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넬리아.
수호기사단 서열 12위의 여성 마족.
그녀는 상위 기사단의 유일한 여성 마족이었다.
모든 여성 마족의 우상이자 수많은 남성 마족의 사랑을 받는 마족의 아이돌 같은 존재.
평소에는 친절하고 조용한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지만, 한 번 화가 났다 하면 그 누구도 못 말리는 기사단 내의 재앙과도 같은 존재.
특히 군주와 관련되어 폭주해 버리면 군주조차 그녀를 피해 숨어버릴 정도로 막 나갈 정도였다.
지금처럼.
“좀 말려보라니까!”
-그, 그것이…….
현지와 마주한 후 코넬리아의 분노가 폭발해 버렸다.
자신의 앞에서 다른 여자의 등 뒤에 숨었다는 이유로 폭발한 그녀는 내 명령조차도 통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명령을 내려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을 정도로.
분명 그녀는 내 지배하에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명령이 통하지 않았다.
아니, 잠깐 멈칫했던 그녀는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고, 그 덕에 지금 주변이 초토화되어 버리고 있었다.
-당장 나오세요!
“도련님. 저 미친년은 도대체 누구예요?”
“방금 루시안이 설명하는 거 못 들었어? 조금 전 원래대로 되돌린 홍마족이라니까.”
“아! 방금 말했던 그게 쟤예요?”
“그래. 근데 넌 꼴이 왜 그러냐?”
처음 현지가 나타났을 때만 해도 코넬리아 때문에 경황이 없어 제대로 살피지 못했지만, 지금 확인해 본 현지의 차림은 황당할 따름이었다.
입고 있던 옷을 어디다 팔아먹었는지 정말 간편한 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스포츠 속옷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거의 나체나 다름없는 차림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것 때문에 코넬리아가 더욱 열이 받았던 모양이었다.
“다 찢어져서 그냥 버렸어요.”
“그럼 다른 옷을 입고 왔어야지. 넌 수치심도 없냐?”
“그게 저도 조금 전에 안 사실인데요. 저 옷을 안 챙겨 왔더라고요.”
“뭐? 왜?”
“깜빡했어요. 그래서 지안이에게 옷 좀 빌리려고 했는데, 저 이상한 마족 때문에 지안이가 못 내려오잖아요.”
현지가 도착한 후 갑작스럽게 폭주한 코넬리아 때문에 지안에게 연락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잠시 이곳에서 떨어져 있으라고 지시했다.
코넬리아가 지안을 보면 여기서 사태가 더욱 커질지도 몰랐으니까.
“언제쯤 진정이 될까?”
-제 기억이 맞다면 최소 일주일은…….
“뭐? 일주일?”
-코넬리아가 자주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 화가 나면 일주일 이상은 저런 상태를 유지합니다.
일주일이란 시간을 기다릴 수는 없었기에 루시안을 보며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네가 말려봐. 네가 더 강하니까 말릴 수 있을 거 아니야?”
-하,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하지만! 빨리 나가서 말려!”
-알겠습니다.
내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는지 대답과 함께 나서려던 루시안은 한참 동안 머뭇댈 뿐이었다.
“뭐하냐고! 빨리 안 나가!”
-새, 생각할 시간을 좀 주시면…….
정말 황당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어이없는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으니까.
지배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날 거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 황당할 따름이었다.
‘대표님 제가 저 괴물을 처리할게요!’
“응?”
갑작스럽게 전해진 음성은 분명 지안의 음성이었다.
연결된 선을 통해 연락해 온 지안은 코넬리아를 마수라 생각한 모양인지 자신이 처리하겠다며 나섰고.
‘안돼! 하지 마!’
급히 말릴 수밖에 없었다.
지안의 그 공격이라면 분명 코넬리아는 살아남지 못할 테니까.
다만, 아주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루시안을 나서게 만들 아주 좋은 생각이.
“루시안아. 너 계속 그렇게 머뭇거리면 지안이에게 부탁할 거야.”
-그 말씀은?
“네가 간신히 피한 그 공격을 코넬리아에게 날리는 거지. 물론 크게 다치지 않을 선에서 끝내도록 할 테니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
-제가 하겠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대답과 함께 곧장 코넬리아에게 향하는 루시안을 보며 루시안이 무사하기를 빌었다.
* * *
루시안의 노력 덕분에 코넬리아는 오래지 않아 진정할 수 있었다.
물론 루시안의 몸 곳곳에 멍 자국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흥!
진정되긴 했지만, 나를 향하는 코넬리아의 반항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태였다.
“어휴-”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었다.
현지보다 약하기라도 했다면 현지의 정신교육으로 그녀를 다스렸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강함은 루시안과 별 차이가 나지 않았기에 방법이 없었다.
왜 두 쌍의 날개를 가지고 있었던 거야?
서열 12위라면 루시안처럼 세 쌍이 정상 아닌가?
