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9화 (179/214)

-또 한 녀석이 도착한 모양이군.

길을 뚫던 지천사들을 지켜보던 미르카엘이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누굴까요?

우피엘.

마족에게 수호기사단이 있다면 천족에게는 천계를 수호하는 빛의 기사단이 존재했다.

조금 전 입을 연 자가 바로 빛의 기사단의 단장인 우피엘이었다.

-그놈이겠지. 무례하고 난잡한 녀석.

-대공 말이군요.

-그래. 내가 연 길은 맘에 들지 않는 모양인지 다른 방향에서 들어온 모양이야. 역시나 그놈답군.

멀리서 힘과 힘이 부딪히는 파동이 미약하게나마 전해지고 있었다.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는 사념들 때문에 느낄 수 있는 범위가 급격히 좁아지긴 했지만, 워낙 강한 힘이었기에 이곳까지도 힘의 잔재가 흘러들고 있었다.

-그나저나 도대체 무엇이길래 대공이 힘을 사용한 걸까요?

-아직도 놈을 모르는 것이냐? 놈은 자신이 도착했다는 것을 나에게 알리고 있는 거다.

미르카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우피엘은 이어서 입을 열었다.

-마족답군요.

-그렇지.

-그런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어쩔 수 없지 않느냐? 만약 예상이 틀리지 않는다면 천계 역사상 가장 큰 위험이 찾아올 수도 있다.

-다른 왕들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실 수도 있지 않았습니까?

우피엘의 말에 미르카엘이 코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그놈들이 언제 도착할 줄 알고? 시기를 놓쳤다간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걸 상기하거라.

-하긴 그렇긴 하겠군요.

지금 이곳으로 향하고 있는 왕들은 수왕과 하이엘프 마지막으로 대공이 있었다.

미르카엘과 우피엘은 대공이 이미 도착했다고 알고 있었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멀리서 느껴지던 힘의 파동은 대공이 아닌 선우 일행과 또 다른 왕급 마수의 전투로 인해 발생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여간 게으른 것들.

-저희가 파악한 것들을 알렸다면 그들이 지금처럼 느긋하게 움직이지는 않았을 텐데요? 어찌 알리지 않으신 겁니까?

-그 말을 그놈들이 믿었겠느냐? 헛소리라며 비웃기나 했겠지.

-믿지 않았을 거란 말씀입니까?

-놈들을 잘 알지 않느냐? 오만하기가 하늘을 찌르는 것들. 다른 자들은 나에게 오만하다 하지만 가장 오만한 것들은 바로 수왕과 하이엘프가 아니더냐.

-그렇긴 하지만, 그들 역시도 저희와 상황이 다르지 않을 텐데요.

-그렇지. 하지만 놈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알지 못하고 있다. 설마 예상이나 할 수 있겠느냐? 그분들 전부가 자리를 비우셨다는 것을.

지금 마계는 역사상 가장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군주들 모두가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자리를 비운 이유에 대해선 그 역시도 모르고 있었지만, 그들 전부가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을 천족과 용족은 알고 있었다.

다른 종족의 경우 교류가 거의 없는 편이었지만, 용족과 천족은 달랐다.

로드와 미르카엘은 자주 만나 현재 상황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에 지금 모든 종족의 군주들이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른 종족의 경우 자신들의 군주들만이 자리를 비웠다고 알고 있었지만, 이는 잘못된 이야기였다.

가장 먼저 사라진 존재는 지배의 군주였지만, 그 뒤를 이어 군주들이 하나둘 자리를 비우기 시작했고, 결국 모든 군주가 마계에서 자취를 감춰버린 것이었다.

-어찌하여 그분들 전부가 사라지셨는지 아직도 그 이유를 찾아내지 못하셨습니까?

-그렇다. 왜 그분들이 갑자기 사라지셨는지 어디로 사라지신 건지 그 무엇도 알아내지 못한 상태다.

