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들이 다 너희들이 한 일이었다고?
-그렇다. 우리 난쟁이족은 새롭게 정착하게 되면 땅의 주인에게 선물을 안겨줌으로써 대가를 치르고 그곳에 자리를 잡는다!
들어보니 이거 생각보다 괜찮은 종족일세?
-너는 어떤 선물을 주었는데?
-너희들이 가장 좋아하는 마석 광산으로 통하는 길을 만들어 주었지.
-우리가 마석 광산을 가장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고?
-아닌가? 그때 너희들은 마석 광산 하나 때문에 우리들을 쫓아내려 하지 않았나?
아! 그걸 말하는 건가?
마족의 공작이 난쟁이족을 건드렸던 일?
-너도 그곳에 있던 난쟁이족인가?
-그렇다!
-그럼 이곳에도 수많은 난쟁이족이 있다는 말이네?
-아니다. 이곳에는 나 혼자뿐이다.
-어째서?
-그, 그건…….
혼자인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이후로 어떤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 난쟁이족의 표정을 통해 드러났는데.
-설명해 줄 수 없는 건가?
-그건 아니다. 하지만 쉽게 꺼낼 수 있는 이야기도 아니다.
-어째서.
-우리의 신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신? 설마 난쟁이족의 군주를 말하는 건가?
-너희들은 아직도 그분들을 그렇게 부르고 있는 건가? 역시 미개하구나! 감히 그분들에게 군주란 하찮은 표현을 사용하다니.
역시 내 생각이 맞는 것 같았다.
마족들만이 그들을 군주라 부를 뿐이었고 다른 종족들은 그들을 신이라고 칭하는 모양이었다.
-그럼 신이라고 정정하도록 하지. 그럼 난쟁이족의 신이 어떤 명령을 내렸다는 거지?
-그건 말할 수 없다. 우리 난쟁이족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너에게 내가 왜 그런 설명을 해 줘야 하는 거지?
-혹시 모르잖아? 내가 그 신들 중 하나일지도?
-웃기지도 않는 소리를……?
순간 난쟁이의 표정이 굳어지며 이어지던 의념이 멈췄는데, 아무래도 하임이 주인이라 했던 것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거기다, 보통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자들은 신을 절대로 사칭하지 않았다.
인간들과 다르게 이 세상에는 그 신이라는 존재가 실존했으니까.
-서, 설마? 마, 말도 안 돼!
-뭐가?
-다, 당신이 신이라고? 아, 아니, 신이십니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으헉!
내 대답에 놀라 뒤로 자빠져 버린 난쟁이.
그는 내가 정말 자신이 아는 그 지배의 군주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은 생각보다 남의 말을 쉽게 믿는 것 같았다.
-어때? 이제 설명해 줄 수 있겠어?
-그, 그것이…… 그날 저희의 신께서 나타나셨습니다. 너무 큰 힘을 사용했다 저희를 꾸중하셨고, 저희에게 다시는 뭉치지 말란 명을 내리셨습니다.
-뭉치지 말라고?
-그렇습니다. 한 부족에 최대 1천까지만 모이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그건 어째서지? 마족과의 충돌이었잖아. 너희들로서는 당연한 힘을 행사한 것일 텐데?
-그날 저희는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을 건드렸습니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그게 뭔데?
-바하무트입니다. 땅속 깊은 곳, 허무의 세상에 바하무트가 봉인되어 있다는 사실을 저희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죠. 그 때문에 그 당시 저희가 한 일로 인해 그곳에 존재하던 모든 마족이 허무의 세상에 빠져 바하무트의 사념에 잠식되어 한차례 소란이 잃었고, 그 때문에 저희의 신께서 힘을 사용하셨습니다.
바하무트가 봉인되어 있는 곳이 땅속 깊은 곳에 존재하는 허무의 세상이라고?
이건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아니, 집사는 물론 아마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종족들 대부분이 모르고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물론이고 마족들조차 그 사실을 모르고 있던 거지?
