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8화 (138/214)

“오랜만이지?”

“도련님을 뵙습니다!”

대장로를 비롯한 총 11명의 장로는 나를 보며 무릎을 꿇고 최대한의 예를 보였다.

“일단 일어나. 그리고 앞으로는 이런 인사는 좀 자제해 줬으면 해.”

“알겠습니다.”

전과 다른 반응을 보이는 장로들을 보며 미소를 지은 나는 대장로에게 고개를 돌렸다.

“내가 지금부터 당신들에게 뭔가를 할 거야. 너무 놀라지 않았으면 해.”

“뭔가라 하시면?”

“내 기운이 흘러 들어갈 거야.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여 줘.”

“알겠습니다.”

장로들은 내 말에 의문이 드는 모양이었지만, 그럼에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 힘을 받아들일 준비를.

“그럼 간다.”

“네!”

마력을 일정 수준 끌어올린 나는 장로들의 수에 맞게 정확히 나누어 장로들에게 주입하기 시작했고, 처음 느끼는 마력에 깜짝 놀란 장로들의 몸이 살짝 굳는 걸 확인한 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위험하지 않은 거니까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돼.”

이제는 몬스터와 마수, 마족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지배를 걸 수 있게 된 나였기에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거다.

거기다 나를 100% 신뢰하는 장로들이었기에 나에게도 위험부담이 전혀 없었다.

다만 조금 특이한 것은 인간의 경우 내 마음대로 지배를 할 수가 없다는 게 조금 이상했다.

딱 보면 지배를 걸 수 있는지 걸 수 없는지 파악이 되었는데, 마력이 존재하지 않는 일반인에게는 지배를 걸 수 없었고, 나를 신뢰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신뢰가 부하로서 충성심이어야만 지배를 거는 게 가능했다.

그냥 나를 믿는다는 것만으로는 지배가 불가능하다는 것.

“오호-”

“이건?”

장로들은 내 마력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나자 신기한 표정으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미약하지만 강해졌다는 걸 느꼈기 때문에.

“어때? 괜찮지?”

“정말 신기합니다. 도대체 이것이 무엇입니까?”

“내 능력. 지배의 힘이지.”

“역시 주군이십니다! 천하를 지배할 힘을 타고나신 분!”

“그만! 더는 말하지 말아줘.”

“크흠-”

말리지 않으면 어디까지 할지 알 수 없는 자들이었기에 미리 입을 막을 필요가 있었다.

특히 저 주군이라는 말이 나오면 끝이 없었다.

‘이제 끝났나?’

마력이 전부 장로들에게 흘러 들어간 것을 확인한 나는 대장로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는 원래 존재하던 마력을 내가 주입한 마력과 비슷하게 바꾸는 작업을 해야 할 거야. 그러다 보면 지금보다 더욱 강해질 수 있을 거야.”

“정말이십니까?”

“그래. 현지도 그렇게 강해졌어.”

“도련님의 마음에 들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열심히 해봐.”

이로써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10강의 힘이 강했기에 마음 놓고 마족들의 터전으로 떠나지 못했는데, 이들이 있다면 전력을 이끌고 움직여도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거다.

* * *

“상무님. 다녀 왔어요.”

“벌써?”

지안이 방을 나선 후 나는 곧바로 장로들에게 지배를 걸었다.

그 시간이 30분도 채 되지 않았건만, 지안은 그 짧은 시간 만에 10강의 수준을 파악한 후 돌아왔기에 조금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걸릴 거 있나요? 유명시에 들어가서 그냥 잠깐 확인만 하면 되는데?”

“그래? 그래서 어때?”

“음- 일단 존이라는 사람의 경우 중급 마수와 비슷한 수준인 게 맞아요.”

“나머지는?”

“나머지 6인은 그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에요. 하급 마수의 힘은 넘어섰지만, 중급에 도달하지는 못한 수준? 아! 그리고 좀 특이한 사람을 발견했어요.”

“특이한 사람이라니?”

“몸속에 이상한 게 들어있더라고요.”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

이상한 거라니? 그것도 몸속에 들어있다고?

“자세히 말해봐.”

“일단 제가 느끼기로는 마력의 한 종류 같은데 처음 느껴보는 기운이었어요. 뭐랄까? 성스러운 느낌?”

“성스럽다라? 방향은?”

“영국의 길드에 있더라고요.”

영국의 길드라면 가르시아 호프?

10강에 이름을 올린 영국 소속이라면 가르시아 호프뿐이었다.

“가르시아 호프 말하는 거야?”

“아니요.”

“그럼?”

“영국 길드에 있긴 했지만, 그 사람은 아니에요. 여자였거든요.”

“직접 봤어?”

“네. 멀리서 외모는 대충 확인했어요. 금발 여성이었고, 조금 어려 보였어요. 20대 초반?”

여자라?

딱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는데?

“강해?”

“네. 가르시아 호프보다 강해요. 아니, 엄청 강해요. 존 록펠러도 상대가 안 될걸요?”

“그 정도라고? 너와 비교하면?”

