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8화 (178/214)

머, 멈춰야 하는 건가?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고통에 이를 악물며 참아내던 것도 잠시,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결정을 내리려던 순간이었다.

-켈켈켈.

마치 내가 포기하려 한다는 것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사념 덩어리들이 나를 비웃는듯한 느낌이 내 정신을 파고들었다.

직접 들리는 것도 아니었고, 의념처럼 머리를 울리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 사념의 감정이 느껴지는 듯했는데, 분명 녀석은 나를 비웃고 있었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이 새끼야!’

자존심이 상한 나는 마음을 다잡으며 약해진 의지를 불태우기 시작했고, 이어서 내 지배의 영역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점차 넓어져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의지를 불태우던 그때였다.

내 의지를 넘어서는 녀석들이 영역 안으로 들어온 것은.

최상급의 마수 중에서도 최상위에 근접해 있는 녀석들.

놈들은 내 의지를 거부하며 나에게 더욱 커다란 고통을 선사하기 시작했고, 그에 나는 영역이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영역을 다급히 줄이려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영역은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X발 망했다!’

내 의지는 강해진 것이 아니었다.

지금의 지배 방식은 그저 영역 전체에 동일한 수준의 의지를 퍼트릴 수 있게 됨으로써 단번에 많은 수의 마수들을 지배할 수 있게 된 것일 뿐 한계 이상의 존재에게는 지배는커녕 내 고통만 더욱 커지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었다.

지배의 영역을 없애버리거나 의식을 잃기 전까지 버티거나 둘 중 하나의 방법만 남아 있는 상태.

둘 중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당연히 전자였다.

포기하는 것.

버틴다고 해서 녀석들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고통만 커질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아는 나였기에 포기해야만 했지만, 이상하게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엄청난 고통에 정신줄을 놓기 직전의 상태였음에도 나를 비웃는 사념 덩어리에게 어떻게든 한 방 먹이고 싶었다.

해보자.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텨보자.

결정을 내린 나는 어떻게든 영역에 퍼져있는 의지를 유지하려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점차 내 영역을 파고드는 사념 덩어리들과 한계 이상의 강함을 가진 최상급 마수들이 나를 방해하며 고통을 증폭시키기 시작했고, 이어서 정신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포기해야 한다고?

왜인지 모를 억울함이 몰려왔다.

어차피 여기서 포기한다고 해서 뭔가 잘못되는 것도 아니었고, 최상급의 마수들을 지배하는 것 역시도 다시 시도하면 되는 문제였지만, 이상하게 억울했다.

아니, 자존심이 무참히 뭉개지는 기분이랄까?

어떻게든 녀석에게 한 방 먹이고 싶었지만, 결국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의식이 점차 흐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응? 저건?

그러던 차에 뭔가 이상한 것을 느낀 나는 급히 그쪽으로 의식을 집중했고, 특이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하무트의 사념 덩어리 중 일부가 점차 내 의지에 잠식되어가며 지배되어 가고 있었던 것.

설마? 저것들도 지배할 수 있던 거였어?

생각해 보니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하무트의 사념에게 잠식당한 존재를 지배할 수 있다는 건 당연히 사념 역시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너, 잘 걸렸다.’

그에 의식을 사념에게 집중하기 시작한 나는 녀석들을 지배하기 위해 의지를 집중했고, 이어서 바하무트의 사념 덩어리들이 놀란 듯 급히 내 영역에서 빠져나가려 하기 시작했다.

‘어딜 도망가 이 새끼야!’

엄청났던 고통조차 잊게 만들어 줄 정도의 희열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고, 이어서 녀석들이 점차 내 지배하에 들어오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 이것 봐라?’

내 지배하에 들어오는 사념 덩어리들을 보면서도 써먹을 데가 없다는 생각을 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녀석들이 내 의지를 증폭시키기 시작한 것.

마치 마력을 증폭시키듯 의지를 증폭시키기 시작한 사념 덩어리들 덕에 지금껏 아무렇지 않게 내 의지를 무시하던 녀석들이 고통스럽게 울부짖기 시작했고, 이어서 녀석들 역시도 점차 내 지배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 * *

“후아- 죽을 뻔했네.”

“괜찮으세요?”

지배가 끝난 후 심호흡을 하며 내뱉은 말에 지안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어왔다.

“사념 덩어리들이 내 영역을 뚫고 들어와 방해하는 바람에 큰일 날 뻔했어.”

“지배는 성공하신 것 같은데요?”

“그렇지. 의외로 저 방해만 되는 사념 덩어리들이 도움이 되더라고. 저거 어떻게 챙길 방법이 없나?”

지금도 허공을 잔뜩 메우고 있는 사념 덩어리들을 보며 나는 저것들을 따로 챙길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내 지배하에 들어온 사념 덩어리들은 일회용이었기 때문이다.

