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차! 둘 다 학교 방학했구나?”
“네!”
“네!”
수아와 레이를 안으며 나는 오랜만에 밝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애들만 보이느냐?”
“어? 아버지! 여기까지 어쩐 일이세요?”
“김 실장이 침을 튀겨가며 이곳을 칭찬하길래 한 번 와봤다.”
“김 실장이요?”
“그래. 와보니 확실히 다르다는 걸 알겠더구나.”
이게 무슨 말이지?
뭐가 다르다는 거야?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김 실장 말대로구나. 넌 모르는 것 같다더니 그 말이 정말이구나.”
“뭘요?”
“이곳의 기운 말이다.”
“기운이요? 아버지가 그런 걸 느낀다고요?”
아버지는 각성자가 아니었다.
당연히 마나를 느끼지 못해야 정상이었다.
“그래. 특이하게도 이곳에 있으면 몸이 건강해진다는 것이 느껴지더구나.”
“몸이 건강해진다니요? 이곳은 어비스와 그리 큰 차이가 없을 텐데요?”
어비스에 머문다고 해서 저절로 몸이 건강해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일반인들의 경우 마나의 농도가 진한 편이기에 답답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환자의 경우 회복이 빠를 수는 있으나 그건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김 실장의 검사 결과가 그렇게 나왔다.”
“검사 결과라면?”
“혹시 몰라 이곳으로 출발하기 전에 김 실장에게 건강검진을 받게 했는데, 이곳에서 돌아온 후의 검사 결과와 많은 차이가 있었단다. 모든 결과가 그의 육체가 젊어졌다는 것을 증명했지. 김 실장 역시 이곳에 있을 때 육체적인 피로뿐 아니라 정신적 피로 역시 더욱 빠르게 회복되는 것 같다고 말했고.”
왜 나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걸까?
“그 말이 정말이에요?”
“그래. 그래서 말인데 이곳에 회원제로 이용 가능한 휴가시설을 만들려 하는데 너의 생각은 어떤지 묻고 싶구나.”
“아버지. 저 지금 돌아왔어요. 일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하는 게 어떠세요? 오랜만에 애들도 봤는데 너무하시네.”
“그러도록 하자꾸나. 그나저나 저들을 좀 소개해 주었으면 하는데 말이다.”
“아!”
아버지의 말에 고개를 돌리자 모여서 쑥덕거리고 있던 크림슨들이 보였다.
“이쪽으로 와.”
-넵!
“이분은 나의 아버지셔. 그리고 이 깜찍한 아이들은 내 딸들이고. 아버지. 이쪽은 제 기사단원이 될 자들이에요. 이쪽부터 크림슨, 루시안, 라구스 마지막으로 이쪽이 코넬리아에요.”
-처, 처음 뵙겠습니다.
잔뜩 긴장한 채 딱딱하게 인사하는 크림슨에 맞춰 함께 고개를 숙이는 루시안과 코넬리아, 라구스였다.
“선우 아비 되는 사람이요. 만나서 반갑구려.”
-여, 영광입니다.
“안녕하세요! 수아예요. 이쪽은 제 동생인 레이구요!”
-고, 공주님들이시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히히히!”
공주님이라는 말에 레이와 수아가 좋아하는 것과 다르게 크림슨들의 반응은 좀 이상했다.
왜 이렇게 굳었어?
-역시 군주님의 아버님이십니다. 어째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나 했더니 군주님의 아버님이셔서 그랬던 모양이네요. 역시 저희로서는 그 힘을 조금도 엿보지 못할 정도로 대단하십니다.
-난 군주님께 아버님이 있으시단 걸 처음 알았어.
-그럼 다른 군주님들도 따로 아버지가 있으신 건가?
뭔가 아주 큰 착각을 하는 듯 보였다.
아버지에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아무런 힘이 없으셔서였지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보였다.
이걸 따로 설명해 줘야 하나?
“나는 아버지와 이야기를 좀 해야 할 것 같으니까. 쉬고 있어.”
-네!
당장 급할 건 없다는 생각에 설명을 생략하기로 한 나는 수아와 레이를 데리고 아버지와 함께 내가 머물던 방으로 향했다.
“그나저나 현지와 지안이가 안 보이는구나?”
“둘 다 많이 바쁘거든요.”
“무슨 일로?”
“현지는 도착한 후에 바로 자기 방으로 갔어요. 강해질 기회를 잡았거든요.”
“지안이는?”
“당분간 안 돌아올 거예요.”
“으잉? 그게 무슨 말이냐?”
