는 많이 다른 상태였다.
죽음의 땅을 심하게 들쑤셔놨기에 악마종들의 영역이 많이 비어 있는 상태였기에 깊숙한 곳에 영역을 가지고 있던 악마종들이 더욱 넓은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천천히 전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내 탓이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충분히 지킬 수 있었기에 그리 한 것이었다.
만약 정부에게 유명시의 관리가 넘어간다면 더는 내가 지킬 필요가 없었고, 지켜주고 싶지도 않았기에 아마 큰 혼란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그게 가능하대? 자기들이 관리하는 게?”
“그것이…….”
“설마 정부가 다른 놈들의 꼬임에 넘어간 거야?”
“네.”
“허! 어이가 없네?”
이건 국내 기업을 몰아내기 위해 해외의 자본과 힘을 끌어들이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한마디로 대놓고 매국을 하겠다는 건데?
“어디야? 도대체 어떤 놈들이 꼬신 건데?”
“그게…… 미국을 중심으로 영국과 프랑스, 독일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내 생각과는 많이 다르네?”
“중국이야 이미 도련님의 손에 떨어진 상태고 러시아와 일본 역시도 예전과 다르게 도련님의 도움에 감사하고 있기 때문에 의리를 지키고 있는 상태죠. 거기다 중동 쪽이나 인도의 경우 유명의 지원을 받는 상태라 나서지 않은 거고요.”
“그럼 영국은? 영국도 내 도움을 받았잖아?”
얼마 전 영국의 중요 인물이 납치를 당해 도움을 준 적이 있었기에 좀 의문이었는데.
“그들의 경우 그걸 거래라 생각하고 있었던 듯합니다.”
“은혜를 원수로 갚네?”
어이가 없었다.
대가를 지불했다고 해도 분명 도움을 준 것은 틀림없었기에 더욱 황당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진행되는 중이야.”
“넘길 생각입니다.”
“뭐? 설마 유명시를 넘기겠다고?”
“네.”
이게 무슨 말이야? 유명시를 정말 넘기겠다고?
지금 들었던 그 어떤 이야기보다 유명시를 넘긴다는 말이 가장 황당했기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물론 완전히 넘기는 것은 아닙니다. 곧 찾아올 생각이니까요.”
“대책은?”
“물론 있습니다. C 구역에 도련님의 소환수를 잠시간 물려본 결과 순식간에 몬스터들이 C 구역을 점령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아마 유명시에 존재하는 모든 소환수들을 빼 버리면 유명시가 아주 시끄러울 거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S급 몬스터의 존재감으로 인해 몬스터들이 일정 구역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것뿐이지 지금 각성자들이 사냥하는 지역을 조금만 더 벗어나면 정말 지옥이 따로 없었다.
엄청난 수의 몬스터들이 득실거렸으니까.
나에게나 별것 아닌 수준인 거지 일반 각성자에게는 지옥이나 다름없는 장소.
그런 곳에 몰려 있는 몬스터들이 S급 몬스터들이 빠져나가는 순간 유명시를 향해 미친 듯이 몰려올 게 뻔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 그냥 무시해도 되잖아.”
“그게…….”
뒤이어 나오는 김 실장의 말을 들은 나는 황당하다 못해 화가 치솟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