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올게요.”
“회장님,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하게. 다른 아이들이야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자넨 아니야. 몸조심해.”
“네!”
누가 보면 내가 아닌 김 실장이 아버지의 아들인 줄 알겠다.
“아빠 다녀오세요!”
“다녀오세요!”
수아와 레이의 배꼽 인사에 밝은 미소를 지은 나는 이어서 둘에게 입을 열었다.
“아빠가 없는 동안에도 사이좋게 지내야 한단다. 알았지?”
“네에~”
“네에~”
쌍둥이처럼 대답하는 둘을 보자 기분이 급격히 좋아진 나는 둘을 꽉 안아주었다.
“아버지, 어머니 가끔 들를게요.”
“그래. 너도 몸조심하거라.”
아버지와 어머니, 수아와 레이의 배웅을 받던 나는 문득 형이 생각났다.
“근데 형은 많이 바쁜가 봐요?”
“바쁘지. 이번 일로 인해 더 바빠졌단다.”
“하하하, 이거 좀 미안하네요. 그럼 다녀올게요!”
이번 여정은 특이하게도 김 실장도 함께였다.
레이의 영지를 직접 살피고 싶다는 김 실장의 제안 때문에 함께하게 되었는데, 영지의 발전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었기에 김 실장도 동행하기로 결정했다.
“미호야. 부탁해.”
“끼웅!”
내 어깨에 앉아있던 미호가 대답하자 눈앞에 공간이 벌어지며 문이 나타났다.
“갈까?”
“네!”
“아! 무슨 일 있으면 제가 설명해 드린 대로 하시면 돼요.”
미호의 분신을 남겨두었기에 무슨 일이 생기면 분신을 통해 레이의 영지까지 올 수 있도록 방법을 생각해 두었다.
일단 경계가 되는 지점으로 문을 연 후에 경계를 통과하면 또 하나의 미호의 분신이 대기하고 있을 테니 그를 이용해 레이의 영지까지 올 수 있도록 말이다.
미호 역시도 최상급으로 올라섰기에 분신의 힘이 강력해졌는데, 정확히 상급 마수의 중위권 정도 되는 힘을 발휘했다.
그 덕분에 미호의 분신을 홀로 그곳에 배치해도 문제가 생길 일이 없었다.
“그래. 알았으니 이만 가 보거라.”
“네.”
나와 김 실장은 배웅을 받으며 공간의 문으로 향했고, 이어서 공간의 문 안으로 들어갔다.
“오셨어요?”
“그래. 준비 끝났지.”
“네.”
이번 여정은 인원이 많이 늘어난 상태였다.
현지와 지안 뿐 아니라 뚱이와 하임, 니안, 펜릴까지도 이번 여정을 함께할 예정이었다.
지금 도착한 나와 김 실장, 미호까지 하면 이번 여정의 인원은 총 아홉이었다.
혹시 모르는 사태를 대비해 왕눈이와 바포메트, 마지막으로 샤크를 남겨둔 상태였는데, 그 이유는 단순했다.
지능이 뛰어나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할 수 있을 것 같았기에 일단 셋을 남겨둔 상태였다.
왕눈이의 경우 내 소환수들을 이끌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고, 바포메트의 경우에는 리첼을 담당하도록 지시해 두었는데, 잘 될지 모르겠다.
리첼은 아직 세상에 내보일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솔직히 믿음도 없었기에 괜히 받아들였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그건 후에 가보면 알 수 있을 거다.
나에게 필요한 존재인지.
마지막으로 샤크의 경우 수아를 위해서 남겨두었다.
정말 급한 상황이 생기면 수아를 삼켜 버린 채로 도주할 수 있도록.
“그럼 출발할까?”
“네!”
“네!”
지안과 현지의 대답에 미소를 지은 나는 경계를 향해 나아갔다.
김 실장이 내 옆에 꼭 붙어서 조금 긴장된 표정으로 따라오는 것을 보며 미소지은 나는 그대로 경계를 통과했고, 모두가 내 뒤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군주님이 돌아오시는 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공간의 문을 통해 레이의 영지에 있는 성에 도착하자 나를 보며 무릎을 꿇은 채로 최대한의 예를 보이는 집사가 보였다.