그곳에서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안이는 그곳에 남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곳에서는 함부로 테스트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 때문에 충분히 강해진 후에 돌아오겠다 말했는데, 지안의 마음이 이해가 되긴 했지만, 지금도 충분히 강했기에 그럴 필요가 있냐 묻던 나에게 지안은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말하며 나를 설득했다.
“그곳에서 테스트하고 싶은 것들이 있어서 남았어요. 더 강해지고 싶은 모양이에요.”
“거기서 더 말이냐?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크레이터가 지안이 만든 것이라고 하던데?”
“그걸 좀 다듬고 싶은 것 같아요.”
내 대답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신 아버지를 보던 나는 내 품에 안긴 채 서로 장난을 치는 아이들에게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그동안 잘 있었니?”
“네! 할아버지랑 여행도 다녀왔어요!”
“응? 여행?”
“하와이! 하와이! 바다 구경했어요!”
레이는 처음 본 바다가 신기했는지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고, 그에 수아가 장단을 맞추며 지금까지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자랑을 하듯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이쿠! 사막도 가 봤어요?”
“네! 모래가 엄청 많아요! 모래 바다!”
손을 크게 벌리며 많다는 것을 피력하는 레이는 정말 즐거웠던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그 짧은 시간에 정말 많은 곳을 돌아다녔네?
하와이부터 시작해서 모로코의 사하라 사막에 브라질의 아마존까지 별별 곳을 돌아다녔다는 레이의 이야기에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많은 곳을 돌아다니기엔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학교도 다녀야 했을 텐데 어떻게 저 많은 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을까?
주말 동안만 다녀야 했을 테고, 거기다 호위도 좀 필요한 곳들이 있었기에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었는데.
아! 미호!
미호의 분신이 사라졌던 이유가 저것 때문이었어?
“아버지 혹시…….”
“크흠- 여행을 좀 다니려다 보니 걸리적거리는 것이 너무 많더구나. 그래서 미호를 불러들였다.”
큰 상관은 없었지만, 그 이유를 들어보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는 힘들게 전력을 모으고 있었는데, 그동안 아버지는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 게 너무 억울했다.
"그나저나 아버지가 아마존을 다녀오셨다고요?"
"그래. 좀 힘들긴 했지만, 한 번쯤은 다녀올 만하더구나."
아마존은 지구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손꼽히는 곳이었다.
태생이 정글이다 보니 균열이 열려도 처리하기가 힘들어 대부분을 그대로 방치했기에 위험으로 따지면 어비스의 여느 숲과 비교해도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거기다 일반인들은 절대로 아마존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독충이라는 존재였다.
아니, 그곳에 서식하는 몬스터들 중 많은 수가 독을 품고 있었기에 일반인에게는 죽음의 숲이라고 불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아무런 문제도 없었던 것 맞죠?”
“그래. 미호가 참 대단하더구나. 몬스터는 물론 그 흔한 벌레들조차도 접근을 못 하게 만들 뿐 아니라 정글 한복판에 거대한 저택을 만들어 주더란 말이지. 덕분에 정말 편하게 여행을 다닐 수 있었단다.”
미호의 능력이라면 당연한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최상급의 마수일 뿐만 아니라 그 능력 역시도 특별한 구석이 많았기에 지구뿐만 아니라 어비스 어디를 다녀도 집에 있는 것처럼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거다.
그나저나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미호의 현실 조작능력이라면 충분히 대저택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그 생각을 못 하다니!
지금껏 미호를 데리고 다녔던 순간순간이 떠오르자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호를 데리고 여행을 다니던 중간중간 휴식을 취할 때 저택을 만들었다면 더욱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을 테니까.
이미 지나간 일을 후회해서 뭐해? 앞으로 제대로 쉬면 되지.
“그나저나 회원제로 운영하는 휴가시설은 왜요? 또 무슨 문제가 생긴 거예요?”
회원제로 운영하는 휴가시설을 만들겠다는 것은 아직도 유명을 거스르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런 자들을 회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딱히 그런 시설을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앞에서야 당연히 유명에 반감을 드러내진 않겠지만, 뒤에서는 다르단다. 그런 자들은 특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 이쪽에 붙은 척 앞에서는 꼬리를 흔들지만, 뒤에서는 수작을 부리는 자들이 조금 보이더구나.”
“그냥 쳐내면 되지 않아요?”
“물론 그래도 되지만,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시도해 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그게 될까요? 겨우 휴가시설 하나로?”
겨우 휴가시설일 뿐이었다.