루시안 역시 나와 같은 의문이 생긴 모양인지 그녀에게 곧장 물었고, 그에 그녀의 설명이 이어졌다.
특이하게도 코넬리아는 바하무트의 사념에 잠식당했음에도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 덕분에 완전한 잠식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사념과 이성이 계속해서 충돌하며 힘이 과하게 깎여나갔다고 한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그녀의 이야기는 정말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이성을 유지함으로써 그녀는 다른 자들보다 더욱 가혹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었다.
바로 홍마족이 되어버린 동료들의 소멸을 계속해서 지켜봐야 했다는 것.
이성이 남아 있던 그녀는 계속해서 동료들을 찾아다녔고, 그들의 선택을 보며 한없이 절망했다고 한다.
수많은 동료가 그녀의 앞에서 소멸을 택했고, 그것을 계속 지켜봤던 그녀는 군주를 기다리기보단 군주를 원망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그녀에게도 소멸이라는 방법이 있긴 했지만, 군주를 원망하기 시작하면서 한 가지 다짐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군주를 만나는 것이었다.
언제가 될지 몰랐지만, 그녀는 군주를 만나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군주님을 만난 것은 제 생의 유일한 축복이었어요.
“확실해? 아닌 거 같은데?”
-뭐라구욧!?
“아, 아니 그게…… 내 생각이랑 좀 다른 것 같아서 말이야…….”
분명 나는 그녀가 홍마족이었을 때 나에게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원망하고 저주한다는 그 말을.
-흥!
“그나저나 너를 따라다니던 마수들은 뭐야?”
또 한 가지 궁금한 것은 바로 홍마족이었던 그녀를 따라다니던 수많은 마수들이었다.
도대체 왜 그녀를 따라다닌 걸까?
-그것도 모르세요?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루시안 너는 알아?”
-저도 잘…….
홍마족 역시 마수의 한 종류이긴 했지만, 웨이브가 발생하는 기간이 아니라면 마수들은 절대 뭉치지 않았다.
거기다 홍마족은 본능적으로 마수를 증오하기에 마수를 절대 가만히 놔두는 법이 없었고.
“이유를 알면 설명 좀 해 줄래?”
새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코넬리아는 내 물음에 정말 황당한 답을 내놓았다.
-제 매력이 어디 보통 매력이에요? 아무리 제가 변했다고 해도 매력이 어디 가는 건 아니잖아요? 뭘 그렇게 당연한 것을 물으세요?
그러니까 지금 저 말은?
“홍마족이 된 너와 짝짓기를 하기 위해서 따라다녔다는 말이야?”
“풉!”
-짝짓기라뇨! 적어도 제 매력에 홀렸다고 말씀해 주실래요?
웃음을 터트린 현지를 노려보며 말하는 코넬리아의 표정이 일그러져 살짝 불안했지만, 할 말은 하고 싶었다.
“그 말이 그 말이잖아.”
-역시 코넬리아야. 마수들조차 홀려버리다니.
루시안은 그렇게 당하고도 코넬리아를 보는 눈빛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사랑이라는 것이 대단하긴 한 모양이야.
“일단 여기까지 하자. 다녀와야 할 곳이 있으니까.”
-다녀와야 할 곳이라면?
“따라와 보면 알아.”
난쟁이족의 신이 만든 비석.
그곳을 지키는 난쟁이에게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 * *
“뭐야? 어디 갔어?”
비석이 있는 곳에 도착한 나는 이곳을 지키던 난쟁이가 보이지 않는 것에 허탈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뀨! 뀨뀨!”
하임 역시도 난쟁이가 보이지 않자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소리치기 시작했는데.
“누굴 찾으시는 건데요?”
“늙은 난쟁이.”
“늙은 난쟁이요?”
“어. 분명 기다리겠다고 했는데?”
협박하듯 약속을 받아내긴 했지만, 지킬 것이라 생각했기에 허탈한 심정이 들었다.
이제 비석은 안전하니까 좀 쉬겠다는 건가?
내가 화나서 저 비석을 부수면 어쩌려고?
-없다! 없어! 도망갔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하임은 난쟁이를 찾지 못한 채 나에게 다가와 의념을 보냈고.
그에 고개를 끄덕여 준 나는 혹시 모르는 심정으로 조금 전의 루시안처럼 마력에 살의를 담아 뿜어내며 혹시 주변에 숨어있나 확인을 해보았는데.
그때였다.
땅속 깊은 곳에서 기척이 느껴졌고, 이어서 점차 가까이 다가온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장로님을 찾아오신 분들이십니까?
작은 머리통이 땅에서 불쑥 솟아올랐고 이어서 나를 보며 머리통이 의념을 보냈다.
주름 하나 없이 쫙 펴진 피부를 가진 작은 난쟁이.
전에 만났던 늙은 난쟁이가 아니었다.
-장로? 그 늙은 난쟁이가 장로라면 맞다.