-큰일이군요. 정말 이 사태가 저희의 예상대로라면 그분들 없이 어찌 이겨내야 할지…….

-이 모든 것이 그분들께서 내리는 시련이다. 어떻게든 이겨내야 할 것이다.

굳건한 표정을 짓고 있는 미르카엘이었지만, 그의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그 역시도 지금 상황이 참담하긴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 * *

지금껏 녀석을 찾지 못한 이유.

그것은 녀석이 사념 덩어리에 숨어 자신의 기운을 감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행형 마수.

“피해!”

내가 자신의 존재를 눈치챘다는 것을 파악한 녀석은 거대한 입을 벌리며 엄청난 파괴력이 담긴 마력 탄을 발사했고, 그에 급히 피하라 말하며 자리를 벗어나려던 찰나 뚱이가 앞으로 나섰다.

쿠과과과광-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강대한 마력과 뚱이가 충돌하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는 순간 나는 마수들에게 재빨리 지시를 내렸다.

일행의 앞을 막으라고.

거대한 덩치로 나의 앞을 가로막는 마수들을 보며 살짝 안심하려던 찰나였다.

마수들이 폭발의 여파만으로도 이리저리 튕겨 나가기 시작한 것은.

“뚱이야!”

그에 뚱이가 걱정되어 급히 소리친 나는 다행히 무사해 보이는 뚱이의 뒷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멀쩡한 것은 뒷모습뿐이었다.

최상급 마수 중에서도 최상위에 올라선 뚱이가 단 한 번의 공격만으로 피투성이가 되어 그대로 쓰러지는 모습이 시야에 담긴 것.

“미호야!”

내가 소리침과 동시에 미호의 현실 조작 능력이 주변을 감싸며 결계를 형성했고, 곧바로 뚱이의 상처를 치유함과 동시에 왕급 마수를 향해 새하얗게 빛나는 불덩이들을 쏘아 보냈다.

그와 동시에 왕급 마수를 중심으로 크림슨과 라구스, 루시안, 코넬리아가 하임이 만들어준 보랏빛의 아다만티움으로 된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한 채로 뛰어올랐다.

펑- 퍼펑-

미호의 공격은 황당하게도 녀석의 가벼운 날갯짓에 소멸되었지만, 아직 크림슨들이 남아 있었다.

순식간에 녀석에게 근접한 크림슨들은 전력을 다해 녀석을 향해 들고 있던 검으로 찔러 들어갔고, 이어서 녀석의 몸을 꿰뚫어 버리는 것처럼 보였다.

-피해라!

잔상이었다.

엄청난 속도로 비행을 하는 녀석의 깃털조차 스치지 못한 크림슨이 급히 라구스들을 보며 외쳤고, 그에 라구스들은 각각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며 녀석의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코넬리아를 향해 빠르게 날아가는 녀석을 발견하고는 급히 코넬리아를 돕기 위해 방향을 틀었다.

녀석이 자신을 공격하려 한다는 것을 눈치챈 코낼리아가 빠르게 이동하며 녀석에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녀석의 속도는 코넬리아의 예상을 한참 웃돌았다.

코넬리아가 달리는 속도도 엄청났지만, 녀석에 비할 바는 못 되었던 것.

그에 코넬리아가 이리저리 방향을 틀어도 봤지만, 소용없는 일이었고, 결국 코넬리아의 등 뒤까지 따라붙은 녀석이 또다시 거대한 입을 벌리며 마력 탄을 쏘아 보내려던 순간.

“뀨!”

콰앙!

하임이 만들어 준 코넬리아의 플레이트아머가 코넬리아의 몸에서 분리되며 녀석이 벌린 아가리에 처박혔다.

그에 잠시 녀석의 움직임이 멈추는 듯했지만, 아다만티움을 그대로 씹어 부수며 포효를 터트리는 녀석.

“키악!”

전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의 거대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하는 왕급 마수.

마치 지금까지는 장난이었다는 듯 거대한 살의를 뿜어내며 하임을 노려보던 녀석이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뀨!”

