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0화 (160/214)

“오셨어요?”

지안이 있는 곳에 도착하자 지안은 펜릴과 함께 몸을 숨긴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루시안과 현지는?”

“오고 있어요.”

“그나저나 저거야?”

“네. 특이하죠?”

지안이 특이하다고 말한 이유.

그건 바로 홍마족의 주위에 몰려있는 많은 수의 마수들 때문이었다.

“홍마족이 마수들과 함께 다니는 건가?”

“아니요. 마수들이 저 홍마족을 일방적으로 따라다니는 것 같아요.”

참 특이한 모습이었다.

천천히 이동 중인 홍마족의 뒤를 따라 엄청난 수의 마수들이 이동 중이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뭐야? 왜 저렇게 많은 수의 마수들이 저놈을 따라다니는 거야?”

최소 그 수가 500은 되어 보이는 마수들.

“괜찮겠죠?”

지안이 걱정하는 이유.

그것은 바로 마수 중 최상급으로 보이는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그 수 역시도 절대 적지 않았을 뿐 아니라, 최상급과 상급을 제외한 모든 마수가 중급 이상의 마수들이었다.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겠는데?”

루시안이 강하긴 했지만, 역할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홍마족을 막아 세우는 것이 루시안에게 주어질 역할이었다.

그렇기에 저 많은 수의 마수들은 현지와 지안, 펜릴 단 셋이서 막아야만 했기에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최상급의 마수가 없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최상급으로 보이는 마수의 수가 열을 넘어 보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데려올 걸 그랬네.”

도대체 저것들은 뭐 때문에 홍마족을 따라다니는 거야?

의문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루시안은 분명 홍마족은 마수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라고 설명했다.

그 때문에 마수들과 홍마족이 만나면 둘 중 하나는 고깃덩어리가 될 뿐이었고, 대부분 고깃덩어리가 되는 것들은 마수들이었다.

“도련님 저 왔어요.”

“어. 왔냐?”

이제 루시안만 오면 되나?

그나저나 저걸 어쩌냐?

“근데 재들은 왜 저래요? 웨이븐가?”

웨이브라?

웨이브가 발생하려면 한참 남은 것으로 아는데?

일견 타당한 생각이긴 했지만, 시기가 너무 일렀기에 그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냥 제가 한 방에 쓸어 버릴까요?”

“그러다 홍마족까지 쓸려가면 어쩌려고?”

“조절을 하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고민이 되는 일이었다.

만약 지안이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게 되면 애써 찾은 홍마족이 그대로 사라져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막을게요.”

“네가? 가능하겠어?”

“해봐야 알겠지만, 해보고 싶어요. 여기서 더 성장하려면 뭐든 닥치는 대로 해 봐야죠.”

“그건 일단 루시안이 도착한 후에 생각해 보자. 루시안이 뭔가 알지도 모르니까.”

“네.”

* * *

현지가 도착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루시안이 도착했고, 루시안 역시 마수들을 발견하고는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루시안도 처음 보는 일이었으니까.

“너도 처음 보는 일이라고?”

-그렇습니다.

“전혀 예상가는 게 없어?”

-송구합니다.

오히려 우리보다 더욱 당황한 루시안이었기에 더는 물어보지 못하고 계획을 짤 수밖에 없었다.

“일단 루시안은 계획대로 홍마족을 막아.”

-제가 마수들을 처리하는 것이 효율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두 쌍의 날개를 보아 이번에 발견한 홍마족은 콜라와 같은 수준으로 보였다.

현지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존재.

“내가 마수들을 막을 거야.”

하지만, 현지는 홍마족보다 마수들이 더욱 끌리는 모양인지 그것을 거부했다.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알아. 하지만 강해지기 위해서는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지.”

-성장이라? 부럽군.

루시안은 인간이란 종족을 부러워했다.

태어날 때부터 강하지만, 한계가 정해져 있는 강한 마족.

태어날 때는 약하지만, 성장이 가능한 인간.

물론 마족에게 강해질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인간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었기에 부러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인간은 반대로 마족을 부러워하겠지.

태어날 때부터 강한 힘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건 인간에게 특혜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럼 현지가 막기로 하고 지안이는 현지가 위험에 처했다 싶으면 도와줘.”

“네.”

“시작할까?”

-네!

“네!”

“뀨!”

모두의 대답을 들은 나는 자리를 잡기 위해 이동을 시작했다.

현지의 자리는 이곳이었고, 지안과 페릴은 공중, 마지막으로 나와 하임 그리고 루시안은 마수들을 돌아 홍마족의 앞을 막아설 예정이었다.

기척을 숨긴 채 천천히 이동한 나는 원하던 위치에 도착했고, 곧바로 현지에게 신호를 보냈다.

‘시작해.’

신호를 보낸 직후 마수들의 뒤쪽에서 마력이 솟구치며 현지가 존재감을 뿜어내자 마수들이 곧장 반응하며 현지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고, 홍마족 역시 현지의 존재를 눈치채곤 잠깐 머뭇거리는 듯싶더니 곧장 현지를 향하려던 찰나.