-신께서 그 사실을 숨기셨습니다. 그곳에 더욱 거대한 구멍을 만드시고 그곳을 봉인하셨으니까요.
아! 그래서 그곳에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고 했던 거구나?
집사는 그 어마어마한 넓이의 구멍을 살펴보기 위해 마족은 물론이고 많은 종족이 나섰지만, 그 누구도 그곳에 들어갈 수 없었다고 했다.
그나저나 다른 군주들에게까지 그 사실을 숨겼다는 건가?
-군주들에게까지 숨겼다고?
-그건 아닙니다. 그때 다른 분들도 그곳에 강림하셨으니까요.
-오호라?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저희의 죄를 대신해 저희의 신께서 대신 저희의 형벌을 받고 계시는 중이시지요.
응? 뭔가 이상한데?
왜 난쟁이들이 죄를 지었다는 거지?
애초에 마족이 먼저 시비를 걸어 일어난 일이잖아?
-그건 어째서지? 그 일은 마족이 자초한 일이 아닌가?
-저희가 너무 과하게 힘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허무의 세계에 구멍을 뚫지 않고도 충분히 마족들을 혼내줄 수 있음에도 힘을 보여주기 위해 과한 힘을 사용했다는 것이 죄였습니다.
이건 좀 억울할 만한데?
알았던 것도 아니고 몰랐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인데 어째서 난쟁이족이 그 벌을 받아야 하는 거지?
거기다 군주라는 자들이 어떻게 난쟁이족의 신에게 죄를 물을 수 있었던 거지? 동등한 존재라며?
-난쟁이족의 신이 받는 형벌이 뭔데?
-평생 그곳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평생이라고? 영원히?
-그렇습니다.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어쩔 수 없으셨을 겁니다. 모든 신께서 저희를 지우려 하셨을 정도로 화가 많이 나셨으니까요.
-뭐? 난쟁이족을?
-그렇습니다. 그날 저희가 한 짓은 절대 용서받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바하무트를 봉인하는 결계에 구멍을 내 버렸으니까요.
듣고 보니 화가 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하무트를 봉인하는 결계에 구멍을 내버렸다니?
지금 상황이 모두 난쟁이족 때문에 일어난 것이나 마찬가지란 소리였으니까.
바하무트의 봉인이 깨어질지도 모른다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저희의 신께서는 저희에게 1천 이상 모이지 말라 명하셨고, 본인께서 직접 결계를 담당하시는 것으로 저희를 용서해 달라 다른 신들께 청하셨습니다. 그 결과 저희 종족은 살아남을 수 있었지요.
-그래서 혼자 지내고 있었다는 거야?
-그렇습니다. 그 이후 저희 종족은 같은 종족을 만나는 것을 극도로 꺼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조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종족을 만나는 것을 꺼리게 될 정도라니?
-지배의 신격을 지니신 분이시여. 제발 저희의 신을 도와주십시오!
생각에 잠겨있던 사이 난쟁이가 나에게 최대한의 예를 취하며 의념을 보냈다.
-내가?
-저희의 신과 가장 친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제발 저희의 신을 모른척하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이것 참 곤란하게 됐는데?
이야기나 좀 들어볼까 하다 코가 꿰인 듯했다.
내가 정말 지배의 군주가 맞다면 도와줄 수도 있었겠지만, 난 지배의 군주가 아니었다.
그러니 당연히 도와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네놈이 감히!
갑작스럽게 콜라가 화를 내며 기운을 분출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룩산 역시 마찬가지였다.
‘왜 저래?’
-네놈 따위가 감히 군주님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냐!
-그, 그건…….
희생이라?
콜라의 말에 도와달라는 의미를 눈치챌 수 있었다.
지배의 군주가 갑자기 이 세상에서 모습을 감추었던 이유를 알고 있었기에 그 의미를 파악한 후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고 너희의 신을 위해 다시 한번 희생해달라고?
-그, 그것은 아닙니다. 그저 다른 신들을 설득해 달라는 의미였습니다.