그 뒤를 따라 룩산과 시녀들이 똑같은 자세로 예를 취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는데.
“어떻게 알고…… 라면 먹고 있었어?”
“그, 그게…… 그렇습니다.”
지구로 돌아가기 전 남아 있던 모든 식품을 남겨두고 갔었는데, 그중 라면을 먹고 있었던 듯 보였다.
두 개의 버너와 거대한 두 개의 냄비, 마지막으로 냄비 속에서 펄펄 끓고 있는 라면이 보였기에 금방 유추할 수 있었다.
‘난 또 나 마중 나온 줄 알았네.’
하긴 내가 언제 올 줄 알고 마중을 나와 있겠어?
“일단 먹어. 먹고 이야기하자.”
“넵!”
“어? 잠깐만? 지금 나랑 육성으로 대화 중인 거 맞지?”
“그렇습니다.”
떠나있던 동안 한국어를 열심히 익혔는지 대화에 막힘이 없는 모습에 조금 놀란 나는 다시 한번 마족들이 똑똑하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었다.
“와- 라면 먹고 있었네요?”
“아! 난 이제 라면은 보기만 해도 질리는데.”
“도련님. 저분들이 마족이란 종족입니까?”
이어서 공간의 문을 통과한 지안과 현지, 김 실장이 입을 열었고.
“일단 다른 방으로 가서 기다리자. 애들 밥 먹는데 신경 쓰이겠다.”
“네!”
“천천히 먹고 와.”
“감사합니다!”
밥 먹는 걸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에 일행을 데리고 일단 방을 벗어난 나는 바로 옆방으로 이동했다.
“방금 봤던 애들이 마족들이야.”
“역시 생각대로 인간과의 차이점이 별로 없군요. 이 정도면 유명의 직원들도 편하게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잠시 생각을 하던 김 실장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김 실장의 생각에는 찬성할 수 없었다.
“그건 아닐 수도 있어.”
“무슨 말씀이신지?”
“쟤들은 상급 이상의 마족들이기 때문에 저런 모습인 거야. 다른 마족들은 조금 다르거든. 피부색이 다르다거나 덩치가 엄청 커서 조금 흉악해 보이긴 할 거야.”
중급 마족만 되어도 덩치가 엄청 컸다.
3m 이상의 키를 가진 우락부락한 마족들이 이곳 영지에는 널려 있었고, 그보다 더욱 거대한 5m 가까이 되는 하급 마족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기에 직원들이 조금 겁을 먹을지도 몰랐다.
참 특이하단 말이야.
약할수록 크고, 강할수록 작다니···
어떻게 진화를 하면 저렇게 되는 걸까?
“그럼 일단 강단이 있는 직원들을 우선으로 선별해야겠군요. 그래야 일의 능률이 조금이라도 오를 테니까요.”
“그렇지. 어?”
근데 누구 하나가 안 보이는 것 같은데?
“무슨 문제라도?”
“아! 뚱이!”
김 실장과 대화를 이어가던 나는 뚱이가 안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곤 급히 집사가 있는 방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넌 뭐 하는 자식인데 남의 것을 빼앗아 먹는 것이냐! 설마 군주님을 따라온?”
“쿠워?”
내가 이럴 줄 알았다.
뚱이가 없는 모습에 설마 했는데, 라면에 정신이 팔려서 내 말을 듣지 못한 채 방에 남은 모양이었다.
“킥킥킥- 역시 돼지네요. 좀비라고 했던 말 취소.”
방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나를 따라 움직인 현지가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어휴-”
한숨을 내쉬며 문을 연 내 시야에는 라면을 양손으로 움켜쥔 채 고개를 갸웃하며 의아한 눈으로 룩산을 바라보는 뚱이가 보였고, 그에 황당한 표정으로 뚱이를 보는 룩산이 시야에 들어왔다.
“넌 어째 아직도 식탐이 그대로냐?”
“본능이 어디 가겠어요?”
“너 가지고 온 음식들 꺼내서 뚱이 좀 줘. 아니다, 그냥 여기서 같이 먹게 한 상 거하게 차려줘.”
“네.”
공간 확장 주머니는 주머니 속의 공간만 확장 시키는 것이 아니라 넣었던 상태 그대로 유지 시켜주는 보존 기능이 있었다.
