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2화 (172/214)

쿠웅-

조금 전과 차원이 다를 정도의 방대한 마력을 분출하기 시작한 공작.

그에게서 뿜어져 나온 마력은 순식간에 주변 공간을 지배했고, 이어서 주변을 파괴하며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공작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건 나의 예상을 벗어나는 강함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에게서 느껴지는 힘은 루시안이나 코넬리아를 가볍게 넘어서는 것처럼 보였고, 크림슨마저 압도하는 것만 같았기에 내 놀람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특히 마력.

그에게서 뿜어져 나온 방대한 마력의 양에 경악한 나는 수호기사단이 지금껏 나에게 거짓을 말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그의 마력은 엄청났다.

하지만, 내 생각은 틀린 모양이었다.

현지의 표정만 봐도 그것을 알 수 있었는데, 현지는 미소를 지은 채 아무렇지 않게 그의 마력에 저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와! 너 정말 강하구나?

-이제 좀 두려움이라는 것이 느껴지느냐?

자신감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현지를 쏘아보는 공작.

이 정도라면 충분히 자신감을 가질 만했다.

아니, 오만하다 해도 반박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현지와 공작.

둘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의 차이가 최소 10배 이상은 되어 보이는 것만 봐도 공작의 강함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지만, 문득 예전에 코넬리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마력의 양은 대단한 수준이 아니라던 코넬리아.

수호기사단의 상위 서열 대부분이 후작보다 조금 더 높은 마력을 소유하고 있을 뿐이라던 말.

그것은 사실이었던 모양이었다.

크림슨이 홍마족이었을 당시에도 저 정도까지는 아니었으니까.

-그럼 시작해 볼까?

-시작이라고? 무서워서 벌벌 떨어야 할 년이 지금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냐!

-내가 왜 무서워해야 하는데? 고작 마력 조금 더 많은 거 가지고 잘난 척은!

현지의 말이 끝나는 순간 공작의 앞에 서 있던 현지가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훈련소라 이름 붙인 공간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

그에 공작이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는 상황이 황당하겠지.

당황하던 공작과 상관없이 현지의 공격은 곧바로 시작되었다.

-응? 이게 무슨?

꽝-

갑작스럽게 나타나 공작을 향해 쏘아져 나가는 단검.

빠른 속도로 쏘아져 나가던 단검은 안타깝게도 공작의 마력과 부딪히며 튕겨 나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단검은 순식간에 방향을 바꾸며 또다시 공작을 향해 쏘아져 나갔고, 이어서 또 하나의 단검이 나타나 공작의 뒤를 노렸지만, 역시나 처음과 똑같은 모습으로 튕겨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현지와 공작의 싸움이 시작되는 듯했지만, 보이는 것은 현지의 끝없는 공격뿐이었다.

점차 파괴력을 높일 뿐만 아니라 속도 역시 빨라지는 단검의 공세에 공작은 조금 당황했는지 공격할 생각조차 못 한 채로 방어에 집중했고, 그 때문인지 공작이 밀리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밀리는 건가?

-이년! 숨지 말고 나와라!

공작의 외침에도 대답은 없었다.

그저 현지의 끝없는 공격이 그를 향할 뿐.

-이런 치졸한 방법을 사용하다니, 네년에게는 마족의 긍지도 없단 말이냐!

계속되는 외침에도 현지의 대답은 없었다.

그에 화가 난 공작은 마구잡이로 마력을 분출하며 주변을 파괴하기 시작했지만, 현지의 공격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계속해서 주변을 향해 마력을 분출하는 공작과 그를 향해 쏘아져 나가는 단검.

이대로라면 끝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조용히 둘의 전투를 지켜보던 그때였다.

상황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점차 현지의 단검이 공작과 가까워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공작에 전혀 근접하지 못했던 단검은 처음과 다르게 1m 안까지 파고들기 시작했고, 그 거리는 계속해서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 이년이?

그에 점차 공작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고, 이어서 당혹스러운 외침 토해내기 시작했다.

-엇! 어엇! 헉!

그나저나 크림슨이 훨씬 강한 게 맞네?

현지가 나온 후 크림슨은 현지와 많은 대련을 했는데, 그때의 현지는 크림슨의 마력을 단 한 번도 뚫어내지 못했었다.

마력을 전부 소모할 때까지.

라구스의 방어조차 쉽게 뚫어낸 현지였지만, 크림슨은 전혀 달랐다.

1m는커녕 크림슨이 허락조차 하지 않으면 크림슨이 지배하는 공간에 단검을 출현시키는 것조차 불가능했으니까.

