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1화 (181/214)

“그 잠깐 사이에 도대체 얼마나 깊숙이 들어간 거야?”

최상급 마수들을 지배하며 미르카엘을 찾아 이동하던 우리 일행은 어느새 중심부라 할 수 있는 곳에 도달한 상태였다.

앞을 가득 채우던 마수들은 중심부에 들어선 순간 사라져 버렸는데.

그럼에도 천족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공간을 가득 메우는 농밀한 사념 때문이었다.

사념의 영향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감각이 시각뿐인 암담한 상황이 찾아왔다.

아니, 시야 역시도 붉은 안개가 중심부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었기에 시야 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고작해야 100m 정도?

이 상황에서 천족을 찾을 방법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에 우리가 택할 방법은 중심부를 향하는 것밖에 없었다.

용족 역시 천족과 함께 움직일 텐데도 눈에 띄지 않는 것을 보면 분명 용언인가 뭔가를 사용해 크기를 줄인 모양이었다.

“가끔 보이는 녀석들이 저희를 눈치채지 못한다는 것만도 다행이죠.”

“그건 그렇긴 하지만, 그러다가 미르카엘보다 우리가 먼저 그놈에게 도착하면 어쩌냐고.”

마수의 한계를 벗어난 미호의 능력 덕분에 우리 일행은 가끔 마주치는 마수들의 이목을 피하며 이동할 수 있었고, 그 덕에 바로 옆을 스쳐 지나가도 마수들은 우리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게 바로 문제였다.

이대로 조금의 지체도 없이 이동하다가는 미르카엘보다 먼저 그놈에게 도착할지도 모른다는 것.

-이곳에 존재하는 마수들의 강함을 봐서는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심부로 들어온 후 마수들의 수가 확 줄어버리긴 했지만, 반대로 마수들의 강함이 전과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 변해 버렸다.

보이는 마수들 대부분이 최상위의 끝자락에 속해 있었고, 그중 몇몇은 왕급의 경계에 발을 걸치고 있을 정도.

계기만 있다면 순식간에 왕급 마수가 될 수 있는 존재들.

그런 존재들이 드문드문 보인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무런 방해도 없이 이동하는 우리와 달리 그런 존재들을 상대하며 나아가야 하는 천족의 속도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

물론 미르카엘이 직접 나선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그가 나설 일은 없을 거다.

왕급 마수와의 전투를 대비해 힘을 최대한 비축하고 있을 테니까.

“차라리 그냥 여기서 기다려볼까?”

-무엇을 말입니까?

“아무리 사념의 농도가 진하다고 해도 미르카엘과 왕급 마수가 부딪히면 그 여파가 여기까지 미칠 거 아니야? 그걸 기다리는 거지.”

-괜찮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지?”

“근데 그러다 미르카엘이란 천족이 당하면 어떻게 해요?”

이게 문제였다.

중심부에 들어온 후 알게 된 사실.

바로 조금 전 상대했던 왕급 마수와 저 안쪽에 도사리고 있는 왕급 마수의 차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대단하다는 것을.

아니, 조금 전 상대했던 녀석이 왕급 마수가 맞는 건지 의심이 들 정도로 둘의 차이는 엄청난 수준이었다.

짙은 사념을 뚫고 여기까지 전해져올 정도로 강한 기운.

처음 이 기운을 느꼈을 때는 혹시 이것이 왕급 마수가 아니라 바하무트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기운이 저 안쪽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절대 우리 일행만으로는 처리할 수 없을 것 같았기에 방법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는데, 그것은 바로 미르카엘과 녀석이 충돌한 후 미르카엘이 빠져나가려는 순간을 노리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르카엘은 녀석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때 느꼈던 미르카엘의 힘이 10분의 1 정도였다고 해도 미르카엘은 녀석을 감당할 수 없다.

왕급 마수는 그만큼 엄청난 힘을 품고 있었으니까.

거기다, 이것이 전부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게 문젠데…… 방법이 없단 말이지? 어떻게 천족을 찾을 방법이 없을까?”

“대표님이 지금까지 지배한 마수들을 전부 투입해보는 건 어떨까요?”

“밖에 있는 놈들?”

“네.”

중심부로 향하며 내가 지배한 마수들의 수는 1만을 가볍게 넘어 2만에 다다를 정도로 늘어났는데, 그들을 투입한다면 찾을 확률이 높아지는 건 당연했지만, 문제는 생각보다 중심부가 넓다는 것이었다.

여의도의 수십 배는 되어 보이는 넓은 영역.

거기다, 주변을 배회하는 최상위권의 마수들.

“순식간에 학살당하지 않을까?”

이곳이 밖과 다르게 텅텅 빈 이유는 최상위권의 마수들이 자신보다 약한 마수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는 것 때문이었다.

