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해?”
공포에 눈을 질끈 감고 벌벌 떨던 리첼의 귓가로 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붙어 있어!”
들려오는 목소리에 눈을 뜬 리첼은 자신의 목을 만지며 소리쳤다.
“당연히 붙어있지. 왜? 떨어뜨려 줘?”
멀찍이 떨어져서 태연한 자세로 입을 여는 현지를 보며 그녀는 고개를 마구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요! 죽기 싫어요!”
“근데 미안해서 어쩌지? 내가 성검을 잘라버렸어.”
“괜찮아요! 엑스칼리버는 마력으로 이루어진 검이거든요. 아마 금방 원래대로 돌아올 거예요!”
“그래? 다행이네.”
“그런데, 언니는 도대체 누구예요? 지나가던 사람이라는 거 말고요.”
“그건 비밀인데?”
태연하게 입을 연 현지는 리첼에 대한 궁금증을 모두 해소한 상태였다.
리첼의 능력은 한 가지가 아니었다.
다중 능력자.
선우와 수아처럼 능력이 하나가 아닌 두 개라는 것을 파악했는데.
엑스칼리버란 성검을 소환하는 것도 있지만, 마력을 특이하게 변환시킬 수도 있다는 것도 완벽하게 파악한 상태였다.
변환된 마력의 파괴력 역시 완전히 파악이 끝난 상태였기에 더는 이곳에 있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 현지는 리첼을 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그만 가볼게.”
“네? 자, 잠시만요!”
리첼이 급히 외쳤지만, 이미 현지는 사라져버린 상태였다.
“아! 가버렸어…….”
사라진 현지를 보던 그녀는 허탈함에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자신이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전 인류의 구원자가 되기 위해 힘뿐만 아니라 모습까지도 숨겨야 한다던 그녀의 아버지는 분명 인류에게 커다란 재앙이 닥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 그런 상황이 오게 됐을 때 그녀가 나서서 재앙을 막아내면 그녀는 전 인류의 구원자로서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을 수 있게 된다던 그 말 때문에 자신은 지금까지 힘을 내보일 수 없었다.
아니, 단 한 번 게이트가 열렸을 당시에 전 인류의 재앙이 닥쳤다고 생각한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가 참전하는 것을 허락했지만, 곧바로 다시 숨어야만 했다.
큰 피해를 본 나라가 많지 않았고, 어려움 없이 게이트를 잘 막아내었기 때문이다.
“나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강자가 저렇게 버젓이 존재하는데 내가 구원자라고?”
현지의 강함을 겪은 그녀는 이제 아버지의 말에 따를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조차 가지고 놀 정도로 강한 존재를 알게 됨으로써 그녀를 속박하던 구속이 깨어져 나간 것이었다.
“나도 이제 내 맘대로 살 거야!”
창문을 열고 창가에 발을 올린 그녀는 주먹을 꽉 쥐며 다짐하듯 소리친 후 창문에서 그대로 뛰어내렸고, 그에 해방감을 만끽하며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쟤 저기서 뭐 하는 거냐?”
“그러게요?”
지안과 함께 어떤 영상을 보고 있던 나는 조금 당황한 상태였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한 인물 때문에.
김 실장이 건넨 영상 속에는 마수와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각성자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는데, 중간부터 나를 당황하게 만드는 인물이 나타나 전투에 끼어들었다.
서창렬.
지금은 유명의 2군 길드장의 자리를 넘겨 버린 후 유명시로 이전한 블랙마켓의 관리자로 돌아간 그가 갑작스럽게 전투에 난입해 버린 것이다.
“이유가 뭐지? 의뢰라도 받은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의뢰를 받았다면 저 사람들이 놀랄 이유가 없잖아요.”
그랬다.
서창렬의 등장은 나뿐만 아니라 치열한 전투를 벌이던 각성자들에게도 당혹스러운 일이었는지 세계랭커라 불리는 자들의 표정이 순간 당황으로 물드는 것이 보였다.
“설마 정수를 노리는 건가?”