루시안이 나섰다.

-네가 향해야 할 곳은 그쪽이 아니다.

루시안의 의념과 함께 현지를 향해있던 홍마족의 시선이 루시안을 넘어 나에게 향했고, 이어서 홍마족은 포효와 함께 나를 향해 미친 듯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크워-”

콰앙-

하지만, 나를 향하던 홍마족의 질주는 루시안에 의해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루시안의 마력에 묶여버린 홍마족은 꼼짝도 하지 못한 채 나를 향해 어떤 시선을 보낼 뿐이었다.

-군주님께 향하는 네놈의 시선은 너무 불경하구나! 감히 군주님 앞에서 그런 눈빛을 보이다니 죽어 마땅하다!

원망.

마치 나를 원망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는 홍마족.

루시안은 그런 홍마족의 눈빛에 분노와 함께 거대한 힘을 드러내며 홍마족에게 호통을 치기 시작했지만, 홍마족은 루시안의 분노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여전히 원망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모든 홍마족은 군주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그들의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사라져 버린 군주에게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물론 지배의 군주 역시 사정이 있었지만, 홍마족이 되어버린 후 오랜 시간을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입장을 생각해본다면 원망이나 배신이 생겨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제야 나타……난 당신……을 원……망한다! 나……를 버……리고 동……료들을…… 버린…… 당신…… 이 원망스……럽다.

어? 이성이 존재하고 있는 건가?

의념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이성이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성이 남아 있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노옴! 감히 네놈이!

순간 루시안에게서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무시무시한 살의가 치솟으며 엄청난 마력이 솟구치기 시작했는데, 나는 지금까지 이런 마력을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온 시야를 빨갛게 물들이는 엄청난 살의가 담긴 마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담고 있었다.

닿는 모든 것을 소멸시키며 뻗어 나가는 새빨간 마력은 홍마족을 정말 소멸시키려는 듯 육체를 파괴하기 시작했는데, 홍마족은 개의치 않는 듯 계속해서 나에게 의념을 보냈다.

-당……신을…… 저주한다!

-이, 이!

“그만!”

홍마족을 소멸시키기 위해 마력을 한곳에 집중하려던 루시안을 말리기 위해 소리친 나는 홍마족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 어째서 말리시는 겁니까? 이런 녀석은…….

-기다려봐. 할 말이 있으니까.

-네?

나는 홍마족을 보며 미소를 유지한 채 입을 열었다.

-너도 내가 군주로 보이나?

-뭐…… 라고?

-나는 네가 원망하고 저주하던 군주가 아닌데?

-지금 무슨 말씀을?

-너는 가만히 좀 있어.

-네.

내 말에 당황한 것은 홍마족만이 아니었다.

루시안이 더욱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의념을 보냈지만, 루시안의 입을 막아버린 나는 다시 홍마족을 보며 의념을 보냈다.

-나는 말이야. 너희들이 말하는 그 군주가 아니야. 기억도 없고, 힘도 지배의 군주라는 자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약하지. 그런데 어째서 너희들은 나를 군주라고 생각하는 거지?

-당……신이 군주가…… 아니……라고?

-그래. 난 군주가 아니야.

-웃……기는 소리.

-왜 그렇게 생각하지? 만약 내가 정말 지배의 군주라고 생각한다면 넌 틀렸어. 그가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드네. 지배의 군주는 지금 자신의 선택을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어. 너희들을 위해 희생했건만, 자신을 원망하는 널 보면 지배의 군주는 어떤 심정일까? 아니, 그건 둘째치고 다른 자를 자신들의 군주라 생각하는 것에 얼마나 어이가 없을까?

내 말이 이어질수록 홍마족의 표정은 점차 변해가기 시작했다.

원망하던 표정에서 점차 혼란스러운 표정이 되어가는 홍마족.

-아니……라고? 그, 그……럴 리가…… 없어.

-나는 너희들이 말하는 지배의 군주가 아니야. 난 나일 뿐이지.

-뭐?

-그는 이미 사라진 존재 아닌가? 그 긴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건, 그의 소멸 말고는 설명할 수 없지 않나?

-그럴 리가 없다! 군주님께선 절대! 절대! 안돼!

응? 뭐야?

갑자기 의념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예 군주를 원하기 시작하는 홍마족.

-확인해 볼래?

-무엇을?

-내 지배하에 들어온다면 내가 정말 군주인지 아닌지 판별할 수 있지 않겠어?

-그, 그건…….

잠깐 망설이는 듯 보이던 홍마족은 이내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의념을 보냈다.

-어째서 나를 회유하는 거지?

-당연하잖아. 난 군주가 아니라니까? 거부하는 너를 지배하려면 힘이 들 수밖에 없다고. 아마 널 지배한 후에는 그대로 뻗어버릴걸? 이왕 지배할 거면 쉽게 하는 게 좋잖아?

