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급한 거 안 보여? 빨리 신호를 보내지 않고 뭐 하고 있는 거야!”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지안을 보며 강하게 소리친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온 상태였다.
당장 유명에 연락을 취해야 할 지안이 가만히 멈춰 있었기 때문에.
‘대표님. 받아들였어요.’
하지만, 지안은 지금 선우와 연결된 선을 통해 보고하는 중이었다.
길드 연합이 도움을 청했다는 사실을.
‘그래? 그럼 시작해.’
‘네!’
속으로 대답한 지안이 눈을 뜨자 자신의 두 어깨를 부여잡고 미친 듯이 흔드는 남성의 얼굴이 보였고, 그에 지안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바로 도와드릴 테니까 이것 좀 놔 주시겠어요?”
“어, 어서! 유선우를 불러와!”
그는 지안의 굼뜬 행동이 답답했다.
세계랭커를 비롯한 10강과 영국의 공주가 당장이라도 어떻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잠시만요. 읏차!”
“응? 그게…… 아! 그걸로!”
공간확장 주머니에서 아스트라를 꺼내는 지안을 의아하게 바라보던 그는 저 활로 이곳 어딘가에서 대기 중인 자들을 부르려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안은 활을 허공이 아닌 마수에게 향했고.
“지금 뭐 하는……? 헉!”
순간 지안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마력을 느낀 그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며 지안을 괴물 보듯 보기 시작했다.
“금방 처리해드릴게요!”
지안의 말이 끝나는 순간 소름 끼치는 마력을 담고 있던 마력 화살이 쏘아졌고, 이어서 여러 갈래로 나뉘며 세계랭커를 공격하던 십여 마리의 마수를 단숨에 꿰뚫고 지나가며 마수들의 숨통을 끊어버렸다.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마수들을 정리하는 모습에 지안의 주변에 모여있던 길드 연합의 각성자들의 입이 쩍 벌어졌고.
“이번엔!”
그리곤 또 한발의 마력 화살을 만들어낸 지안이 10강이 상대하던 마수들을 조준했고, 역시 같은 방식으로 마수들을 순식간에 정리해 버렸다.
“이제 마지막이네요?”
지안의 말이 끝나는 순간 조금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막대한 마력이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와 한 발의 화살을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이어서.
쿵-
지안을 중심으로 충격파가 터져 나오며 무시무시한 파괴력이 실린 마력 화살이 상급의 마수를 향해 쏘아졌다.
하지만.
마수는 이미 지안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었다.
화살이 쏘아지긴 직전 마수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엄청난 마력을 뿜어내서는 다리를 감싸기 시작했고, 이어서 자신에게 쏘아진 화살을 막기 위해서 모든 다리를 뻗었다.
여러 개의 다리가 꽈배기가 꼬아지듯 꼬아지며 화살과 충돌하기 직전, 리첼이 화살의 존재를 눈치채곤 추가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단 한발의 화살이 지금 눈앞의 무시무시한 괴물을 쓰러트릴 수 없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다만 화살은 정말 어이없을 정도로 마수의 방어를 뚫고 들어가 커다란 몸속으로 사라졌고, 이어서 엄청난 폭발이 발생하며 주변을 뒤흔들었다.
잠시 후 드러난 광경에 자리에 있던 각성자들은 경악성이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 무시무시하던 마수의 몸통 절반이 날아가 버린 처참한 모습 때문이었다.
“음- 조금 약했나? 마력을 좀 더 쓸 걸 그랬네?”
정 중앙을 뚫고 지나갔어야 할 화살이 마수의 방어 덕분에 조금 틀어지며 마수를 한 번에 끝내지 못한 것을 확인한 지안은 이어서 입을 열었다.
“그럼 한 방 더!”
다시 마력을 끌어올리려던 지안은 몸통의 3분의 1이 날아간 마수가 빠르게 재생된 다리를 움직여 급히 도주하는 듯한 모습에 아스트라를 내려놓으며 미소를 지었다.
“왜? 공격을?”
“어차피 쟤는 무서워서 여기에 다시는 오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주변에 존재하는 자들과 지금껏 마수들을 상대하던 세계랭커, 10강, 리첼 모두가 지안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는 달랐다.
지금 상황을 꿈이라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는 자들 전부가 달려들어 겨우 막아내던 마수들을 그 잠깐의 시간 동안 홀로 전부 처리했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고 하셨죠.”
“어? 그, 그렇지.”
“그럼 저 위 좀 보시겠어요?”
“위?”
지안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멀리 까만 점이 하나 보였다.
“저게 이곳의 상황을 전부 촬영 중이거든요? 저희의 요구는 바로 저 드론이 촬영한 영상을 공개하는 거예요.”
“영상을 공개한다고?”
“네. 물론 저희가 공개할 거예요.”
이곳의 상황을 찍은 영상을 공개한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든 그는 그제야 지금 상황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그건…….”
영상이 공개될 경우 유명시에 상주하는 자들뿐 아니라 전 세계가 충격에 빠질 수도 있었다.
