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7화 (167/214)

“집사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고심하던 내 귓가로 김 실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집사의 편을 다 들어주고. 김 실장이 집사와 많이 가까워진 모양이네.

물론 나 역시 집사를 탓할 생각은 없었다.

“나도 알아.”

“지금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결과 앞으로 움직일 방향을 몇 가지 생각해 봤는데, 들어보시겠습니까?”

“말해봐.”

“가장 조용히 처리하는 방법은 이번에 도련님이 데려오신 부단장이란 자를 보내는 것입니다.”

“크림슨을?”

“네. 제가 듣기로 마족에게는 귀족이 되는 방법이 도전의식 말고도 다른 것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결투를 신청하는 것. 그 방법을 통해 그자의 작위를 빼앗아 버리는 것이 첫 번째로 생각한 방법입니다. 다만 이 경우 수호기사단이란 사실이 들통나게 되면 도련님의 계획이 틀어질 수도 있습니다.”

좋은 방법이긴 했지만,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호기사단의 부단장이란 사실을 들키게 될 경우 모든 마족의 시선이 레이의 영지를 향하게 될 테고, 나라는 존재가 들통날 수도 있었다.

아직은 나에 대해서 밝히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밝힐 수도 없었기에 이 방법은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이건 최후의 상황에서나 사용할 방법이네.”

“네. 그럼 두 번째 방법을 들어보시겠습니까?”

“그래.”

“두 번째 방법은 바로 그쪽에 직접 연락하거나 집사를 보내 이쪽이 도전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밝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아가씨께서 거부하실 경우입니다. 인간과 마족이 아무리 다르다 해도 부모의 원수입니다. 거부하지 않으신다고 해도 후에 이것으로 인해 아가씨께서 후회하실 수 있기 때문에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일단 집사의 의견을 들어봐야 할 것 같았다.

“집사는 어떻게 생각해?”

“마족에게도 원수라는 것은 당연히 존재합니다. 특히 부모의 원수를 갚는 것은 의무나 다름없습니다. 거기다, 도전의식에서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상태에서나 발생하는 일입니다. 힘의 차이가 극명하게 갈린다면 상대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 일상적이죠. 하지만, 드래드 공작은 전대 후작님의 목숨을 빼앗지 않을 수 있었음에도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당연히 레이 님께서는 성장하시게 되면 언젠가는 그에게 도전하려 할 겁니다.”

“그럼 이것도 패스.”

둘 다 좋은 방법이긴 했지만, 커다란 문제점을 안고 있었기에 세 번째 방법을 듣기로 했다.

“세 번째 방법은 바로 도련님의 지배입니다. 물론 이 방법 역시 두 번째와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긴 하겠네. 그럼 다음은.”

“네 번째 방법은 가장 간단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입니다. 다른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마족에게 있어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뭔데?”

“공작에게만 이쪽의 힘을 슬쩍 보여주는 것입니다.”

“뭐?”

순간 당황한 나는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단순할지도 모르지만, 마족에게는 마족의 방식이라는 것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런데…… 그럼 다른 문제는 뭔데?”

“저희의 생각이 틀렸을 경우입니다.”

“생각이 틀리다니?”

“그의 의지로 움직인 것이 아니라 그를 부추긴 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김 실장의 말처럼 나 역시 처음에는 그것을 생각했지만, 다른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너무 나간 생각 아닐까?”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사태를 생각해 두어야만 합니다. 이곳은 저희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땅입니다. 정보가 있다고 해도 그것이 진실인지 파악할 수 없는 그런 곳이기에 최악의 상황까지도 상정해 두고 생각을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김 실장 생각처럼 부추긴 자가 있다면 그게 누구일까?”

공작을 부추길 만한 자는 대공이 아니면 설명이 되지 않았다.

문제는 대공이 어째서 공작을 부추기냐는 것인데…….

“같은 공작일 수도 있고 그 위에 존재한다는 대공일 수도 있겠죠. 아니, 수호기사단의 단장이란 자일지도 모릅니다.”

“단장은 너무 나간 생각 같은데?”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 두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조금만 틈이 벌어져도 대처하기가 힘들어집니다.”

김 실장의 의견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하다 보면 계획을 세우는 것이 너무 힘들어진다는 단점이 있었기에 지금까지는 대충 넘겼었지만, 지금은 김 실장이 있으니 상관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없다고?”

“네.”

뭐야? 모든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한다며?