깜짝 놀란 하임이 그대로 땅속으로 숨어드는 순간.

콰앙-

대포가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녀석이 사라진 자리로부터 거센 폭풍이 발생하며 주변을 초토화하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 폭풍에 실린 녀석의 마력이 주변의 모든 것들을 날려버리기 시작했다.

땅을 뒤집어 버렸을 뿐만 아니라 수십 미터가 넘는 덩치를 가진 최상급 마수들조차 한순간에 날려 버릴 정도로 거센 폭풍이 휘몰아쳤다.

-피하십시오!

순간 크림슨의 외침이 들려왔고, 그와 동시에 머리 위쪽에서 강한 힘이 담긴 무언가가 빠르게 쏘아지며 주변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는 것을 확인한 나는 급히 자리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겨우 깃털 따위가 이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

팔뚝 정도의 길이를 가진 검은빛의 얇은 깃털이었지만, 그 파괴력은 마치 운석이 떨어지는 듯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갇혀 버렸습니다.

“뭐?”

크림슨이 급히 나에게 다가오며 의념을 보냈는데,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거대한 태풍.

우리 일행 전부는 거대한 태풍의 눈 속에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못 뚫어?”

-태풍을 유지하는 마력의 양으로 봐서는 저의 힘으로도 힘들 것 같습니다.

바람으로 이루어진 태풍이 아니었다.

마력의 폭풍.

바람이 아닌 마력만으로 이루어진 태풍 속에 갇혀버린 것이었다.

“미호, 너는?”

“끼웅.”

“공간 이동이 안 된다고? 허-”

어이가 없다 못해 황당할 지경이었다.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방식의 공간 이동조차 차단해 버린다는 것은 지금 이곳에 있는 누구도 저 태풍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저놈을 처리하기 전까지는.

“근데 저놈 왜 저렇게 바라만 보고 있는 거야?”

높은 허공에 떠서 태풍의 중앙에 위치한 녀석은 이쪽을 노려보기만 할 뿐 더는 공격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걸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뭔가를 신경 쓰고 있는 건 틀림없습니다.

이쪽을 노려보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녀석의 열두 개의 눈 중 단 두 개일 뿐이었다.

나머지 열 개의 눈은 우리 일행이 아닌 다른 방향을 주시하고 있었다.

‘대표님! 죄송해요. 실패했어요.’

“응?”

순간 머리를 울리는 지안의 목소리.

‘무슨 말이야?’

‘녀석이 잠깐 멈칫했을 때 저격을 시도했는데 녀석이 피해버렸어요.’

‘뭐? 그럼 그게…….’

하임을 공격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지안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움직인 것이었다고?

‘어쩌죠? 이대로 다시 녀석을 노리다가는 대표님이 위험해질 거예요.’

설마? 지금 놈이 만들어낸 이 태풍이 우리를 어떻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질을 잡고 있는 거야?

마수가 이런 생각을 했다고?

-왜 그러십니까?

“저놈 저거 지금 우리를 인질로 잡고 있는 거야.”

-네? 인질이라뇨?

“지안의 공격이 무서워서 우릴 이 태풍 안에 가둬둔 거라고. 공격하지 못하게 하려고.”

-마수가 말입니까?

“그래. 놈은 지금 지안의 공격이 다시 날아올까 봐 겁에 질려있는 상태야.”

-마수가 두려워하다니? 어이가 없군요.

“우리에겐 다행인 거지. 물론 지안의 공격이 성공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어? 잠깐만?”

지안의 공격은 그럼 어디로 사라진 거지?

녀석에게 저격이 명중했으면 이 주변 정도가 아니라 최소 마수들의 영역 3분의 1은 날아갔으리라.

‘너 설마 우리까지 함께 날려 버리려고 한 거야?’

‘아니에요. 이번 공격은 녀석을 멀리 떨어뜨리려고 한 거라고요. 큰 폭발이 없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그러네?

