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5화 (145/214)

리첼이 이쪽에 붙은 후 유명시의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전에는 그녀가 항상 외성에 머물렀기 때문에 중급 마수까지는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녀가 없는 상태.

당연히 점점 문제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부상을 당하는 각성자들이 늘어남은 물론 사망자 역시 늘어나면서 불안감에 떨던 일반인들이 결국 유명시를 떠나기 시작했고, 지금에 와서는 유명시 뚫릴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점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제 유명시를 걱정하는 것보다 서울에 열려 버린 게이트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유명시를 수호하는 해외의 길드들이 떠나게 되면 대한민국을 지킬 각성자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말 그대로 생존이 걸린 상황.

유명 길드가 남아 있긴 했지만, 모두 거처를 평양 신도시로 옮긴 상태였기 때문에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유명이 아닌 일반 길드들로서는 마수들을 절대로 막아내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니까.

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것을 깨달은 그들은 지금 유명과 접촉하기 위해 연락을 수도 없이 하는 중이었는데, 이쪽은 아직 그들을 만날 생각이 없었다.

미쳤다고 그들을 만나 주겠는가?

그들은 분명 나나 아버지 혹은 형을 만나게 되면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서 언론을 통해 공개한 후 친분을 과시하며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할 것이 뻔했다.

“그나저나 언제까지 이렇게 조용히 있어야 하는 거야?”

“이제 잠깐입니다. 곧 있으면 진짜가 나타날 테니까요.”

“대통령?”

“네. 그가 결단을 내릴 겁니다. 협상 테이블을 만들어 두고 이쪽을 부르겠죠.”

“과연 그가 포기할까?”

유명시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정부는 유명시를 가지고 장사를 했으니까.

관리를 넘겼을 뿐인 상황에서도 그들은 유명시의 권리와 부동산을 팔아 자신들의 잇속을 챙겼고, 그 때문에 아직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유명시를 유명에 다시 넘기려면 정부에게 구매한 부동산과 수많은 권리가 인정되지 않을 테고 정부는 그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했다.

문제는 그 돈이 지금 남아 있느냐다.

그동안 국민에게 퍼준 돈과 자신들의 배속에 들어간 돈이 적지 않을 텐데 과연 그들이 감당할 수 있을까?

* * *

“이쪽은 리첼 양이야.”

“안녕하세요. 리첼이에요.”

“안녕하세요! 이지안입니다!”

둘이 인사하던 모습을 잠시 보던 나는 대련장에 현지가 없음을 깨닫곤 지안에게 물었다.

“현지는?”

“조금 전에 갑자기 사라졌어요. 급한 일이 생각난 모양이에요.”

“그래?”

‘현지가 어딜 간 거지?’

의문이 들어 고개를 갸웃하던 그때 리첼이 지안을 향해 물었다.

“그때 그분이시죠? 활 쏘신 분!”

“네? 활이요?”

“모두가 위험에 처했을 때 갑자기 나타나셔서 순식간에 모든 악을 물리치신 분이시잖아요! 만나보고 싶었어요!”

“그, 그래요. 호호호. 칭찬 고마워요.”

지안은 조금 쑥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둘은 이어서 대화를 이어나갔는데, 어느새 친해져서는 서로 말을 편하게 하기 시작했고, 그를 보던 나는 의문이 하나 생겨났는데.

현지가 곁에 있는 것 같다는 느낌 때문에.

‘뭐지? 갑자기 사라졌다더니 왜 여기 숨어 있지?’

현지와 연결된 선에 접촉한 나는 현지가 지금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너 뭐하냐? 왜 숨어 있어?’

현지에게 마속으로 질문하자 현지의 대답이 곧 들려왔다.

‘저를 알아볼지도 몰라서 숨어있는 중인데요?’

‘상관없으니까 나오기나 해.’

들켜도 상관없다는 말.

그건 정말이었다.

아버지가 답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 소문이 퍼져 나왔을 당시 아버지는 그 소문의 진위를 파악하고 영국 왕실과 거래를 했다고 한다.

비밀을 지켜주는 대가로 유명이 큰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는 아버지의 설명에 나는 그녀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물론 그녀에게 다른 목적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이쪽이 얻는 것에 비하면 별것 아닐 거다.

일단 그녀가 외성에서 빠진 것만으로도 이쪽은 큰 이득을 챙겼기 때문이다.

“저 왔어요!”

갑자기 내 옆에서 모습을 드러낸 현지는 마치 어딘가 다녀온 듯한 연기를 하며 입을 열었다.

“어? 그때 그 언니 맞죠?”

현지를 발견하고 큰소리로 외치는 리첼.

현지의 말대로 그녀는 단번에 현지를 알아봤다.

“맞을걸?”

“역시 이곳에 있을 줄 알았어요!”

리첼은 현지가 당연히 이곳에 있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현지를 품을 수 있을 만한 곳이 유명 말고는 생각이 나질 않았겠지.