-설득이라? 그게 가능할까? 애초에 그곳을 지키지 않아도 바하무트의 봉인이 유지 가능했다면 난쟁이족의 신이 그곳을 지킬 필요가 없을 텐데? 결국, 네가 말하는 도움이란 그 대신 내가 그곳에 들어가 달라는 것이 아니냐?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필요 없는 곳에 갇혀 지내고 싶은 존재는 없을 테니까.
난쟁이족 역시 알고 있었는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를 보며 나는 일단 이 난쟁이족을 달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그것은 나중에 생각해보기로 하지. 만약 도움을 주는 것이 가능하다면 돕는 쪽으로 움직일 테니 너무 실망하지는 말고.
-저, 정말이십니까?
내 말에 화색이 도는 난쟁이족.
지금은 이 난쟁이족이 필요했기에 그에게 좋은 말을 해주는 것이 중요했다.
하임을 따라다니다간 언제 아다만티움을 얻을 수 있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이 근처에 아다만티움 광산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어디에 있는지 알아?
-알고 있습니다. 안내해 드릴까요?
-부탁 좀 하지.
-그럼 저를 따라오시죠.
마치 내가 난쟁이족의 신을 당장이라도 도와줄 것처럼 생각하는 듯 행동하는 난쟁이.
물론 거짓을 말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도와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도움을 줄 거니까.
다만 그럴 일이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 * *
-이곳입니다. 아다만티움의 광산이란 것을 깨닫곤 마족들이 철수한 곳이죠.
난쟁이가 안내한 곳은 거대한 동굴이었다.
자연적으로 생겨난 곳이 아닌 누군가 힘으로 뚫어버린 듯한 모습의 동굴.
“하임 바로 시작해.”
“뀨!”
내 지시에 곧장 동굴 속으로 사라지는 하임을 보다 콜라와 룩산에게 고개를 돌리자 그들은 언제 화를 내었냐는 듯 주머니에서 예의 그 과일을 꺼내 계속해서 입에 넣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실소를 내뱉은 나는 한쪽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기다렸고, 이어서 강한 진동이 동굴 쪽에서부터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지진이 난 듯 심하게 떨리는 땅의 진동을 느끼며 살며시 미소짓던 그때 동굴에서 굉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쾅- 콰광- 콰과광-
하임이 광맥에서 아다만티움의 광석을 강제로 뜯어내고 있는듯한 소리가 들렸고, 그와 동시에 진동은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다.
‘어? 이건 좀 아닌 거 같은데?’
처음엔 분명 하임의 힘만 느껴졌는데, 어느 순간부터 하임의 기운만이 아닌 다른 존재의 기운 역시도 느껴지기 시작했기에 고개를 갸웃한 순간.
-웜! 웜이다!
-아다만티움 광산의 웜이라니?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난쟁이가 급히 외치자 콜라가 그를 듣고는 깜짝 놀라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웜이라면 지렁이를 말하는 건가?”
그나저나 지렁이 하나 가지고 왜 이리 호들갑이야?
느껴지는 기운 역시 그리 강한 수준은 아닌 것처럼 보였기에 황당함에 물든 순간.
“군주님 큰일입니다. 하임이 위험합니다.”
“도대체 뭐가 큰일 났다는 거야? 별로 강한 것 같지도 않은데?”
“저도 다른 곳에서 나타난 웜이라면 군주님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겠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이곳에서는 아니라니?”
“이곳은 아다만티움 광산이지 않습니까?”
“그게 왜?”
이곳이 아다만티움 광산인 거랑 웜이랑 무슨 상관이라고 저러는 거지?
“보통의 웜은 광산 주변에 똬리를 틀고 살아갑니다. 광석을 흡수하여 자신의 몸을 강화하는데, 자신이 흡수한 광석과 비슷한 강도와 광석의 특성을 뛰는 신체가 만들어집니다. 문제는 저놈이 아다만티움 광산에서 살아가는 녀석이라는 거죠. 당연히 아다만티움의 특성과 강도를 지니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 말 정말이야?”
솔직히 말하면 충격이었다.
