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4화 (134/214)

“시작됐네.”

“뭐가요?”

뉴스를 보다가 혼잣말을 내뱉자 현지가 궁금하다는 듯 물어왔다.

참고로 현지는 지금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내 소환수를 유명시에서 전부 철수시킨 이유라든가 유명이 왜 평양 신도시로 이동했는지조차도 하나도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다고 일부러 설명을 안 해준 것은 아니었다.

현지가 관심이 없었기에 딱히 설명해줄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뿐이니까.

물론 현지가 조금 바쁘기도 했다.

현지는 소환수들과의 대련을 통해 부족한 경험을 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최상급으로 올라선 마수 전부를 동시에 상대하는 중이었다.

자신과 비슷한 존재 혹은 그 이상의 존재와 전투를 해본 적이 거의 없었기에 최대한 힘든 상황을 만들어 전투 경험을 쌓는 중이었다.

“사망자가 나왔다잖아.”

“그게 왜요? 항상 나오는 거잖아요.”

“유명시에서 사망자가 언제 나왔는데?”

“안 나왔어요?”

내 소환수가 지키고 있던 시절에는 사망자가 나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 발생한 적도 없을뿐더러 사냥을 나간 대부분의 각성자들이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내 소환수 주변에서만 사냥했기 때문에 크게 다치는 경우는 있었어도 사망자가 나오는 상황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충분한 벌이가 되었기에 위험을 찾아 깊숙이 들어갈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망자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어. 부상자는 좀 있었지만, 그리고 그 부상자들도 대부분이 멀리 나갔다가 그런 거야. 유명시 주변에서는 한 번도 없던 일이라고.”

“그래요? 신기하네요.”

남의 일에는 관심이 전혀 없는 현지였기에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알고 싶지도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데요?”

하지만, 나와 있을 때는 조금 달랐다.

뭐랄까? 현지는 나에게 설명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냥 대화가 하고 싶은 걸까?

“조금 있으면 난리가 나겠지.”

“무슨 난리요?”

“생각해 봐. 네가 일반인인데 주변에서 몬스터에게 죽은 사람이 생겼어. 어떨 것 같아?”

“무섭겠죠?”

“맞아. 그럼 어떻게 행동할까?”

내 물음에 생각에 잠겨 있던 현지가 뭔가가 떠오른 것처럼 고개를 번쩍 들고는 입을 열었다.

“누군가에게 하소연하지 않을까요? 저처럼 도련님에게 어떻게 좀 해달라고 하거나.”

“맞아. 사람들은 이제 조금씩 불안에 떨기 시작할 거야. 지금이야 별것 아닌 일로 생각하겠지만, 점차 수가 늘어나면 그들은 결국, 정부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할 거야.”

“도와달라고요?”

“그래. 근데 과연 정부가 그들을 도와줄 수 있을까?”

“못 도와줘요? 왜요?”

“힘이 없잖아. 도와줄 힘이.”

“어? 그럼 그 사람들은 다 죽는 거예요?”

당연하다는 듯 입을 여는 현지를 보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왜 생각이란 걸 하지 않고 나오는 대로 내뱉는 걸까?

“죽긴 왜 죽어! 자신들을 도와줄 다른 자들을 찾아 나서겠지.”

“정부가 못 도와주면 누가 저 사람들을 도와줘요?”

“나 있잖아.”

“도련님이 왜 저 사람들을 도와야 하는데요?”

이게 정답일지도 몰랐다.

나를 배신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사람들.

그들을 도울 이유가 나에겐 조금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버릴 수도 없었다.

물론 언젠가 또다시 나를 욕하고 배신할지도 몰랐지만, 그렇다고 같은 인간인 그들이 그냥 죽어 나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나저나 현지 이것은 정말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현지는 강함을 얻은 대신에 너무 큰 것을 잃어버린 듯 보였다.

인간에 대한 감정 자체가 사라진 듯 보였기에 그것을 꼭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현지야. 너도 느끼지?”

“뭘요?”

“네가 변했다는 거.”

“네? 제가 변했다고요?”

“그래. 내가 보기에 넌 인간을 같은 종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같은 종족? 어?”

내 말에 조금 충격을 받은 듯한 현지를 보자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현지 역시 알고 있었을 거다.

자신을 인간이라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니, 인간이 자신과 같은 종이 아니라 인지하고 있던 사실을 말이다.

“도련님 정말 이상해요. 제가 왜 그동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이런 생각이 뭔데?”

“도련님이나 몇몇 사람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을 생명이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아니 생명이라고는 인식하고 있는데, 벌래? 동물? 아무튼 그런 취급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현지에 대해 하나의 가설을 세워두었는데, 그것은 바로 현지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면서 인간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해서 고양이었던 현지가 호랑이가 되어버림으로써 고양이에게 아무런 감정도 품지 않게 되었다는 것.

