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쯤에서 쉬도록 할까?”
“또요?”
그에 지안이 황당하다는 듯 물어왔다.
“어차피 일찍 도착해도 할 게 없거든. 마계의 강자들이 적어도 반 이상은 모여야 토벌이 시작될 테니까.”
“그래도 일찍 도착해서 미리 상황을 파악해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상황 파악할 틈이 없을걸?”
“왜요?”
“그곳은 지금 지옥이니까.”
계속해서 들려오던 소문과 정보들을 취합한 결과 지금 그곳은 지옥이나 다름없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엄청난 수의 용족과 마수들의 끝없는 전쟁에 의해서 말이다.
본래 5만 정도였던 마수들은 용족들의 학살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수를 불리며 지금은 10만을 가볍게 넘어설 정도로 수가 불어났고, 마수들의 강함 역시도 계속 강해지고 있었다.
용족에 의해 죽은 마수들의 피와 살, 정수를 흡수한 다른 마수들은 하급이 중급으로 중급이 상급으로 진화하며 계속해서 힘을 불려 나가고 있었다.
그 덕에 마계 곳곳에서 도착한 강자들은 점점 커지는 마수의 군대를 처리하느라 목표물인 왕급 마수는커녕 최상급 마수조차도 거의 보지 못하는 상태였다.
“하급 이상만 10만이 넘을지도 모른다고요?”
“그렇다니까. 각 종족의 최강자들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우리가 도착한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리고 그곳에 일찍 도착한다고 해도 몸을 숨기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뭔가를 할 수도 없다고.”
왕급 마수의 정수가 목적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곳에서 활개를 치며 돌아다닐 생각은 없었다.
아직은 이쪽에 대해서 최대한 숨겨야만 했으니까.
“그냥 대표님이 정리하면 안 돼요?”
“내가?”
“네. 마수들을 지배해서 길을 열도록 하면 되잖아요.”
지안의 말대로 마수들을 대량으로 지배한다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최소 2천 이상은 단번에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손에 넣은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혹여나 우리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그것을 보게 된다면 분명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테고, 그것은 나라는 존재가 들통나게 되는 일을 초래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거기다, 2천이라는 수는 얼핏 보면 엄청나게 많아 보이긴 했지만, 10만 중에 2천은 겨우 2%일 뿐이었다.
2%를 가지고 나머지 98%를 뚫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시간을 좀 더 들여 1만 이상을 지배해 버린다고 해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안쪽으로 갈수록 강한 마수들이 모여있는 상황에서 겉에 있는 최하급과 하급 마수들 1만을 지배한다고 해서 안쪽의 상급 이상의 마수들을 뚫어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아예 지배하지 않을 생각은 아니었다.
“안쪽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면 지배를 시도하긴 할 거야. 그편이 남들의 눈에 띄지도 않을 뿐 아니라 더욱 강한 개체를 손에 넣을 수 있을 테니까.”
“상급 이상의 마수들을 지배하시려고요?”
“그래. 그 정도는 되어야 우리가 싸우는 동안 시간을 끌어줄 수 있을 테니까.”
솔직히 말하면 빠르게 도착해 몰래 왕급 마수를 처리하려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는 크림슨의 의견에 왕급 마수의 강함을 확인한 후에 움직이는 것으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지안의 공격으로도 큰 타격을 입히지 못할 정도로 놈이 강하다면 그 방법은 저승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물론 지안의 공격으로 타격을 입히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지안의 필살기라 부를 수 있는 그 괴랄한 파괴력을 가진 섬광을 직접 본 나뿐만이 아니라 크림슨 역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 단정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대공이나 단장조차도 지안의 공격에 직격당하면 절대 살아남지 못할 거라던 크림슨의 말대로 지안의 공격은 그만큼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품고 있었다.
난쟁이족의 신이라 할 수 있는 존재가 만들어낸 결계를 순식간에 찢어발기는 무시무시한 위력.
물론 결계의 용도가 바하무트를 가두는 용도가 아닌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결계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은 난쟁이족의 신조차도 그 정도면 누구도 출입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설치한 결계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파괴력만큼은 마계의 최강자라 불리는 자들을 넘어선다는 말이었다.
* * *
“무시무시하네.”
-저도 용족이 저렇게 살기를 뿌리는 모습은 처음 봅니다.
목적지에 거의 도달했을 즈음부터 느껴지기 시작하던 엄청난 살기는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 본래의 농밀함을 드러냈다.
엄청난 크기의 용족 수백이 모여 한 방향을 향해 뿜어내는 살기에 마계의 강자들이라 할 수 있는 자들이 알아서 자리를 피할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반대 방향을 향해 뿜어내는 살기의 잔재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 것을 보면 용족이 지금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는데.
