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과과과광-
멀리서 들려오는 굉음에 슬쩍 미소를 지은 나는 곁에 있던 왕눈이와 접촉했다.
10강 중 7인과 영국의 공주인 리첼이 상급 마수에 대항해 성벽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격전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잡혔다.
얼마 전 바포메트를 지배한 후에 새롭게 지배한 일회용 상급 마수가 그들과 격전을 펼치고 있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치열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10강이란 자들이 얼마 전보다 많이 성장한 것이 그 이유인 듯 보였고, 리첼 역시도 경험이 쌓이며 온전한 힘을 뽐낼 수 있게 되면서 상급 중에서도 중위권인 마수를 상대하는 게 가능해진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잘 막아내네?”
“그러게요? 저 정도면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되겠는데요?”
옆에서 함께 그 모습을 보며 감탄 중인 현지는 리첼이 성장했음을 확인하고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왜? 또 찾아가서 한 판 붙어 보려고?”
“안 돼요?”
“안 돼! 너 때문에 리첼이 밖으로 나오게 돼서 일이 이 지경이 된 거잖아! 또 어떤 변수가 튀어나올지 모른다고.”
“아! 아까워라.”
“뭐가? 요즘 실컷 대련 중이잖아.”
요즘 현지는 종일 마수들을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얼마 전 마수들을 몰기 위해 잠깐 데려간 것도 불만스러워 나를 찾아온 현지였기에 이제는 마수들이 현지만 보면 슬슬 피할 정도까지 발전한 상태였다.
“사람이랑 걔들이랑 같아요?”
“뭐가 다른데?”
“그런 게 있어요.”
제대로 설명을 못 하는 걸 보니 어이가 없었다.
“그나저나 언제쯤 포기할 것 같아?”
“아마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둘의 힘이 거의 비슷해서 쉽게 결판이 나지 않을 것 같거든요.”
“체력 차이가 있는데도?”
“그거야 저 뒤에 있는 저 여자가 없어야 가능한 거죠.”
성벽에서 느껴지는 특이한 기운.
한 여성이 내뿜는 그 기운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힐러라는 존재였다.
나조차도 처음 보는 능력.
상처를 회복시켜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체력을 회복시켜 줄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피로까지도 풀어줄 수 있는 황당한 능력이었는데, 생각보다 효과가 뛰어났다.
체력만 회복시키는 정도였다면 조금 특이하다고 생각하고 말았겠지만, 정신적인 피로까지도 회복시키는 모습은 욕심이 생길 정도로 탐이 나는 능력이었다.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존재야, 저건?”
“제가 몰래 가서 목을 확! 따버릴까요?”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저 여성으로 인해 상황이 조금 변하기는 했어도 결국에는 내 뜻대로 흘러갈 거다.
저들은 모르고 있겠지만, 지금 저들이 마수와 전투를 치르는 곳은 미호의 결계 속이었기 때문이다.
마수가 상처를 입어도 순식간에 회복되는 이유가 바로 미호의 능력 덕분이었고, 만약 마수가 밀릴 상황이 오면 미호의 능력을 이용해 마수에게 조금 더 힘을 실어주고 리첼의 힘을 조금 격감시키면 되었기에 이번 일은 아마 문제없이 내 뜻대로 흘러갈 거다.
“정말요? 문제 생기는 거 아니에요?”
현지 역시도 힐러라는 존재가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만큼 힐러라는 존재가 전투에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리첼만큼은 아니지만, 10강 정도의 영향력은 발휘하고 있었기에 솔직히 조금 당황하긴 했다.
“정 안되면 뒤에서 대기 중인 뚱이에게 마수 몇 마리 더 몰아오라고 하면 되니까 걱정할 필요는 없어. 미호의 결계도 있고.”
“그나저나 정말 대단한 능력 같아요. 이런 전투가 아닌 대규모 전투였다면 정말 볼만 했겠어요.”
현지의 말대로 소규모 교전이 아닌 대규모 전투였다면, 힐러의 능력은 정말 크게 빛날 능력 중 하나였다.
