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구구구구-
-이건?
계속해서 앞을 막아서는 마수들을 뚫으며 전진하던 천족과 용족은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거대한 힘의 충돌을 느끼고 정지했다.
-나보다 먼저 도착한 녀석이 있다고?
-아무래도 대공 일행인 듯싶습니다.
미르카엘의 말에 우피엘이 대답했지만, 미르카엘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 힘은 마족의 힘이 아니야.
-네? 그게 무슨?
-물론 마족의 힘도 느껴져. 하지만, 가장 강력하다고 할 수 있는 기운은 마수의 기운이다.
미르카엘의 말에 우피엘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마수와 마족의 전투에서 마족의 기운과 마수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그중 가장 강력한 기운은 당연히 왕급의 마수일 테니까.
-그것이 아니다. 마수와 마수가 충돌하고 있다는 말이다.
-네? 그 말씀은 분열이 일어났다는?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다. 이거 이대로 있을 수 없겠어. 먼저 가겠다. 아이들을 부탁한다.
-미, 미르카엘 님!
순간 눈앞에서 사라지는 미르카엘을 우피엘이 급히 불렀지만, 이미 미르카엘은 사라진 후였다.
-우리도 가겠다! 아이들을 부탁한다!
-아니! 잠깐만!
미르카엘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던 용족 중 7인이 앞으로 나서며 빠르게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
로드를 제외하곤 용족 중에서 가장 강하다는 장로들이었다.
-이, 이런! 모두 전력을 개방한다!
-충!
-가자!
미르카엘을 따라 움직이고 싶었지만, 그가 남긴 말을 지키기 위해 멈출 수밖에 없었던 우피엘이 강한 어조로 천족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너희들도 힘 좀 보태!
-알았다!
천족을 비롯한 각종 종족으로 변신한 상태였던 용족들은 대답과 함께 예의 그 거대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 *
-정말 이상하군. 어째서 마수와 마수가 부딪히고 있는 거지?
미르카엘은 눈앞을 가득 메우는 마수들을 보며 의문을 드러내고 있었다.
충격파가 발생하는 곳으로 빠르게 이동하던 그는 마치 길을 막고 있는 듯한 엄청난 수의 마수들을 발견했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왕급 마수의 명령을 따르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으니까.
다만 이상한 것은 길을 막고 있는 마수들과 여기저기서 몰려들기 시작하는 마수들의 충돌이었다.
-마치 마수가 누군가의 명령에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군.
-왔나?
7인의 장로들이 도착해 미르카엘에게 말을 걸었고, 그와 동시에 미르카엘의 고개가 그들을 향해 돌아갔다.
-믿기지 않는군.
-어찌 마수들이 저런 협동심을 발휘할 수 있지?
그들은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수십 마리의 마수들이 단 한 마리의 마수를 상대로 목숨을 걸고 물고 늘어지는 모습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썰려 나가면서도 어떻게든 묶어 놓으려는 모습.
그들을 더욱 어이없게 하는 것은 그런 현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콰앙-
그때였다.
갑작스럽게 마수가 폭발한 것은.
아무런 전조도 어떤 공격도 없었음에도 수십 마리의 마수들에게 묶여 있던 마수들이 갑작스럽게 폭발하며 살점과 피가 허공으로 비산한 후, 후드득 떨어지는 모습을 목격한 그들은 충격에 빠진 표정을 지으며 강대한 마력이 느껴진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건…….
-이동 마수가 아닌가? 어찌 이동 마수가 저런 힘을?
거대한 마수의 머리 위에서 강대한 마력을 뿜어내는 존재.
바로 미호였다.
-저런 작은 마수가 왕급의 힘을 가지고 있다니?
그들의 시야에 잡힌 작은 마수는 그들이 알던 이동 마수와 다른 점이 없어 보였지만, 단 하나 풍성한 꼬리의 수가 그들이 알던 이동형 마수와 달랐다.
1개에서 2개 많아야 3개 정도인 꼬리만을 보아오던 그들이었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이동형 마수의 꼬리의 수는 9개.
오랜 세월을 살아온 미르카엘조차 9개의 꼬리는커녕 6개 이상의 꼬리를 가진 이동 마수를 목격한 적은 없었다.
-설마 왕급이란 말인가?
장로들 중 하나가 중얼거리자 미르카엘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 아직 왕급은 아니다. 하지만, 곧 있으면 왕급이 될지도 모르겠군.
-그게 무슨 말인가? 곧 있으면 이라니?
-진화 중인 것으로 보인다.
미르카엘의 이어지는 말에 모든 장로들이 기함을 토했고, 그중 하나가 급히 말을 꺼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한단 말인가? 우리는 저 녀석을 막지 못해. 하나라면 어떻게든 막아보겠지만, 수많은 마수들과 함께 있다면 우리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그건 걱정할 필요가 없을 듯하군.
-뭐라?
미르카엘의 대답에 의문을 드러낸 장로에게 그가 손을 뻗으며 한 방향을 가리켰다.
-저곳을 보아라.
-저, 저것은?