하긴 자신들의 왕이나 마찬가지인 존재가 소멸했으니 당연하겠지.
“그나저나 들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 같은데?”
10만을 가볍게 넘어서는 수.
하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마수들의 수는 최소 20만 이상이었다.
그것도 중앙 부분을 뺀 마수들의 수가 말이다.
중앙 부분은 안개에 가려진 듯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바하무트의 사념 덕분이었다.
-20만 이상은 되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어디서 저렇게 많은 마수가 쏟아져 나오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현상이었다.
우리 일행은 이곳에 도착한 후 마수들이 차지한 영역을 둘러보았는데, 황당하게도 그 어디서도 마수들이 합류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저곳에 모이고 있는 무시무시한 사념 덩어리가 마수들을 끝없이 뱉어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생김새만 봐도 저놈들은 일반적인 마수들과는 많이 다르지 않습니까?
마수들의 생김새는 지금껏 내가 봐왔던 녀석들과 조금 차이가 있었다.
생태계에 영향을 받아 태어나는 마수들과 달리 녀석들은 그 어떤 생물도 닮아있지 않을 정도로 흉측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팔, 다리는커녕 눈조차 없는 마수가 있는 반면 마치 거대한 눈 수천 개로 육체를 구성하고 있는 듯한 이상한 마수까지 대부분의 마수가 혐오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흉측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소형 종과 중형 종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이 대형 종으로 보이는 마수들.
작게는 10여 미터에서 크게는 100여 미터까지 마수들 대부분이 덩치가 거대한 대형 종으로 보였다.
"그나저나 이대로 내버려 뒀다간 수십만이 아니라 수백만, 아니 수천만까지도 불어나겠는데?"
마수들이 모여있는 거대한 영역 속으로 계속해서 모여드는 엄청난 양의 사념을 생각하면 수천만을 넘어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강자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축제라 불리는 현 상황은 아무리 봐도 축제라 부를 만큼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시간이 계속 흘러가다가는 마계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지옥을 방불케 한다며? 왜 대치만 하는 건데?”
-용족이 잠시 휴식을 취하는 모양입니다.
“그럼 마수들은? 왜 가만히 있는데?”
-저자 때문이겠지요.
크림슨이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온통 흰색으로 도배하고 있는 특이한 존재가 허공에 가만히 서서 시선을 멀리 고정하고 있었다.
4쌍의 흰 날개와 흰색의 머리칼을 휘날리며 허공에 고고하게 떠 있는 존재.
천족.
듣던 대로 외모가 장난이 아니었다.
미남? 미녀? 그 수준을 초월해 버린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미르카엘이란 자의 외모는 정말 신화나 전설 속에나 나올법한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저자가 천족의 수장이라는 미르카엘이야?”
-그렇습니다.
“만나본 적은?”
-본 적은 있습니다만, 아마 기억하지 못할 겁니다. 오만하기가 하늘을 찌를 정도라 그의 눈에 저는 보이지도 않았을 겁니다.
미르카엘을 보는 크림슨의 눈에는 약간의 적대심이 깃들어 있었다.
마족과 천족의 사이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라는 말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이거 괜찮으려나?”
미르카엘에게서 느껴지는 강함은 나에게 두려움이란 감정을 선사할 정도로 엄청난 수준이었다.
마족과 다르게 모든 힘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그에게서 은은하게 뿜어져 나오는 기운만으로도 충분히 그의 강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생명체에 대한 끝없는 살의를 품는 마수들조차 감히 덤벼들지 못하게 만들 정도로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가히 엄청난 수준이었다.
“그나저나 정말 지안이와 비슷하잖아?”
외모가 아니라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 자체를 말함이었다.
지안이가 공격 시에 분출하는 기운과 미르카엘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황당하게도 많이 닮아 있어 보였다.
“저랑요? 듣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그렇지? 평소의 마력이 아닌 니가 분열을 사용한 후의 마력과 이상하리만큼 닮았단 말이야.”
평소 지안의 마력은 내 지배의 마력과 닮은 편이었지만, 분열이라는 능력을 사용하게 되면 마력이 조금 변하게 되는데, 그때의 마력과 비슷한 느낌을 받은 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움직입니다.
지안의 기운과 미르카엘의 기운이 닮아있다는 것에 생각에 잠겨있던 사이 크림슨의 의념이 날 깨웠다.
“응?”
그에 시선을 돌리자 미르카엘이 아닌 용족에게서 움직임이 포착되었는데.
“브레스?”
용족의 움직임이 포착된 이후 주변의 마나가 미친 듯이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고, 그에 전에 집사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용족의 경우 특이하게도 바하무트에게 잠식당하게 되면 오히려 약해진다던 말.
그 말의 뜻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주변의 마나를 미친 듯이 빨아들이는 용족을 보면서 말이다.