그 때문에 이번 여정에는 주방을 담당하는 쉐프에게 부탁해 10명이 몇 개월을 먹어도 부족하지 않을 각종 음식을 만들어 보관해 둔 상태였는데, 공간 확장 주머니에 넣어둔 음식은 넣었을 때 그대로의 맛과 형태 심지어 그 온도까지도 유지해 주었기에 이번 여정은 음식 때문에 곤란한 일은 없을 거다.
“자! 드세요! 이것이 바로 인류 최고의 요리사가 요리한 최고급의 요리랍니다! 아니, 예술이라고 할 정도로 상등급의 요리들입니다!”
마치 자신이 요리한 요리를 선보이듯 상을 차린 현지가 쉐프라도 된 듯 입을 열었다.
“그, 그 정도란 말입니까?”
“물론이죠. 드셔보시면 깜짝 놀랄 겁니다.”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지금 현지가 하는 연기는 분명 자신이 봤던 만화책에서 나온 내용이리라.
‘어째 내 주변에는 정상이 없는 것 같냐? 아! 김 실장은 빼고.’
하임이 가장 빨리 문제를 일으킬 줄 알았지만, 오히려 사고를 잘 안 치는 뚱이가 사고를 칠 줄은 몰랐기에 앞으로에 대한 걱정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 * *
“서로 인사해. 이쪽은 김 실장. 이쪽은 집사인 알프레도.”
“반갑습니다. 김건우입니다. 편하게 김 실장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집사인 알프레도입니다. 편하게 집사나 알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치열했던 식사가 끝난 후 나는 서로를 소개해 주었고, 둘은 나의 지시 없이도 서로에 대해 파악하며 앞으로 해나갈 일들을 상의하기 시작했다.
영지의 발전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유명의 직원들이 유입된 후의 상황대처까지도 상의하는 둘을 보던 나는 이 자리에서 빠져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대단하단 말이야?’
김 실장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
아니, 여러 종류의 전문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 맞으리라.
변호사를 비롯한 세무, 회계, 감정평가 등등의 자격증뿐 아니라 교사 자격증까지도 보유하고 있을 정도였다.
물론 그것만이 아니었다.
농업이나 건축에 대한 전문 지식까지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별별 이상한 자격증들을 수십 개나 가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이번 여정을 따라온 것이었고.
“자리를 피해 주자.”
“네. 그럼 어디로 가실 거예요?”
“일단 연무장으로 가자. 룩산이랑 뚱이 거기 있다며?”
“네.”
현지는 지금 연무장에서 둘의 대련을 구경 중이었고, 나를 따라다니는 것은 지안이었다.
“아! 하임은?”
“같이 있을 거예요.”
“확실하지?”
“네.”
솔직히 하임을 데려와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고민을 많이 했다.
그 작은 녀석이 어디로 튈지 몰랐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감시 잘해. 사고 못 치도록.”
“네. 저와 현지가 돌아가며 붙어 있기로 했으니까 문제 생길 일은 없을 거예요.”
지안과 대화를 이어가며 연무장으로 이동하던 나는 곧 연무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저게 뭐 하는 거야?”
“뭐 하는 거긴요? 하임이랑 룩산이랑 대련 중이잖아요.”
내 황당한 어투에 현지가 대답했다.
“그 말이 아니잖아. 뚱이랑 대련한다며? 그리고 저게 어딜 봐서 대련이야? 일방적인 괴롭힘이지!”
정말이었다.
하임과 대련 중인 룩산은 어이없게도 손도 제대로 쓰지 못한 채 당하고만 있는 상태였다.
“그게 뚱이랑 대련하려는데 갑자기 하임이 나서더라고요.”
“왜?”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그럼 저건? 왜 룩산이 상대도 안 되는 건데? 하임이 원래 저렇게 강했어?”
“보시면 아시잖아요. 하임이 아다만티움을 움직이고 있는 거.”
“어? 정말이네?”
현지의 말을 듣자 그제야 지금 하임이 다루는 금속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보랏빛의 금속.
아다만티움이라 불리는 특이한 금속이라는 것을.
일반적인 금속이었다면 룩산이 저렇게 일방적으로 당하지는 않았을 거다.
