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7화 (137/214)

“웨이브요?”

“네. 조금 다르긴 하지만 악마종 웨이브를 겪어야 했습니다. 천여 마리가 넘는 악마종이 미친 듯이 몰려오더군요.”

“천? 악마종이 천 마리가 넘는다고요?”

“네. 저희는 지금껏 두 번의 웨이브를 막았습니다. 유명시가 완전히 넘어간 시점이 바로 두 번째 웨이브를 겨우 막아낸 후였습니다.”

경악을 숨기지 못하는 메리 톰슨을 보며 잠시 텀을 둔 나는 이어서 입을 열었다.

“유명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하나의 숲이 존재합니다. 저희는 그곳을 죽음의 땅이라 부르고 있는데, 그곳에는 엄청난 수의 악마종들이 서식하는 중이더군요.”

“죽음의 땅?”

“알고 계시겠지만, 저에게 악마종 십여 마리 정도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죠. 그곳에 전초 기지를 만들고 악마종을 토벌하기 시작한 것이 이 일의 발단이었습니다.”

내 잘못을 슬쩍 흘리는 것으로 이야기에 신빙성을 더한 나는 이어서 입을 열었다.

“꽤 많은 수의 악마종을 토벌했을 무렵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악마종들의 결집이었죠.”

“악마종들이 모이기 시작했다는 말인가요?”

“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수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순식간에 정리가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죽음의 땅 깊숙한 곳은 달랐습니다. 초입과 다르게 제가 살필 수 없었기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 말은?”

“네. 천여 마리의 악마종들이 결집해 버린 것입니다.”

“마, 말도 안 돼……. 지금 그 말을 저보고 믿으라는 말인가요?”

놀라서 제대로 말도 이어가지 못하던 그녀는 금방 정신을 차리고는 내 말에 거짓이 없는지 판단하기 위해 나에게 물었다.

“제가 왜 거짓을 말하겠습니까? 조금 있으면 모두 밝혀질 텐데?”

“아!”

“그리고 저에게는 증거가 있습니다.”

“증거라면?”

“그때의 상황을 찍어 두었던 영상이죠.”

“저에게 보여주실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김 실장!”

“네. 도련님.”

“영상 보여드려.”

“알겠습니다.”

김 실장은 손에 들고 있던 태블릿 PC의 영상을 재생시킨 후 메리 톰슨에게 건넸다.

“아! 이, 이게 무슨…….”

이미 편집이 끝난 영상이었기에 영상 속에는 마족의 모습이 조금도 담겨있지 않았다.

“이제 좀 믿겨 지시나요? 참고로 그 영상은 두 번째 웨이브를 촬영한 영상입니다. 안타깝게도 촬영 장소였던 성벽은 모두 무너져 흔적도 남지 않을 정도로 박살이 난 상태입니다. 막아내는 데 힘이 좀 들었거든요.”

영상의 재생이 끝났음에도 그대로 멈춰서 입을 다물지 못하는 메리 톰슨은 정신을 차리고는 나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입을 열었다.

“다, 당신이 지금 무슨 일을 저지른 건지 아, 아는 거예요?”

“설마 이것이 모두 제 탓이라는 건가요?”

“당신이 악마들을 끌어들였어!”

“아니요. 저는 어차피 일어날 일을 조금 앞당겼을 뿐입니다. 제가 그들을 도발했기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시면 안 되죠. 저것들이 인류의 존재를 알게 되는 순간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이 일은 어차피 당신밖에 모릅니다. 아! 당신이 말을 듣게 될 존 록펠러도 있군요.”

“이익!”

“그리고 어차피 이 영상은 평생 공개되지 않을 겁니다.”

“당신 때문에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의 사람들이 죽어 나갈 건 생각하지 않는 건가요!”

벌떡 일어나며 소리치는 메리 톰슨을 보던 나는 표정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그게 왜 제 탓이죠? 그건 당신들 탓입니다. 그곳을 가지겠다는 의지를 드러내지 않았다면 전 아직도 저곳에서 악마종들을 막아내고 있었을 테니까요.”

“다, 당신은 막아낼 수 있다는 말인가요?”

“그건 저도 모릅니다. 점차 수를 불리는 중이라 어디까지 막을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다만 사람들이 피할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었겠죠.”

“그, 그럼 막아요! 어서!”

“제가 왜요? 저는 이제 그곳을 당신들에게 넘겨준 상태입니다. 막는 건 당신들이 알아서 처리할 문제죠.”

절망.

그녀의 얼굴에는 절망이 내려앉은 상태였다.

“이, 이렇게 부탁드릴게요. 제발 막아주세요.”

고개를 숙이며 부탁하는 그녀를 보자 진심으로 사람들을 걱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 대답은 변하지 않았다.

“싫어요. 저는 이제 그곳에서 완전히 손을 뗄 생각이거든요.”

“그곳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불쌍하지도 않아요?”

“불쌍하죠. 하지만 어쩌겠어요. 이미 제 손을 떠난 일인데?”

