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야 나와봐.’
“나왔어요.”
-어떻게 그곳에서 코넬리아를 공격한 거지?
현지가 나타나자 루시안은 놀란 표정으로 급히 물었고, 그에 현지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냥.”
-그냥?
“어. 그냥 보이는데?”
-그냥 보인다고? 말도 안 돼!
갑작스럽게 현지에게 소리치듯 의념을 보낸 코넬리아는 화가 많이 난 듯 보였다.
현지의 공격은 코넬리아를 화나도록 만들기 충분했지만, 코넬리아가 화가 난 이유는 그것이 아닌 것 같았다.
대단한 일을 해놓고도 별것 아니라는 듯 말하는 현지의 태연한 모습에 화가 난 것.
“그냥 보이는 걸 어떻게 설명하라는 거야?”
-그러니까 왜 그냥 보이냐고!
“그거야 나도 모르지.”
-이, 이년이!
“그만!”
이대로 가다간 코넬리아가 현지를 들이박을지도 몰랐기에 급히 둘을 말린 나는 이어서 입을 열었다.
“뭔가 짚이는 거 없어?”
코넬리아가 현지를 꺼리듯 현지 역시도 코넬리아에게 약간의 적대감을 보였다.
이유는 모르지만, 둘을 보고 있으면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
“음- 그러니까 제가 은신했을 때랑 비슷하다고 설명하면 될까요?”
“은신?”
“네. 뭐랄까? 은신했을 때보다 더욱 두꺼운 장막에 가려져 있는 느낌이라 시야가 흐릿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 보이긴 한다는 거죠. 아닌가?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래요.”
제대로 설명을 하진 못했지만,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에는 충분한 설명이었다.
은신이 얇은 천을 두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면 그 공간은 두꺼운 천을 두르고 있는 느낌이라는 것 같았는데, 문제는 다른 마족들은 왜 그것을 느끼지 못했냐였다.
“다른 건 없어?”
“다른 거라? 음- 아! 하나 있어요.”
“뭔데?”
“은신이요. 그 공간에 들어가는 순간 저도 모르게 은신을 사용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것이 은신의 능력이 발전된 형태인 줄 알았던 거고요.”
“은신이라? 그것만 가지고는 설명이 불가능한데?”
“확인해 볼까요?”
“뭘?”
“그곳에서 은신을 사용하지 않으면 어떤지요.”
좋은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은신을 사용하지 않았을 때 현지가 밖을 보지 못한다면 은신이 그 공간에서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
“해봐.”
“네.”
대답과 함께 사라진 현지는 오래지 않아 다시 나타났다.
“어땠어?”
“맞아요! 은신 때문에 볼 수 있었던 거였어요!”
“정말? 어떻게?”
“은신을 사용하지 않으니까 아무것도 안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은신을 사용해 봤는데, 저를 감싸려던 제 마력과 그곳의 기운이 충돌하면서 뭐랄까? 막이 옅어지면서 보이기 시작했어요.”
“은신 덕분이란 소리네?”
은신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대충 답이 나온 것 같았다.
“네.”
“답이 나왔네. 너희들도 은신을 사용하면 그 안에서 밖을 볼 수 있게 되겠네.”
-저기…… 은신이라는 것이 몸을 숨기는 기술인가요?
내 말에 코넬리아가 물어왔고.
“어. 왜?”
-그렇다면 저희는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
“어째서?”
-저희는 은신이라는 것을 사용하지 못하니까요.
“배우면 되지. 현지가 가르쳐 줄 거야. 아! 일단 그곳에 들어가는 방법부터 찾아야 하는 건가?”
-그 말이 아닙니다. 이건 저희 마족의 특성과 연결된 문제입니다. 저희 마족은 몸을 숨기는 것을 본능적으로 꺼리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이어지는 루시안의 설명에 나는 잊고 있던 사실을 상기해낼 수 있었다.
자신의 힘을 숨기지 않는 마족의 특성을 말이다.
“그래도 노력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배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습니다.
“뭔데?”
-지안 양은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요?
“아! 지안이!”
알아서 잘 찾아올 거라 생각했던 지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나는 급히 지안에게 연락했지만, 대답이 없었다.
그런 엄청난 힘을 사용했는데, 문제가 없을 리가 없었다.
딱 봐도 루시안에게 테스트했던 그때보다 강력한 공격이었기에 펜릴과 지안 둘 다 지금쯤 탈진 상태일 거란 예상을 할 수 있었기에 급히 지안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지안이 찾아! 당장!”
* * *
결론적으로 말하면 지안과 펜릴 둘 다 탈진해 정신을 잃은 것 말고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정신을 차린 지안은 슬며시 웃음을 흘리며 너무 무리했다 말하며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뜻을 피력했다.