크롸롸롸롸-
장엄하다고 해야 할까?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브레스가 마수들을 향해 각 방향으로 쏘아지며 마수들을 쓸어버리는 모습을 시야에 담던 나는 소름이 돋는 걸 느낄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내가 상대했던 용족들은 어린아이처럼 느껴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가진 브레스가 순식간에 만 단위의 마수들을 쓸어버렸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마수가 대형종이었음에도 만 단위를 쓸어버리는 엄청난 파괴력.
용족과의 거리가 수십 킬로는 떨어져 있었음에도 브레스의 여파가 여기까지 미치는 것만 봐도 그 속에 담긴 파괴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파악할 수 있었는데.
“아직 끝이 아닌가 본데요?”
지안의 말대로 용족의 공격은 끝이 아니었다.
가장 뒤쪽에 자리하던 일곱의 용족.
그 크기가 다른 용족들에 비해 두 배는 거대해 보이는 존재들이 아직 마나를 빨아들이는 중이었고.
잠시 후.
그의 앞을 막아서고 있던 용족들이 자리를 이탈했고, 이어서 일곱의 용족이 주둥이를 벌리며 한 방향을 향해 동시에 브레스를 발사했다.
크롸롸롸롸-
“허!”
단 일곱의 힘이 용족 수백의 힘을 가볍게 넘어서는 괴랄한 파괴력을 지닌 브레스를 뿜어내자 전과 다른 모습이 시야에 담기기 시작했다.
전의 공격이 하급과 중급, 그리고 소수의 상급 마수들만 쓸어버렸다면, 이번의 공격은 뒤쪽에 위치한 최상급의 마수들까지도 순식간에 재로 만들어 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마수를 재로 만들며 쏘아져 나가던 브레스는 어느 기점을 중심으로 더는 파고들지 못한 채 막히며 힘겨루기를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최상급 마수 중에서도 그 힘이 최상위권에 속하는 존재들.
녀석들이 모여 브레스를 막아내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최상급 마수들의 수가 너무 많은 거 아니야? 아니 최상위권에 속하는 놈들이 왜 저렇게 많은 건데?”
-아무래도 용족의 공격으로 인해 마수들의 진화가 빨라진 모양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많다는 건 좀…….”
안개에 가려진 듯 마수들의 중심부가 거의 느껴지지 않던 전과 달리 용족의 브레스로 인해 어느 정도 시야가 확보되자 느껴지기 시작하는 존재들.
문제는 그것들의 수가 예상했던 수를 가볍게 넘어선다는 것이었다.
최대 5백을 상정했지만, 느껴지는 최상급 마수의 수는 적어도 2천 이상이었고, 그 강함 역시도 예상보다 최소 3배는 높아 보였다.
물론 저놈들뿐이라면 어떻게든 뚫고 들어갈 수 있었지만, 문제는 저것들이 다가 아니라는 거였다.
수도 수지만, 놈들 안쪽에서 드문드문 느껴지는 기운은 절대 뚱이나 하임의 밑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루시안이나 코넬리아, 라구스조차도 셋 이상은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을 품고 있는 녀석들이 그곳에 존재했다.
-감히!
응?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사이 어떤 음성이 머릿속을 파고들었고, 그와 동시에 시야가 하얗게 점멸하며 엄청난 힘을 품은 백색의 뇌전이 마수들의 머리 위로 마구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콰르릉- 콰릉-
백색의 번개가 최상급 마수들을 순식간에 재로 만들고, 몇 초가 지나서야 굉음이 터져 나오는 것이 들려오면서 동시에 온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백색의 뇌전에 집약되어 있던 마력과 파괴력에 의해서.
겨우 손을 뻗었을 뿐인 미르카엘이었지만, 그 파괴력은 내 예상을 한참 벗어나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최상급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해있는 마수들이 저항조차 해보지 못한 채로 순식간에 잿더미로 화해 흩날렸기 때문이다.
“이대로는 안 되겠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마 저곳을 뚫는 것만으로도 모든 힘을 소모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제야 왜 용족이 대치만 하고 있었는지 이해가 갔다.
도저히 뚫을 수 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대치만 하며 잠깐씩 브레스를 이용해 녀석들의 수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물론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고만 있었지만.
그나저나 저것들은 지금 뭐 하는 거야?
“야! 너 뭐 먹어?”
“뀨?”
하임이 뭔가를 아주 맛있게 먹고 있었고, 그 주위를 빙빙 돌며 침을 흘리는 미호와 뚱이, 그리고 니안이 보였는데.
“뀨!”
“응? 뭐야 그 정수같이 생긴 건?”
내 물음에 먹고 있던 뭔가를 나에게 들이미는 하임.
문제는 그것이 정수와 똑같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느껴지는 기운 역시도 정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