그녀의 능력은 대상을 지정하는 것이 아닌 범위 단위의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어? 흔들린다!”
잠시 힐러에 대해 생각하던 그때 현지가 입을 열었고, 급히 왕눈이와 연결된 선에 집중해 상황을 살폈다.
거미의 몸통에 문어의 다리를 가진 상급 마수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다리를 잘라도 금방 재생하는 특성을 가진 마수였는데.
독일의 10강인 라이너는 마수가 모든 다리를 잃었다고 생각했는지 들고 있던 거대한 해머를 들어 올리며 높이 도약했고, 떨어져 내리며 해머를 내리치려던 순간 마수의 다리가 순식간에 재생되며 라이너를 강타해 버렸다.
그에 피를 토하며 멀리 튕겨 나가는 라이너.
“잘했어. 미호야!”
다리가 순식간에 재생된 것이 아니었다.
미호가 다리가 재생된 것을 잠시 숨겼다가 공격의 순간 빠르게 재생되는 것처럼 조작한 것이었다.
물론 하나가 무너졌다고 해서 그들이 큰 타격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라이너는 상처를 회복한 후 참전할 테니까.
하지만, 그가 빠져나감으로 인해 흔들린 전열은 쉽게 매워지지 않으리라.
“키에엑-”
녀석 역시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는지 괴성을 내뱉으며 거칠게 그들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지금껏 다리를 이용한 공격만 하던 녀석이 입을 통해 녹색의 체액을 뱉어내기 시작했고, 8개의 눈이 10강을 따라다니며 그들의 움직임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중력조작.
녀석의 눈은 중력을 조작할 수 있었는데, 덕분에 10강의 움직임이 제한되며 몸이 굼떠지기 시작했다.
느려진 움직임과 빠르게 그들을 향해 쏘아지는 녹색의 체액.
그것뿐이라면 힘들긴 하지만 어찌 막아낼 수 있었을 거다.
하지만 마수의 공격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뒤꽁무니에서 은색의 실이 은밀하게 흘러내려 땅속으로 사라졌고, 이내 리첼과 10강의 움직임을 예측해 땅을 파고들었던 실이 뒤에서 회복 중이던 라이너의 다리를 뚫고 튀어나왔고, 이어서 프랑스의 10강인 샤를 역시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다리를 꿰뚫려 버렸다.
은밀하기도 은밀했지만, 미호가 그 움직임을 숨겼기에 확실히 이목을 피할 수 있었다.
“이번 건 조금 크겠는데요?”
현지의 말대로 이번 공격은 그들에게 치명적일 거다.
은색의 실은 그대로 녹아 그들의 체내에 흡수되어 마력의 움직임을 제한할 테니까.
마력독이라 이름 붙인 이것은 그들의 마력에 흡수되어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신경까지도 마비시키기 때문에 둘은 이번 전투에 다시 참전하지 못한 채 구경만 하는 처지가 될 거다.
해독 포션으로도 심지어 엘릭서를 사용해도 해독이 되지 않는 특이한 독.
물론 1시간 정도 지나면 체내에서 녹으며 그대로 소멸되어 버리긴 하지만, 이런 전투에서는 정말 큰 힘을 발휘하는 독이었다.
하지만, 인류 최대의 전력이라 평가받는 리첼과 존 록펠러는 멈추지 않고 마수를 공격했다.
엑스칼리버가 휘둘러 질 때마다 다리 하나가 그대로 사라졌고, 존의 능력인 푸른 뇌전에 의해 마수가 잠깐씩 경직되는 것을 보며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하면 저 둘만으로도 상급 마수를 처리할 수도 있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처음보다 강해진 것 같은데? 내 착각인가?”
존과 리첼은 처음 전투를 시작했을 때보다 강해진 듯 보였다.
“맞아요. 저 둘 점점 성장하고 있어요. 기술뿐 아니라 능력도 점점 강해지는 것 같은데요?”
“그렇지?”
분명 초반에는 모두 함께 덤벼야 겨우 상급 마수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는데, 지금에 와서는 저 둘만으로도 상급 마수를 상대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기에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선택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네.”