그럼 생각해 둔 방법이 좀 더 많아야 하는 거 아니야?

황당한 표정으로 김 실장을 바라보자 김 실장은 뻘쭘한 모양인지 헛기침을 하고는 이어서 입을 열었다.

“물론 이 방법 외에도 여러 가지를 생각해 두었지만, 너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어서 제외했습니다.”

“오래 걸린다는 말이 무슨 말이야? 계획을 짜는 데 오래 걸린다는 거야?”

“아닙니다. 다른 계획들은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는 맞지 않아 제외했습니다.”

왜 김 실장이 변명하는 것 같지?

“그래. 그렇다 치고, 그럼 김 실장은 뭐가 제일 좋은 방법 같은데?”

“세 번째 방법이 가장 쉽고 빠르게 일을 마무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후에 문제가 발생한다 해도 대처하기가 더욱 쉽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럼 그 방법으로 가자.”

“네.”

김 실장의 대답을 들은 나는 집사에게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근데 집사. 그 공작이라는 놈이 언제쯤 움직일 것 같아?”

“예상대로라면 곧 움직일 것입니다. 이쪽을 살피기 위해 직접 움직이지는 않고 기사단을 보내겠죠.”

“그럼 일단 그 기사단을 박살 내버림으로써 힘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할까?”

“네. 준비해 두겠습니다.”

“뒷일에 대해서도 생각해봐. 나는 크림슨에게 가볼 테니까.”

둘에게 뒷일을 맡기고 떠나려던 그때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른 얼굴이 있었다.

잠깐만? 그냥 지안이에게 성과 함께 그놈을 날려버리라고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수호기사단의 부단장인 크림슨조차 단 한방에 무력해지는 저격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나가려던 발걸음을 멈춘 나는 둘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그냥 저격으로 처리하면 안 되나?”

“저격이라 하시면?”

“지안이 있잖아. 충분할걸?”

“저희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마족의 상황을 보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무슨 말이야?”

지금 마족의 상황이 어떤지 전혀 알지 못하는 나는 김 실장의 말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전쟁이 발발할지도 모릅니다.”

“전쟁? 무슨 전쟁?”

“종족전쟁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지안의 저격으로 인해 종족전쟁이 발발할지도 모른다니?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에 당황한 나는 의문이 담긴 눈으로 김 실장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이 부분은 제가 설명드리겠습니다.”

김 실장은 내 시선을 외면하곤 집사에게 고개를 돌렸고, 그에 집사의 입이 열렸다.

“설명해 봐.”

“일단 마족은 다른 종족들과 사이가 좋지 않은 편입니다. 그 중 특히 천족과 사이가 좋지 않은데, 문제는 지금 천족과 마족의 상황이 일촉즉발의 사태라는 것입니다.”

“이유는?”

“마계 때문입니다.”

“마계?”

“이 땅을 부르는 명칭을 가지고 싸우는 것이지요. 저희는 마계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만, 천족은 천계라는 명칭을 사용합니다. 정말 유치한 이유이긴 하지만, 이것은 저희 마족의 자부심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절대 물러서지 않는 상태입니다. 천족 역시 마찬가지이고요.”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그냥 마족이 살아가는 곳은 마계, 천족이 살아가는 곳은 천계라 부르면 간단할 텐데 어째서 저런 시답잖은 이유로 싸우는 건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겨우 그것 때문에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거야? 지금?”

“겨우가 아닙니다. 가장 많은 영역을 차지한 종족이 바로 마족입니다. 다른 모든 종족의 영역을 모두 합쳐야만 마족의 영역과 비슷한 수준이라는 말이죠. 그 말은 마족들이 그만큼 큰 짐을 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짐이라니?”

“마수가 더는 늘어나지 않게 유지할 뿐만 아니라 웨이브를 막아내는 것 역시 대부분 마족의 역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의무가 큰 만큼 보상도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집사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지긴 했다.

다만, 조금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그래서? 왜 전쟁이 일어난다는 건데?”

“지안 양의 저격은 언뜻 보면 천족의 공격과 비슷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안이가 나서게 되면 그것이 천족의 공격이라고 생각해 마족들이 들고일어날지도 모른다고?”

“그렇습니다.”

근데 그게 왜 문제지?

이후 상황이 어떻게 되든 우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였기에 의문이 든 나는 집사를 보며 물었다.

“전쟁이 발생하든 말든 우리랑은 상관없는 거 아니야? 오히려 좋을 것 같은데?”