유명시를 공격하는 마수들의 수는 전 인류를 충격에 빠트리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한두 마리가 아닌 수십 마리가 넘는 마수들.
10강이 전부 나서도 처리하지 못한 강력한 마수.
인류의 힘이 결집 된 상황에서도 막아내지 못했다는 영상이 공개되면 인류 전체가 충격과 공포에 빠져 버릴 위험이 있었다.
물론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여성 덕분에 상황이 그렇게 심각해지지는 않겠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문제였다.
전 세계가 길드 연합을 몰아내려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길드 연합을 몰아내고 다시 유명을 유명시로 불러들이기 위해 노력하겠지.
물론 좋게 유명이 돌아오면 다행이었지만, 혹여나 유명이 돌아오려 하지 않게 될 경우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게 되면 유명시를 뺏는데 일조했던 모든 자가 몰락하게 될 테니까.
자신들의 길드뿐 아니라 그 일과 연관된 모든 국가, 길드, 기업, 개인이 최악의 상황까지 몰리게 되리라.
“아! 맞다. 저는 아마 모자이크가 될 거예요. 저에 대한 비밀을 지켜주시는 것도 대가 중 하나에요.”
그의 심각한 표정에도 불구하고 밝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지안을 본 그는 이 여자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를 깨달아야만 했다.
영상의 공개를 이쪽에서 거절한다고 해도 저쪽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미 모든 허락을 받은 상태였기에 거절해도 무시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그에게서 등을 돌리는 지안을 그는 말리지 못했다.
그저 멍하니 그녀가 떠나는 모습을 바라볼 뿐.
* * *
“이제 진짜 시작인가?”
영상이 공개된 후 전 세계는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마수라는 존재가 인류를 멸망시킬지도 모른다는 공포 때문에.
그 덕에 지금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었는데, 특히 유명에게서 유명시를 빼앗는데 일조한 나라들이 심하게 앓고 있는 상태였다.
꿈의 도시인 유명시에 진출한다는 사실에 환호했던 국민들이 모두 등을 돌린 채 욕을 퍼붓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차라리 욕만 하는 것이라면 다행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과격한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당장 유명에게 유명시를 돌려주라며 시위를 벌이고 있었을 뿐 아니라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대한 토론이 언론을 통해 방영되고 있었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유명시는 어비스 최전방에 위치한 도시라는 걸.
유명시가 뚫린다면 앞으로 엄청난 일들이 벌어질 거란 예측들을 학자들이 내놓고 있었는데, 그중 가장 많은 의견이 모이는 것이 바로 마수들의 진출이었다.
유명시에 존재하는 게이트를 통해 나타나는 마수도 있겠지만, 유명시를 넘어 각국에 위치한 게이트의 도시에도 출몰할 것이라는 예측이 그들을 두렵게 만들었고, 더 나아가 인류의 터전인 지구에도 출몰할 수 있다는 것에 전 세계가 공포에 잠겨버렸다.
균열을 통해 지구에 나타난 마수 몇 마리가 얼마나 큰 피해를 입혔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 마지막 단계만 남은 건가?”
“마지막 영상의 공개는 조금 기다려야 할 듯싶습니다.”
“어째서?”
“유명시를 차지한 자들이 유명시를 포기하는 순간이 바로 영상을 공개할 최적의 타이밍이기 때문입니다.”
김 실장의 말은 그들이 포기해도 유명은 유명시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이 포기하는 순간 바로 영상이 공개될 것이고, 유명시의 상황이 생각보다 좋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유명시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발표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말 재밌는 일들이 일어날 거다.
유명을 욕하고 싶어도 욕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거고, 전 인류가 유명에게 애원하기 시작할 거다.
“그나저나 국내는 어때?”
“상황이 재밌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때 저희 유명을 비방하던 자들 모두가 칩거에 들어갔습니다. 정치인들이 가장 먼저 칩거에 들어갔고, 촬영이 남아 있던 배우들마저 그대로 사라진 상황입니다.”
“반박할 줄 알았는데?”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들도 아는 거죠.”
“하긴, 저렇게 떠드는 데 모를 리가 없지.”
서울에 모여 시위 중인 사람들.
그 수많은 사람이 지금 하는 행동을 보면 나라도 숨어버릴 거다.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자들 몇을 추려 사형을 시켜야 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긴 했다.
전 재산을 털어 유명시에서 사업을 시작한 사람들과 직장이 있던 사람들 마지막으로 유명시와 관련된 일을 하는 회사에 다니던 사람들 수백만이 일자리를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고, 그 여파로 지금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휘청거리고 있었다.
물론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정부에게 유명시 부동산의 권리를 매입한 자들 역시 엄청난 손해를 봐야 했고 유명시로 공장을 이전한 중소기업들 역시 마찬가지로 엄청난 손해를 봐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잘못 걸리면 정말 사형을 당할지도 몰랐기에 최대한 자중하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아마 소용없을 거다.
심판의 날이 다가오면 모조리 끌려 나올 테니까.
“그 일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뭘 어떻게 처리해? 그냥 무시해.”
“알겠습니다.”