내 목적은 단순히 유명시를 되찾고 국민의 마음을 돌리는 것만이 아니었다.

인류 멸망의 위기가 닥쳤고, 그것을 막아낼 수 있는 존재가 유명뿐이라는 사실을 전 세계에 각인시키는 것이 이번 일의 진짜 목적이었으니까.

“그만 돌아가시죠. 아! 그건 주시고요.”

“아-”

“멀리 못 나갑니다. 그럼.”

끝도 없는 절망감에 자리에 주저앉아 멍하니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는 그녀를 보자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애써 무시하며 자리를 떠야만 했다.

조금 미안하긴 하네.

그나저나 이쯤 되면 악당 아니야?

‘뭐 어때? 예전이나 지금이나 난 여전히 악당인데.’

* * *

“오! 생각했던 것보다 강한데?”

TV에서 재생되는 영상을 보던 나는 존 록펠러가 생각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최하급 마수이긴 했지만, 그런 마수를 홀로 4마리나 처리할 수 있다는 건 그의 힘이 최소로 잡아도 하급 마수 정도는 된다는 거였으니까.

아니, 순식간에 4마리의 최하급 마수를 쓰러트리는 걸 보니 중급 마수까지도 노릴 수 있어 보였다.

“10강의 수준이 생각했던 것보다 높은 건가? 아니면 존이 압도적으로 강한 걸까?”

전생의 10강은 이렇게 강하지 않았다.

몇 년 후의 10강조차 하급 마수를 겨우 처리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상무님이 예상했던 것들이 모두 뒤틀리겠는데요?”

함께 영상을 보던 지안이 나를 보며 물어왔다.

“존 혼자만 독보적으로 강한 거라면 상관없겠지만, 만약 10강이라는 자들의 수준이 모두 저 정도면 문제가 되긴 하겠어.”

“어쩌실 거예요?”

“방법이야 있긴 한데…….”

분명 저 영상은 유명시에서 살아가는 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공개했을 거다.

마수 따위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다고 홍보를 하기 위해 저 영상을 찍었을 테니까.

“직접 움직이시게요?”

“내가 직접 움직일 필요 있나? 그냥 죽음의 땅에 뚱이나 왕눈이를 보내면 간단한데.”

최상급 마수가 죽음의 땅 깊숙한 곳에 자리를 잡고 존재감을 퍼트리면 그곳에서 살아가는 마수들의 대이동이 시작될 거고, 그로 인해 유명시 쪽으로 이동하는 마수들의 수가 엄청나게 늘어날 거다.

“그러다가 상무님이 한 일들이 알려지면 큰일이잖아요.”

“알려지겠냐? 그냥 미호를 통해서 아무도 모르게 보내면 그만인데.”

현지나 지안이 입을 열지 않는 이상은 누구도 알지 못하리라.

“그건 맞지만, 영화 같은 거 보면 꼭 알려지잖아요.”

“그건 영화니까 그런거고.”

“언제는 현실이 더 영화 같다면서요?”

“그것도 증거가 있을 때나 그런거고. 증거가 남겠냐?”

“그렇긴 하네요.”

그나저나 왕눈이를 보내면 되겠지?

왕눈이라면 내 의도에 맞춰서 시기를 조절할 수 있을 테니 제격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10강 수준을 제대로 파악해 두는 것이 좋겠는데? 음- 현지 좀 불러줄래?”

“그럴 거 있어요? 제가 나서도 충분한데요?”

“네가?”

“지금 저 무시하는 거예요?”

“그건 아닌데……. 가능하겠어?”

은신이 필요한 일이란 생각에 지안에게 묻자 새초롬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 정도는 유명시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가능하거든요!”

“아! 그렇네?”

지안의 말에 내가 너무 멍청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명시정도면 어디서든 그들의 힘을 확인할 수 있다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나 역시도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상무님은 가끔 보면 조금 이상해요. 엄청 똑똑한 것 같다가도 이럴 때 보면 너무 이상하다고요. 저나 현지 말고 상무님도 가능한 일이잖아요!”

“미안. 내가 좀 착각하고 있었네.”

직접 움직인 적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았다.

쓰지 않으면 녹슨다는 말이 이래서 생긴 모양이었다.

“그럼 수고 좀 해줘.”

“네. 바로 다녀올게요.”

“그래.”

지안이 나가고 난 후 나는 오랜만에 장로들을 호출했다.

그들은 지금 김 실장을 도와 열심히 머리를 짜내는 중이었는데, 그들의 충성심을 확인할 겸 그들에게 지배를 걸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장로들에게 내 지배를 걸게 되면 그들은 알아서 강해질 거다.

10강보다 강했던 그들이지만, 지금 보면 비슷한 수준처럼 보였기에 그들은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현지와 지안의 경우 노출을 최소화해야 했기에, 만약 10강과 충돌이 발생할 경우 그들이 나서게 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내 소환수를 투입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상황이 조금 심각해질 수도 있었다.

