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할까?”
“네!”
어둠의 바다.
난쟁이족과 공작의 대립으로 생겨난 거대한 싱크홀의 명칭.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이자 불길함의 상징으로 불리는 곳.
그곳이 정확히 어떤 곳인지 알지 못했지만, 모든 종족은 본능적으로 그곳이 불길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바다라?
알고 보니 이곳에도 바다라 불리는 곳이 존재하고 있었다.
물론 진짜 바다는 아니었고 거대한 호수일 뿐이었지만, 이곳으로 이주하기 전에 있던 것들을 기억하기 위해 그 거대한 호수에 바다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수인족의 영역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거대한 호수라는데, 들어보니 호수가 지구의 바다보다 거대할 정도였기에 조금 어이가 없긴 했다.
“다녀올게.”
-무사히 다녀오시길…….
“다녀오십시오.”
집사와 김 실장의 배웅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하임에게 고개를 돌렸다.
“출발해.”
위치는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상업 도시라 불리는 클레멘타인에서 북쪽으로 수만 km를 이동하면 도착한다는 그곳.
미호 역시 클레멘타인에 가 보았기에 공간의 문을 통해 클레멘타인까지 이동한 후에 하임의 이동술을 사용해도 되었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하임이 항상 가지고 다니는 아다만티움이 문제였다.
아다만티움은 미호의 게이트를 통과하지 못한다는 것.
마력을 흩트리는 성질 때문인지 아니면 무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다만티움은 미호가 만든 공간의 문을 통과하지 못했기에 어쩔 수 없이 처음부터 하임의 이동술을 사용해야만 했다.
“뀨!”
하임의 대답과 함께 주변의 풍경이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고, 그에 나는 이번 여정을 함께 하는 일행의 면면을 살폈다.
우선 내 옆에 꼭 붙어있는 루시안.
루시안은 이번 멤버의 핵심이었다.
그곳에는 루시안보다 강한 홍마족이 존재할지도 몰랐기에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존재였고.
두 번째는 들뜬 표정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눈을 빛내는 현지.
현지는 그곳에서 겪게 될 실전경험에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루시안과의 대련에서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보니 크게 성장을 하지 못했고, 이번 기회를 토대로 다시 한번 한계를 넘어서고 말겠다는 다짐을 한 상태였다.
나 역시 그러길 바라는 상태였고.
세 번째는 바로 지안이었다.
며칠 전 나뿐만 아니라 모두를 정말 놀라게 만들었던 지안.
지안은 개인으로 치면 이번 일행에서 그리 강한 편은 아니었지만, 펜릴과의 연계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물론 제약이 조금 있긴 했지만, 말 그대로 최강의 공격력을 자랑했는데, 루시안조차 지안의 필살기를 피해야 했을 만큼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떠나기 전 나를 찾아온 지안은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 있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바로 펜릴과의 연계를 통한 일격을 실험해 보고 싶다는 것이었는데, 처음에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굳이 나를 찾아온 이유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지안의 설명에 궁금증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너무 강한 위력 때문에 실험이 꺼려진다는 이야기.
도대체 얼마나 위력이 강하면 쓸모없는 땅이 넘쳐나는 이 넓은 마계에서 함부로 실험할 수 없다는 것일까?
그에 나는 무엇을 도와줄지 물었고,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자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들었다.
당연히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 자는 루시안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루시안이 지안의 일격을 막을 상대가 되어 영지 멀리서 실험을 진행하게 되었다.
지안의 끈질긴 부탁에 혹시 모르는 사태를 대비해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어진 전신 갑옷을 입혔고, 실험이 시작되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나 현지, 루시안까지도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지안의 일격이 쏘아진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다.
루시안은 감히 막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피하기 급급했을 뿐이었고, 그 결과 영지에는 어둠의 바다라 불릴 또 하나의 거대한 싱크홀이 탄생하게 되었다.
물론 진짜와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위력만큼은 아마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바로 간신히 피한 루시안을 본 후에 알 수 있었는데, 하임이 만들어준 전신 갑옷은 어디로 날려버렸는지 보이지도 않았고, 모든 마력을 사용하여 방어했음에도 직격이 아닌 폭발력조차 간신히 견뎌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 루시안이 말이다.
조금만 늦었어도 다시는 나를 보지 못했을 거라던 루시안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는 처참한 모습.
그 이후로 루시안은 지안을 보면 슬슬 피하는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그 공격이 뇌리에 각인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지안이 조금 무서울 정도였다.