마수에게서 나오는 마석을 사람들은 정수라 부르고 있었는데, 영상을 보던 나는 서창렬이 정수를 노리고 참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홀로 마수를 처리하곤 뭔가를 꺼내 급히 자리를 피하는 그의 모습은 정수를 노리고 참전했다는 걸 확실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정수.
나야 많은 수의 정수를 가지고 있었고, 구하려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기에 이제는 귀하다는 생각이 조금 줄어든 상태였지만, 다른 자들에게는 아니었다.
엄청난 가치를 지녔다는 걸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귀한 물건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마석의 상위 호환인 마정석보다도 훨씬 귀한 물건.
엘릭서의 재료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마력의 양이 마정석과도 비교 불가일 정도로 엄청난 양의 마력을 품고 있었기에 국가, 기업, 길드 등에서 하나라도 더 구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을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10강이란 자들 대부분이 마수를 처리하기 위해 직접 움직였을까?
중국에 나타난 마수에게서 나온 정수를 노리는 자들은 많았지만, 중국에서 그것을 공개하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던 물건.
그것이 지금 저곳에서 계속해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서창렬이 왜 정수를 노리는 걸까요?”
“음- 설마?”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서창렬에게 선물한 임프.
“임프를 진화시키기 위해 정수를 노렸던 건가?”
“아! 그 아이가 있었네요. 근데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내가 말해줬어.”
얼마 전 서창렬이 직접 찾아온 적이 있었다.
하임이 유명시에 몰래 들어가 힘을 보인 후 서창렬은 하이임프로 진화시키는 방법을 묻기 위해 나를 직접 찾아왔었다.
“왜요?”
“어차피 내 사람이잖아? 거기다 서창렬에게 선물한 임프도 내 소환수나 마찬가지고.”
서창렬은 유명의 사람이 된 지 오래였다.
유명의 힘을 확인한 크로우의 간부들은 유명에 소속되길 간절히 원했고, 당연히 나는 그들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로 지금 크로우의 간부였던 자들 대부분이 유명의 1군이나 2군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서창렬 역시 2군 길드장의 자리에서 절대 내려오려 하지 않았던 것을 김 실장이 겨우 설득해서 블랙마켓의 관리자로 보낸 것이었다.
간부 대부분이 유명의 품으로 들어오면서 블랙마켓의 관리가 힘들어졌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근데 저 사람 원래 저렇게 강했어요?”
예전의 지안이라면 절대 이렇게 말하지 못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안의 강함은 현지를 제외하면 뚱이와 함께 내 최대 전력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러네? 최하급 마수긴 해도 너무 쉽게 처리하네?”
내 머릿속에서 서창렬의 무력은 세계랭커 중위권 정도로 판단하고 있었기에 조금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정도면 최상위권의 랭커를 넘어 10강에 근접한 수준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도련님 무슨 이야기 하시던 중이에요?”
“응?”
갑자기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현지가 내 옆에 딱 붙어 나를 보며 궁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기척이라도 좀 내지.”
“히히- 다녀왔어요.”
지안이 특이하다고 말했던 각성자를 살피기 위해 보냈던 현지는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너 또 무슨 사고 쳤지?”
“아뇨! 사고 안 쳤는데요.”
“그럼 왜 그래?”
“제가 뭘요?”
“딱 봐도 기분이 좋아 보이잖아.”
현지를 보자 예상이 갔다.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너 혹시…… 개 패듯이 팬 건 아니지?”
“아니거든요!”
“그럼 왜 그러는데?”
“도련님이 살펴보고 오라 지시했던 여자애가 조금 강했거든요.”
역시 한바탕 했구만!
한숨을 내쉰 나는 당연한 결과라 생각하며 현지에게 입을 열었다.
“어느 정도인데?”
“음- 평소에는 상급 마수 초반대의 힘을 가지고 있는데, 온 힘을 다하면 상위권까지도 상대할 수 있을 정도?”
“그 정도라고?”
솔직히 조금 놀랐다.
상급 마수 중에서 상위권이라면 홉일이보다 강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근데 전투 경험이 없어서 상급 마수를 상대하는 건 조금 벅찰지도 몰라요.”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거 아니야? 그 정도면 나와 너를 제외하면 인류 최강이나 다름없겠네.”