나라의 통치권자라는 자가 상황파악이 그렇게 안 되나?
만나달라며 계속해서 연락 중인 대통령이라는 자를 보면 참 어이가 없었다.
“당장 집 앞에 찾아와 사정해도 만나줄 생각이 없는데 고작 측근을 시켜서 연락을 해?”
“아마 그의 측근들은 생각이 다를 겁니다.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중이겠죠.”
“왜 그러는 거래?”
“자존심이 아닐까요?”
“겨우 자존심 하나 지키려고 저런단 말이야? 탄핵 소리 나오는 걸 듣고도?”
“설마 하고 있을 겁니다.”
참 문제가 많은 나라란 생각이 들었다.
정치인들 대부분은 숨어버려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고, 대통령이란 자는 일을 해결할 생각은 안 하고 자존심 하나 지키겠다고 뻗대고 있는 꼴을 보니 지금 터지지 않았다고 해도 언젠가는 이런 일이 터졌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이번 기자회견은 아버지가 나선다며?”
“워낙 중요한 사항이라서요.”
“그래? 욕 좀 먹으실 텐데?”
“어쩔 수 없죠.”
대놓고 욕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뒤로 온갖 욕설들이 쏟아져 나올 거다.
이번 기자회견은 국민을 외면하겠다는 말을 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형이 해도 되지 않아?”
“그렇긴 합니다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직접 나서시는 게 사태를 빠르게 정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신 모양입니다.”
“그럼 다행이긴 한데…… 왜 자꾸 걱정이 되지? 설마 나 모르게 뭐 준비하고 있는 거 없지?”
“없습니다.”
살짝 당황한 듯 입을 여는 김 실장을 보자 순간 의심이 생겨났다.
김 실장이 당황하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뭐 있네. 그렇지? 좋은 말로 할 때 말해. 아버지가 지금 뭘 하려는 건데?”
“그건 회장님께 직접 들으시는 것이…….”
“휴우- 뭐 알아서 잘하시겠지.”
역시 김 실장은 아버지의 사람이었다.
이제 좀 나에게 넘어왔나 싶었는데, 아직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 * *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유명그룹 회장 유신입니다.
화면 속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대형 홀 그것도 엄청난 크기의 홀의 단상 위에서 인사를 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화면을 통해서 보고 있음에도 카리스마가 장난 아니었다.
모두를 휘어잡는 분위기를 풍기는 아버지의 모습에 기자들 역시 굳어버린 모습이 보였는데, 역시 세계 최고의 기업을 이끄는 경영자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저희 유명의 뜻을 밝히기 전에 하나의 영상을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영상은 저희가 유명시에서 물러나야 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아버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수군거리기 시작하는 기자들의 모습이 잠깐 비춰줬는데, 기자들의 수가 장난이 아니었다.
거의 천 명에 가까운 수의 기자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지금 저 자리에 존재하는 기자들이 국내만이 아닌 전 세계에서 모인 기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일은 국내에만 한정되는 사태가 아니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전 세계에 동시 송출되는 중이었기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지금 이곳이 집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잠시 후.
밝게 빛나던 조명이 꺼지고 스크린이 내려오기 시작하면서 아버지가 잠시 옆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스크린을 통해 하나의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바로 천여 마리를 훌쩍 넘어서는 마수들의 웨이브였다.
멀리 보이는 수많은 마수가 점차 클로즈업되기 시작하자 기자회견장 여기저기서 당혹성이 터져 나오며 분위기를 조금 변화시켰지만, 영상은 계속해서 재생되었다.
“헉-”
“아-”
“oh my god!”
클로즈업되었던 영상이 마수들을 훑으며 끝이 난 후 회견장의 분위기는 암울할 정도로 가라앉아 버렸다.
한숨 쉬는 소리만 들려오는 회견장.
그들은 영상을 모두 시청한 후 지금 인류의 상황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최악의 사태란 것을 확인하고 절망적인 표정으로 멍하니 꺼진 스크린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다시 단상 위로 올라왔다.
-이것이 바로 저희 유명이 유명시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입니다. 엄청난 수의 마수들을 극심한 피해를 보며 치열하게 막아내고 있음에도 수많은 욕을 먹어야 했던 저희 유명은 끝까지 그래도 유명시를 사수할 생각이었습니다. 언젠가는 국민이 저희 유명의 노고를 알아주실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부까지도 나서서 저희 유명을 몰아내려 할 줄은 몰랐습니다. 분명 그들은 저희가 하는 일을 어느 정도 예상하였음에도 해외의 세력과 결탁하여 저희 유명의 이미지를 깎아내고 더 나아가 국민을 선동했습니다. 결국, 저희는 유명시에서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말이 끝나자 아버지를 비추던 화면이 어떤 기자에게로 돌아갔다.
손을 번쩍 들어 올린 여기자였는데.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질문을 받지 않지만, 아버지는 그녀에게 마이크를 가져다주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입을 열었다.
-말씀하시죠.
-어째서 이런 이유가 있음에도 밝히지 않은 것이죠?
아마 지금 영상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이 바로 저 질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