왕급 마수가 되기 위해서인지 보이는 모든 존재를 잡아먹으려 하는 녀석들.

“따로따로 다니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몰려다니면 그래도 버틸 수 있지 않을까요? 걔네 중에도 강한 놈들 있잖아요.”

“그래. 그렇게라도 해야겠다.”

결정을 내린 나는 놈들에게 안쪽으로 들어오란 지시를 내렸고, 그에 마수들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미호를 보내 녀석들을 데려오라 시킨 후 조금 시간이 흐르자 순식간에 주변이 난장판이 되어버리며 거대한 마수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고, 점차 그 수를 불려가기 시작했다.

“너희들은 주변에 다가오는 것들 있으면 일단 처리 좀 하고 있어.”

1만을 가볍게 넘어서는 엄청난 수의 마수들 때문에 주변을 배회하던 마수들이 이곳으로 몰릴 걸 예상한 나는 일행에게 놈들을 처리하란 지시를 내린 후 마수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한 조에 최상급 마수 10마리를 포함 시킨 후 천여 마리의 상급 이하의 마수들을 배정한 나는 그렇게 총 20개의 조를 만들었다.

“너희들은 지금부터 이곳을 돌아다니면서 천족을 찾는 거야. 천족 알지? 흰색 날개를 가진 작은 녀석들.”

“쿠워어어-”

수만 마리의 마수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하자 순식간에 엄청난 소음이 발생했고, 그에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조용히 해!”

내 외침에 적막이 흐르기 시작했고, 그에 고개를 끄덕인 나는 녀석들을 퍼트리기 시작했다.

“가! 가서 찾아!”

내 말이 끝나는 순간 마수들이 방향을 정해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어서 땅을 울리며 강한 진동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야! 니들, 저 안쪽에는 절대 가지마! 알았어?”

중앙을 가리키며 소리치자 나를 돌아본 마수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 * *

순식간에 썰려 나가네?

조마다 최상급 마수를 10마리나 배치했음에도 다른 마수와 마주치는 순간 순식간에 썰려 나가는 모습에 황당하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물론 최상급 중에서도 약한 편에 속해있는 녀석들이 포진한 조이긴 했지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같은 최상급인데 좀 버텨주면 안 되겠니?

“벌써 3개 조가 사라졌어. 이제 겨우 30분이 지났을 뿐인데 말이야.”

“아까우세요?”

“그럼 안 아깝겠냐? 어디서 저런 것들을 구해? 마계 최대의 마수 서식지라 불리는 그곳에서도 최상급 보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그런 놈들이 벌써 30이 날아갔다고.”

물론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강한 녀석들로 편성된 조는 반대로 녀석들을 썰어버리기도 했으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강한 놈들만 불러들일 걸 그랬나?

-예상했던 것보다 마수들이 너무 강한 것 같습니다.

“맞아. 분명 내가 지배한 녀석들 사이에도 녀석들과 급이 비슷한 녀석들이 있는데도 홀로 상대할 수 없는 걸 보면 뭔가 있긴 있는 것 같아.”

중심부에 있는 마수들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마수의 한계를 완전히 초월한 상태는 아니었다.

당연히 중심부가 아닌 그 근처에 있는 마수 중에도 놈들과 비슷한 수준의 마수들이 존재했고, 그런 존재들을 지배한 나였지만, 이상하게도 비슷한 수준이라 생각했던 녀석들을 홀로 상대하지 못하고 있었다.

거기다, 이곳에 있는 녀석들에겐 이상하게도 내 지배가 통하지 않았다.

처음 이곳에서 마주친 마수를 지배하려던 나는 지배 자체가 통하지 않는 이상한 상황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녀석들을 피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분명 같은 힘을 지니고 있음에도 내 마수들은 녀석들을 홀로 상대하지 못했고, 내 지배 역시도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 저 붉은 안개가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더 큰 충격을 받고 더 작은 충격을 주는 이상한 현상.

-녀석들의 힘이 사념에 의해 증폭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 더 큰 문제 아니야?”

-계획을 수정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만약 정말 사념에 의해 힘이 증폭되는 것이 맞다면 미르카엘은 예상했던 시간의 반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릴 가능성이 큽니다.

“미르카엘을 포기하자는 거야?”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밖에 없습니다. 군주님의 마수들이 왕급으로 완전하게 진화를 한 후에 녀석을 처리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나도 크림슨의 말에 동의하고 싶었다.

하지만, 중심부에 들어온 후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나를 자극하는 감정에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두려움이 점점 강해지고 있었기 때문인데, 녀석에게 더는 시간을 주면 안 된다는 본능의 경고가 계속해서 나를 자극하고 있었다.