하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고, 그에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며 지안이 완전히 회복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니까 너는 소멸을 택하지 않았다는 말이네?”
-군주님을 다시 모실 기회가 분명 다시 찾아올 거라 생각했습니다.
-저도요.
크림슨과 라구스는 다른 자들과 조금 달랐다.
소멸을 원하는 다른 홍마족들과 달리 이 둘은 소멸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저 언젠가 다시 자신들을 찾아올 군주를 기다리며 몸을 숨긴 채 기다렸을 뿐이라 말했는데, 참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성이 없음에도 본능적으로 몸을 숨겼다라?
그게 가능한 건가?
기본적으로 마수와 다르지 않다는 건 살의가 넘쳐난다는 말이었다.
죽이고 죽여도 꺼지지 않는 엄청난 살의를 견뎌내며 그 오랜 세월을 참아왔다는 건 이 둘이 다른 자들과 생각하는 것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했다.
부전자전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그리고…… 아마 이 주위에서 더는 변해 버린 단원들을 찾지 못할 겁니다.
“무슨 말이야?”
-제가 몸을 숨기고 있을 때 어떻게 알았는지 저를 찾아온 단원들이 있었습니다.
“찾아왔다고? 홍마족인 채로?”
-그렇습니다. 소멸을 바라며 울부짖던 그들의 숨을 제가 직접 끊어주었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정확히 그 수는 기억나지 않지만, 최소 열 이상은 제 손에 단원들이 스러져갔습니다. 그들 대부분이 중위 기사단 소속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자도 있습니다. 제 가장 친한 친우였던 페리스가 대표적이죠.
크림슨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홍마족이 된 후 가장 힘겨운 싸움을 해 온 존재는 크림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었는데.
동료들의 숨을 직접 끊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친한 친우의 목숨까지 거두었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을 테니까.
-페리스 님을요!?
-아!
-그럴 수가…….
크림슨의 이야기에 놀란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특히 페리스라는 자가 죽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은 듯 보였는데.
“페리스가 누군데?”
그에 조심스럽게 물은 나는 이어지는 크림슨의 대답에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또 한 명의 부단장입니다.
두 명의 부단장을 지배하겠다는 내 계획이 틀어져 버린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페리스라는 자의 위치였다.
그는 언제나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기사단의 책사였다.
부단장에 적합한 힘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책사의 역할까지 하던 기사단에서 단장 다음으로 중요한 존재였던 그가 사라졌다는 것에 지금 이 자리에 모여있는 기사단원들 모두가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는데.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견디지 못하셨겠죠.
마족들의 귀감이 되는 존재.
인간으로 치면 존경받는 위인이라고 할 만한 존재.
-후회하진 않습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저는 똑같은 선택을 할 테니까요. 그 정도로 그는 정말 처참한 모습이었으니까요. 다만, 특이한 것은 그가 이성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하무트의 사념과 싸우며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었을 정도로요.
“그게 무슨 소리야?”
-저도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습니다. 그가 저에게 안배를 해두었다는 사실을요.
“안배? 그게 뭔데?”
-2차 각성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지?
2차 각성이라면 라구스가 할지도 모른다던 그것을 말하는 건가?
-그게 무슨 말입니까? 2차 각성이라니요?
-지금 부단장이 2차 각성을 할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라구스가 아니라?
내가 묻기도 전에 루시안과 코넬리아가 그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그를 소멸시키던 순간의 기억이 남아 있긴 하지만, 제대로 된 기억이 아니라 확실히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의 숨을 끊던 그 순간 그의 마력이 나에게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찾아온 다른 단원들의 마력 역시 마찬가지고.
-마력을 흡수했다고요? 말도 안 돼요!
도대체 어떤 방법을 사용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크림슨의 말이 정말이라면 내 계획에 차질이 발생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먼저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조금 이기적인가?
-아무래도 그는 자신처럼 나를 찾아오는 동료들이 있을 거라 예상했던 모양이야. 그 때문에 나를 선택한 것이겠지만, 지금 몸 안에 내 지배를 받지 않는 마력이 존재하는 거로 봐서는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정말 부단장이 2차 각성을 할 거라고요?
코넬리아는 황당하다는 듯 크림슨을 바라봤고, 다른 자들 역시도 같은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근데 왜 하필 아버지래? 어차피 할 거라면 내가 더 적합한 거 아닌가?
“킥킥킥!”
현지가 라구스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는데, 도대체 어디가 웃긴 건지 모르겠다.
현지는 비아냥대듯 말하는 라구스가 재밌는 모양이었다.
-이, 이놈의 자식이!
