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3화 (183/214)

-예상이 맞았군.

미르카엘의 태연한 어조와 달리 그의 표정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멀리 보이는 거대한 동체를 보는 순간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용족의 로드.

-이럴 수가…… 정말 로드께서!

-아아!

-어찌!

장로들 역시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장로들은 더욱 절망에 차 있었다.

용족의 정신적 지주라 할 수 있는 로드가 바하무트의 사념에 잠식되었다는 것은 그들에게 커다란 절망감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응? 이건!?

하지만, 그들에게 절망할 시간은 없었다.

그들 역시도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금방 파악했기 때문이다.

바하무트의 사념에 잠식당한 로드가 지금 더욱 절망적인 존재로 재탄생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헉!

-설마!

-바하무트?

놀라기만 하는 장로들과 달리 미르카엘은 놀람과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에 정신을 차린 장로 중 하나가 다른 장로들에게 소리쳤다.

-지금 그리 놀라기만 할 땐가! 어떻게든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대로라면 그분들을 뵐 면목이 없단 말일세!

-그, 그렇지!

그에 급히 미르카엘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 장로들.

하지만, 그들은 잠시 후 이상한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다.

미르카엘이 놀란 표정으로 멈춰있는 모습과 그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건?

용족의 로드를 상대로 마족으로 보이는 자 하나와 왕급 마수로 보이는 개체 셋. 마지막으로 난쟁이로 보이는 존재가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마족과 마수가 함께 움직이다니?

-그 난쟁이족이?

그들이 놀라있던 사이 멀리서 누군가가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보랏빛의 플레이트 아머와 투구로 정체를 숨긴 존재.

바로 라구스였다.

-천족의 왕과 용족의 장로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도움을 요청한다 말한 라구스.

그에 미르카엘이 천천히 말을 꺼냈다.

-너희들은…… 누구지?

-지금 그것이 중요한가?

-나에게는 중요하다.

-대공께서 보내셨다.

라구스는 계획대로 대공을 팔았다.

자신 역시 마족이었고, 로드를 상대하는 크림슨 역시 마족이었다.

당연히 팔 수 있는 존재는 대공뿐이었다.

-저 마수들은 뭐지?

-우리들도 모른다. 그저 우리를 돕는다는 사실만 알 뿐.

-난쟁이는?

-이곳에서 만났을 뿐 정확한 것은 우리도 모른다.

빠르게 대답하는 라구스.

당연하게도 미르카엘의 의문은 풀리지 않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그 역시 더는 추궁할 수 없었다.

-일단 돕도록 하지. 하지만, 끝난 후에는 너희들의 정체를 밝혀야 할 것이다.

-도움에 감사를 표한다. 그럼 이만.

순식간에 그들에게서 멀어지는 라구스를 보며 장로들이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대공이 직접 오지 않았다면 위험한 것 아닌가?

-저자가 수호기사단의 단장이라는 자인가?

크림슨을 보며 입을 여는 장로를 보며 미르카엘이 입을 열었다.

-그가 아니다.

단장을 직접 만난 적이 있는 미르카엘이었기에 크림슨이 단장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 수 있었지만, 크림슨이 누구인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저런 존재가 어디서 튀어나왔다는 말인가?

미르카엘에게 지금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장로들은 느끼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로드가 완전체가 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것이 중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겠느냐? 나와 함께할 수 있겠느냐?

-우리로서는 저곳에 직접 들어가는 것은 무리네. 하지만 밖에서는 도움을 줄 수 있겠지.

그들 역시 저곳을 가득 메우고 있는 엄청난 마력을 느끼고 있었기에 당연히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부탁하겠다.

마지막 말을 남기고 사라진 미르카엘.

잠시 후 크림슨들과 로드의 전투가 벌어지는 허공에서 거대한 마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미르카엘이 본격적으로 전투에 참여하기 위해 본래의 힘을 드러낸 것이었다.

* * *

“이제 한숨 돌릴 정도는 되려나?”

-시간을 끌면 어쩌나 생각했는데, 다행히 그도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있던 모양입니다.

“저걸 보고도 모르면 천족의 지도자로서 자격이 없지.”

-그렇긴 하겠네요.

라구스가 돌아온 이후 잠시 대화를 나누던 나는 허공에서 점멸하는 밝은 빛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대단하긴 하네? 저 정도면 이쪽이 전부 달려들어도 힘들겠는데?”

물론 지안이와 펜릴을 뺀 이쪽의 전력을 말하는 것이었다.

-용족의 로드와 유일하게 상대가 가능한 자가 미르카엘이란 소문이 사실이었던 모양입니다.

“대공이나 다른 종족의 지도자들은?”

-쉬쉬하지만 미르카엘과 용족의 로드에 비하면 한 수 처질 수밖에 없겠죠.

“어째서?”

-저희 마족을 비롯한 다른 종족의 군주님들의 경우 하나가 아닌 여러 명에게 파편을 나누어주었지만, 용족과 천족은 로드와 미르카엘에게 파편을 모두 몰아주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들어보니 이해가 되었다.

혼의 파편을 나눠줌으로써 자신의 대리인을 세우는 군주들.