“나도 그렇고 싶어. 하지만, 이상하게 본능이 자꾸 경고를 보낸단 말이지. 더는 시간을 주면 안 된다고.”

-군주님의 본능이 말입니까?

“어. 이상하지?”

내가 생각해도 조금 이상한 일이었기에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는데, 크림슨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아닙니다. 만약 군주님께서 느끼신 것이 정말이라면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갑자기 왜 그래?”

다급한 표정으로 나를 재촉하는 크림슨.

-놈에게 시간을 주면 안 된다는 것은 놈이 아직 완전체가 아니라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도 이런 엄청난 힘을 발산하는데 완전체가 된다면 얼마나 더 강해질까요? 지금이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릅니다.

“아! 그럼!”

-네. 어쩐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분명 저희가 중심부에 들어온 것을 녀석이라면 분명 느꼈을 텐데도 어째서 움직이지 않는지 의문이었는데, 놈이 아직 완전체가 되지 않았다면 설명이 되지 않겠습니까?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미르카엘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왕급 마수와 부딪히는 건 너무 위험했다.

아무리 봐도 우리의 힘으로는 시간을 끄는 것이 전부일 듯 보였고, 지안의 공격 역시도 녀석에게 정확하게 명중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을 테니까.

저런 강함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설마 팔 하나 날아간다고 타격이나 입겠는가?

-저희가 도착할 때쯤이면 그들 역시 근처에 있겠죠. 충돌이 시작되면 분명 오래지 않아 도착할 것입니다.

“그래. 뭐가 되든 일단 움직여보자. 안 되면 지금껏 지배한 마수들 다 던져버려서라도 도망갈 시간은 벌면 될 테니까.”

놈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수만 마리의 마수 뒤에 숨어 도망가는 것은 막을 수 없으리라.

* * *

이동하던 우리의 뒤로 흩어졌던 마수들이 점차 합류하기 시작했다.

천여 마리였던 수가 순식간에 5천, 1만으로 불어나며 결국에는 2만에 다다르는 엄청난 수로 불어났는데, 그럼에도 나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2만이 넘는 마수라고 해도 녀석의 앞을 막아서는 순간 그대로 쓸려나가 버릴 테니까.

아마 1분 정도 버티면 오래 버티는 수준이겠지.

-곧 도착합니다.

“미호! 너는 마수들을 도와. 뒤가 뚫리면 정말 위험해질 수 있으니까.”

“끼웅!”

“지안이와 펜릴은 최대한 미호의 곁에 붙어서 존재감을 숨겨. 결정적인 순간 녀석을 저격할 수 있도록.”

“네!”

“나머지는 모두 알지?”

-네!

뚱이와 니안, 하임, 그리고 크림슨들이 할 일은 최대한 녀석을 막으며 이목을 집중시키는 일이었다.

지안과 펜릴의 연계 공격을 놈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말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할 일은 점점 더 진해지는 바하무트의 사념을 지배해 녀석에게 더는 힘이 되지 못하도록 막는 것.

녀석을 약화시켜 크림슨들이 버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내가 할 일이었다.

“그나저나 진짜 무시무시 하구만.”

-우리가 도움이 되려나 모르겠네.

-차라리 미호가 이곳을 맡고 저희가 마수들을 상대하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요?

-맞아.

순서대로 루시안과 라구스, 코넬리아가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할 일은 나를 보호하는 것이라니까? 니들이 싸우는 거 아니야.”

이 셋이 할 일은 바로 나를 지키는 일이었다.

혹시 모르는 충격파에 내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말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그만하지 못하겠느냐! 수호기사단이 어찌 그딴 소리를 지껄인단 말이냐!

-아니, 아버지! 그게 더 효율이 높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잖아요.

-그만!

그들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지금으로서는 그들 셋보다 미호 하나가 더욱 도움이 될 테니까.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잘못했다가는 이들 셋을 전부 잃을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나와 함께 가장 약한 축에 드는 셋이었기에 이들은 나와 가장 가까이 붙어 있을 필요가 있었다.

상황이 악화되어 도주하는 상황이 오게 되었을 때 이들이 마수들을 상대하고 있다면 셋을 챙길 시간이 없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특이하게도 미호의 분신들은 중심부에서는 공간이동을 사용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이들을 나의 곁에 붙여놓은 것이었고, 셋 역시 겁이 나서라기보다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이러는 것이었다.

“모두 내 말 잘 들어. 난 이곳에서 너희들을 잃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어. 그러니 절대 무리하지 마. 너희들의 목숨으로 저놈을 처리했다고 내가 좋아할 일은 없을 테니까! 알았어?”

-충!

“네!”

모두의 대답을 들은 나는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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