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좀비가 됐다고요! 끝이 없어요. 아무리 패도 저만 힘들다니까요?”
“그 정도야?”
현지의 입에서 끝이 없다는 소리가 나왔다는 것은 쓰러뜨릴 방법이 없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제 마력을 계속 흡수해서 상처를 치료한다고요. 아니, 치료 정도가 아니라 재생 수준이에요. 순식간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고요. 결국, 저만 지치게 되는 거죠.”
“마력을 흡수해서 상처를 재생시킨다고? 그럼 너도 못 이긴다는 거네?”
“이길 수야 있죠. 단번에 숨통을 끊어버리면 되니까요. 물론 저도 온 힘을 다해야겠지만요.”
현지의 말대로라면 뚱이의 강함은 마족과 비교하면 백작급은 된다는 말이었기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내 전력이 생각보다 괜찮은 수준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백작 이상의 힘을 가진 부하가 둘, 자작급 혹은 그 이상이 일곱.
이 정도면 후작에 가까운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거기다 앞으로 각성을 통해 강해질 레이와 더욱 성장하게 될 현지와 지안, 그리고 마수들이 있었기에 당장은 어떤 위기도 헤쳐나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제 왕눈이랑 붙어봐.”
“또요?”
“다 테스트해 봐야지.”
“네.”
그 이후 현지는 왕눈이를 비롯한 펜릴, 니안, 샤크, 하임의 무력을 테스트해 봤고, 그 결과, 대부분이 룩산보다 살짝 위라는 평가가 나왔다.
뚱이를 제외하면 왕눈이가 가장 강했고, 나머지는 비슷한 수준으로 룩산의 힘을 넘어서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미호에게 미안해서 어쩌지?
나를 따라다녀야 했던 미호만 성장을 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미호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그건 내 착각일 뿐이었다.
미호 역시도 분신을 이용해 뿔을 섭취한 후였기 때문이다.
* * *
“이제 군주님이 아니라 아빠야?”
“레이는 어때? 아빠라고 부르고 싶어?”
“응! 아빠라고 부를래!”
레이의 의견을 묻고 진행한 것이 아니라 조금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레이는 싫지 않은지 곧장 아빠라 부르기 시작했다.
“좋아?”
“응! 아빠, 언니,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이 생겨서 레이는 좋아!”
레이에게도 아빠라고 부를 존재가 있었던 적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레이는 태어나자마자 수면기에 들어가 아빠라는 존재를 본 적은 없었다.
심지어 오빠도 마찬가지였다.
레이가 깨어나기 전에 각성에 실패해 죽어버렸기에 아빠와 오빠 둘 다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레이의 오빠라는 자의 경우를 보면 레이 역시도 각성에 실패할 가능성이 있긴 했지만,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경우 무리하게 각성을 시도해 그런 결과를 초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자연히 각성할 경우 실패 확률은 거의 없다고 해도 좋았지만, 그의 경우 자신의 아버지인 후작의 죽음으로 인해 가신들이 떠나가는 것을 참지 못하고 결국, 손을 대서는 안 되는 물건에 손을 대었다고 한다.
최상급 마수의 마석을 정제해 만든 각성석이 바로 그것이었는데, 집사에게 들어보니 정말 위험한 물건이었다.
마력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킴으로써 각성을 유도하지만, 문제는 육체가 마력을 견디지 못할 확률이 크다는 것 때문에 마족 사회에서도 금지된 물건.
살아남을 확률이 1%도 되지 않았고, 살아남는다고 해도 모두 각성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살아남는다고 해도 99% 이상이 폐인이 되어버리기 때문이었다.
만 명 중 한 명만이 제대로 된 각성을 한다는 것.
오리지널만이 각성석의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을 따져보면 마족 사회에서 금지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레이야!”
레이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사이 문이 열리며 수아가 들어왔다.
“언니다!”
수아를 보며 달려가 껴안는 레이를 보자 흐뭇한 감정이 올라왔다.
아무리 학교를 다닌다고 해도 그 외 시간에는 또래와 함께 놀지 못하는 수아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었는데, 이제 레이 덕분에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거기다 방학 동안에는 거의 집에만 있어야 했던 수아였기에 조금 미안한 감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빠! 레이랑 밖에 나가서 놀아도 돼요?”
“그럼. 단 너무 멀리 나가면 안 돼.”
“네! 히히-”
“나 저기 올라가 보고 싶어!”
창밖으로 멀리 보이는 장벽을 가리키며 말하는 레이.
며칠 전 이사가 끝난 평양 신도시의 저택에서 둘은 탐험을 하듯 여기저기를 쏘다니는 중이었는데 오늘은 장벽을 올라가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가 봐도 되죠?”