-그분은 떠나셨습니다.
-떠나? 어디로.
날 기다리지 않고 떠났다는 말에 살짝 화가 났지만, 난쟁이의 표정을 보자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우는 듯한 슬픈 표정.
-신의 품으로 떠나셨습니다.
신의 품으로 떠났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를 정도로 난 바보가 아니었다.
-그 잠깐 사이에?
-그분께서는 이미 수명을 훌쩍 넘어선 상태였습니다. 갑자기 떠나신다는 것이 이상한 것은 아니었죠. 다만…….
-다만?
-목적을 이루시기 전에 떠나셨다는 것이 조금 당황스러울 뿐입니다.
무언가 바라는 것이 있었다라?
내가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난쟁이가 이어서 말을 꺼냈다.
-그분께서 자신을 찾아오신 분께는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씀드리라 했습니다. 궁금한 것이 있으시면 물어보시지요.
그사이에 그런 지시를 내려 두었단 말이야?
분명 갑작스럽게 떠났을 텐데 나를 위해 안배를 해 두었다는 말을 듣자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에 내 태도 역시 변할 수밖에 없었고.
-먼저 고인께서 원하시던 곳에 도착하셨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일단 고인에 대한 예의를 갖춘 나는 이어서 눈앞의 난쟁이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럼 묻겠습니다. 그 장로라는 분이 수명을 연장하면서까지 생을 유지하던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신께서 저 결계를 깨고 돌아오시는 것을 보고 싶어 하셨습니다.
신의 귀환을 기다렸다?
그것 때문에 수명이 다했음에도 끈질기게 버티고 있었던 거라면 이해가 되긴 했다.
이곳의 종족에게 신이란 그런 존재였기 때문이다.
-목적한 바를 이루지는 못하셨겠군요.
-그렇습니다. 다만, 조금 이상했습니다. 떠나시는 그분의 표정에서 어떠한 슬픔도 느끼지 못했으니까요. 오히려 여한이 없는 것처럼 편안한 표정이셨습니다.
여한이 없어 보였다고?
말을 듣는 순간 어떤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나와 하임을 보며 허허로운 미소를 짓던 난쟁이의 모습이.
설마 하임이?
“뀨?”
생각이 떠오른 순간 고개를 숙여 하임을 본 나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임이 난쟁이족의 신이었단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난쟁이족의 신을 모독하는 것만 같았으니까.
내 시선에 고개를 갸웃하며 손가락을 입에 물고 빠는 그 모습은 절대 신일 수 없었다.
지금까지 내가 하임 때문에 겪었던 스트레스 역시 그것을 증명했고.
잠깐 시선을 떼는 것만으로 사고를 치는 하임.
-마지막으로 그분이 남기신 유언이 있습니다. 들어 보시겠습니까?
-네. 듣겠습니다.
-장로님의 자리를 그쪽의 난쟁이가 계승해 주길 부탁하셨습니다.
-이 녀석에게 장로라는 자리를 주겠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왜지?’
듣는 순간 뭔가 꺼림칙한 느낌을 받은 나는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지만, 꺼림칙한 느낌을 받은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혹시 조건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저 자리를 계승하겠다는 약속만 하시면 됩니다. 그런 자리이니까요.
분명 좋은 제안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왜 이렇게 꺼림칙한 것일까?
절대까지는 아니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기에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장로라는 자리는 어떤 자리입니까?
-대단한 것은 아니고, 명예직이라 보시면 될 겁니다. 10년에 한 번 열리는 장로 회의에 참석하는 것 말고는 딱히 의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장로 회의라는 것에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겁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참석하지 않으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그럼 어째서 이 녀석에게 장로라는 자리를 넘기려 하는 겁니까?
-저도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본래 그 자리는 제가 받을 예정이었습니다만, 어찌 된 일인지 장로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 그런 부탁을 하셨습니다.
자신의 자리를 빼앗긴 표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평화로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거절해도 됩니까?
-네? 거절이요?
내 대답을 들은 순간 난쟁이의 얼굴에 균열이 나타났다.
그를 토대로 예측하기로는 지금 이 난쟁이가 연기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는데.
자신의 자리를 빼앗긴 것에 대한 분노를 감추고 선한 모습을 연기 중이라는 사실이었다.
-네. 거절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괜한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거절하자 곧바로 받아들이는 난쟁이.
그를 보자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눈앞의 난쟁이는 분명 자신의 자리를 빼앗긴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었다.
아니, 자존심이 상했다고 해야 할까?
예의 바른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하임을 보는 시선 속에 적의가 살짝 보였기에 거절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하임을 위해서도 그편이 좋았다.
하임이 장로로서 뭔가를 할 일은 없을 테니까.
거기다, 뭔가를 하게 된다고 해도 그건 하임이 아닌 내가 해야 할 일이 될 것이 뻔했기에 잘한 선택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난쟁이가 원래 이런 종족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