“그건 맞지.”
지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현지를 보자 자존심이 살짝 상했는데.
“나는?”
“아! 상무님도 제외하고요.”
“아닐걸?”
“네?”
“네?”
나 역시 이제는 최상급 마수를 홀로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나 말고도 강자가 한 명 더 존재했다.
“수아 있잖아.”
“아가씨요?”
“에이~ 설마요!”
둘은 아직 수아의 정령을 보지 않아서 잘 모르는 모양이었지만, 나는 아니었다.
얼마 전 나는 수호자급 정령과 함께 있는 수아를 본적이 있었기에 잘 알고 있었다.
깜짝 놀랄 정도로 강해진 수호자급 정령.
어째서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수호자급 정령의 수준이 엄청나게 상승해 있었는데, 나조차 깜짝 놀랄 정도였다.
최상급 마수에 비해 처지는 수준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수아와 함께 있는 정령들의 수준이 모두 한 단계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당연히 그 이유를 수아에게 물어봤지만, 수아 역시도 그 이유를 모르는 듯 보였기에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지켜보기로 했다.
“너희 돌아온 후에 정령들 본 적 있어?”
“아뇨.”
“없어요.”
“그럼 한번 가서 봐봐. 깜짝 놀랄걸?”
최상급 정령만 봐도 깜짝 놀랄 거다.
S급 몬스터를 가볍게 쓰러트릴 정도는 되었지만, 마수를 처리하기에는 많이 부족했던 최상급 정령이 지금은 중급 마수까지도 쓰러트릴 정도로 강해져 있었다.
물론 같은 최상급이라고 해도 개체마다 차이가 있긴 해서 중급 마수에 못 미치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최하 하급 마수까지는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조금 특이한 거라면 크기에 따라 힘의 차이가 있던 정령이라는 존재가 크기는 커지지 않은 채 색이 조금 진해졌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크기는 그대로지만 색이 진할수록 강함이 달라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아마 이 둘은 정령을 보면 깜짝 놀랄 거다.
“정말 변했어요?”
“그렇다니까.”
“저 잠깐 다녀올게요.”
“같이 가!”
급히 방문을 나서는 둘을 보며 그 이유를 생각해 봤지만, 역시나 답은 나오지 않았다.
내 질문에 수아는 그저 같이 논 것밖에 없다고만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진화라는 버프를 걸어주지도 않았다고 했기에 내 의문은 더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이거 이러다 수아의 힘이 나보다 커지는 거 아닌지 몰라?’
이제 막 11살이 된 수아였기에 정말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최강의 초딩이라? 재밌네?
* * *
“우와! 정말이잖아!”
우웅-
“너 어떻게 이렇게 강해진 거야?”
우웅!
“정말?”
우웅-
마치 정령과 대화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지를 보며 지안의 고개가 기울기 시작했다.
“현지야. 너 지금 정령이랑 대화하는 거야?”
“어? 어!”
“어떻게?”
“그냥?”
지안의 귀에는 울림밖에 들리지 않았는데, 현지는 다른지 계속해서 정령과 대화를 이어나갔다.
“진짜 대화를 하는 건가?”
“그렇다니까? 얘가 그러는데 아가씨 곁에 있는 것만으로 자신은 무한히 강해질 수 있대.”
“무한히?”
“응.”
지안은 지금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현지가 정령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도 기가 막혔지만, 무한히 강해진다니?
이건 솔직히 믿기가 좀 그랬다.
“너 나한테 장난치는 거 아니지?”
“내가 왜?”
현지를 보는 지안은 순간 의심이 들었다.
지금 현지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너, 나 자주 놀리잖아!”
“그랬나? 아무튼 지금은 아니야.”
“그럼 정말 저 정령이 무한히 강해질 수 있다는 거야?”
“자기 말로는 그렇대. 물론 강해질수록 점점 속도가 느려지긴 하지만.”
“정말이라면 이건 상무님에게 꼭 말해드려야 할 것 같은데?”