수아가 나에게 허락을 구하는 걸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은 나는 고개를 끄덕여주며 입을 열었다.
“대신! 조심해야 해.”
“네!”
둘 중 하나가 저기서 떨어진다고 해도 별일은 없겠지만, 그 모습을 목격하는 사람들은 깜짝 놀랄 거다.
100여 미터에서 아이가 떨어지는 것도 두려운 일인데 떨어진 아이가 아무렇지 않으면 좀 이상하지 않겠는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만약 밖으로 떨어지면?
안쪽은 몬스터가 존재하지 않지만, 밖의 경우는 달랐다.
수많은 몬스터들이 아직도 서식 중인 구역이었기에 정말 큰일이 날지도 몰랐다.
물론 아이들이 아닌 몬스터들이 말이다.
수아야 항상 정령이 붙어 다니기에 금방 다시 올라오겠지만, 레이는 아니었다.
어린아이가 몬스터를 찢어 죽이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펼쳐지겠지.
“조심, 또 조심해야 해! 알았지.”
“네!”
“네!”
대답한 후 손을 꼭 붙잡고 나가는 둘의 뒷모습을 보자 행복이라는 것이 절대 멀리 있지 않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 * *
“상황은?”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유명시 주변으로 몰려들기 시작하는 몬스터들 때문에 정부 관계자들이 계속해서 길드를 방문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얼마나 갈까?”
“오래가지는 않을 겁니다. 아직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 대처가 되는 모양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도 알게 될 겁니다. 몬스터를 정리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요.”
지금이야 약한 몬스터들이 몰려오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차 강한 몬스터들이 나타나기 시작할 거다. 물론 그것이 큰 문제라고 볼 순 없었다.
그들 중에도 S급 몬스터를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자들은 생각보다 많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들 같은 고급 인력이 쉼 없이 그곳에 처박혀 몬스터를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할 테고 결국, 그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문제가 하나둘 터져 나올 거다.
부상자가 나오는 거야 당연했지만, 사망자가 나오기 시작하면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거다.
물론 처음에야 숨기면 그만이라 생각하겠지만, 점차 사망자의 숫자가 불어나기 시작하면 소문이 퍼지기 시작할 테고, 그 결과로, 유명시에 거주하는 일반인들이 두려움에 떨기 시작할 거다.
“장벽 사용료는 어떻게 됐어?”
“일단 장벽에 대한 비밀을 슬쩍 흘려둔 상태입니다.”
“임프들이 힘을 불어넣어야 유지가 된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고?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어?”
“정보가 사실임을 확인하게 되면 유명이 유명시에서 완전히 손을 털어버린 걸 확신하고 더욱 긴 기간의 계약을 인심 쓰듯 던져 줄 거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
“물론입니다. 수작을 부리긴 했지만, 유명을 완전히 무시하기에는 그들도 겁이 날 겁니다.”
“얼마나 예상하는데?”
“최소 10년 정도 예상합니다.”
“그 정도나?”
약간의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손해는커녕 엄청난 이득을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명시 사용료가 얼마라고 했지?”
“연 50조로 5년 계약을 체결했기에 총 250조입니다.”
누가 뭐래도 유명시의 주인은 바로 나였다.
나는 그들에게 유명시를 완전히 넘긴 것이 아닌 유명시의 관리와 일부의 권한을 넘긴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에게 사용료를 받았는데, 그 금액이 총 250조였다.
물론 아직 전액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일단 1년 치는 받아 둔 상태였다.
“그것도 한 번에 받을 방법이 있을까?”
“계속 찔러보고 있기는 한데, 아무래도 많은 국가와 여러 기업이 얽혀 있다 보니 아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모양입니다.”
“어렵다는 거야?”
“아닙니다. 아마 이번 주를 넘기지 않고 연락이 올 것이라 예상 중입니다. 그쪽 입장에서는 최대한 빨리 일을 처리하는 것이 좋을 테니까요.”
아무래도 이번 일로 대한민국은 휘청거리겠지만, 반대로 유명은 엄청난 성장을 이룰 것 같았다.
안 그래도 평양 신도시를 발전시켜야 했는데, 발전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을 남들이 대신 대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평양 신도시는 엄연히 대한민국의 영토였지만, 유명시를 넘기는 대가로 정부와 협상한 결과 평양 신도시의 모든 권리가 유명으로 넘어왔기에 평양 신도시에 한해서는 정부의 개입도 없을뿐더러 세금 역시 없는 수준이나 다름없었기에 유명으로서는 이번 일이 오히려 큰 이득으로 돌아올 것 같았다.
“설마 노린 거야?”
“노렸다고 하기보다는 대책을 짜다 보니 이런 방향으로 진행이 된 것입니다.”
“저쪽은 얼마나 손해를 볼 것 같아?”