그 공격을 본 자라면 누구라도 그리 생각할 것이다.
수천 킬로의 거리가 찰나의 순간 사라질 뿐 아니라 위력 또한 무시무시한 최강의 저격.
쏘아진 순간에는 별것 아닌 듯한 공격이 순식간에 증폭에 증폭을 거듭하며 목숨을 노리는 사상 최악의 저격.
참고로 말하면 지안은 성벽에서 수천 킬로 떨어져 있는 루시안을 저격했는데, 그 거리가 더 무서웠다.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저격을 통해 모든 것을 지워버린다는 것은 너무 황당하지 않은가?
이 정도면 대공은 막아내겠지만 그 외의 것들은 한순간에 전부 날려 버릴 거라는 루시안의 말에 기사단을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도 들 정도였다.
지금까지 내 최대 전력은 현지였다가 루시안이 되었지만, 이제는 지안과 펜릴이 내 최강의 전력이 되어 버린 상태였다.
이것이 나와 이번 여정을 함께하는 멤버였다.
나, 루시안, 현지, 지안과 펜릴 마지막으로 하임.
이번 여정에는 미호가 함께하지 않았고, 분신이 내 어깨 위에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얼마 전 클레멘타인에서 구한 또 다른 미호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미호는 수컷이었고, 새롭게 구한 미호는 암컷이었는데, 미호가 절대 떨어지려 하지 않고 옆에 딱 붙어있는 것을 확인한 나는 미호를 데려가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함께 데려가도 상관없긴 하지만, 그러기엔 최하급 마수인 암컷 미호가 위험할 수도 있었기에 이번 여정은 분신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이번 여정은 얼마나 걸리려나?
돌아올 때쯤이면 영지가 조금은 바뀌어 있겠지?
* * *
“우와!”
“와!”
어둠의 바다라는 곳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입을 벌린 채로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황당할 정도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넓은 싱크홀 때문이었는데, 분명 타원형의 싱크홀이라 들었던 것과 달리 휘어지는 부분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각형 아니야? 이게 둥근 구멍이 맞나?
앞으로 보이는 것은 어둠뿐이었고, 옆으로 보이는 것은 일직선의 절벽일 뿐이었다.
"근데 좀 특이하네? 왜 어둠뿐이지? 아래야 그러다 쳐도 위쪽은 제대로 보여야 하는 거 아닌가?"
-결계 때문입니다. 이곳과 저곳을 분리하는 결계 때문에 보이는 것이 거의 없는 것이죠.
정말이었다.
보이지 않는 막이 이곳과 저곳을 막고 있었는데, 웬만해서는 절대 뚫어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이곳에 들어갔었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아마 이 근처에 흔적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흔적?”
-네. 결계에 구멍을 내야 했기에 강한 힘을 사용한 흔적이 남아 있을 겁니다.
“그곳으로 너희들이 들어갔다가 나온 건가?”
-그렇습니다.
“그럼 일단 그곳을 찾은 후에 주변을 살펴봐야겠네.”
-안내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일행을 안내하는 루시안을 따라 이동을 시작한 나는 계속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한없이 바라보았다.
뭐랄까? 끌린다고 해야 할까?
마치 나를 빨아들이는 듯한 이상한 감각을 느끼며 한참을 이동하던 나는 문득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했다.
‘저게 뭐지?’
내가 계속 보던 그곳에 무언가가 있었다.
아니, 있는 것 같았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무언가가 나를 노려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그에 나는 결국 자리에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저것이 뭐길래 내 기분을 이리 안 좋게 만드는 거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상태였는데, 녀석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순간 갑자기 내 기분이 급격히 다운되기 시작했다.
“도련님?”
내가 멈춰 서서 한 곳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을 알아차린 현지가 나를 불렀다.
“어? 어.”
“갑자기 왜 그러세요? 무슨 기분 안 좋은 일이라도 떠오르신 거예요?”
아무래도 표정을 굳히고 있었던 모양인지 현지가 걱정스럽게 물어왔다.
“아니야. 아무것도.”
-혹시 녀석의 존재를 느끼신 겁니까?
“녀석이라니?”
-바하무트 말입니다.
“아! 이곳이 바하무트가 봉인된 곳과 연결된 통로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그럼 저기서 날 노려보는 저놈이 바하무트란 놈인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마치 거대한 이물질처럼 느껴지는 녀석.
“너희들은 저 녀석이 안 보여?”
