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순간이동?”
메리 톰슨들은 자신들이 순식간에 성벽 앞에 도착한 사실을 깨닫곤 놀라움을 터트렸지만, 임프는 달랐다.
태연함을 유지하며 성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고, 이어서.
“뀨!”
“허!”
“저게 정말 임프라고?”
견고해 보이던 성벽에 거대한 구멍이 뚫려버린 것.
“임프가 만들었다는 말이 사실인 모양인데?”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성벽 바깥의 상황이 보이자 메리 톰슨이 급히 외쳤고 그들은 어떤 상황이었는지 깨달았다.
뚫린 구멍을 통해 상황을 파악한 그들은 곧바로 움직여 마수와 격렬한 치루는 각성자들을 돕기 위해 움직였다.
“아! 임프야. 저놈이란다. 저놈을 처리하는 데 도움이 필요해.”
“뀨!”
메리 톰슨의 말에 임프가 허공에 손을 뻗은 순간이었다.
쿠구구구구-
“응? 무, 뭐야?”
마치 대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출렁거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낀 각성자들과 몬스터들 마지막으로 마수들이 멈춰섰고, 이어서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각성자들을 제외한 몬스터와 마수들의 몸을 타고 모래가 놈들을 속박해 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정말 이상한 것은 천천히 몸을 타고 올라오는 모래를 보면서도 몬스터와 마수들이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
그리고.
퍼억- 퍽- 퍽-
몬스터와 마수들을 완전히 감싸버린 모래 속에서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곤 모래 안쪽에서 체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이게 뭐야?”
여기저기서 의아한듯한 말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눈으로 직접 봤음에도 지금 현상에 대해 누구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수천이 넘는 수의 몬스터들이 순식간에 핏물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아니, 몬스터뿐 아니라 마수들까지도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처리되었다는 것은 그들이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단 한 명만 빼고 말이다.
메리 톰슨.
그녀는 지금 눈앞에 존재하는 이 작은 생명체에 대한 의문에 머릿속이 복잡한 상태였다.
그녀는 다른 각성자에 비해서도 마력에 매우 민감한 체질을 타고났기 때문인데.
그녀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저 앞에 가만히 서 있는 작은 존재에게서 뿜어져 나왔던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던 엄청난 마력을 말이다.
자신의 마력의 수백 배에 달하는 막대한 마력뿐만 아니라 그녀를 제외한 다른 각성자들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마력을 사용했다는 사실에 놀란 그녀는 충격과 공포에 질려 어떤 상상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만약 이 존재가 인류를 적으로 돌리게 되면 어떻게 될까?
인류가 멸망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거다.
단 며칠이면 충분하리라.
이 작은 존재를 막을 수 있는 인류는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을 거란 사실.
아니 모든 인류가 힘을 합쳐도 이 작은 존재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지금 두려움에 질려 어떠한 행동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뀨뀨!”
가만히 서 있던 임프가 갑자기 바닥에 쪼그리고 앉는 모습을 보며 마른 침을 꼴깍 삼킨 그녀는 임프의 이어질 행동을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았는데.
쪼그려 앉은 임프가 등에 메고 있던 이상한 주머니를 활짝 펼치자 땅속에서 마석이 마구 솟아나 그 안으로 사라지는 모습 때문이었다.
“저게 다 들어갈 리가…… 들어가네?”
“그러게? 뭐지?”
“아! 가끔 발견된다던 그 유물 아니야? 무한의 주머니? 그거!”
“아!”
마석을 모두 주머니 안에 담은 임프가 몸을 일으키고는 메리 톰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뀨우!”
마치 잘 있으라는 듯 손을 흔드는 임프는 갑작스럽게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것도 조금 전 성벽에 뚫어 놨던 구멍까지 메워 놓은 채로 말이다.
“하- 하- 하- 이거 꿈 아니지?”
“그러게? 꿈인가?”
그녀의 말에 대답한 하인츠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볼을 향해 손바닥을 내리쳤다.
짝-
“아픈데?”
하인츠는 꿈이 아니란 사실이 더욱 믿기지 않는지 어이없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그 임프는 도대체 뭐였을까?”
메리 톰슨의 의문에 하인츠가 입을 열었다.
“당연히 유선우의 소환수 중 하나겠지. 얼마 전에 장벽에 에너지 채워준다고 임프들 많이 들어왔잖아.”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
“그럼?”
“저렇게 강한 임프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냐고!”
괜히 하인츠에게 화풀이를 하는 메리 톰슨이었는데, 그녀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조금 전 나타났던 임프는 보통의 하이임프가 아니었다.
몰래 임프들 사이에 껴서 유명시에 들어온 하임이었다.
매일 현지와 대련하는 것이 싫었던 하임이 임프들 사이에 껴서 몰래 유명시에 들어온 것.