“저보단 당연히 약하죠. 음- 상급 마수 정도는 돼요. 홉일이보다 조금 약한 수준? 물론 정확한 건 아니에요.”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았는데 도통 생각이 나질 않았다.

“정확하지 않다고? 어째서?”

“기운이 정말 특이해서 가까이서 확인을 하지 않는 한 이렇다 단정 지을 순 없을 것 같거든요.”

“현지 보내야겠네?”

“네. 죄송해요.”

“네가 왜 죄송해.”

“제가 할 수 있다고 했는데 못 했잖아요.”

“됐어. 대신 현지에게 직접 가서 설명하고 확인하라고 전해줘.”

“네! 바로 갈게요!”

지안이 나가는 것을 보며 분명 어디서 들었던 적이 있었다는 생각에 한동안 멈춰 생각에 잠겨 있어야만 했다.

* * *

“후우- 이럴 줄 알았으면 오지 말걸.”

화려한 방 안에서 혼잣말이 들려오고 있었다.

넓고 화려한 방은 마치 중세 귀족들의 공간을 꾸며놓은 듯했는데, 그 안에는 금발의 젊은 여성이 화려한 의자에 앉아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리첼 엘리자베스 다이에나.

영국의 공주이자 성검인 엑스칼리버의 주인으로 얼마 전부터 10강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나돌던 여성이었다.

“이러다 병 생기는 거 아니야? 자꾸 혼잣말만 늘잖아!”

그녀는 비밀리에 유명시에 들어온 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밖으로 나간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요즘 혼잣말이 많아진 상태였다.

“여기 오면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다면서! 그래서 한국말까지 배웠는데 이러면 아무 소용이 없잖아! 나 좀 나가게 해줘!”

“나가면 되잖아?”

“응?”

혼자만의 공간에서 들려온 이상한 목소리.

어느새 그녀의 앞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도배를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누, 누구세요?”

“나? 그냥 지나가던 사람.”

“여긴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데요?”

처음 당황했던 그녀는 금방 원래대로 돌아와 눈을 빛내며 눈앞에 있는 검은 복장을 한 여성에게 입을 열었다.

“나는 아무나가 아닌데?”

“그럼 누군데요?”

“말했잖아. 지나가던 사람이라고.”

말이 안 통하는 상황이었지만, 리첼에게는 지금 이 상황이 흥미진진했다.

“혹시 암살자예요?”

“어? 그럴지도?”

“그럼 지금부터 저를 공격하겠네요?”

“아닌데? 나는 그냥 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들어온 건데?”

“그게 뭔데요?”

“몸속에 있는 게 뭐야? 되게 특이하네?”

“아! 이거 엑스칼리버에요! 굉장하죠!”

비밀일지도 모르는 것들을 쉽게 대답해주는 리첼이었다.

“굉장한 건 모르겠고, 특이하긴 해.”

“에이- 그럴 리가요. 이게 얼마나 대단한데요. 제가 이걸 꺼내서 휘두르면 이 주변이 날아가 버린다고요.”

굉장히 신난 듯 보이는 리첼은 딱히 물어보지 않았음에도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기 시작했다.

“물론 제 모습이 이상해지긴 하지만, 그 모습도 되게 멋있어요. 검은 머리에 핏빛 눈동자! 사람들은 그 모습을 싫어하지만, 저는 마음에 들어요.”

“너…… 특이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지?”

“아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데요?”

“없다고? 왜?”

“저는 지금처럼 이렇게 대화를 해본 적이 별로 없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제 앞에서 언니처럼 행동하지 않거든요.”

“왜?”

“제가 공주거든요. 그래서 다들 제 앞에서는 말을 조심해요.”

그녀가 공주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전설 속에 등장하는 성검 엑스칼리버의 주인이었고,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그녀가 성검을 얻은 나이는 무려 8세였다.

그녀가 성검을 얻은 이후로 사람들은 그녀를 대하는 것을 조심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영국의 영웅이 될지도 모르는 존재였기 때문에.

“너 공주야?”

“네!”

“근데 이런 걸 말해 줘도 돼?”

“안 될 것도 없죠. 물론 언니는 여기서 빠져나가지 못하겠지만.”

자신감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연 리첼을 보며 검은 복면의 여성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여기서 왜 못 빠져나가는데?”

“못 느끼셨어요. 제가 이 공간을 점거해 버린 거? 그 정도는 느낄 수 있을 텐데요?”

리첼은 누군가 방안에 침입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곧장 자신의 힘을 이용해 방 전체를 감싸버린 상태였다.

“내 힘을 느끼고 있는 거야?”

“그건 아니에요. 그냥 들키지 않고 여기까지 들어올 정도면 가능할 것 같았거든요.”

“음- 잠깐만.”

검은 복면의 여인은 리첼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자신의 마력을 이용해 방을 한 번 더 감싸버렸다.

그녀의 힘을 테스트해보고 싶었고, 힘을 테스트하는 동안 누군가 알아차리면 곤란한 상황이 발생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리첼의 힘을 정확히 알아오라는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여성의 정체는 바로 현지였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현지는 조금 당황한 상태였다.

가까이서 보면 확인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었기 때문에.