왕눈이와의 연결을 푼 나는 뚱이와 접촉하여 뚱이에게 지시를 내렸다.
잡아 둔 마수들을 이곳으로 보내라는 지시를.
“어? 저게 뭐예요?”
지시를 끝낸 순간 현지가 하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고, 그에 고개를 돌리자.
“마수?”
뚱이가 있는 방향의 하늘에서 마수로 추정되는 생물이 엄청난 속도로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기 시작했고, 이어서 그 수가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아! 설마 집어 던진 건가?”
날 수 있을 리 없는 마수 다섯 마리가 엄청난 속도로 허공을 가로지르며 날아오는 모습에 당황한 나는 급히 뚱이에게 접촉했고, 뚱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마수를 들어 올린 뚱이가 그대로 이쪽을 향해 마수를 집어 던지고 있었던 것.
“허! 힘이 얼마나 세면 여기까지 마수를 집어 던져?”
수십 킬로가 떨어져 있었음에도 순식간에 이곳까지 날아오는 마수들을 보자 황당함에 말문이 막혀왔다.
쾅- 쾅- 쾅-
마수들이 땅에 처박히며 진동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은 나는 이어서 마수들이 괜찮을지 걱정이 되었지만, 금방 정신을 차리는 모습에 안심할 수 있었다.
쿠아앙-
“어? 저건 도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집어 던진 거야?”
크기가 30m도 넘는 거대한 마수가 땅에 처박히는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나는 왕눈이를 보며 입을 열었다.
“왕눈아 저것들 유명시로 보내.”
내 지시에 왕눈이가 기운을 살짝 내뿜자 충격을 겨우 해소한 마수들이 깜짝 놀라며 급히 유명시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중급 2마리에 하급 4마리면 충분하겠지?”
“너무 많은 거 아닐까요? 못 막을 거 같은데?”
“지안이 있잖아. 저쪽에서 지원 요청하면 지안이가 바로 나설 테니 큰 문제는 없을 거야.”
“그렇긴 하겠네요.”
지금 길드 연합은 저것들을 막아낼 여력이 없었다.
10강을 비롯한 최강자들이 상급 마수를 막고 있었고, 세계랭커들조차 최하급과 하급 마수들을 막아내기 바빴기 때문이다.
상급 마수만으로는 부족할 게 뻔해 보였기에 세계랭커들을 붙잡아 둘 마수들 역시 보내둔 상태였다.
* * *
“아! 뭐야 저건?”
멀리서 들려오는 굉음에 깜짝 놀란 영국의 10강 가르시아 호프가 급박한 상황임에도 깜짝 놀라며 입을 열었다.
“여기서 더 온다고?”
이탈리아의 안토니오가 호프의 말을 받았다.
“못 막아! 이제 한계라고!”
“일단 이놈은 둘이 막아볼 테니까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합류해 줘!”
존 역시도 다가오는 마수들을 느끼곤 급히 입을 열었다.
“괜찮겠어?”
“어쩔 수 없잖아요! 빨리 움직여 주세요!”
“안 됩니다! 공주님!”
안토니오의 물음에 빠르게 대답한 리첼을 보며 호프가 급히 외쳤다.
“호프 경! 지금 이럴 때가 아니에요! 저거 못 막으면 이대로 끝이라고요!”
“하지만…….”
“걱정 마세요. 호프 경이 돌아올 때까지 최대한 방어적으로 움직일 거니까!”
“알겠습니다. 돌아올 때까지 무사하시길!”
호프의 말을 끝으로 남은 10강 중 넷이 이곳으로 다가오는 마수들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총 여섯의 마수가 모습을 드러내자 성벽에 있던 각성자들의 입에서도 한숨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음- 괜찮으려나?”
“당신 누구야?”
처음 보는 여성이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내 혼잣말을 내뱉자 저스티스 길드의 각성자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저요? 저는 수아 건설의 대표님 비서 이지안이라고 해요.”
“수아 건설? 이지안? 아니 그게 아니라 당신 어떻게 여길 온 거야?”
