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3화 (153/214)

클레멘타인의 성문은 조금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문은 하나였지만, 통로가 총 세 개였는데.

하나는 일반 마족들이 출입하는 곳이었고, 다른 하나는 상단의 출입, 마지막으로 지금 내가 있는 곳이 고위 마족들. 그러니까 귀족들이 출입하는 문이었다.

-어디서 오신 분들이신지요?

-우리는 펠클라인에서 왔다. 이곳의 영주에게 전해줄 것이 있으니 당장 영주에게 안내하거라.

-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처음 우리를 안내했던 마족과는 다르게 조금 더 강해 보이는 마족이 우리를 담당했는데, 상급 마족 정도로 보이는 마족이었다.

-그런데 누구시라 말을 전하면 되겠습니까?

우리를 안내하는 마족은 조금 의문이 드는 모양이었다.

현재 펠클라인의 상황은 정말 안 좋았기 때문이다.

아직 각성조차 하지 못한 어린 영주가 백작으로 있는 영지였기에 우리 둘을 보는 그의 시선은 호기심에 가득 차 있었다.

-영주가 각성하기 전까지 잠시 그곳을 관리해 주는 자라고 전하면 될 게다.

-아! 후견인이시군요.

-그래.

마족에게도 후견인이란 의미가 존재했는데, 레이처럼 부모가 죽었을 경우 부모와 친했던 마족이나 형제 마족이 대신 보호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나저나 대단한데?

안내자를 따라 이동하던 나는 기대했던 것보다 더욱 뛰어난 건축물들에 시선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면 중세 정도가 아니라 현대의 도시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높고 화려한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길 역시도 넓고 잘 닦인 것이 이 정도면 서울의 한 귀퉁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물론 도로나 마차 같은 것은 없었지만, 그건 당연한 것이었다.

마족에게 그런 건 아무런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급 마족조차도 자동차와 비슷한 속도로 달릴 수 있는데, 누가 마차를 타고 다니겠는가?

물론 고귀한 신분의 마족이라면 뭔가를 타고 다닐 수도 있었지만, 마족은 기본적으로 호전적이며 빠른 것을 추구할 뿐 아니라 그런 것으로 자신을 꾸미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었기에 그런 건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응?”

안내자를 따라 이동하던 내 눈에 특이한 것이 하나 들어왔다.

바로 미호를 닮은 마수였는데.

분명 내 어깨에는 미호가 앉아 있음에도 저곳에 똑같이 생긴 미호가 갇혀 있었기에 내 걸음은 자동으로 그곳을 향했다.

-이건…….

-이동 마수입니다. 이제 막 성체가 되긴 했지만, 문을 열 수 있을 정도는 됩니다.

내가 앞에 서자 상점에서 마족이 나와 나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끼웅!”

“끼웅?”

미호와 닮은 마수가 내 어깨로 고개를 돌리며 울었고, 그에 미호가 화답했다.

-으헉!

그에 내 어깨를 보곤 깜짝 놀란 점원이 뒤로 물러섰고, 나를 안내하던 마족 역시도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최, 최상급의 이동 마수!

환상이 걸려있던 상태라 지금껏 미호를 발견하지 못했던 점원과 안내자.

아마 꼬리의 수 덕분에 미호가 최상급이란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이동 마수라고?

설마 마족들이 미호를 이동수단으로 사용할 줄은 몰랐기에 조금 놀란 나는 점원에게 고개를 돌리며 의념을 보냈다.

-이건 얼마지?

-하급 정수 100개입니다.

-정수 100개라고?

이런 도둑놈을 봤나?

아다만티움 광산의 채굴권을 얻는데 하급 정수 200개로 합의를 봤는데, 최하급 마수가 100개라니? 지금 나 눈탱이 맞고 있는 건가?

-아직 제대로 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기에 100개로 책정했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났으면 200개는 받을 수 있겠지만, 제가 상황이 조금 안 좋아서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기를 치는 건 아닌 듯 보였다.

-이봐. 100개면 싼 거 확실한 거야?

나는 콜라가 아닌 안내자에게 물음을 던졌다.

아무래도 콜라보다는 그가 더욱 잘 알 거라 생각했기 때문인데.

-그렇습니다. 보통 최하급의 이동 마수의 경우 150개에서 250개 정도의 가격이 책정됩니다.

-그래? 그럼 구매하도록 하지. 잠깐만.

나는 곧장 공간확장 주머니에서 정수를 꺼내 그에게 건넸고, 그는 철창 채로 나에게 미호를 닮은 마수를 건넸다.

콜라가 대신 철창을 받아들었는데, 그에 나는 곧장 미호를 닮은 마수에게 지배를 걸었고, 지배가 성공한 것을 확인한 후 콜라에게 의념을 보냈다.

-열어줘.

-네.

-자, 잠시만요! 이놈은 아직 길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함부로 문을 열었다가 도망가기라도 하면…….

공간의 문을 열고 도망갈 경우 도로 물어달라고 할까 봐 걱정되는지 급히 의념을 보낸 점원이었지만.