전쟁이 나면 오히려 이득 아닌가?

전쟁의 영향으로 이쪽으로 향하는 관심이 사라질 테니 오히려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전쟁이 일어나면 저희 영지 역시도 출병해야 합니다. 그것이 귀족의 의무니까요.”

“레이가 직접?”

“그렇습니다. 아직 각성하지 못했다고 해도 귀족은 귀족이니까요.”

전쟁이 일어나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는 말이네?

“그럼 처음에 결정했던 방법으로 움직이도록 하자. 난 이만 가볼게.”

레이가 직접 전쟁에 참전해야 한다는 소리에 지안의 폭격은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 * *

-저희가 직접 말입니까?

“왜? 싫어?”

-그건 아니지만, 공작의 기사라면 저희를 알아보는 자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군주님께서는 아직 정체를 밝힐 생각이 없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수호기사단의 상위 서열쯤 되면 당연히 알아보는 자가 있을지도 몰랐다.

부단장이라면 알아보는 자가 특히 많겠지.

하지만, 그건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투구를 쓰면 되잖아?”

-투구를 말입니까?

“어. 투구를 써서 얼굴을 숨기면 누가 알아보겠어?”

-하지만, 그건…….

크림슨이 꺼리는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마족에게 정체를 숨기는 것은 명예롭지 못한 행동이었으니까.

전투를 치르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잖아. 이해 좀 해줘.”

-알겠습니다.

내 부탁에 체념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크림슨을 보자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어째서 마족은 자신을 숨기는 것을 꺼리는 것일까?

인간과 정말 비슷하면서도 이런 것을 보면 전혀 다른 존재라는 것이 실감이 났다.

수십 개의 비밀을 숨기고 있는 인간과 어떤 것도 숨기지 않으려는 마족.

아마 그 이유는 지배의 군주에게 있으리라.

군주의 앞에서는 감출 수 있는 것이 단 하나도 없었을 테니까.

“아! 그리고 영지의 병사 중에서 괜찮은 애들 좀 뽑아봐.”

-괜찮은 애들이라 하시면?

“싹싹하고 충실한 놈들.”

-혹 이유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명색이 기사단인데 다섯밖에 없는 건 좀 그렇잖아. 이참에 수 좀 늘려보려고.”

크림슨, 루시안, 코넬리아, 라구스, 콜라.

그 어떤 기사단보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수가 너무 적었다.

그 때문에 룩산을 기사단에 합류시키는 걸 고려해 봤지만, 룩산은 병사들을 통솔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들을 기사단에 받아들이기엔 너무…….

“약하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돼. 다 방법이 있으니까.”

-설마 힘을 되찾으신 겁니까?

“나? 아닌데? 그대론데?”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내게 묻는 크림슨을 보며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한 나는 이어서 머릿속에 떠오른 얼굴에 은은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수아.

잠재력의 리미트를 해제시키는 능력을 가진 나의 가장 소중한 보물.

조금 전 크림슨을 찾아오기 전에 수아를 만나 버프가 마족에게도 통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레이에게 수아가 매일같이 버프를 걸어주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이하게도 수아의 버프는 인간보다 마족에게 더욱 잘 먹히는 것 같았다.

물론 최고는 정령이었지만.

아무튼, 룩산을 불러 실험을 해본 결과 인간과 다르게 바로 결과가 나타났다.

인간의 경우 잠재력의 한계를 높여 준다면 마족의 경우 육체가 담을 수 있는 마력의 한계치를 높여 주는 것으로.

마력 대부분을 뿔에 저장하고 있는 마족에게 육체가 담을 수 있는 마력의 한계를 높여 준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그래서 레이의 뿔이 사라진 것이었고 말이다.

다만, 룩산의 경우 이미 어느 정도 육체를 활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한계를 높여 주지는 않았지만, 시녀의 경우 육체가 담을 수 있는 용량을 크게 증가시켜 주었기에 충분히 기사단을 만들 수 있을 것이란 예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그들의 수준을 높여 주시려는 겁니까? 아시다시피 마족에게는 성장이란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일단 뽑아놔. 깜짝 놀라게 해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최대한 선별하여 뽑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의문이 담긴 눈은 그대로였지만, 그 속에 기대감이라는 것을 품은 크림슨을 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선별을 마치면 말해. 바로 보여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크림슨을 비롯한 수호기사단원들이 그 모습을 보면 깜짝 놀라리라.

이거 반응이 기대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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