지금 이곳은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상태였다.
아니, 내성 밖으로는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한 상태였기에 갑자기 나타난 지안을 보며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유명시에 놀러 왔다가 상황이 심상치 않아 보여서 잠깐 들렸어요.”
태연하게 입을 여는 지안을 보며 그는 황당함에 잠겨 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성벽 위에 있던 각성자들 대부분이 그와 같은 상태였다.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모르겠지만, 당장 돌아가! 여긴 일반인이 있으면 안 되는 곳이라고!”
“그것보다 저길 좀 보세요. 저분들 큰일 나겠어요.”
몰래 숨어서 지켜보던 지안이었지만, 상황이 어렵다는 걸 파악하곤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도움을 요청하는 순간 바로 나설 수 있도록.
혹은 그들을 꼬시기 위해서.
“아!”
“안 돼!”
문제가 터져 나온 곳은 상급 마수를 상대하는 자들도 아니었고, 새롭게 나타난 마수를 상대하는 곳도 아닌 바로 세계랭커들이 힘겹게 막아서던 하급과 최하급 마수들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오십 가까이 되는 세계랭커들이 십여 마리의 마수들을 겨우 막아내고 있었는데, 전열이 점점 뒤로 밀리기 시작하다 결국 부상자들이 속출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힐러가 계속해서 체력을 보충해주고 정신적인 피로까지도 회복시켜주고 있었지만, 마력은 보충해 줄 수단이 없었다.
그들은 점차 마력을 소모할 수밖에 없었고, 지금에 와서는 마력 대부분을 소모했기에 더는 마수들을 막아낼 수 없는 상태까지 몰린 지경이었다.
“A급 이상은 모두 따라와! 저들을 돕는다!”
“네!”
그 모습을 확인한 길드의 간부들이 A급 이상의 각성자들을 이끌고 참전하려 했지만, 솔직히 희망은 없었다.
마수에게 A급은 개미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기요? 그냥 도움을 요청하는 건 어떠세요?”
“흥! 잘도 이곳을 도와주겠군! 아니! 설령 도움을 준다고 해도 문제라고. 이곳까지 오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아나?”
도움을 요청하려면 타국에 부탁해야 하는데, 그들이 이곳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아무리 빨라도 수 시간이었다.
당장 급한 상황에서 그 시간을 기다릴 수 없었던 그들이었기에 도움 요청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유명 있잖아요.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면 바로 올 텐데요?”
“흥! 그들이 잘도 우리를 도와주겠군.”
당장 돕기 위해 움직여야 했지만, 그의 발은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움을 준다면요?”
“무릎이라도 꿇지.”
“정말요?”
“지금 다 죽게 생겼는데 무릎이 문제인가? 머리를 바닥에 찍으라고 해도 찍을 상황이라고!”
“음- 그럼 혹시 책임자를 불러 주실 수 있나요?”
“책임자?”
고개를 갸웃하는 그를 보며 지안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저희도 얻는 게 있어야 도와드릴 거 아니에요.”
“설마? 당신이 유명의 사람이라고?”
“아! 제가 말 안 했나요? 수아 건설은 유선우 씨가 대표로 있는 회사랍니다.”
“정말인가?! 그럼 당장 도움을 달라고! 한시가 급해!”
“책임자를 불러 달라니까요?”
다급한 그의 모습에도 지안은 태연함을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지, 지금은 내가 책임자야! 간부들이 전부 저곳에 나가 있는 지금은 내가 책임자라고!”
“그래요? 그럼 이제 협상을 좀 해 볼까요?”
“이러고 있을 틈이 없다니까! 뭐든 허락할 테니 빨리 그쪽의 지원을 요청해 달라고!”
“이 모든 이야기는 녹음되고 있어요. 잘 생각하고 말씀하세요. 정말 모든 걸 허락하겠습니까?”
“알았으니까! 빨리!”
그의 대답에 지안은 허리춤에 묶어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으며 입을 열었다.
“현 시간부로 우리 유명은 길드 연합의 요청을 수락하고 마수들을 요격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의 없으시죠.”
“그렇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