콜라가 문을 열자마자 곧장 내 남은 어깨로 뛰어오르는 마수를 보며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이게 어떻게? 아무리 순하다고 해도 마수인데…….

믿을 수 없는 사실을 목격한 것처럼 행동하는 점원을 보던 나는 안내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다시 갈까?

-네? 네! 안내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최상급의 이동 마수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 특이하긴 하겠지?

룩산이 상급의 기운을 내뿜는 미호를 보고도 도전장을 던졌다는 걸 떠올리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봐. 아까는 왜 그렇게 놀란 거지? 최상급의 이동 마수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 신기한가?

-그,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 처음 알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럼 다른 자들은 어떤데?

-하급까지는 데리고 다니긴 하지만, 중급 이상부터는 다릅니다.

-어떻게 다른데?

-잘 아시겠지만, 중급 이상부터는 특이한 능력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그 강함 역시도 차원이 달라지지 않습니까? 곁에 두는 것은 위험을 자초하는 것이나 다름없기에 성장을 하게 되면 보통 죽이는 편입니다. 아깝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렇겠네?

나와는 달리 길들었다고 해도 언제 뒤를 노릴지 모르는 것이 바로 마수였기에 그들의 선택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중급 이상의 이동 마수를 데리고 다니는 자들은 없겠네?

-그건 아닙니다. 후작 이상의 귀족분들은 중급 마수라 해도 아무런 위협이 없기에 중급까지는 죽이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 다만 상급 이상부터는 절대로 곁에 두지 않겠지만요.

상급이라면 방심을 틈타 기습을 하게 될 경우 큰 부상을 당할 수도 있었고, 더 나아가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기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런가? 그나저나 아직 멀었나?

-이제 곧 성에 도착할 겁니다.

안내자의 말대로 조금 더 이동하자 건물들에 가려져 있던 웅장한 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레이의 성과 비교해도 전혀 꿇리지 않는 웅장하고도 화려한 성이.

상업도시라더니 괜한 말이 아니었나 보네.

레이의 영지는 원래 후작의 영지였기에 일반 백작의 영지에 비하면 더욱 거대하고 화려한 것이 당연했지만, 이곳은 아니었다.

일반 백작의 영지가 아니었으니까.

점차 가까워져 가는 성을 바라보던 나는 성문 앞에 많은 마족이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이봐. 저들은 다 뭐지?

-아! 저들은 상단의 사람들입니다. 백작님의 탄생일이 다가오기에 선물을 가지고 온 모양입니다.

마족들도 생일을 챙긴단 말이야?

그것참 인간이랑 비슷한 점이 많네.

-이쪽으로 오시죠.

안내자를 따라 그들을 지나치던 나는 그들이 뭔가를 품에 소중히 품은 채 출입을 기다리는 것을 보며 마족 역시도 권력자들은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성안으로 들어왔지만, 역시 별다를 건 없었다.

성안은 일단 정원과 연무장 그 외의 시설들이 있었는데, 레이의 성보다 조금 더 화려할 뿐 크게 다른 점은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정원을 지나 성안에 들어서자 안내자가 접견실 비슷한 곳으로 나와 콜라를 이끌었다.

-곧 백작님께서 들르실 것입니다.

-그래.

-저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어. 수고했어.

안내자가 급히 나가는 것을 확인한 나는 콜라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까부터 왜 그래?

콜라는 외성을 통과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나는 그것에 조금 의문을 느끼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는 중입니다.

-혹시 모를 사태?

-주제도 모르는 것들이 괜히 시비를 걸 수도 있으니까요.

-참 잘도 그러겠다.

안내자가 급히 나간 이유.

그것은 바로 콜라가 은은히 뿜어내는 살기에 있었다.

누구든 다가오면 목을 비틀어버리겠다는 의지가 담긴 살기가 콜라에게서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기에 그 누구도 우리에게 접근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고, 지나가는 마족들조차 겁에 질려 이쪽을 힐끔힐끔 살피며 눈치를 볼 정도였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뭐? 왜 내 정체를 숨기냐고?

-그렇습니다.

콜라는 당연히 내가 정체를 밝혀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그 군주가 아니었으니까.

물론 콜라는 나를 군주라 믿고 있었고, 힘을 드러내면 다른 마족들 역시 나를 군주라 믿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큰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었다.

가짜 군주를 내세우고 있는 대공이 문제가 아니었다.

수호기사단원이었던 콜라조차 나를 군주라 믿을 정도였기에 대공은 대충 넘길 수 있겠지만, 문제는 바로 같은 군주가 나섰을 경우였다.

아마 곧바로 들키겠지?

그리고 나는?

-아직 완전하지 않으니까.

이렇게라도 변명을 해야만 했다.

완전하지 않다는 이유를 내세워 완전해지면 나를 온전히 드러내겠다는 설명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상관없지 않습니까? 완전하지 않으시다고 해도 군주님은 군주님입니다.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싫어.

-하지만…….

콜라는 충성심이 조금 과했다.

아니, 이상한 방향이라고 해야 할까?

내 지배를 받는 존재는 모두 같은 충성심을 보이지만, 콜라는 조금 달랐다.