그나저나 곧 끝나겠는데?

이제는 방어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단검의 파괴력이 증가한 상태였고, 그에 공작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간신히 공격을 피했지만, 조금씩 상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라구스나 코넬리아, 루시안의 경우 기본적으로 몸을 사용하는 것이 익숙했기에 현지의 공격을 꽤나 잘 피했다.

하지만, 공작은 오로지 마력 하나로 그 자리까지 올라간 것인지 몸을 쓰는 것이 어색해 보일 지경이었고, 완전히 피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상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크아악! 이, 이런 치사한!

그때, 현지의 공격이 공작의 왼쪽 어깨를 뚫어버리며 전투의 끝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물론 공작이 겨우 어깨가 뚫렸다고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현지의 공격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거세지고 있었기에 어깨의 상처는 큰 짐이 될 것이다.

응? 뭐야? 왜 멈춰?

순간 공작을 향해 쏘아져 나가던 두 개의 단검이 모습을 감추며 현지가 공작의 앞에 나타났다.

-치사하다고?

-다, 당연하지 않으냐!

-뭐가?

-숨어서 공격을 하다니! 네년은 마족의 수치다!

-나 마족 아닌데?

-뭐?

현지의 대답에 멍한 표정을 지은 공작.

-나 마족 아니라고.

-마, 마족이 아니라고? 그, 그게 무슨? 서, 설마! 네년 타락한 천족이구나!

-천족?

-그래. 들은 적이 있다. 스스로 날개를 뽑아버리고 천족임을 부정하는 자들에 대해서. 그래, 어쩐지 마족의 외모라고 하기엔 너무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긴 했었지. 네년은 천족이었구나!

공작은 뭔가 큰 착각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나저나 날개를 뽑아버리고 천족임을 부정하는 존재라니?

그게 뭐야? 홍마족 같은 건가?

-아닌데? 난 인간인데?

-인간? 그게 뭐지?

-아! 됐고. 치사하다고 했지? 그럼 한번 제대로 붙어보자. 나도 이렇게 찔끔찔끔 싸우는 건 맘에 안 드니까.

어? 저거 지금 뭐 하는 거야? 제대로 싸우다니?

현지의 말에 당황한 나는 급히 현지와 연결된 선을 통에 물을 수밖에 없었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저도 실험해 보고 싶은 게 있거든요. 너무 위험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지만, 이번 기회에 써보고 싶어요. 허락해 주세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현지는 간절한 눈으로 나에게 허락을 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쉽게 허락해 주기에는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 들었기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한 나는 다시 물었다.

‘위험한 거야?’

‘네, 너무 위험해서 대련할 때는 쓸 수 없었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니가 위험한 거 아니냐고.’

‘저도 위험하긴 한데. 죽음을 무릅쓸 정도는 아니에요.’

현지 자신조차 위험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지만, 결국 난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현지의 간절한 눈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알았어. 대신 위험할 것 같으면 바로 중지야.’

‘네.’

‘크림슨! 당장 이쪽으로 와!’

혹시 모르는 사태를 대비한 나는 크림슨을 호출했고, 크림슨이 도착한 후에야 현지에게 시작하라는 뜻을 전했다.

-이거 마셔.

-응? 이것이 무엇이냐?

-상처를 치료해 줄 거야.

-상처를?

아오! 저건 진짜 왜 저러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엘릭서를 건넬 필요까지는 없어 보였는데, 현지는 적인 공작에게 엘릭서를 건네며 상처를 회복하라 말했다.

이건 순진한 거야? 멍청한 거야?

공작이 저걸 마실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어?”

내 생각과는 다르게 공작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엘릭서를 그대로 마셔버렸다.

저놈도 정상은 아니네…….

-정말 몸이 회복되었군. 적이지만 너의 관대함에 찬사를 보낸다.

나는 공작의 황당한 선택에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

이후 공작을 보며 자세를 잡는 현지.

그리고, 또다시 현지가 사라졌다.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걸까요?

“난들 알겠어?”

현지가 무엇을 하려는 건지는 나도 몰랐기에 딱히 대답해 줄 말이 없었다.

그리고, 공작은 또다시 눈앞에서 모습을 감춘 현지를 보며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잠시 후.

우웅-

소름 끼치는 무언가가 내 감각을 파고들었고, 크림슨 역시 당황한 상태로 급히 내 앞을 막아섰다.

크림슨조차 공포에 질려 버릴 정도로 두려운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쿠웅-

갑작스럽게 큰 울림이 퍼져나가며 공간이 찢어지기 시작했고, 이어서 이상한 모습으로 변한 현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천마와의 싸움 이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마녀처럼 변해 버린 현지.