이 사실은 아직 선우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 * *
“뭐? 하임이 임프들 사이에 껴서 몰래 유명시에 들어가 난리를 피웠다고?”
“난리가 아니라 각성자들을 조금 도와준 모양입니다.”
“그게 난리지! 설마 일에 차질이 생기는 건 아니겠지?”
어이가 없었다.
요즘 계속되는 현지와의 대련 때문에 살짝 짜증이 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유명시에 들어가 장난을 칠 줄을 몰랐기에 더욱 어이가 없었다.
“그건 아닙니다. 오히려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뭐? 도움이 된다고?”
“네. 하임의 힘을 목격한 자들이 임프로 변한 신을 봤다는 소문을 내는 모양입니다.”
“신이라고?”
김 실장의 말을 들은 나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게 힘을 좀 과하게 쓴 모양입니다. 수천의 몬스터와 악마종 두 마리를 한순간에 쓸어버리는 바람에 그를 목격한 자들이 그런 소문을 퍼트리는 중인 모양입니다.”
“그게 왜 도움이 되는데?”
“지금껏 그런 존재가 유명시를 보호하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죠. 그런 존재가 방어하던 유명시를 포기한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 많은 자가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지금 유명시를 차지한 자들은 유명이 물러난 이유가 대중들의 비난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당연하겠지.
겨우 그런 이유 때문이라곤 생각하지 못할 거다.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단체가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나라의 비난 때문에 물러났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래서?”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유명시를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나왔습니다.”
“호오- 정말?”
“네. 아무래도 유명시를 방어하는 길드들 입장에서는 불안할 테니까요.”
유명시에 자금을 투입한 국가들과 기업이야 최대한 버틸 때까지 버티겠지만, 길드는 그들과 입장이 달랐다.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피해를 보는 곳이 길드였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힘이 줄어드는 것을 직접 느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곤란한 처지가 되겠지.
“얼마나 남았을까?”
“앞으로 3주 정도면 정말 오래 버텼다고 할 수 있겠죠.”
악마종이 출현하기 시작한 지금 그들은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된 상태였다.
앞에서는 몬스터와 악마종들이 그들을 막아서고 있었고, 뒤로는 국가들과 기업이 그들을 채찍질하고 있었기에 굉장히 난감한 상태일 거다.
유명시에 자금을 쏟아부은 각국과 기업들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듣기로는 벌써 투입된 금액이 조 단위를 훌쩍 넘어섰다는 통계가 나왔기 때문이다.
“지켜보자고.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네.”
* * *
“포기해야 해.”
“메리! 그 이야기는 그만하라고 했잖아!”
“그럼 어쩌겠다고! 잘못했다가는 길드원들이 전부 죽어버릴 거라고! 아니 이대로라면 길드원들이 먼저 떠날 판이라고!”
존 록펠러의 집무실에서 고함이 터져 나온 지 벌써 한 시간이 지났지만,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조금만 견디면 돼! 분명 끝이 있을 거라고!”
“끝? 그래, 끝이 있겠지. 우리의 파멸이라는 끝이!”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도대체 뭘 봤길래 이러는 거냐고! 신이 나타났다는 소문?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믿는 거야?”
“직접 봤다고 했잖아! 분명 그 존재는 우리가 알던 모든 것을 초월한 존재였다고!”
최상급 마수란 존재를 직접 목격한 메리 톰슨은 두려움이라는 늪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메리! 제발 그만 좀 해! 길드 연합에서 10강과 그에 준하는 존재들을 항상 대기시키겠다고 합의를 한 상태라고! 악마종이 나타나도 충분히 처리할 수준의 강자들이 그곳을 지키기로 했다고!”
“10강? 그 존재 앞에서 10강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나는 돌아갈 거야! 이곳에 있다가는 분명 얼마 안 가서 모두가 죽을 거야!”
“메리…….”
메리를 보는 존의 눈에는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다.
항상 빛나던 그녀가 지금은 패배자의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언제나 자신감 넘치던 그녀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그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수천의 몬스터와 악마종 둘?
자신이 나선다면 그것들을 쓸어버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는 그녀가 말하는 초월적인 존재와 자신의 차이가 능력에서 벌어진 차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은 대인전에 특화되어 있기에 시간의 차이가 존재할 뿐 힘에서 오는 차이는 얼마 없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아니, 1:1로 붙는다면 자신이 더욱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유명은 분명 뭔가를 숨기고 있어. 그런 존재가 있음에도 이곳을 포기해야만 했던 무시무시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그래. 그런 이유가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니야. 하지만, 그들이 물러난 이유는 홀로 감당하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야. 정말 그 누구도 막지 못할 위기였다면 그들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버리고 떠났겠지.”
타당한 이유였다.
