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7화 (157/214)

“왔어?”

-루시안이 군주님을 뵙습니다.

루시안.

며칠 전 내가 지배한 홍마족.

그의 강함은 처음 예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공작에는 미치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는 공작급의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무려 수호기사단 서열 10위의 최상위 기사.

그것이 바로 그였다.

“어. 물어볼 것이 있어서 불렀어.”

-하명하시지요.

“그때 너와 함께 그곳에 들어갔던 기사들 중 단장을 제외한 모두가 홍마족이 되었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 주위에 있을까?”

내 계획은 일단은 이랬다.

홍마족들을 최대한 많이 지배해 영지의 무력을 키워 영지를 안정시킨 후 내 힘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아직 힘의 활용에 대해 아는 것이 없기에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건 당연했다.

그렇기에 최대한 빠르게 상황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영지를 강화해 그 누구도 건들지 못하도록.

-많은 동료가 그곳에 남아 있긴 하겠지만, 모두 그곳에 있을 것이라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저처럼 그곳을 벗어난 동료들이 있을 테니까요.

“아직 많이 남아 있을 확률이 크다는 말이네?”

-그렇습니다.

루시안의 대답 덕에 다음으로 할 일이 정해졌다.

홍마족을 지배하는 것으로.

그럼 이제 진짜 이야기를 해 볼까?

“지금부터는 내가 정말 궁금한 것들을 물어볼 거야. 조금 당황스러운 질문이 되겠지만, 제대로 답해주었으면 해.”

-네.

고개를 숙이며 확고히 대답하는 루시안을 보며 표정을 살짝 굳힌 나는 이어서 입을 열었다.

“너는 왜 나를 지배의 군주라고 생각하는 거지?”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지배의 군주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설마 너를 지배했기에 그리 생각하는 거야? 그게 전부야?”

솔직히 말하면 꺼내고 싶지 않은 주제였다.

괜히 그들을 혼란스럽게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지배하긴 했지만, 지배의 군주에 대한 충성심이 보통을 넘어설 정도였기 때문이다.

바하무트에게 잠식되었음에도 충성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대항하던 그들의 모습.

바포메트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수인족의 주술사는 신을 모시는 존재였다.

그런 존재조차도 충성은커녕 잠식된 본능이 시키는 대로 움직일 뿐이었는데, 수호기사단은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조차 충성심을 잃지 않고 간직하고 있었다.

만약 내가 지배의 군주가 아니란 사실을 깨닫게 되면 문제가 생길 것은 당연했다.

-군주님은 군주님이십니다. 다른 이유가 필요합니까?

조금 당황한 얼굴로 대답한 루시안.

말투 역시 조금 변했을 정도로 심하게 당황한 모양이었지만, 루시안의 얼굴에는 확신이 있었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존재가 군주라는 확신이.

“같은 힘을 사용하기 때문에?”

하지만 나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다시 물어볼 수밖에 없었는데.

-아닙니다.

“그럼 뭔데?”

-저희는 느낄 수 있습니다. 모습이 변했다고 해서 못 알아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니, 군주님의 모든 것이 변해도 저희는 군주님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습니다. 당신께선 틀림없는 군주님이십니다.

그냥 알 수 있다라?

그것이 가능한 것일까?

부모조차도 오랜 세월 자식을 보지 못하면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확실해?”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지 짐작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콜라에게 군주님께서 아직 기억이 온전치 못하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를 믿으시지요. 누가 뭐래도 당신께선 동쪽 땅의 주인이시자 수호기사단, 아니 전 마족의 주인이신 지배의 군주님이 틀림없습니다.

제대로 된 답은 아니었지만, 일단은 넘어가기로 했다.

또 다른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말해도 지금은 내가 지배의 군주였을 거란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확신만 없을 뿐이었지.

* * *

“출발은 일주일 후야. 남은 시간 동안 최대한 노력해봐.”

“네!”

현지는 루시안을 보고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상대.

그것은 현지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나보다.

그래서인지 현지는 요즘 매일 루시안을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어떻게서든 그를 뛰어넘겠다며 끝없는 대련을 이어가며 의지를 불태우는 중이었지만,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현지와 루시안의 격차가 워낙 크기 때문이었다.

지금 현지의 전력은 정확히 말하면 후작 정도였는데, 이것은 콜라보다 더 뛰어남을 증명한 현지를 루시안이 직접 평가했으니 아마 맞을 것이다.

그나저나 후작과 공작의 차이가 이렇게 크단 말이야?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웠다.

현지가 콜라와의 대련에서 어렵지 않게 승리를 따내는 것을 보며 역시 내 최고의 전력이란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은 루시안에 의해 순식간에 박살이 나 버렸다.

상대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순식간에 패배한 현지.

루시안은 콜라와 대련하는 현지를 보며 후작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고, 그에 약간의 뿌듯함을 느꼈던 나는 루시안에게 순식간에 패배하는 현지를 보며 당황했다.

물론 이기지 못할 것이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리 손쉽게 패배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현지급의 힘을 가진 자가 수십이어도 상대가 안 되겠는데?