리첼의 몸속에 존재하는 힘은 현지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이상한 성질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치 선우처럼 마력의 변환이 이루어지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파괴의 마력과는 다른 힘이었지만, 리첼 역시 마력을 변환하여 힘을 사용하는 듯 보였기에 현지는 리첼의 힘을 파악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왜요?”

“이제 해봐.”

“뭘요?”

“못 빠져나가게 한다며? 너도 힘을 써야 나를 못 빠져나가게 할 거 아니야?”

“풋! 제가 힘을 쓰면 언니는 죽을지도 모르는데요?”

“내가 죽는다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걸? 그 반대면 몰라도.”

“와! 자신감이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근데 저 정말 강해요. 10강의 수준을 넘어설 정도로요.”

힘을 사용할 것 같지 않아 보이는 리첼을 보자 현지는 조금씩 짜증이 나기 시작했고, 결국, 먼저 힘을 보여주기로 다짐하곤 움직였다.

“이 정도면 어때?”

리첼의 등 뒤에 또 한 명의 현지가 모습을 드러냈고, 이어서 리첼의 앞에 있던 현지의 잔상이 사라졌다.

“어?”

“이 정도면 힘을 쓸 정도는 되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란 리첼이 위기감을 느끼곤 급히 현지에게서 떨어지며 힘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호오- 그게 엑스칼리버라는 건가 봐?”

“당신 정체가 뭐야?”

리첼의 태도가 급변하며 현지를 노려보기 시작했지만, 현지의 태도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는 엑스칼리버를 보며 신기한 표정을 지을 뿐.

“나? 말했잖아. 지나가는 사람이라고. 어?”

현지가 자신을 상대로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한 리첼은 서서히 몸속의 마력을 변환시키기 시작했고, 그 결과 그녀의 외모가 변하기 시작했다.

찬란하게 빛나던 금발이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에메랄드빛을 띠던 눈동자가 붉게 물들며 그녀의 외모가 마치 마녀처럼 변하기 시작한 것.

“언제까지 장난을 칠 수 있는지 지켜볼게.”

리첼이 말을 끝내며 현지를 향해 엑스칼리버를 휘두르자 찬란한 금빛의 마력이 현지를 향해 쏘아져 나갔고, 이어서 리첼 역시도 현지를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현지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고, 리첼은 현지를 통과해 지나가는 금빛 마력의 파도를 보며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현지의 움직임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벽을 가루로 만들며 전진해야 할 마력이 벽에 막혀 그대로 사라져 버리는 모습에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말도 안 돼…….”

“뭐해? 그만할 거야?”

너무 놀라 모든 행동을 정지했던 그녀의 귓가에 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에 두려움을 느끼던 그녀에게 두려움 대신 오기라는 것이 생겨났다.

“이익!”

슈아악-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검을 휘두른 그녀.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고, 애꿎은 마력만이 쏘아져 나갈 뿐이었다.

“하압!”

쿠과과과광-

이대로는 절대 그녀를 잡지 못한다는 생각에 엑스칼리버에 전 마력을 집중시켜 그대로 폭발시키자 엑스칼리버에서 금빛 마력이 폭사하듯 터져 나오며 방안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슈아악-

짧은 단검이 모습을 드러내자 방안을 가득 메워가던 마력이 창가 쪽에서부터 갈라지기 시작해 그녀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공포.

지금껏 그녀는 단 한 번도 죽음의 위협이라는 것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원체 귀하게 태어났기도 했고, 그녀의 재능이 워낙 뛰어났기에 그 어떤 존재도 그녀에게 죽음의 위협을 가할 수 없었는데, 지금 그녀에게 다가오는 차가운 검날은 아니었다.

천천히 그녀를 향해 전진하는 단검은 그녀에게 죽음이라는 것을 떠올리도록 만들기 충분했고,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앞으로 진행될 상황이 천천히 재생되고 있었다.

단검은 자신의 마력을 가르고 들어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욱 전진해 그녀의 목을 베고 지나갈 거라는 환상이 재생된 후 주마등이라는 것이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마, 막아야 해!’

손에 쥔 엑스칼리버.

그것을 잊고 있던 리첼은 필사적으로 엑스칼리버를 들어 올리기 위해 노력했고, 다행히 그녀의 몸은 그녀의 지시를 따르며 단검을 막는 것에 성공했다.

하지만.

단검이 엑스칼리버조차 가르며 그녀에게 전진하는 모습이 시야에 담기자 그녀는 공포에 잠기면서도 한편으로는 단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성검이라 불리는 엑스칼리버를 가르고 들어오는 저 단검은 도대체 무엇일까?

엑스칼리버가 성검이라면 저 단검은 신검이라도 되는 걸까?

공포와 함께 무수한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점거했고, 그러는 동안에도 단검은 천천히 전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엑스칼리버를 완전히 토막 내버린 단검이 그녀의 목 앞에 도달했고, 그녀의 머릿속에서 또다시 단검에 의해 엑스칼리버가 잘려 나간 것처럼 자신의 목 역시도 잘려 나가는 영상이 재생되며 점점 더 공포에 질린 얼굴이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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