‘그나저나 왜 저렇게 좋아하는 거야?’

“그런데 두 분은 어떻게 그리 강해지신 거예요?”

리첼의 궁금중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세계 최강이라 평가받는 자들보다 둘은 말도 안 될 정도로 강했기 때문이다.

“그냥 열심히 훈련하다 보니 강해졌는데?”

“나도.”

“훈련만으로 그렇게 강해지셨다고요?”

의아한 표정으로 입을 여는 리첼.

내가 생각해도 조금 어이없는 답변이었다.

훈련만으로 저만큼 강해졌다는 말은 저 둘의 재능이 말 그대로 하늘에 닿아도 불가능할 테니까.

현재 10강이라 불리는 자들 대부분 재능은 둘에 비해 전혀 꿇리지 않았는데, 만약 훈련만으로 현지의 단계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이 사실이면 그들 역시도 지금 현지와 비슷해야 정상이었다.

“물론 실전도 많이 겪어야 하지만, 기본은 훈련이지.”

“그렇구나. 저는 벽에 막힌 후로는 아무리 해도 안 돼서 이제 포기했거든요. 책을 보니까 죽음의 위기를 겪으면 벽을 넘을 수 있다고 하길래 두 분은 죽음의 위기를 수십 번은 넘겼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네요?”

“정확히 말하면 나는 한 번? 지안이는 없지?”

“응. 나는 그런 거 겪은 적 없었어.”

셋의 대화를 듣던 나는 자리를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누가 더 강해요?”

“현지가 나보다 훨씬 더 강하지.”

“아직은 말이야.”

셋의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마치 친자매를 보는 듯한 기분을 느끼곤 조금씩 자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분명 이대로 몇 시간이고 수다를 떨 게 뻔해 보였기 때문이다.

“응? 도련님 어디 가세요?”

“어? 어, 나는 이만 볼일이 있어서 가 보려고.”

“저도 따라가야 하나요?”

“아뇨.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나 간다.”

“네!”

“네!”

리첼의 물음에 그럴 필요 없다 대답한 나는 인사를 한 후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 * *

선우가 떠난 후.

“그런데 두 분은 왜 선우 님을 부르는 호칭이 달라요?”

“당연히 직업이 틀리니까 호칭이 다르지.”

“네? 직업이요? 두 분. 유명 길드 소속 아니에요?”

“아닌데? 나는 대표님 비서야. 얘는 메이드고.”

“네? 메이드라뇨? 제가 아는 그 메이드를 말하는 건가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하는 리첼을 보며 현지가 자랑스럽다는 듯 가슴을 쭉 내밀며 입을 열었다.

“맞아! 나는 도련님의 메이드지!”

“나는 비서!”

둘을 보던 리첼은 이 둘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누가 뭐래도 이 둘은 세계 최강자였다.

그것도 압도적인 차이로 말이다.

그런 자들의 직업이 비서에 메이드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두, 두 분은 세계 최강이라 불려도 될만한 분들이잖아요! 왜 직업이 그런 거예요!”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에 찬성하는 리첼이었지만, 이 둘의 직업만은 아니었다.

세계 최강이란 칭호를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자들이 선택한 직업이 비서에 메이드라니?

아니, 비서는 그나마 좀 괜찮았지만, 메이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 역시 메이드를 두는 공주였기에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현지처럼 메이드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거나 좋아서 메이드 일을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세계 최강? 에이~ 설마!”

“우리는 그렇게 강하지 않은데?”

“네? 강하지 않다뇨? 저만 해도 얼마 전까지 세계 최강자란 소리를 들었다고요. 당연히 저보다 훨씬 강한 두 분이 세계 최강이죠!”

리첼은 이상하게도 세계 최강이란 호칭을 강조했다.

“도련님이 있는데 어떻게 내가 세계 최강이야?”

“맞아. 대표님이 있는데.”

“네? 유선우 님이요? 그분이 그렇게 강해요? 강하다는 건 알겠지만, 두 분에 비하면 잘 모르겠는데?”

리첼 역시 선우의 힘을 어느 정도 파악한 상태였다.

하지만, 리첼이 파악한 선우의 힘은 파괴의 마력을 사용하기 전의 힘이었기에 자신과 비슷하거나 조금 낮은 정도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야. 도련님이 힘을 드러내면 정말 무섭다고. 완전 무서워. 나 같은 건 수백, 수천 명이 있어도 단숨에 쓸려나가 버릴걸?”

“맞아! 그때 느꼈던 그 힘은 정말 소름 끼쳤다니까!”

현지와 지안은 마계에 도착했던 순간 선우가 보여주었던 힘에 대해 떠올리며 몸을 잘게 떨며 입을 열었다.

“저, 정말이요?”

“어? 근데 이거 말해도 되는 거야?”

“말해도 되지 않을까? 도련님이 상관없다고 했으니까 괜찮을 거야.”