만약 지안의 그 공격이 이곳에 떨어졌으면 지금 내가 무사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았다.

‘그럼 저놈은 왜 저러는 건데?’

‘그걸 저도 모르겠어요. 놈이 처음 발사했던 마력 탄 정도의 힘만 실었을 뿐이거든요?’

설마 저놈?

왕급 마수치고는 맷집이 엄청 약한 건가?

이거 생각보다 쉽게 처리할 수도 있겠는데?

“크림슨. 저놈 공격력과는 달리 방어력은 형편없는 수준인 것 같아. 지안의 말에 따르면 그리 강한 수준의 공격이 아니었데.”

-그 말씀은 어떻게든 공격을 성공시키기만 한다면 처리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래. 바로 그거지. 하임의 공격에 화가 잔뜩 났었던 이유가 있었던 거지.”

-기회군요.

“그렇지.”

지안의 공격에 겁을 먹은 녀석.

놈은 분명 우리보다 지안을 더욱 신경 쓰고 있었다.

언제 공격이 날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이쪽의 공격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리라.

‘지안아. 큰 거 한 방 날려줄래?’

‘네? 큰 거라뇨?’

‘녀석이 더욱 겁을 먹도록 시위용으로 한 방 멀리 쏴달라는 말이야.’

‘아! 네!’

잠시 후.

쿠와앙-

태풍의 위쪽을 뻥 뚫어버리며 지안의 화살이 날아갔고, 그를 확인한 녀석이 흠칫하더니 고개를 아예 지안 쪽으로 돌려버렸다.

“슬슬 시작하자. 아마 저 녀석은 이제 지안이 신경 쓰여서 이쪽의 공격을 무시할 가능성이 클 테니까.”

-알겠습니다.

“쿠워!”

“뀨!”

“끼웅!”

“키릭!”

응? 니안이도 안에 있었네? 왜 몰랐지?

뒤쪽에서 들리는 니안의 대답에 고개를 돌리자 니안이 눈을 빛내며 놈을 보곤 입맛을 다시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시작해!”

내 외침과 함께 기사단과 뚱이가 녀석을 향해 뛰어올랐고, 미호가 하얗게 불타오르는 불덩이 수백 개를 만들어내 녀석을 향해 쏘아 보내는 장면이 시야에 잡히며 이어서 뒤쪽에 자리하던 니안이 입을 쩌억 벌리곤 주변의 마나를 빨아드리며 브레스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는 뭐하지?

이제 나의 주공격 수단이 되어버린 지배의 영역은 녀석에게 아무런 피해도 입힐 수 없었다.

내 의지를 순식간에 흩어버리기 때문에 오히려 나만 타격을 입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찰싹- 찰싹-

“응? 너 뭐하냐?”

하임은 가져온 아다만티움을 전부 꺼내서는 손바닥을 이용해 아다만티움을 찰싹찰싹 때리기 시작했다.

“뀨!”

내 물음에 하임은 밝게 웃으며 신나게 아다만티움을 두드리고 있었는데,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특이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임의 손바닥이 닿은 자리가 조금씩 작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압축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집채만 했던 아다만티움이 축구공 정도가 되었고, 이어서 점점 더 작아지더니 야구공 정도의 크기가 되었을 무렵 하임이 아다만티움을 손에 쥐고는 나에게 다가왔다.

-던져줘.

“그 무거운 걸 지금 나한테 던져달라고 한 거야?”

-안 무거워. 던져줘.

하임의 대답에 야구공 정도의 크기가 되어버린 아다만티움을 받아든 나는 생각했던 것처럼 무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00kg 정도 되려나?

그나저나 이걸로 뭘 어떻게 하려고 던져달라고 하는 거야?

의문이 들었지만, 하임의 재촉에 아다만티움을 쥔 손과 전신에 힘을 주기 시작한 나는 높은 허공에서 지안이 있는 방향을 주시하는 녀석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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