아다만티움과 비슷한 강도를 지녔을 뿐 아니라 특성까지도 비슷한 신체를 가진 거대 지렁이라니?
콰앙- 콰과광- 쿠앙-
동굴이 무너질 듯한 충격파가 계속해서 터져 나오며 주변을 뒤흔들었고, 그에 나는 하임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하임아! 거기서 상대하지 말고 일단 끌고 나와!’
하임과 연결된 선을 통해 일단 웜을 유인하라 지시한 나는 콜라와 룩산에게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준비해! 하임이 녀석을 이곳으로 유인할 거야. 나타나는 순간 전력을 다해 녀석에게 공격을 때려 박아!”
“네!”
-네!
룩산과 콜라는 대답과 동시에 전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나타날 녀석을 기다리며 모든 힘을 끌어올린 둘.
하지만, 하임은 한참이 지난 후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임이 당한 것은 아니었다.
계속해서 충돌하는 두 개의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설마 퇴로를 차단당한 건가?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곧장 하임과 연결된 선을 통해 하임의 상황을 살폈고, 이어서 하임이 처한 상황을 알 수 있었다.
하임은 지금 녀석의 배 속에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엄청난 양의 아다만티움과 함께 녀석의 뱃속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 하임.
“이런! 유인할 만한 처지가 아니야! 당장 진입해야겠어!”
동굴이 무너질 위험이 있었지만, 그건 미호의 결계로 어떻게든 될 거다.
“가자!”
내가 움직이자 곧장 내 뒤를 따라 움직이던 콜라와 룩산이 순식간에 나를 앞지르며 나를 보호하듯 주변을 철저히 살피며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착한 현장.
“이게 뭐야?”
-그러게 말입니다.
눈앞에는 웜으로 추정되는 이상한 생명체가 존재했다.
옅은 보라색의 피부를 가진 거대한 지렁이의 중간 부분이 이상하리만치 솟아올라 있는 특이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고통이 심한지 동굴을 뒤흔들며 발광을 하고 있었다.
“일단 기다려보자. 하임이 뱃속에서 뭔가 하는 것 같으니까.”
-네.
하임과 연결된 선을 통해 지금 하임이 어떤 일을 벌이는지 느낀 나는 황당함에 실소가 나올 지경이었다.
함께 삼켜졌던 엄청난 양의 아다만티움을 길쭉한 봉 모양으로 만들어 녀석의 몸을 점점 벌리고 있던 것이다.
그렇게 더는 벌어질 수 없을 것처럼 심각하게 부풀어 오른 배 쪽에서 드디어 보라색의 뭔가가 삐죽 튀어나왔다.
하임이 봉 모양이었던 아다만티움을 창처럼 변화시켰고, 날카로워진 아다만티움이 녀석의 배를 뚫어버린 것이었다.
“하임!”
구멍이 뚫린 부분을 통해 하임이 튀어나오는 모습을 발견한 나는 콜라와 룩산에게 곧장 명령을 내렸다.
“공격해.”
“네!”
거대한 대검을 들고 뛰어드는 룩산과 양손에 마력을 가득 담은 채 웜을 향해 쏘아지듯 날아가는 콜라.
쾅- 퍼억-
둘의 공격은 현란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굉장해 보였는데, 솔직히 말하면 보이는 모습에 비해 위력은 그리 커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웜의 몸이 충격에 흔들리긴 했지만, 조금도 밀려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긴 아다만티움을 흡수한 녀석인데 그 무게가 어디 보통이겠어?
“뀨!”
나에게 다가온 하임은 녹색의 체액을 잔뜩 뒤집어쓴 채로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내 다리를 타고 올라오려 했다.
그와 동시에 훅 밀려오는 비릿한 냄새.
“멈춰! 너 그거 깨끗이 닦아내기 전에는 내 어깨 위에 올라오는 거 금지야.”
“뀨우…….”
환했던 미소가 순식간에 처량해졌고, 이어서 하임은 자신에게 더러운 것을 잔뜩 묻힌 웜을 보며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하임의 분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