“근데 지안아. 너는 왜 계속 상무님이라고 부르는 거야? 도련님을.”
“난 상무님 비서잖아.”
지안의 대답에 현지가 의아한 눈으로 지안을 바라보았다.
“이제 상무님 아닌데? 대표님인데?”
“대표님? 처음 듣는 소린데?”
“너 몰랐어? 도련님 이제 유명그룹 상무가 아니라 수아 건설 대표야.”
“뭐? 수아 건설?”
그랬다.
지안이 항상 상무님이라 부르던 선우는 지금 수아 건설의 대표이사가 된 상태였다.
“김 실장님이 그러던데.”
“그, 그럼 나는 이제 대표님 비서가 된 건가?”
“어? 그럴걸?”
“너! 그거 뻥 아니지? 정말이지?”
“그렇다니까.”
“호호호호호~”
“왜 저래?”
갑자기 기분이 엄청 좋아진 듯 보이는 지안은 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이상한 웃음소리를 남기고.
* * *
“대표니이임!”
“뭐야? 너 왜 그래?”
정령을 보러 간다며 나간 지안이 금방 다시 나타나서는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상무님이 아니라 대표님이라고?
“이제 대표시라면서요!”
“대표? 아! 그렇지! 나 지금 건설사 대표지?”
“정말이시죠? 그럼 이제 저 상무 비서가 아니라 대표 비서예요?”
“그럴걸?”
근데 그게 저렇게 좋아할 일인가?
뭔가 나사가 하나 빠져 있는 듯한 지안의 모습은 솔직히 조금 소름이 끼쳤다.
“그럼 직원들도 있고 막 그렇겠네요?”
“직원? 있지.”
“저 소개해 주세요! 지금까지 제가 혼자 얼마나 외로웠는지 아세요?”
“네가 외로웠다고?”
“당연하죠!”
아무리 봐도 외로워 보이지 않는데?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본인이 그렇다는데 내가 아니라고 말하기가 좀 그래서 그냥 인정해 주기로 했다.
“근데 말이야. 직원들을 만나면 뭘 하려고?”
“이야기도 좀 하고, 회식도 좀 하고! 같이 놀기도 하고!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요.”
“허? 그래? 이야기에 회식? 거기다 함께 놀겠다고?”
“네!”
실컷 즐길 수 있도록 소개를 해 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물론 정말로 즐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알았어. 소개해 줄게.”
“정말이죠!”
“그래. 근데 말이야. 니 생각과는 조금 다를 수도 있어.”
“왜요?”
“너도 아는 애들이거든.”
“저도 안다고요? 그럼 더 좋죠!”
“따라와.”
“넵!”
지안을 데리고 방을 나선 나는 잠시 후 지안이 지을 표정이 정말 궁금해졌다.
* * *
“인사해. 이쪽은 우리 수아 건설의 실무를 책임지는 하임이라고 해.”
“뀨?”
“어?”
참고로 수아 건설에 이름이 올라와 있는 ‘인간’은 나와 지안이 둘뿐이었다.
모든 직원이 임프와 하이임프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몇 명 더 존재하긴 했지만, 그들의 소속은 유명그룹이었기에 실질적으로는 지안과 나 둘만 수아 건설에 이름이 올라 있었다.
“뭐해? 인사 안 해?”
“지금 저 데리고 장난치시는 거죠?”
“아닌데? 내 회사 직원들은 다 임프들이야. 너하고 나만 빼면 ‘인간’은 없는데? 뭐해? 기다리잖아. 빨리 널 소개해 줘야지.”
겨우 웃음을 참아가며 입을 열자 지안이 하임을 보며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호, 호, 호- 바, 반가워요. 하임 씨. 저는 대표님 비서 이지안이에요…….”
“뀨! 뀨뀨뀨!”
“풉!”
정신이 나간 듯 보이는 지안의 모습과 그에 화답하듯 손을 내미는 하임의 모습은 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푸하하하하하-”
오랜만에 기분 좋은 웃음을 선사한 지안에게 고마움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좀 심했나? 킥킥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