도저히 막지 못할 정도였다면 그들은 대한민국을 버리고 떠났겠지만, 그들은 떠나지 않은 채 대한민국에 남아 새로운 게이트를 차지했을 뿐이었다.
“맞아. 나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야. 그런데도 불안하다고. 분명 저 너머 어딘가에 우리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괴물들이 득실거리고 있을 거라고! 그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을 보호할 요새를 짓기 위해 시간을 벌려는 거고!”
“메리……. 조금 쉬는 게 좋겠어. 네가 너무 힘들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조금 쉬고 나면 너의 생각이 얼마나 허황된 이야긴지 알 수 있을 거야.”
존의 말에 메리는 대답도 하지 않고 집무실을 벗어나 버렸다.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존에게 화가 잔뜩 난 채로.
* * *
“도련님. 저스티스 길드의 부 길드장이 찾아왔습니다.”
“저스티스? 메리 톰슨 말이야?”
“네.”
“왜?”
“묻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이것 봐라? 직접 찾아왔다고?’
이유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직접 찾아올 줄은 몰랐다.
“음- 어떻게 할까나?”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김 실장은 내가 그녀에게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야?”
“물론입니다.”
“어째서?”
“그들을 더욱 흔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지 않을까?”
이유를 설명함으로써 길드 연합을 흔들 수도 있겠지만, 그 반대가 될지도 몰랐다.
이쪽에서 쉽게 이유를 설명해 준다면 그들이 내 말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영상을 보여주면 그런 문제는 사라질 겁니다.”
“그걸 벌써 공개하자고?”
“그것이 아니라 그녀에게만 보여주는 거죠.”
“그게 효과가 있을까?”
“없진 않을 겁니다. 물론 길드 연합에서 그녀의 말을 믿지 않을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진짜는 영상을 공개한 후니까요.”
“더 큰 폭발력을 얻기 위해서?”
“네.”
괜찮은 생각 같았다.
그녀가 전하는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겠지만, 마음속에 불안감을 심어주는 것은 가능하리라.
불안감은 영상이 공개되었을 때 폭발하듯 터져 나와 그들의 머릿속에 더욱 강한 두려움을 심어줄 테고 그 결과, 그들은 더욱 쉽게 유명시를 포기하게 될 거다.
“만나 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 * *
“오랜만에 뵙네요. 유선우입니다.”
“바, 반가워요. 선우 씨.”
“그런데 무슨 일이신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해 그녀에게 물음을 던지자 역시 그녀는 바로 방문한 이유를 말했다.
“이유를 묻고 싶어서요. 유명이 철수한 진짜 이유.”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유명은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원해서 유명시에서 철수한 것입니다.”
이게 진짜 이유였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원했기에 유명은 유명시에서 철수한 것.
물론 이것을 믿지는 않겠지만.
“누가 그 말을 믿을까요? 유명이라는 초거대 공룡기업이 이런 작은 나라의 국민들이 원한다고 그 막대한 이득을 포기한다고요?”
“사실입니다만?”
“제가 듣고 싶은 것은 진짜 이유입니다. 유명이 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
진짜 이유를 말했음에도 믿지 않으니 나로서는 가짜 이유를 만들어 내는 수밖에 없었다.
“제가 왜 그것을 알려드려야 하죠?”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저는 저희 길드원들이 죽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요.”
“허! 뺏어갈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이유를 묻는 다라? 황당하네요.”
메리 톰슨을 만난다는 것이 언짢은 상태였기에 말이 좋게 나가지는 않았다.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네요.”
솔직히 말하면 그녀는 잘못한 것이 없었다.
아니 저스티스 길드 자체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것이 맞는 말이겠지.
저스티스 길드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유명시를 빼앗은 후 섭외했으니까.
한마디로 그들은 유명시를 빼앗는 데는 협력하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이유라? 정말 듣고 싶으세요?”
“네. 꼭 들어야만 합니다.”
“어쩔 수 없네요.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당신과 저스티스의 길드장만 알고 있어야 할 겁니다.”
“제 입은 존을 제외하고는 열리지 않을 것입니다.”
내 앞에서 다짐하는 그녀를 보던 나는 표정을 굳힘과 동시에 입을 열었다.
“혹시 몬스터 웨이브를 겪어 보셨습니까?”
“물론입니다.”
“저희가 물러난 이유는 바로 그 웨이브란 것에 있습니다.”
그녀는 내 말에 넘어가 존을 비롯한 길드 연합 수뇌부의 가슴속에 불안감이라는 씨앗을 심어버릴 거다.
비밀은 지켜지지 않을 테니까.
아마 그녀가 존을 만나는 순간 길드 연합 수뇌부에 그녀가 들었던 똑같은 말이 전해지리라.
이쪽에서 준비한 이중 스파이를 통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