조금 더 건강해질 수 있긴 하겠지만, 그것만으로 그들을 회유하는 건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들었기에 회의적이란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겨우 휴가시설이라 말하는 것은 선우 네가 아직 인간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겠지.”
“그게 무슨 말이에요?”
“부와 권력을 모두 가진 자들이 다음으로 원하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답은 아주 쉽게 나온단다.”
“네? 다음으로 원하는 거요?”
“그래. 그들이 다음으로 원하게 되는 것은 바로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사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는 어떤 추잡한 짓이라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지.”
나 역시 그것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의 기술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거야 다른 많은 방법이 있잖아요. 예를 들면 엘릭서 같은 거요.”
“그렇지. 하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이상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계속해서 찾아다니겠지.”
“근본적인 해결책이요?”
“그래. 이곳이 바로 그 근본적인 해결책이 존재하는 곳이란 생각이 드는구나.”
“정말요?”
근본적인 해결책이 이곳에 존재한다고?
불사의 삶이?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김 실장의 검사 결과를 토대로 연구를 진행한 연구팀이 그러더구나. 세포를 분열시키는 유전자? 아무튼, 그런 것이 있는데, 그것이 점차 짧아지며 세포의 분열이 더뎌지다 결국, 더는 세포를 분열시키지 못해 사람이 늙고 결국에는 죽게 된다고. 그런데 김 실장을 검사한 결과 그것이 아주 미세하게 재생을 한 듯 보인다고 하더구나.”
“정말요?”
“그래. 물론 그것만으론 확실히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가능성은 있다고 말하더구나.”
아버지의 말은 놀랍기 그지없었지만, 동시에 의문 역시도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김 실장이 이곳에 머문 기간 때문이었다.
아무리 오래 잡아도 1개월이 채 되지 않는 기간 만에 확인이 가능할 정도로 무언가 변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으니까.
“그 짧은 시간 동안 확인이 가능할 정도라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거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 않겠느냐? 나 역시 직접 느끼는 중이고 말이다.”
“음-”
“아빠! 나 나가서 놀래요!”
“나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사이, 내 품에 안겨 있던 아이들이 꼼지락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와 나의 대화가 좀 지루했던 모양이었다.
“수아랑 레이가 아빠하고 할아버지 때문에 많이 지루했던 모양이네. 그럼 밖에서 놀고 있을래. 조금 있다가 아빠가 데리러 갈게.”
“네!”
“네!”
“너무 멀리까지 가면 안 돼요. 알았지?”
“어디까지?”
“음- 성 밖에는 일하는 아저씨들이 있으니까. 정원을 탐험해 보는 게 어떠니?”
“네에!”
“히히히-”
내 품에서 내려온 아이들이 손을 꼭 붙잡고 방문을 나서는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아이들이 나간 것을 확인하고 아버지에게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려 했지만.
아버지의 모습에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시야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에 쓸쓸한 표정을 짓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매일 보는 아이들이 잠깐 안 보이는 게 저렇게까지 실망할 일인가?
누가 보면 내가 아니라 아버지가 애들 아빠인 줄 알겠네.
아니, 항상 옆에 붙어있었기 때문에 그런 더 건가?
그럼 도대체 아이들 학교는 어떻게 보낸 거야?
“아버지.”
“응? 크흠- 그래. 말하려무나.”
“만약 그 사실이 정말이라면 숨기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것도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이 적기라는 생각이 들더구나. 유명에 반감을 품은 자들까지도 품에 안아야 최고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런 자들까지도 품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자신에게 불이익이 온다는 이유로 유명에 반감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큰 상관이 없을지 몰랐지만, 태생이 반골인 자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옳고 그름을 떠나 일반적인 권위나 방식, 관습 등에 맹종하기보다는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거나 비판과 반항을 일삼는 기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보물을 안겨줘도 거부하는 자들.
물론 그런 자들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었다.
이 세상에는 그런 자들이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유명에게만큼은 필요 없는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로 인해서 세상이 변하기도 한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했기 때문이다.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 처리하기에도 편하지 않겠느냐?”
“그 말씀은?”
“우리 유명이 선하지만은 않다는 소리지.”
도저히 품에 안지 못하는 자들은 이쪽도 어쩔 수 없었다.
아버지의 말은 죽이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감금 정도는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회원제로 비밀리에 운영하는 휴가시설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테니까.
거기다, 탈출 역시도 불가능한 곳이기에 마음을 놓을 수도 있을 테고.
“그렇다면야 뭐. 반대할 이유는 없죠.”
“그럼 바로 진행하도록 해도 되겠구나.”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