사념은 의지를 증폭시킴과 동시에 그대로 소멸하듯 사라져 버렸기에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생각해 보니 사념 덩어리들을 어떻게든 챙겨 놓는다면 후에 아주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게 도움이 된다고요? 어떻게요?”

“저것들도 지배가 되더라고.”

“지배가 된다고요?”

“그래. 내 의지에 잡아먹힌 녀석들이 황당하게도 내 의지를 증폭시켜주지 뭐야. 그 덕에 원래는 지배하지 못했을 녀석들까지 지배할 수 있었지.”

내 말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지안과는 다르게 크림슨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군주님, 천족이 안쪽으로 파고들고 있습니다.

일행이 잠시 멈춰있던 동안 천족 진영을 살피기 위해 잠시 자리를 비운 루시안이 연락을 보냈다.

-다른 종족들은?

-마족은 아직 대치만 하는 상황이고, 용족은 천족을 따라 움직일 것 같습니다.

미르카엘은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주변의 마수들을 모두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길을 만들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이유가 뭐지?

저렇게 급하게 움직일 이유가 있나?

-일단 합류해. 이쪽에서 따라붙을 테니까.

-네.

루시안에게 복귀하란 지시를 내린 나는 곧장 내 지배하에 있는 마수들에게 길을 열라 지시한 후 마수들이 열어놓은 길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이동했을까?

멀리서 천족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다 온 것은 아닌 모양인데?”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중간중간 지천사들을 남겨둔 모양입니다.

“자신이 패배하는 상황을 상정해 두었다는 말이야?”

-그런 것 같습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당연히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움직이는 것이 정상이었으니까.

하지만 미르카엘은 분명 급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왕급 마수에게 이동하는 가장 빠른 루트를 선택했을 뿐만 아니라 최상위 천족인 치천사들과 지천사들을 재촉하며 길을 열고 있었으니까.

“일단 계속 따라가 보자.”

-네!

잠시 멈춰 생각에 잠겨 있던 사이 루시안이 복귀를 했고, 그와 동시에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이동하면 할수록 점차 강한 마수들이 등장했고, 그 덕분에 지금껏 빠르게 길을 뚫던 천족들이 마수들에 막혀 치열한 전투를 벌이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도 준비를 시작했다.

“이제 곧 내 영역이 끝나게 될 거야. 일단 지배를 시도해 보긴 할 거야. 만약 실패하면 너희들이 나서야 하는 상황이 올 테니까. 준비하고 있어.”

-네!

“네!”

크림슨들과 지안의 대답을 들으며 나는 천천히 주변으로 지배의 마력을 퍼트리며 영역을 만들어냈고, 이어서 허공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사념 덩어리들을 유혹하기 시작했다.

마수를 지배하기 전에 사념 덩어리들을 먼저 지배해 의지를 증폭시킬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덤벼 이 새끼들아!’

지배의 영역에 도발의 의지를 퍼트리자 허공을 잔뜩 메우고 있던 사념 덩어리들이 반응하기 시작했고, 이어서 내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그 영향으로 내 머리는 깨질 듯이 아프기 시작했지만, 그와 반대로 내 입가에는 미소가 어리고 있었다.

저것들 모두가 내 의지를 증폭시키는 기폭제가 되어줄 테니까.

이제 충분한가?

전보다 더욱 많은 양의 사념 덩어리가 영역 안으로 들어온 것을 확인한 나는 녀석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지배의 의지를 퍼트리며 가장 약한 녀석을 찾아 지배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조금씩 의지를 증폭시키며 사념 덩어리들을 더욱 손쉽게 지배할 수 있게 되면서 내 의지는 끝없이 증폭되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내 영역에 들어온 모든 사념 덩어리들이 기폭제의 역할을 하게 되면서 모두 소멸해 버렸고, 동시에 나는 영역을 최대한으로 확장해 나가며 영역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마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더 멀리! 더 많이!

순식간에 백 단위의 최상급 마수를 지배한 나는 계속해서 영역을 넓혀 나가며 더욱 많은 마수를 지배했고, 그것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끝없이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마수들의 크기가 너무 거대해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마수를 지배하지는 못했지만, 최상급 중에서도 상위에 속한 마수 수백 마리를 지배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기에 충분히 만족하던 중이었다.

쿵-

“크헉!”

그때였다.

순간 내 정신을 뒤흔들어 버리는 충격과 함께 지배의 영역이 사라졌고, 그와 동시에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대로 주저앉아 버린 건.

“대표님!”

-군주님!

“괘, 괜찮아. 우욱-”

다리만 풀린 것이 아니었다.

정신을 뒤흔들어 버린 충격 덕분에 코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졌고, 그와 동시에 목구멍에서 무언가 치밀어 오르며 강제로 입을 벌리며 튀어나왔다.