인간과의 분쟁에서 소환수를 사용하면 많은 자가 그에 불안함을 느끼고 반발할 테니까.

* * *

“존이 강하다는 건 인정할게. 하지만 앞으로 닥칠 위기는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야.”

“메리! 정말 그의 말을 믿는 거야? 네가 본 것은 조작된 영상일 뿐이라고!”

“조작? 내가 겨우 그런 것도 구별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분명 편집이 된 부분이 있긴 했지만, 영상 자체는 분명 진짜였다고!”

각성자는 일반인과 비교하면 초월적이라 말해도 좋을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진짜와 가짜를 판별할 정도로 정확했기 때문이다.

“메리! 정말 왜 이러는 거야? 지금 상황이 많이 불안하다는 건 인정해. 하지만 우린 충분히 그 위기를 넘길 힘을 가지고 있다고!”

“수천의 악마종을 무슨 수로 이겨낼 건데?”

“하아-”

존 록펠러.

그는 변해버린 메리 때문에 고민이 많은 상태였다.

아니,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 당시 메리와 함께 임프를 목격했던 자들 대부분이 지금 메리와 같은 상태였다.

한순간에 수천의 몬스터를 쓸어버린 괴물 같은 임프를 목격한 길드원들 대부분이 메리와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존을 비롯한 다른 길드원들 역시 그때의 영상을 보기는 했다.

하지만, 실제로 목격한 자들과는 반응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존의 경우 강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자신 역시도 시간만 있다면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길드원들의 경우 너무 현실감이 없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임프의 힘을 외면하고 있는 상태였다.

존의 경우 바로 어제 4마리의 악마종을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처리한 전적이 있었기에 위기를 넘길 수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메리는 전혀 달랐다.

메리 역시 그 자리에 있었지만, 존이 발산했던 힘과 임프가 발산했던 힘의 차이가 적어도 100배 이상 난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메리는 그 사실을 차마 존에게 말할 수 없었다.

존의 자존심을 자극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정말 위험이 닥쳤을 때조차 떠나지 않으려 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그를 찾아가야 해. 가서 그에게 잘못을 빌더라도 다시 이곳을 수호해 달라 부탁해야 한다고!”

“메리…… 너는 10강의 7인을 그 한 명만 못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10강 중 7인.

인류 최강이라 불리는 7인이 모두 유명시의 가치를 인정하고 자신들의 본거지를 이곳으로 이전했다는 것은 그만큼 유명시의 가치가 대단하다는 걸 의미했다.

“너는 그를 보지 않아서 몰라. 며칠 전 그를 봤을 때 느꼈던 감각은 전과는 차원이 달랐어.”

“뭐? 무슨 말이야?”

“전에는 그의 힘을 조금은 엿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달라. 그에게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고.”

존이 전생에 비해 급격히 강해진 이유는 처음 유명시에 도착했던 메리가 선우의 힘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존보다 더욱 강하다는 것을 파악한 메리가 그 사실을 존에게 알렸고, 그 때문에 존은 그를 넘어서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그의 힘은 그때와는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강해져 있는 상태였는데.

“그때보다 더욱 강해졌다고? 네가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메리의 말에 존이 놀라는 이유는 당연했다.

메리의 능력이 바로 마력 관찰이었으니까.

그녀가 탱커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의 능력이 단순히 몸을 단단하게 만들거나 보호하는 능력이어서가 아니었다.

마력 관찰이라는 능력을 통해 적의 힘을 정확히 파악하고 힘의 이동 방향이라던가 마력의 방향을 파악해 흘릴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맞아. 그에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어. 아니, 일반인과 다르지 않았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이겠지.”

그녀의 말이 끝나는 순간 존은 큰 충격에 빠져야만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차이가 나긴 했지만, 충분히 넘어설 수 있을 정도의 강함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그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감히 쳐다도 보지 못할 정도로 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항상 세계 최고라 불리던 그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것이 끝이 아니야.”

존이 충격에 입을 다물고 있던 그때 메리의 입이 다시 열렸다.

“끝이 아니라고?”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 공간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가공할 마력을 느꼈어.”

“가공할 마력?”

“맞아. 어디선가 미세하게 흘러나오는 마력이었지만, 그 작은 마력이 품은 힘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수준이었어. 그 작은 마력이 내 모든 마력을 압도할 정도로…….”

“그게 무슨 말이야?”

미세하지만 강한 힘을 품은 마력이란 말에 존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마력의 질에 따라 파괴력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미세한 마력이 메리의 모든 마력을 압도한다니?

그건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곳 어딘가에 결계 같은 것이 존재하고 그 안에서 누군가 대련을 하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그 정도라고?”

“맞아. 내가 그의 말을 믿은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니까.”

존은 그녀의 말에 반박하지 못했다.

그녀는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가능성은 있지만, 그녀의 행동이 그 모든 것들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말을 하는 동안에도 식은땀을 흘리며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짓는 메리를 본다면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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