미르카엘이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장로들은 황당한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앞을 꽉 막고 있던 마수들이 홍해가 갈라지듯 길을 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그들에게 어서 지나가라는 듯 말이다.
-아무래도 저 녀석은 우리의 적이 아닌 모양이야.
-하, 함정일지도 모른다.
-아니라는 것을 너희들도 잘 알 텐데?
-그, 그건.
그랬다.
그들을 보는 미호의 눈동자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살기라곤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 미호의 눈동자와 마치 그들을 반기는 듯한 미호의 태도 때문이었다.
거기다, 지금껏 장로들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미호는 그들이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순간 곧장 그들의 기운을 감춰 주었고, 심지어 모습조차도 숨겨주고 있었다.
그에 미르카엘은 미호가 자신의 적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곳에 도착한 순간 깨달을 수 있었고, 그에 기다린 것이었다.
미호가 길을 열어주기를 말이다.
-가지. 저 녀석이 우리를 재촉하는 것을 봐서는 아무래도 안쪽 상황이 심상치 않은 모양이야. 먼저 들어간 존재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미르카엘이 움직이자 장로들 역시 그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어서 그들은 상황도 잊어버린 채 신기한 표정을 지으며 주변의 마수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에게 그 어떤 적대감도 보이지 않는 마수들의 태도는 수만 년을 살아온 그들조차 단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일이었다.
그들이 지나는 순간 열렸던 길이 순식간에 닫히기 시작했다.
* * *
“자, 잡아먹혔다는 것이…….”
목적지에 도착한 나는 시야를 가득 채우는 거대한 동체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념에 잠식되었다는 말이었어?”
검붉은 비늘을 가진 엄청난 크기.
그건 아무리 봐도 드래곤이였다.
-이럴 수가! 용족의 로드가 사념에 잠식되다니!
크림슨 역시 놀란 모양인지 강하게 의념을 발산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저놈, 사념을 빨아들이고 있는 건가?”
주변을 가득 메운 사념이 빠른 속도로 녀석에게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벌어진 거대한 입을 통해 소용돌이치듯 빨려 들어가는 사념 덩어리들을 보자 본능이 경고를 보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녀석은 지금 새로운 존재가 되려 하고 있었다.
마수 따위가 아닌 더욱 고차원적인 무언가로 새롭게 태어나려 하고 있었다.
-고, 공격해!
크림슨 역시 눈치챘는지 모두를 보며 급하게 공격 신호를 보내며 녀석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고, 그에 모두가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
크림슨뿐만 아니라 모두가 같은 것을 느낀 모양이었다.
녀석의 힘을 파악하기 위한 전초전 따위는 없었다.
모두가 최대한의 마력을 끌어올린 채 녀석을 향해 가장 강한 공격을 때려 박으려 했는데.
“뀨!”
시작은 하임이었다.
이제는 아다만티움이 없어도 동일한 수준의 강화가 가능해진 하임이 땅을 들어 올려 거대한 주먹의 형상으로 변형시킴과 동시에 녀석을 내리쳤고, 그 뒤를 따라 크림슨의 검에 맺힌 거대한 기운이 녀석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하지만.
파사사사삭.
쾅-
하임이 만들어낸 거대한 주먹이 녀석에게 닿기도 전에 반투명한 막에 부딪히며 소멸했고, 크림슨이 쏘아낸 기운 역시 녀석에게 닿기도 전에 그대로 허공에서 터져 버렸다.
뚱이와 니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력으로 전신을 감싼 채로 녀석을 향해 돌진하던 뚱이가 보이지 않는 벽에 막혀 멈춰 버렸고, 니안의 브레스 역시도 크림슨의 공격과 다르지 않게 허공에서 폭발하며 녀석에게 조금의 피해도 주지 못한 것.
“이런 미친!”
그때였다.
꽝-
지안의 공격이 시작된 것은.
음속을 돌파하며 소닉붐을 일으킨 지안의 공격이 순식간에 녀석을 감싸던 반투명한 벽과 충돌했다.
처음으로 녀석에게 타격을 주는 데 성공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지금껏 움직임이 없던 녀석의 고개가 우리 쪽을 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지금이다!
나와는 달리 크림슨은 그런 것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타격을 입힐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했는지, 크림슨은 재지 않고 그대로 녀석을 향해 뛰어들었고, 그건 다른 녀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왜 지시한 대로 하지 않은 거야!’
나는 분명 지안에게 기회가 오면 곧바로 가장 강한 공격을 날리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조금 전 지안의 공격은 그리 강한 수준의 공격이 아니었다.
물론 아무도 뚫지 못하는 녀석의 방어를 뚫었을 정도로 강한 공격이었지만, 그때의 그 공격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일 뿐이었기에 지안을 책망했는데.
‘안 돼요.’
‘뭐가?’
‘지금은 제 공격으로도 큰 타격을 입히지 못할 것 같아요.’
‘그게 무슨 말이야?’
‘잘 모르겠어요. 근데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제가 최고의 공격을 날린다고 해도 녀석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없을 것 같다고.’