같은 고양잇과 동물이지만 호랑이가 고양이에게 품는 감정은 별것이 없었다.

먹이 아니면 아주 작은 호기심 정도?

이건 정말 큰 문제였다.

인간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불가능해질지도 몰랐으니까.

아니, 단순히 함께 생활하는 것은 문제가 없겠지만, 문제는 그들의 사회 속에 스며들지를 못한다는 거였다.

아직 앞날이 창창한 현지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행복하게 살 수도 있었던 현지였다.

이건 좀 아닌가?

아무튼, 그런 비슷한 삶을 살아야 할 현지가 평생 혼자 쓸쓸한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은 좀 문제였다.

“언제부터야?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야?”

“천마랑 싸운 후? 아니면 마족을 처음 봤을 때? 능력을 발전시켰을 때? 저도 모르겠어요. 정확히 언제부터 이랬는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하는 현지를 보던 그때 갑자기 지안이 떠올랐다.

설마? 지안이도?

“지안이 당장 오라고 해!”

지안이를 호출한 나는 지안이가 올 때까지 기다리며 현지를 진정시켜야만 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현지의 반응이 격했기 때문이었다.

변해버린 자신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어쩔 줄 모르는 현지.

그런 현지를 보며 가장 먼저 든 감정은 바로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나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무님! 저 찾으셨……? 응? 현지 왜 그래요?”

문을 벌컥 열어버린 지안은 말을 이어가다 멍한 표정으로 멈춰 있는 현지를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급히 다가왔다.

“지안아. 내가 너에게 뭘 좀 물어볼 거야. 숨기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야 해. 알았어?”

“네? 네. 도대체 무슨 일인데요.”

“너 혹시 최근에 이상한 것 느낀 적 없어?”

“이상한 거라뇨?”

“사람들을 보면 뭔가 느껴지는 게 없냐고?”

“음- 느껴지는 거라? 딱히 없었는데요?”

“사람들을 보면 느껴지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거야?”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내 물음에 의문을 품는 지안을 보자 물음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지안에게 현지에게 일어난 변화를 설명한 나는 이어서 지안에게 물어봤다.

“넌 어때?”

“저는 안 그런데요? 그리고 말이 좀 안 되지 않아요? 조금 강해졌다고 고차원적인 존재가 된다니요? 어차피 사용하는 힘은 성질만 조금 다를 뿐 시작은 마나잖아요.”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아무리 강해졌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힘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어째서 현지가…… 설마?”

그 이상한 틈.

그것 때문인가?

조금 이상하다곤 생각했다.

그곳에서 느낀 것들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육체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렇다 쳐도 분명 그때 느낀 대로라면 감정조차도 통제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현지야, 잘 생각해 봐. 너 그 틈에 들어간 후부터 바뀐 거 아니야?”

“아! 맞아요! 거기 들어간 후부터 조금 이상하긴 했어요. 뭐랄까? 감정이 사라진 듯한 느낌?”

설마 그 틈이 공간과 공간 혹은 차원과 차원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다른 차원인 거야?

만약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을 인간계라고 치면 그곳은 신계쯤 되지 않을까?

그래서 현지가 인간이라는 한계를 벗어나 인간에게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됐다고 한다면 조금은 납득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째서 현지가?

아무리 강해졌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신이 될 수 있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기에 이것에 대해서는 천천히 시간을 두고 생각을 해봐야만 할 것 같았다.

“너. 정말 위험한 상황이 아니면 다시는 그 틈으로 들어가지 마. 절대로! 알았어?”

“네.”

그 틈에 대해서 밝혀내기 전까지는 절대 그곳에 다시 발을 들이면 안 될 것 같았다.

만약 현지가 계속 그곳에 발을 들일 경우 현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를 잠식했기에 현지에게 몇 번이고 다짐을 받아야만 했다.

* * *

“헉- 헉- 이거 정말 괜찮은 건가?”

“말할 힘 있으면, 헉- 헉- 하나라도 더 처리하라고!”

유명시의 장벽 앞에는 전 세계 각지에서 모인 길드들의 방어선이 존재하고 있었다.

“시발! 쉴 틈이 없잖아! 지원은 도대체 언제 오는 거냐고!”

계속해서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처리하던 자들의 표정은 좋지 못한 상태였다.

벌써 몇 시간째 쉬지도 못한 채 몬스터를 막아내야 하는 그들은 지쳐 쓰러지기 직전의 상태로 보였는데.

“지원이 아니라 교대를 해줘야지! 난 이제 10분도 아슬아슬하다고!”

“아! 저, 저거!”

“헉! 시발! 또 몰려오잖아!”

“끄, 끝이 없어!”