루시안은 딱히 기술을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마력의 힘으로 현지를 짓눌렀을 뿐.

그 모습은 솔직히 조금 어이가 없었다.

루시안이 엄청난 양의 마력을 사용했다면 이해할 수는 있었겠지만, 전혀 아니었다.

현지의 마력보다 더욱 적은 양의 마력을 사용해 현지를 압박했고, 어이없게도 현지는 그 압박을 풀어내지 못하고 패배를 선언했으니까.

지배력의 차이라고?

마력을 다루는 힘.

그것을 루시안은 지배력이라 불렀다.

보통 마력과 마력이 부딪히면 상쇄되어 버리는 것이 당연했는데, 루시안은 그 법칙을 무시하는 것 같았다.

현지의 마력은 상쇄되어 흩어져 버렸지만, 루시안의 마력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켰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을 보며 현지뿐 아니라 나 역시도 얻은 것이 있긴 했다.

내 힘을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지 조금 감을 잡았다고 해야 할까?

그 때문에 바로 출발하지 않고 일주일이란 시간을 더 준 것이기도 했다.

나 역시 지금 당장 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간다. 열심히 해.”

“네!”

-금방 끝내고 찾아뵙겠습니다.

“아니. 그럴 거 없어. 귀찮더라도 현지랑 계속 대련을 해줬으면 해.”

-명 받들겠습니다.

이것만 조금 고쳐주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콜라와 루시안은 같은 기사단이었음에도 나를 대하는 것이 많이 달랐다.

그렇다고 콜라가 나를 막 대하는 건 아니었지만, 루시안은 정도가 심했다.

손발이 오글거릴 정도로.

* * *

지배력.

모든 것을 지배하는 힘.

그것은 아마 내 힘의 원천이리라.

나는 지금까지 이 힘은 지배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누군가에게 마력을 주입함으로써 선을 연결해 내 지배하에 두는 것과 변화된 마력에 의한 강한 힘이 전부라 생각했었다.

다른 무언가가 또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을 변화시키는 것이었으니까.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다고 스스로 되뇌며 머릿속에 지배력이란 것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힘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지금 나는 며칠째 명상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정체성을 확립한 것 같았기에 실행에 옮겨보려 한다.

서서히 마력을 깨운 나는 내 마력을 이제는 지배의 마력이라 부르기 시작한 마력으로 변화시킨 후 서서히 몸 밖으로 배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퍼져나가는 마력에 대한 지배력을 잃지 않으며 어떤 의지를 마력에 담아 퍼트리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지배해 버리라는 의지를 담아서.

‘오? 이것 봐라?’

그 결과 내 마력은 주변의 마나들을 지배하며 점차 퍼져나갔고, 지배한 마나들을 점차 지배의 마력으로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다는 말이 이런 뜻이었나?

내 의지가 담긴 마력은 끝을 모르고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성은 물론 마을까지 영역을 넓혀가며 주변에 퍼져 있던 모든 마나를 지배의 마력으로 변화시키는 모습을 보자 절로 황홀한 표정이 지어졌다.

깨달음의 순간.

내 지배의 마력이 퍼져나간 모든 공간이 내 지배하에 들어왔음을 느끼며 이것이 바로 깨달음이란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찌릿-

“커헉! 헉! 헉! 헉!”

순간 머리통을 해머로 내리치는 듯한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고, 곧바로 나도 모르게 지금껏 멈췄던 숨을 급히 몰아쉬어야만 했다.

의지력의 한계.

내가 가진 모든 의지력을 사용해서일까?

숨을 쉬는 것조차 잊었을 뿐만 아니라 육체 자체가 멈춰버린 것 같은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가사상태, 아니 잠시 육체가 죽었다고 설명하는 것이 맞으리라.

심장조차 멈춰있었으니까.

내 육체를 담당하는 무의식의 힘까지 동원했기 때문에 육체가 잠시 죽음에 잠겨 있었다고 설명하는 것이 맞으리라.

그 여파는 생각보다 클 수밖에 없었다.

비록 잠깐이었지만, 육체가 죽어버렸었던 영향으로 모든 근육을 비롯한 신체 기관들이 비명을 질러댔고, 다시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 영향으로 온몸에서 엄청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도련님!”

“대표님!”

-군주님!

“뀨!”

그때였다.

순간 문이 열리며 내 수족이라 할 수 있는 자들 전부가 한꺼번에 들이닥쳤고, 그들은 제각각 입을 열기 시작했다.

“방금 뭐였어요? 뭐 하신 거예요?”

-드, 드디어!

-힘을 되찾으신 것입니까?

현지를 시작으로 콜라, 루시안 그 이후로도 집사와 지안이 계속 제각각 입을 여는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쉰 나는 조용히 입을 열어야만 했다.

“그만. 있다가 설명해 줄 테니까 지금은 아무것도 묻지 말고 나가서 기다려.”

안 그래도 아픈 머리가 저들 때문에 더욱 울렸기에 모두를 쫓아낼 수밖에 없었다.