선우가 들었다면 깜짝 놀라며 헛소리하지 말라 소리쳤을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둘이었다.

* * *

“아버지 저예요.”

“들어오거라.”

문을 열고 들어가자 특이하게도 아버지 혼자 계셨다.

“레이는요?”

“학교 갔다!”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시는 아버지.

“아! 벌써 학교가 개학했어요?”

평양 신도시에 세워지고 있던 학교가 완공된 듯싶었다.

“그 좀 늦추라니까! 수아가 학교에 다닌 후로 외롭던 시간이 레이로 인해 채워졌는데, 또 학교라니! 이것 참 대한민국에 학교를 없애든지 해야지 원 늙은이 서러워서!”

“어머니 계시잖아요.”

그러고 보니 어머니는 어디 가신 거야?

“네 엄마? 네 형한테 가서 물어봐!”

왜 이러시는 거지?

“형이 또 왜요?”

“그놈이 아직도 네 엄마를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네 엄마가 매일 찾아가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중이다.”

‘아! 그래서 형 얼굴이 그리 좋았던 거야?’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너무 바빠 제대로 씻지도 못하는 행색이었던 형이 며칠 전부터 확 바뀐 상태였다.

제대로 된 관리를 받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게 어머니 때문이었어?

형은 나와 다르게 좀 특이한 성격이었다.

누군가가 자신을 건드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사용인들을 거부하고 알아서 대부분의 일을 홀로 처리한다.

심지어 방 안의 청소조차 직접 할 정도로 좀 특이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요? 그러기엔 형이 정말 많이 변한 것 같은데요?”

“괜히 화풀이하는 거지. 빌어먹을 놈!”

“하하하. 아버지 지금 형한테 질투하시는 거예요?”

“질투는 무슨!”

“그런데 아버지? 요즘 무슨 특별한 관리라도 받으세요? 많이 젊어지신 것 같은데?”

보통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늙는 것이 당연했지만, 특이하게도 아버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젊어지시는 것 같았다.

“뭐, 뭐가 말이냐?”

“아니. 좀 이상해서요. 너무 젊어지신 거 아니에요?”

몸에 좋다는 걸 아무리 챙겨 드신다고 해도 이건 좀 정도가 심한데?

그렇다고 나쁜 건 아니었지만, 좀 이상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그냥 뭣 좀 먹었다.”

“뭘요?”

“뭘 물어 이놈아! 아버지가 먹고 젊어졌으면 좋아해야지 그리 꼭 캐물어야만 하겠냐?”

이거 의심스러운데?

나 몰래 뭐를 드시는 거지?

이건 나중에 좀 알아보기로 하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겠다.

“뭐 드셨는지 안 물어볼게요. 그러니까 화 좀 푸세요.”

“크흠-”

아버지의 화가 좀 풀리신 후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해 입을 열었다.

“아버지. 협상 자리에 직접 나가실 거예요?”

“내가 나갔으면 하느냐?”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저나 아버지, 형, 셋 중 한 명은 꼭 가야 할 것 같아서요.”

“그럴 필요 없다. 괜히 직접 나서봐야 좋은 꼴을 보지는 못할 테니까.”

“그 말씀은?”

“그놈들이 그냥 물러날 것 같으냐? 별시답잖은 이유를 대면서 시간을 질질 끌기나 하겠지.”

아버지의 말에 의문이 하나 생겨났다.

“시간을 끌다뇨? 시간을 끌면 불리한 건 그쪽 아니에요?”

바로 이것이었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리한 건 이쪽이 아니었으니까.

“놈들이 괜히 정치인인 줄 아느냐? 그놈들은 유명시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놈들이야. 그저 제 밥그릇을 챙기는 게 가장 중요한 놈들이지.”

“그 말씀은?”

“그래. 시간을 질질 끌면서 자신들이 유명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보여주려 하겠지.”

이 말이 정말이라면 정치인이란 자들은 쓰레기라 욕먹어도 할 말이 없어야 정상이었다.

그것도 일반 쓰레기가 아닌 폐기물 급의 쓰레기.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아는 정치인들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았기에 부정하지는 못했다.

“정말 그들이 그럴까요?”

“그것만 하면 다행이지. 그놈들은 더한 짓도 할 놈들이야.”

“그래도 국민을 위해 움직이는 자들이 있을 것 아니에요?”

“있기야 하겠지. 하지만 그들이 그 자리에 나올 수나 있을 것 같으냐?”

‘그것도 그렇네?’

힘을 가진 정치인들 대부분이 썩었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온갖 비리를 저질렀기에 지금의 힘을 가진 것일 테니까.

“그럼 김 실장 보내시게요?”

“그래. 김 실장과 유명의 협상팀을 함께 보낼 생각이다.”

“잘하겠죠?”

“걱정할 필요 없다. 그들을 아주 박살 내버리라고 했으니까.”

말을 끝내신 아버지는 미소를 짓고 계셨다.

정말 섬뜩할 정도로 사악한 미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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