천여 명에 가까운 각성자들이 성벽 앞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일렬로 늘어서서 몬스터를 막아내는 도중임에도 여기저기서 안타까운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냥 성벽 위에서 요격하면 안 되는 거야? 저거 엄청 튼튼하다며? 들어보니까 S급도 겨우 흔적을 남길 정도라며? 왜 우리가 나와서 이래야 하는 거냐고?”

“이 병신아! 그러다 뚫리면? 그럼 저 안쪽에 있는 사람들 전부 뒤진다고! 생각 좀 하고 말해!”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시발! 이러다 내가 먼저 죽게 생겼다고!”

여기저기서 싸우는 듯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며 각성자들의 불만이 치솟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큰 문제가 발생할지도…….’

방어선의 맨 뒤쪽에는 한 명의 여성이 그들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메리 톰슨.

저스티스 길드의 부길드장인 그녀는 무한히 밀려오는 몬스터를 막아내는 길드원들을 보며 고민에 빠져 있었다.

이대로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길드 연합 자체가 내부에서 무너질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녀가 나서서 길드원들이 한 숨돌릴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을 벌어줄 수도 있었지만, 문제는 그녀 역시도 지금 심하게 지친 상태라는 것이었다.

그녀의 역할은 드문드문 나타나는 S급 몬스터를 처리하는 일이었다.

지금이야 S급 몬스터가 잠시 모습을 보이지 않아 그나마 조금 쉬는 것이 가능했지, 조금만 지나면 다시 S급 몬스터가 출현하기 시작할 거다.

그때부터는 그녀 역시 저들과 다르지 않은 상황이 닥칠 거다.

최대한 빠르게 S급 몬스터들을 정리하지 않으면 일반 길드원들에게서 피해가 발생하기 시작할 테고, 최악의 시나리오로 가는 길이 만들어지리라.

물론 S급 몬스터를 막아내기 위해 대기하는 S급 각성자가 그녀 혼자인 것은 아니었다.

이곳에는 지금 무려 12명의 S급 각성자가 대기 중이었지만, 그 12명조차도 지금 그녀와 같은 힘겨운 상황을 겨우 견디며 악전고투 중일 뿐이었다.

‘도대체 그는 어떻게 이 많은 몬스터들을 막아내고 있었던 거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껏 이곳에서 처리한 몬스터의 수가 무려 십만 단위였다.

겨우 10일 남짓한 시간 동안 이곳을 향한 몬스터의 수가 십만 단위였기에 지금 그녀뿐 아니라 길드 전부가 당황하는 중이었다.

어째서 이렇게 많은 몬스터가 몰려드는가?

그때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는가?

‘만약 그가 정말 이 많은 몬스터를 억제하고 있었던 것이라면…… 우리는 절대 열지 말아야 할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것일지도…….’

그녀는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는 지금조차도 시작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불길함이 들었다.

처음에는 그저 기뻤다.

이곳은 전 인류에게 꿈의 도시였다.

일정 수준 이상의 각성자는 이곳에서 막대한 수입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안전까지도 보장을 받는 그런 곳이었고. 기업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천혜의 자원이 무한정으로 묻혀 있는 유토피아나 다름없었으니까.

지금도 계속해서 발견되는 광물들과 신소재들.

그것은 전 세계가 이곳을 절대 포기하지 못하게 만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그 모든 것들이 인류를 유혹하는 독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독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이곳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을 테니까.

유명.

전 세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초거대 공룡기업.

그런 엄청난 기업이 이곳을 포기했다는 것은 그만큼 큰 위험이 존재한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그걸 간과한 거야. 그들이 물러나는 진짜 이유를 알지 못하는 지금 우리는 독을 든 잔을 들고 축하를 하고 있을 뿐인 거야.’

물론 그녀 역시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아니, 그녀뿐만 아니라 길드 연합의 수뇌부들 대부분이 알고 있었다.

악마종.

그 존재가 저 너머 어딘가에 수도 없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지 않을 뿐이었다.

그들이 지금 이곳에 투자한 금액이 천문학적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계속해서 어마어마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었기에 앞으로 다가올 위험을 애써 외면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직까지는 그리 큰 수준의 피해는 입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어떨지…….’

점차 지쳐가는 길드원들을 보며 그녀는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 최고의 길드라 칭송받는 저스티스조차 이럴진대 다른 길드들은 어떨까?

벌써 사망자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요즘 한숨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전방에 S급 출현!”

앞쪽에서 터져 나온 외침에 그녀의 몸이 절로 반응하며 그대로 앞으로 치고 나갔다.

“다들 조금만 힘내! 이제 교대가 얼마 남지 않았어!”

그녀 역시도 교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계랭커 상위권에 위치한 그녀의 육체가 조금만 더 쉬자고 비명을 질러대며 그녀의 정신을 갈아먹는 중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