내 축객령에 일단 방을 나가는 것들을 보며 심호흡을 하기 시작한 나는 혹시 모르는 마음에 엘릭서를 꺼내 바로 복용한 후 육체가 회복되길 기다려야만 했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엘릭서는 아무런 회복도 시키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정말 황당했다.

육체의 회복을 담당하던 무의식이 사라져버렸기에 엘릭서가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네.

그 순간이었다.

-아깝군. 조금만 더 했으면 육체를 벗어날 수 있었을 텐데.

머릿속에 울리는 어떤 목소리.

또 다른 나였다.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다. 너의 본능이 육체를 벗어나려 했다는 거지.

“뭐 때문에?”

-그야 당연한 것 아닌가? 육체의 한계를 벗어나야만 너의 힘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의 무의식이 육체를 버리려고 했던 것이고.

“육체를 버리려고 했다고? 죽겠다는 말이야?”

-죽는다라? 그 말도 일리가 있군. 하지만, 그건 아니다. 육체를 버리고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니까.

“그게 그 말 아니야? 육체를 버린다는 건 일단 죽는다는 거잖아? 귀신이 된다는 거야?”

-말을 말아야겠군. 그냥 알아서 하도록.

귀신이 된다는 게 그렇게 이상한가?

그럼 영체 상태가 된다고 해야 하는 건가?

어? 잠깐? 방금 그놈이 말을 건 건가?

“야! 잠깐만. 다시 나와봐.”

하지만 더는 녀석의 말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지금껏 나는 내가 녀석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야만 녀석과 대화가 가능한 줄로만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녀석은 언제든 나에게 말을 걸 수 있었다.

혹시 녀석은 항상 나를 지켜보고 있던 걸까?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지배의 마력에 잠식된 동안 내 육체를 지배한 인격은 녀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그건 녀석이 아니었다.

녀석은 그리 난폭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면 그건 도대체 뭐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올 리 없었다.

모르는 사실을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있을 리 없었기에 나는 이쯤에서 녀석에 대한 생각을 접기로 했다.

언젠가 또 이런 일이 발생하면 녀석은 스스로 나에게 말을 걸 테니까.

“들어와.”

마음을 대충 정리한 나는 밖에서 내 부름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소리쳤고, 급히 들어오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도련님!”

“왜? 뭐가 궁금한데?”

“방금 뭐 하신 거예요? 그 힘이 저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 꼼짝도 하지 못했다고요.”

“그게 무슨 말이야?”

“육체에 대한 지배권을 빼앗긴 것처럼 아니, 육체뿐만 아니라 머리까지도 멈춰버렸다고요.”

“머리가 멈추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제가 대신 설명하겠습니다. 군주님께서 지배의 힘을 행사하신 후 저희의 모든 것이 군주님의 통제하에 놓였다는 말입니다. 그 옛날 군주님께서 건재하실 적에 자주 행하시던 일입니다. 마족들의 일상을 살피기 위해 마족들의 모든 것을 지배하여 그들의 일상을 확인하셨으니까요.

현지가 이상하게 설명하자 루시안이 직접 나서서 설명을 시작했다.

다만 조금 이상한 설명이었다.

분명 나는 그들의 생각은커녕 육체조차 지배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저 퍼져나가는 지배의 마력에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깨달음의 늪에 빠져 있을 뿐이었으니까.

“그 말은 방금 한 일로 너희들의 생각까지도 확인할 수 있다는 말이야? 심층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본심까지도?”

-그렇습니다.

이거 놀라운데?

루시안의 대답은 나를 황당하게 만들었다.

본인도 모르는 진심을 확인할 수 있다니?

이것이 만약 진실이라면 지배의 군주는 정말 무서운 자라고 할 수 있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지배의 군주에게 반하는 마음을 가진 마족이 있다면 그 마족은 군주의 영향권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지옥이나 다름없으리라.

속마음을 누군가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두려운 일이었으니까.

“만약 마족 중에 지배의 군주에게 반하는 마음을 가진 자가 있다면 어떻게 되는데?”

-아무런 일도 없습니다. 군주님께서는 그런 것을 직접 표현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군주님에 대한 마음이 올곧은 자들은 따로 뽑아 진명을 하사하신 후 그들 중 뛰어난 자들을 기사단으로 만드셨죠. 저처럼 말입니다.

생각보다 괜찮은 군주였네?

자신에 대한 불만을 알면서도 넘어갔다라?

나에게 불만을 표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넘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만약 나였다면 그자를 내 앞에서 치워버렸을 테니까.

“벌은 없고 상만을 내린다? 잠깐만? 그 말은 많은 마족들이 군주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다는 말 아니야?”

-불만이 아닙니다. 그저 선택받기를 원했죠.

“그게 무슨 말이야?”

-군주님께 선택받아 진명을 받겠다는 욕망과 왜 자신을 몰라주냐는 어리석은 생각들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생각이라?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누구나 원하는 것이 하나쯤은 존재했으니까.

그것을 욕망이라 부른다면 욕망이 없는 자들은 이 세상에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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