“많은 기업과 길드가 해체되고 직접적인 투자를 진행한 나라들은 크게 휘청이겠죠.”
“정부는?”
“피해를 보긴 하겠지만, 그들에 비하면 조족지혈입니다. 어차피 쏟아부은 금액 대부분이 정부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분간 좀 힘들기는 하겠지만, 큰 피해는 없을 겁니다. 다만 일반 서민들과 유명시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큰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됩니다.”
때는 이때다! 하고 들어간 자들.
그들에겐 정말 극심한 피해가 갈 거다.
특히 전 재산을 털어 유명시의 부동산에 투자한 자들은 일이 끝날 즈음에는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로 쫓겨나겠지.
우습게도 이번 일의 사태가 이렇게 커진 이유가 바로 그런 기회주의자들의 선동 때문이었기에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그놈들은 유명이 유명시에서 물러날지도 모른다는 유머가 도는 동시에 손익계산을 끝내고 집단을 이루어 행동에 나섰는데, 어이가 없게도 그런 집단의 수가 생각보다 많았다.
부동산 투기집단.
그들은 온라인 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움직이며 선동을 시작했는데, 우습게도 그들 중에는 별별 사람들이 다 모여 있었다.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부터 사업가, 연예인, 유명 크리에이터, 그 외에도 이런저런 유명인 등 심지어 재벌들까지도 그들과 연관되어 있을 정도로 엄청난 수준이었는데, 정말 사기꾼 집단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치밀하고 계획적으로 움직였다.
그들이 지금껏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보고받은 나는 혹시 지금 그들이 영화를 찍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하긴 영화보다 더욱 영화 같은 게 현실이니…….
“그런 걸 보면 아버지는 참 신기해? 남들은 조금이라도 더 먹겠다고 이렇게 난린데 아버지는 왜 그렇게 자꾸 퍼주려고 하는 걸까?”
“입장의 차이가 아니겠습니까?”
“입장의 차이?”
“그렇습니다. 회장님의 경우 이미 최고의 자리에 오르신 분이지 않습니까. 그들은 어떻게든 그 자리에 한 발이라도 걸치기 위해 어떤 짓이라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것이고 회장님의 경우 자리를 지켜야 하는 입장이니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최고의 자리에 오른 자와 그 자리를 노리는 자들의 입장과 성격이 다르다는 말.
아버지의 행동이 이제야 이해가 가는 듯했다.
“아버지가 연기를 하고 있다는 말이야?”
“그건 아닙니다. 회장님 역시 많이 변하셨으니까요. 예전의 회장님이었다면 그들이 송곳니를 드러내기도 전에 감히 입도 벌리지 못할 정도의 경고를 날리셨을 겁니다. 하지만 회장님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성격이 많이 유해지셨습니다. 물론 그게 그들에게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독이죠. 송곳니를 보이는 것은 상관없지만,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해야 하니까요.”
전이었다면 날뛰기 전에 고삐를 잡았겠지만, 지금은 날뛸 때까지 기다렸다 바로 목을 친다는 것이었다.
“유해지신 게 아니잖아? 내가 보기엔 더 무서워지신 것 같은데?”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유해지신 것도 사실입니다. 예전이었다면 일반 서민들은 생각조차 하지 않으셨을 테니까요.”
“그건 그렇네.”
형이 이빨을 드러낸 자들의 목을 칠 준비를 하고 있다면, 아버지는 서민들의 구제를 위한 일을 진행 중이셨다.
물론 형을 믿고 있기에 아버지가 직접 나서지 않는 것이었다.
만약 형이 조금의 실수라도 하는 순간 아버지가 전면에 나서서 일을 진두지휘하시겠지.
“그나저나 정말 어이가 없네. 별별 것들이 다 끼어들어 있잖아?”
“탐욕은 인간의 본능이니까요. 선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탐욕이란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요.”
“이용당하고 있는 자들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맞습니다. 이용당하는 자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 역시도 시작은 탐욕입니다. 이 일에 끼어든 사람 중에 투자하지 않은 사람은 없으니까요.”
선한 의도로 시작한 자들이 없는 것은 아닐 거다.
유명이 부당하다고 생각했기에 이번 일에 끼어들었겠지만, 그들 역시도 그로 인한 이득을 챙길 의도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떻게 될 것 같아?”
“정치인이나 유명인이라면 국민들이 등을 완전히 돌릴 테고, 연예인이나 유명 크리에이터의 경우 매장당하겠죠. 쉽게 말해 자신의 영역에 있는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이죠. 당연히 그 속에 재산도 포함되어 있을 테고요.”
“말 그대로 패가망신이네?”
“그렇죠.”
자신이 이룩해 놓은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
그것은 생각하는 것보다 가혹한 일이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릴 수 있을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