-크하하하하! 좋다. 당신이 정말 군주님이 맞는지 확인해 보겠다!

내가 지금까지 한 모든 행동은 쉽게 홍마족을 지배하기 위해서였다.

만약 홍마족이 내 지배를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려 했다면, 당연히 나는 녀석을 지배한 후 진이 빠져서는 그대로 쓰러져 버리리라.

콜라와 같은 수준이라면 백작 이상의 힘은 물론이고 이성 역시 존재했기에 정말 힘든 과정을 겪어야 했을 테니까.

-그럼 시작해 볼까?

나는 녀석에게 의념을 보냄과 동시에 지배의 마력을 녀석에게 쏟아붓기 시작했고, 다행히도 녀석은 내 마력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외형이 변화되어갔다.

두 쌍의 날개가 사라지고 붉었던 피부와 거대해졌던 덩치가 줄어들면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그녀가 여성 마족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커다란 눈동자에 높이 솟은 코, 갸름한 턱선과 붉게 물든 도톰한 입술.

인간으로 치면 미인이라는 수식어가 딱 들어맞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성형 마족.

그것이 바로 조금 전까지 헐크 같았던 그녀의 진짜 모습이었다.

-군주님을 뵈어요.

뭐야? 갑자기 왜 요조숙녀가 되어 버린 건데?

-코넬리아! 아니, 어떻게 코넬리아가?

루시안의 반응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화부터 낼 줄 알았던 루시안은 그녀의 본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라며 당황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이에요. 루시안.

당연히 같은 기사단에 소속되어 있었기에 아는 사이겠지만, 루시안의 반응은 솔직히 조금 놀라웠다.

분명 변하기 전까지만 해도 가만두지 않겠다는 표정을 지은 채로 살기를 뿜어내던 루시안이었지만, 지금은 잔뜩 당황한 채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왜 저렇게 당황하는 거지? 설마 그곳에 함께 진입했던 멤버가 아닌 건가?

-시, 실수였어. 코넬리아란 것을 알았다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거야!

-네? 괜찮아요. 전 다 이해할 수 있어요. 저라도 그렇게 행동했을 테니까요.

-용서해 주는 거야?

-물론이죠.

이어지는 둘의 대화를 듣고 나서야 루시안의 반응이 이해되었다.

루시안이 코넬리아를 좋아한다는 것이 티가 나도 너무 났으니까.

마족이나 인간이나 똑같구만.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꼼짝도 못 하는 것은.

“둘이 인사 끝났으면 이제 이야기를 좀 들어볼까?”

-저에게 거짓말을 하셨네요?

내 말이 끝나는 순간 나를 째려보는 코넬리아.

어째 다른 애들이랑 반응이 너무 다른데?

“거짓말이라니?”

-이렇게 확실하게 느껴지는데 군주님이 아니라뇨?

“느껴진다고? 뭐가?”

-지금 제 눈앞에 계신 분이 군주님이 틀림없다는 사실이요.

“그래? 그럼 그건 그렇다 치고.”

-그렇다 치다뇨! 전 아직 안 끝났어요!

어? 뭐야? 왜 이러는 건데?

콜라나 루시안 혹은 다른 마족들과 반응이 너무 다른 모습에 당황한 나는 루시안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하, 하, 하.

내 시선을 피하는 루시안은 뻘쭘하게 웃을 뿐이었다.

-어떻게 저에게 그런 거짓말을 하실 수 있는 거죠?

“거짓말은 안 했는데…….”

-거짓말이 아니라뇨. 군주님이 아니시라면서요!

“그, 그건 정말인데…….”

-정말이라뇨! 이렇게 확실하게 군주님이란 것이 느껴지는데! 어떻게 저에게 거짓말을 하실 수 있어요!

정말 이상하게도 나 자신이 점점 작아지는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전의 군주님께서도 코넬리아에게 만큼은 꼼짝을 하지 못하셨습니다.

루시안이 나에게만 들리도록 의념을 보냈고, 그에 깨달았다.

코넬리아는 군주를 컨트롤 할 수 있던 유일한 존재였다는 것을.

“저, 정말이야. 나는 기억이 없다고. 아니. 난 지금도 내가 군주라는 생각 자체가 없다고!”

얼떨결에 소리친 나는 코넬리아의 반응을 살폈고.

-흑, 흑, 흑. 그럼 저와의 추억도 모두 잊어버리셨다는 말씀이네요.

“어? 그, 그게 그렇게 되나?”

난 코넬리아를 사랑하는 것도 아닌데 왜 꼼짝도 못 하겠지?

뭔가 이상했다.

“도련님!”

그때였다.

멀리서 날 부르는 현지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에 내 얼굴에 급속도로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현지야!”

현지가 도착하자 나는 급히 현지의 등 뒤에 숨었고.

-군주님! 지금 제 앞에서 다른 여자의 등 뒤에 숨으신 거예요? 그런 거예요?

“도련님 왜 그러세요? 저 여자는 또 누구고요?”

그렇게 2차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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