하지만, 룩산의 공격을 방어하고, 룩산을 공격하는 것이 바로 아다만티움이었기에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마력을 모두 자연으로 돌려버리는 아다만티움의 특성상 룩산의 공격은 통하지 않았고, 반대로 하임의 공격은 직방으로 룩산을 강타했다.
방어하기 위해 몸을 감싼 마력을 그대로 흩어버리는 아다만티움이었기에 룩산은 버티질 못하고 있었다.
특히 그 무게 때문에 더욱 큰 타격을 입는 것 같았는데.
-이 치사한 난쟁이 놈! 아다만티움을 무기로 삼다니! 크억-계속 당하면서도 끊임없이 입을 놀리는 룩산은 승부욕도 대단해 보였다.
보통이라면 진작에 포기했어야 하는 상황이었음에도 끝까지 버티려는 룩산.
“뀨? 뀨뀨!”
퍼억-
“근데 저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아다만티움은 마력을 흩어버리는데 어떻게 다룰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까요. 저도 좀 신기하네요.”
룩산을 괴롭히며 환한 미소를 짓는 하임을 보자 레이와 하임의 관계가 문득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좀 이상하네? 마치 하임이 마족을 싫어하는 것 같잖아?
콰앙-
대련의 끝은 룩산이 정신을 잃으며 끝이 났다.
엄청난 충격에 미호가 만든 결계에 부딪혀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 룩산의 움직임이 멈췄기 때문이다.
“근데 정말 무섭긴 하네요. 저 공격이야 피하면 그만이지만, 공격할 수단이 없어요. 저걸로 몸을 감싸버리면 저라도 뚫지 못할 것 같은데요? 물론 그 공간으로 들어가면 간단하긴 하지만.”
현지의 말대로였다.
모든 마력을 흩어버리는 아다만티움으로 몸을 감싼다면 공격할 방법이 없었으니까.
마족들 역시도 저런 식으로 아다만티움을 활용할 방법을 연구해 봤다고 했지만, 무게가 너무 무거워 모두 실패했을 정도로 아다만티움의 무게는 장난 아니었다.
갑옷에 코딩하는 것만으로도 갑옷의 무게가 수십 톤이 되어 버리는데 누가 그걸 착용할 수 있을까?
아니, 코팅 자체가 불가능했다.
철이 아다만티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형태가 망가져 버리기 때문에.
“미호야, 일단 룩산을 좀 치료해 줘.”
“끼웅!”
미호에게 룩산의 치료를 맡긴 나는 하임을 불렀다.
“하임! 이리 와.”
“뀨? 뀨우!”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달려오는 하임.
“너 저거 어떻게 조종한 거야?”
“뀨? 뀨! 뀨뀨뀨!”
“의념으로!”
하임 이것은 의념을 보낼 수 있음에도 왜 자꾸 뀨뀨거리는 지 모르겠다.
-그냥 했다!
“그냥? 그러니까 어떻게?”
-이렇게!
후웅-
순간 뭉쳐진 아다만티움이 내 앞을 스쳐 지나갔고, 그 영향으로 강한 바람을 맞을 수밖에 없었는데.
“으헉-”
“뀨뀨!”
내가 놀라자 뭐가 그렇게 좋은지 활짝 웃는 하임.
“마력을 사용한 거야?”
-아니다!
“그럼?”
-능력!
“무슨 능력?”
-땅을 다루는 능력!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게 바로 마력인데? 설마?
“땅을 다루는 데 사용하는 것이 마력이 아니었어?”
-응!
“그럼 그동안 마력은 왜 사용한 건데?”
-강화!
아! 그런 거였어?
지금까지는 다루던 모래나 돌의 강도가 너무 약했기 때문에 마력을 이용해 강화한 거였어!
“와! 그럼 애초에 땅을 다루는 데 마력이 필요 없었던 거였구나!”
옆에서 지안이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깐만? 그럼 어떻게 땅을 조종하는 거지? 초능력 같은 건가?
염력과 비슷한 어떤 능력이 하임에게 있었던 거였구나? 아니, 하임 뿐만 아니라 임프들에게도 그런 능력이 있었던 거네?
이거 잘 사용하면 최강의 능력이 될지도 모르겠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족들조차 다루지 못하는 아다만티움을 다룬다면 엄청난 힘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