“보인다니요? 깜깜해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아니, 보이는 게 아니라 느껴지지 않냐고. 무슨 이물질 같은 게 자꾸 이곳을 보는 것 같단 말이지.”
“이물질이요?”
내 말에 현지와 지안은 나를 의아하게 바라볼 뿐이었지만, 루시안은 조금 달랐다.
-아무래도 바하무트의 존재를 느끼신 것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는데?”
-바하무트는 허무에서 나타난 존재이기 때문에 그 어떤 차원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입니다. 군주님께서 이물질이라 생각하는 그런 존재와 다르지 않은 존재이죠.
그래서 이물질이란 생각이 들었나?
그 어떤 차원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기에 어떤 차원에 있더라도 녀석은 이물질 대접 이상을 받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일단 가던 길 가자.”
딱히 녀석이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녀석의 힘도 느껴지는 것이 없었기에 신경을 쓸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기분이 조금 나쁘기는 했지만, 그거야 뭐 예전에 자주 받았던 시선이었기에 어렵지 않게 무시할 수 있었고.
-알겠습니다.
내 지시에 루시안은 다시 이동을 시작했고, 오래지 않아 기사단이 진입하기 위해 힘을 사용했다는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다만, 내가 예상했던 것에 비해 그리 큰 흔적은 아니었는데, 그저 땅이 여기저기 파여 있을 뿐이었다.
-이곳입니다.
“뭔가 대단한 힘을 사용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
-모든 힘을 한점에 집중해 순식간에 결계를 뚫어냈기 때문에 흔적이 크게 남지는 않았습니다.
“그럼 일단 이곳에서 휴식을 취한 후에 움직이자.”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루시안과 현지, 지안을 보며 휴식 준비를 하던 나는 이상한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뀨우-”
하임이 결계에 손을 데고는 한숨을 내쉬는 듯한 모습이었다.
“왜 그래? 너도 뭔가가 느껴지는 거야?”
내 물음에도 대답하지 않은 채 한 점을 뚫어지게 바라보기만 하는 하임.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던 하임이었기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아직 결계가 완전히 수복된 것이 아니어서 난쟁이가 뭔가를 느낀 것 같습니다.
“난쟁이족의 군주?”
-그럴지도 모르지요. 모든 종족은 본능적으로 자신들의 군주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저 난쟁이의 행동이 변한 것이겠죠.
역시 투샨의 말이 사실이었던 모양이었다.
난쟁이족의 군주가 직접 안으로 들어가 바하무트를 막아내고 있다는 건 사실이겠지.
다만 안으로 진입한 수호기사단이 어째서 그를 보지 못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하임이 지금 보이는 반응을 봐서는 아무래도 내 생각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희생해서 결계를 강화했다는 예상이.
“슬퍼?”
-아니.
“어?”
오랜만에 의념을 보낸 하임에 살짝 당황한 나는 이어서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왜 그러는데?”
-몰라.
내 물음에 고개를 저으며 의념을 보낸 하임.
“아마 하임이 니가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이 슬프다는 감정일 거야.”
-그런 거야?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하임을 보며 살짝 미소를 지은 후 입을 열었다.
“우리 하임이 많이 컸네? 이제 슬프다는 감정도 알고?”
-많이 컸어?
“그럼.”
-아닌데? 나 더 작아졌는데?
“물론 크기는 더 작아졌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바로 여기야. 여기가 더 성장했다는 거지.”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말하자 하임의 고개가 현지와 지안에게 돌아갔고, 이어서.
-그럼 쟤들은 엄청 큰 거네?
“뭐?”
“킥킥킥-”
“푸흡-”
둘을 가리키며 의념을 보낸 하임 덕분에 나는 당황했고, 현지와 지안은 웃음이 터져버렸다.
“어휴- 말을 말자.”
어째 하임과 이야기를 하면 끝이 왜 이렇게 되는지 모르겠다.
그냥 하임에게 뭔가 진지한 이야기를 하려 했던 내가 바보였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더 커져! 더 커져서 저렇게 될 거야!
“그래. 네 맘대로 해라.”
하임의 이어지는 말에 웃음을 멈추지 못하는 지안과 현지였지만, 반대로 나는 한숨이 멈추지 않았다.
안 그래도 저놈이 노려보는 것이 신경 쓰였는데, 그냥 할 일이나 하자.
계속해서 느껴지는 시선에 빨리 이곳을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 쉬고 시작하자.”
“네? 이제 10분도 안 됐는데요?”
“그 정도면 충분히 쉰 거지.”
차라리 뭔가를 하는 것이 덜 힘들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