‘그, 그럼 바, 방법이…….’
지안의 말을 들은 나는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녀석을 처리할 방법이 없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아뇨. 방법은 있어요. 녀석의 힘을 소모하게 만든다면 가능할 거예요.’
녀석의 힘이 너무 강해 힘을 줄여놓아야 한다는 말이었다.
지안의 공격을 막지 못할 정도로 녀석의 힘을 빼놓아야 한다는 소리였는데,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해 보면 알겠지.
결정을 내린 나는 모두에게 지시를 내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녀석의 힘을 빼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꾸워!”
“뀨!”
“키릭!”
응? 갑자기 뭐야?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최전선에 있던 크림슨과 뚱이가 대답했고, 내 옆에 있던 하임과 니안의 대답이 들려오며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했다.
쿠웅!
가장 먼저 변한 것은 크림슨이었다.
마치 현지의 마력 폭주와 비슷한 현상을 만들어내는 크림슨을 시작으로 뚱이와 하임, 니안의 마력이 순식간에 몇 배로 증폭되었고, 이어서 마력의 색 역시도 변해가기 시작했다.
지배의 마력과 비슷하게 말이다.
-촤악!
크림슨의 검이 처음으로 녀석의 비늘을 베어내며 시작을 알렸고, 이어서 녀석의 거대한 동체에 뚱이의 몸통 박치기가 작렬했다.
-투웅!
뚱이의 몸통 박치기가 작렬한 순간 뚱이를 중심으로 살이 출렁이듯 녀석의 비늘이 출렁였고, 그 영향으로 주변의 비늘이 박살 나며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어서 니안의 브레스가 작렬하며 녀석의 비늘을 순식간에 녹여버린 후 안쪽으로 파고 들어가기 시작했고, 하임이 만든 거대한 주먹이 녀석에게 작렬하며 조금이지만 녀석을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
전력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잘못 생각한 듯싶었다.
녀석의 힘을 파악하기 위해서였을 뿐 전력을 다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녀석의 크기에 비하면 아주 작은 상처일 뿐이었다.
거대한 산에 나무 몇 개 뽑은 정도의 미약한 타격.
-저, 저도!
“안돼!”
라구스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지금 상황이 분한 모양인지 자신도 함께하고 싶어 했지만, 그건 안 될 말이었다.
-하, 하지만…….
-저희도 나서겠습니다.
이어서 루시안과 코넬리아가 입을 열었지만, 난 허락할 수 없었다.
“잘 알잖아. 지금 저곳에 너희들이 들어간다면 어떻게 되는지.”
-이대로 보고만 있으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럼? 나보고 너희들이 저곳에 뛰어드는 순간 소멸하는 것을 지켜보라고?”
-그, 그건?
“내가 모를 줄 알아? 저곳에 진입하는 순간 너희들이 어떻게 되는지?”
왕급 마수에서 이제는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하려는 괴물.
놈은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육체를 움직이지 않을 뿐 녀석의 기운까지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최전방에서 격전을 치르는 크림슨과 뚱이, 그리고 그곳에 뛰어든 니안까지.
셋 모두가 엄청난 압력을 견디며 녀석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었다.
엄청난 기운이 셋을 따라다니며 발목을 붙잡았고, 잠시 발목을 붙잡힌 사이 거대한 마력이 셋을 향해 쏟아지며 계속해서 타격을 주고 있었다.
그것도 나나 라구스들은 조금도 견디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마력이 말이다.
“분하지만 나나 너희들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저들을 응원하는 것 말고는 말이야.”
-으득!
화가 나겠지.
라구스를 비롯한 루시안과 코넬리아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안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었다.
저곳에 진입한다고 해도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저곳에 퍼져 있는 거대한 마력 덩어리들의 압력에 의해 진입하는 순간 신체의 모든 구멍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며 순식간에 온몸이 터져 버릴 테니까.
그나저나 크림슨은 저걸 어떻게 견디는 거지?
분명히 말하지만, 크림슨은 이제 뚱이나 니안에 비해 마력의 양이나 육체의 강함이 많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왕급 마수의 정수를 복용함으로 인해 뚱이와 니안이 크림슨을 넘어서 버린 것.
하지만, 크림슨의 지금 모습은 둘에 비해 조금도 밀리지 않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둘을 압도할 정도로 엄청난 강함을 뽐내고 있었기에 크림슨의 지금 모습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뚱이와 니안이 한방 한방에 전력을 실어야만 겨우 타격이 가능한 녀석을 상대로 크림슨은 아주 가볍게 검을 한번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녀석의 비늘을 베어내고 있었는데, 황당하게도 뚱이와 니안뿐 아니라 하임이 입힌 상처를 전부 합해도 크림슨이 입힌 상처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응? 어딜 보는 거지?
그러던 도중 크림슨의 고개가 빠르게 한 방향을 향해 돌아갔고, 그에 내 고개 역시 그를 따라 움직였다.
“왔구나!”
드디어 기다리던 미르카엘이 도착한 것.
“라구스!”
-네!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