그때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힘을 뿜어내고 있다는 것.

-허억!

현지가 나타난 순간 공작은 뒤로 훌쩍 물러나 자리에서 벗어나며 경악성을 내뱉었고, 그에 현지의 고개가 천천히 공작을 향해 돌아갔다.

그리고.

공작의 움직임이 그대로 멈춰 버렸다.

-으헉! 뭐, 뭐냐!

공포에 질린 눈으로 현지를 보며 꼼짝도 하지 못하는 공작을 보자 현지가 무언가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으음…….

내 앞을 막아선 크림슨이 잔뜩 긴장해서 현지를 똑바로 바라보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저런…….

“왜? 뭔데?”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느껴지긴 하는데 정확히 파악이 안 돼서 말이야.”

현지의 기운이 파괴적이라는 건 알겠다.

하지만,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파악이 되지 않았기에 크림슨이 설명해주길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현지 양에게서 마치 세상을 파괴할 것만 같은 공포가 느껴집니다.

“공포? 너도?”

-네. 저조차도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어? 움직인다.”

크림슨과 대화를 하던 도중 가만히 멈춰 공작만을 바라보던 현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삐걱대는 듯한 걸음으로 느릿느릿 공작을 향해 걷는 현지.

보기에는 쓰러지기 직전의 상태처럼 보였지만, 전혀 아니었다.

현지가 지나는 자리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파괴가 아닌 소멸되는 듯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으니까.

아무런 소리도 후폭풍도 존재하지 않는 특이한 모습.

그렇게 천천히 다가가는 현지에게는 감정이라는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검은 동공이 사라져 흰자만이 보이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걱정이 되는 건 당연했다.

의식이 없는 듯 보였으니까.

천천히 공작에게 다가가던 현지를 공작이 어떻게든 막아 세우기 위해 모든 마력을 동원하는 듯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현지를 감싼 마력에 닿는 순간 그대로 흩어졌으니까.

아니, 마력조차도 소멸해 버리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결국 현지는 공작의 앞에 도착했다.

그런 현지를 보는 공작의 눈은 공포에 잠식되어 있었고, 표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 오지 마! 으악!

가까이 다가간 것만으로도 공포에 질려 비명을 내지르는 공작.

그의 표정만 봐도 그가 얼마나 공포에 질렸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지금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현지에게 그의 말은 조금도 전해지지 않았고, 현지는 그대로 팔을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이어서 공작을 향해 손을 뻗는 현지.

‘현지야, 안 돼! 죽이지 마!’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간 현지가 공작을 죽여 버릴 것 같았기에 급히 소리치자 현지의 고개가 나를 향해 천천히 기울기 시작했고, 이어서 나와 눈을 맞추었다.

“으헉! 뭐, 뭐야!”

눈을 마주치는 순간 내가 느낀 감정은 바로 공허함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 속에 혼자 남겨져 있는 듯한 느낌.

지금 현지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나에게 전해져 온 것 같았는데.

이건 정말 위험했다.

현지의 정신이 파괴되어 버릴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아니, 이미 파괴되어 버렸을지도 몰랐다.

“멈춰! 힘을 거두라고!”

악을 쓰며 소리친 그때였다.

현지의 입가에 미소가 어린 것은.

“어?”

입가에 어린 미소를 제외하면 모든 것이 그대로인 현지였지만, 무언가 변했다는 걸 알 수 있는 미소였다.

그에 조금 안심이 된 나는 현지를 내버려 두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어서 현지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들어 올렸던 손을 공작의 이마에 가져다 댄 현지는 마치 딱밤을 때리듯 중지와 엄지를 움직여 자세를 잡았고, 그대로 중지를 튕겨 버렸다.

-쿠웅

콰과과과광-

현지의 중지가 공작의 이마에 닿는 순간, 거대한 충격파가 터져 나오며 공작이 머리가 순식간에 뒤로 꺾이고 몸이 머리를 따라 엄청난 속도로 튕겨 나가며 주변 지형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저거 죽은 거 아니야?”

-미약하지만 공작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으로 봐서는 죽지는 않은 듯 보입니다.

크림슨의 말이 끝나는 순간 현지가 자리에서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목격한 나는 급히 현지에게 다가갔고, 현지가 무사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안심할 수 있었다.

“라구스!”

-네!

라구스를 부른 나는 현지를 영지에 데려가라 지시한 후 공작과 그의 기사들을 한 자리에 모은 후 공작이 깨어나길 기다리며 현지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일단 기사들은 전부 지배하는 것이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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