-아! 왜요! 저를 찾아온 자들도 있었다고요.
-뭐? 정말이야?
-네. 넷인가 다섯인가 확실하진 않지만, 분명 저를 찾아왔던 자들이 있었다고요. 그리고 이상한 녀석도 있었어요. 마치 저를 처리하려는 듯 마수들을 잔뜩 끌고 온 동료가 있었어요. 제 힘을 느끼고 돌아가긴 했지만요.
마수들을 잔뜩 끌고 온 동료라면?
-호, 호, 호
라구스의 말에 코넬리아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거 설마?
-짚이는 거라도 있어?
루시안의 말에 라구스가 묻는 순간 코넬리아가 루시안을 째려보았고.
-아, 아니다. 그냥 특이해 보여서…….
그에 급히 말을 돌리는 루시안이었다.
“일단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하고 혹시 모르니까 마지막으로 한번 테스트하고 돌아가자.”
-네!
대표로 대답하는 크림슨을 보며 체계가 잡혀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련님. 이제 저는 필요 없죠?”
“어. 그렇긴 한데? 왜?”
“그럼 저는 훈련이나 하려고요.”
“알았어. 대신 조심해.”
“네!”
* * *
“없네.”
일주일이란 시간 동안 어둠의 바다 주위를 돌며 내 기운을 퍼트려 봤지만, 나타나는 홍마족은 없었다.
“이제 돌아갈까?”
-네!
‘현지야 이제 갈 거야.’
크림슨의 대답을 들으며 현지에게 연락을 보내자 곧바로 옆에 모습을 드러내는 현지를 보며 이번에는 지안이에게 연락을 보냈다.
현지와 지안이는 요즘 강해지는 것에 혈안이 되어있는 상태였는데, 제대로 된 훈련장이 존재했기에 더욱 열을 올리는 것 같았다.
현지의 경우 그 훈련소라는 곳에 들락날락하며 빠르게 강해지는 중이었고, 지안의 경우 어둠의 바다에 쳐 있는 결계가 자신의 공격을 무리 없이 받아낸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로 계속 펜릴과 함께 훈련에 돌입했다.
그 결과 지안은 이제 파괴력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을 뿐 아니라 전보다 조금이지만 더욱 강한 파괴력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한 방 쏘면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린다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정말 대단한 아이들이군요. 어찌 약한 힘 두 개를 합쳐 저런 강대한 공격을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거기다, 저렇게 빠르게 강해질 수 있다니. 놀라울 뿐입니다.
크림슨은 얼마 전 자신이 당한 공격이 내가 한 공격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지안이 연습하는 것을 보며 깜짝 놀랐는데, 도대체 저게 어떻게 가능하냐며 따지듯 묻는 크림슨의 그때 모습을 떠올리면 절로 미소가 나올 정도였다.
“저 둘이 대단하긴 하지.”
-부럽습니다. 저희 마족 역시 저런 것을 배워야 하는데 도통 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니 답답할 따름입니다.
이상하게도 지안과 현지의 마력을 증폭하는 기술을 마족들은 배우지 못했다.
아니, 원리조차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족이 강해지는 방향은 바로 마력에 대한 지배력을 키우는 것이었다.
마력을 늘리는 것도 한 방향이었지만, 기본적으로 마족은 마력에 대한 지배력을 키움으로써 더욱 확실한 힘을 얻길 바랐는데, 현지와 지안의 기술은 지배력이라기보단 두 개의 기운을 충돌시킴으로써 폭주시킨 마력을 이용하는 것이었기에 지배력과는 그 방향이 너무 달랐다.
마력을 충돌시킨다는 것만으로도 기겁할 정도였기에 배울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하긴, 마력의 양을 따지만 당연한가?
콜라조차 현지보다 마력의 양이 몇 배는 많은 수준이었기에 마력을 충돌시켰다가는 엄청난 위험이 발생할 거다.
순식간에 육체가 폭발해 버리겠지.
“하임아, 출발해.”
“뀨!”
모두가 모인 후 하임의 이동술을 이용해 영지를 향해 출발한 나는 하임을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요 며칠간 하임 역시도 뭔가를 하는 것 같았는데, 아다만티움을 가지고 뭔가를 하긴 하는 것 같은데, 도대체 뭘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강화를 시도하는 건가?
뭔지는 모르지만, 일단 내버려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은 지켜보기로 했지만, 혹시 몰랐기에 철저히 감시 중이었다.
어떤 사고를 칠지 몰랐기에.
* * *
“아빠!”
“아빠!”
“응? 애들이 여긴 어떻게?”
영지에 도착한 나는 수아와 레이가 나를 부르며 뛰어오는 모습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