모든 마족이 내 앞에서 머리를 조아려야만 그 직성이 풀리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내 앞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마족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불편한 듯 보일 정도였기에 조금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 나는 아직 나를 드러내는 것이 싫다. 그러니 너도 내 뜻에 따라야 할 것이야. 그리고 그 흥분하는 버릇 좀 고쳐. 전혀 상관없는 자들까지도 놀라잖아.

-알겠습니다.

체념의 눈빛으로 고개를 숙이는 콜라를 보며 언제 한번 시간을 내서라도 확실히 말해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똑똑똑-

응? 왔나 본데?

-백작님께서 오셨습니다.

노크 소리와 함께 밖에서 들려오는 의념에 콜라가 의념을 퍼트렸다.

-들라하시게.

이어서 문이 열리며 백작으로 추정되는 자가 안으로 들어섰다.

인간으로 치면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멀끔하게 생긴 마족.

생각했던 모습처럼 화려하게 꾸미진 않았지만, 분위기 자체가 내가 알던 마족들과는 많이 달랐다.

뭐랄까? 그의 태도, 표정, 미소에서조차 고귀함이 표출되는 것 같았는데, 솔직히 말하면 조금 기가 죽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여성 마족이 들어왔고, 이어서 여성 마족은 백작이 들어왔음에도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살기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감히! 백작님께서 직접 행차하셨건만!

-죽고 싶지 않다면 입을 다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조금 전 내가 했던 충고대로 콜라는 그녀만이 느낄 수 있도록 살기를 뿜어내며 조용히 의념을 보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전의 모습보다 더 공포를 조성했는데.

여성 마족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콜라의 말이 끝나기 전에 이미 자리에 주저앉은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으니까.

그에 백작이 그녀와 콜라의 사이를 막아서며 의념을 보냈다.

-용서해 주시지요. 제 부하가 고귀한 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실수를 저지를 모양입니다.

백작은 순식간에 상황을 파악한 모양이었다.

나란 존재를 모시는 마족이 자신과 비슷한 수준이란 것을 말이다.

당연히 그는 내가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존재라는 것도 순식간에 파악했을 거다.

그러니 저렇게 저 자세로 나오는 것일 테고.

-그만.

내가 의념을 보내자 살기를 없애고 물러서는 콜라.

그에 백작은 나에게 고개를 숙이며 의념을 보냈다.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마터면 아끼는 부하를 잃을 뻔했네요. 그나저나 듣기로는 펠클라인에서 오셨다고 들었는데, 정말 그곳에서 오신 것이 맞습니까?

-맞습니다. 그쪽에서 허락해 준 광산채굴에 대한 대가를 치르기 위해 왔지요.

-이거 놀라운데요? 펠클라인은 이제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군요.

그는 내가 존대를 함으로써 정체를 숨기려 한다는 것을 파악하고는 정체를 묻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처세술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건 마음대로 생각하시고, 일단 이것부터 받으시죠. 그쪽에서 원한 물건입니다.

작은 주머니를 꺼내 그에게 건네자 그가 주머니 속을 한번 확인하고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상급 정수 2개.

그것이 바로 그가 원한 대가였다.

최하급 정수 10개가 하급 정수 1개의 가치와 같았고, 하급 10개가 중급 1개. 중급 10개가 상급 하나와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등급이 올라갈수록 구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정확하다고 할 순 없었지만, 대충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이건 고마움의 표시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주머니를 그에게 건넸는데, 그 안에는 최상급의 정수가 들어있었다.

그가 펠클라인의 사정의 봐줬기에 상급 정수 2개를 부른 거지 만약 펠클라인이 정상적인 영지였다면 적어도 상급 정수 10개 이상은 불렀을 것이라는 집사의 말에 따로 최상급 정수를 하나 챙겨놓았다.

-이건…….

깜짝 놀라는 백작의 반응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최상급 정수는 다른 정수들과는 그 가치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상급 정수 100개를 주어도 바꾸지 않는 것이 바로 최상급의 정수였다.

그런데 지금 내가 건넨 최상급의 정수는 최상급 중에서도 중급에 해당하는 정수였기에 그가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구하기가 정말 힘든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구하기 위해 떠나기 전 현지를 얼마나 닦달했는지 모른다.

광산으로 떠나기 전에 최상급 한 마리만 잡아 오라 부탁했는데, 다행히도 근처에 최상급 마수가 있었는지 하루도 되지 않아 현지는 최상급 정수를 구해왔고, 그 덕에 예정했던 시간보다 빨리 출발할 수가 있었다.

-이건…… 받을 수 없습니다.

어쭈? 한 번쯤은 튕겨보겠다고?

-펠클라인을 신경 써 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뜻일 뿐입니다. 받아 주시지요. 그리고 오다 보니 곧 탄생일이라고 하더군요. 그에 대한 선물이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그,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가 최상급의 정수를 받는 순간 내 입가에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만남이 끝난 후 백작이 어떻게 움직일지 뻔히 보였기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의 행동 덕분에 펠클라인에는 평화가 찾아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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