온몸을 잠식하는 엄청난 고통이 느껴졌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고통 따위가 아니었다.

왕급 마수라고?

영역을 급속도로 확장하던 도중 분명히 느낀 그것의 정체는 바로 왕급 마수였다.

마수의 한계를 넘어선 무언가.

분명 그것의 정체는 왕급의 마수였다.

믿을 수 없었다.

중심부에 가까워졌을 뿐 아직 중심부에 들어선 것은 아니었다.

불길함이 느껴지는 곳과의 거리는 아직 한참 남아 있다는 말이었는데.

어떻게 왕급 마수가 존재하는 거지?

자리를 옮겼다고 하기에는 아직 중심부에서 느껴지는 불길함이 여전했기에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설마?

하나가 아니야?

“함정!”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왕급 마수가 함정을 판다는 건 말이 안 되었지만, 분명 녀석은 내가 주변을 장악하기 전까지만 해도 힘을 숨기고 있었다.

힘을 숨기던 녀석이 확장하는 영역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힘을 드러낸 것.

-함정이라뇨?

“그게 무슨 말이에요?”

둘을 바라보는 내 눈동자는 아마 미친 듯이 떨리고 있으리라.

-무슨 일이 있으셨길래?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심호흡을 한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왕급 마수가 하나가 아닌 것 같아.”

“네?”

-그게 무슨?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일행을 보며 나는 조금 전 내가 겪었던 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그럴 리가 없습니다. 마수가 함정이라뇨? 아니, 애초에 왕급 마수가 하나가 아니라니……. 말도 안 됩니다.

“확실하지는 않아. 하지만 녀석은 분명 마수를 초월한 힘을 가지고 있었어.”

-그럴 수가…….

내 설명에 모두는 충격에 빠진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놀라고 있을 시간 없어. 만약에 놈이 정말 왕급의 마수라면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야. 미르카엘이 위험하다고. 아니, 종족의 지배자들 전부가 위험해.”

만약 지배자들이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면 이곳에 들어온 지배자들 전부가 위험에 처하게 되리라.

용족의 로드를 잡아먹은 녀석만으로도 홀로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한데 또 하나의 왕급 마수가 존재한다면 아무리 마계 최강이라 불리는 각 종족의 지배자들이라도 어쩌지 못하고 살해당하겠지.

“일단 확인을 해야겠어.”

-위, 위험합니다!

내 말이 사실이 아니길 바라면서도 그곳으로 향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의견을 피력하는 크림슨.

그는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저곳에 있는 존재가 왕급 마수라는 것을.

“괜찮아. 일단 그놈 주변에 있는 마수들 대부분을 지배한 상태니까. 혹시 모르는 상황이 오더라도 충분히 빠질 수 있을 거야.”

특이하게도 연결된 마수를 통해 녀석을 살피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니, 녀석은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는 상태였다.

-하, 하지만…….

“일단 확인해 보자고. 만약 녀석이 정말 왕급의 마수라면 이건 기회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니까.”

-그게 무슨?

“확실하지는 않지만, 녀석은 저 멀리서 불길함을 풍기는 녀석보다 많이 약한 것 같거든. 그게 맞다면 녀석을 우리가 잡아먹을 수도 있지 않겠어?”

멀뚱멀뚱 서 있는 뚱이와 졸린 눈으로 나만을 보는 니안 그리고 코넬리아의 어깨에 앉아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있는 하임과 내 어깨에 앉아 고개를 갸웃하는 미호를 이 기회에 왕급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할지도 몰랐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로드를 잡아먹었다는 녀석을 상대하는 데 더욱 도움이 되겠지.

아니, 오히려 녀석이 겁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다.

“모두 기척을 최대한 숨겨. 녀석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네.

“네!”

* * *

“이상하네? 분명 근처 어디쯤일 텐데?”

내 정신을 뒤흔들었던 존재가 있던 장소에 도착한 나와 일행은 주변을 살피며 녀석을 찾아보았지만, 그 어디서도 흔적조차 발견되지 않고 있었다.

“도망간 게 아닐까요?”

-그렇진 않을 것이오. 왕급 마수가 도망을 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너희들은 뭔가 본 거 없어?”

내 지배에 들어온 녀석들에게 물었지만, 녀석들은 아는 것이 없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음- 이상하단 말이야? 분명 여기 어디쯤이 확실한데? 다시 확인을 해봐야 하나?”

-왕급의 마수가 기운을 숨길 수 있다는 건 조금 이상하긴 합니다.

“그러니까. 도대체 뭐지? 내가 착각을 한 건가? 아닌데? 착각이라면 내가 받은 충격은 말이 되질 않는데? 안 되겠다. 다시 확인해 봐야겠어.”

말을 끝냄과 동시에 주변에 지배의 마력을 퍼트린 순간이었다.

“어? X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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