하지만, 그들은 하나에게 파편을 몰아주는 행위는 잘 하지 않는다고 한다.

견제하는 자가 있어야만 종족을 바른길로 이끌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마족만 봐도 대공과 단장으로 파가 갈리지 않은가?

물론 대공의 경우 혼의 파편을 받지 않았지만.

쿠구구구구-

“응?”

미르카엘이 힘을 드러내며 로드에게 크게 한 방 날리자 상황이 갑작스럽게 변하기 시작했다.

똬리를 틀고 고개만 움직이던 로드가 거대한 몸체를 일으키기 시작한 것.

녀석 역시도 위기감을 느낀 모양인지 사념을 빨아들이던 행위를 멈추고는 미르카엘을 노려보기 시작했고, 이어서 그 거대한 입이 천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크롸롸롸롸-

드래곤 브레스.

로드가 미르카엘을 향해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대로 브레스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분명 용족은 브레스를 토해내기 전 주위에 퍼진 마나를 끌어들여 힘을 증폭시키는 행위가 꼭 필요한 것으로 알았는데, 놈은 달랐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대로 브레스를 토해낸 것.

그렇다고 브레스의 위력이 낮은 것도 아니었다.

이쪽을 향했다면, 막아내기 힘들었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르카엘은 브레스가 두렵지도 않은지 피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니, 오히려 맞설 생각으로 보였는데, 한 손에 거대한 은빛의 창을 만들어낸 미르카엘은 브레스를 향해 창을 그대로 쏘아 보냈고, 이어서 강한 힘의 충돌의 여파가 주변을 휩쓸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쾅-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여파가 생각보다 대단하지 않다는 것.

힘과 힘의 충돌로 인해 발생했어야 할 여파가 서로의 힘을 상쇄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우리 일행이 무사할 수 있었는데.

그때였다.

크롸롸롸-

멀리서 일곱 줄기의 거대한 광선이 로드를 향해 쏘아진 것은.

용족의 장로들이 기회를 엿보다 둘이 충돌하는 순간 로드를 공격한 것.

물론 그들만 기회를 잡은 것은 아니었다.

이쪽 역시 마찬가지.

크림슨이 로드의 목을 향해 뛰어오르며 마력을 집중시킨 검을 내려쳤고, 그와 동시에 하임이 거대한 주먹을 만들어내며 처음으로 드러난 로드의 배에 주먹을 박아넣어 로드를 뒤흔들었다.

이어서 니안의 입을 통해 검붉은 광선이 쏘아지며 브레스를 토해내는 로드의 아래턱을 강타했다.

“크워어어-”

뚱이의 함성.

그와 동시에 처음 보는 괴현상을 목격할 수 있었다.

뚱이의 덩치가 순식간에 불어나기 시작한 것.

그것도 거의 100배 이상으로 거대해진 뚱이가 로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쿵- 쿵- 쿵-

하지만, 수백 미터의 덩치를 가지게 된 뚱이조차 로드에 비하면 어린아이조차 되지 못하는 크기였는데, 이어지는 뚱이의 움직임은 달랐다.

수백 미터의 덩치를 가졌다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질주하던 뚱이는 그대로 로드에게 몸통을 부딪쳐 갔다.

콰앙-

드러난 결과는 놀라웠다.

로드에 비하면 어린아이조차 되지 못하는 뚱이였지만, 격돌한 순간 로드는 더는 브레스를 토해내지 못한 채 나뒹굴었고, 그에 미카엘이 쏘아낸 창이 방해 없이 로드의 몸에 꽂히며 밝은 빛을 터뜨리며 폭발했다.

‘지금이야!’

‘아직이에요!’

지안이에게 급히 공격하란 지시를 내렸지만, 어째서인지 지안이는 아직 때가 아니란 답을 했을 뿐이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지금만 한 기회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큰 타격을 입어 방어가 되지 않는 지금이 아니라면 도대체 언제 그 기회가 온다는 말인가?

물론 지안의 공격이 뒤가 없는 공격이긴 했다.

한번 쏘아내면 최소 수 시간은 꼼짝도 하지 못하는 지안이었기에 신중해야 하는 건 당연했지만, 이런 기회를 놓친다는 건 이해할 수 없었다.

“아!”

하지만, 드러난 로드의 모습에서 나는 지안의 결정이 정확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멀쩡하다 못해 오히려 더욱 강한 기운을 뿜어내는 로드.

“이게 가능해?”

그것만이었으면 이렇게 놀라지는 않았을 거다.

문제는 녀석의 등 뒤에서 돋아난 굵은 촉수들이었다.

족히 그 수가 1천에 다다르는 엄청난 수의 촉수들.

거기다, 촉수 하나하나가 품고 있는 힘이 라구스들을 넘어서고 있었다.

나와 루시안, 라구스, 코넬리아 넷이 덤벼도 하나를 감당할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할 정도의 엄청난 힘을 품고 있는 촉수가 무려 1천이 넘었다.

이어서 드러난 촉수의 능력은 나를 더욱 놀라게 했다.

지잉- 지잉- 지잉-

마치 왕눈이의 레이저와 비슷한 광선을 마구 뿜어내며 모두를 공격하기 시작하는 촉수와 그 거대한 몸체를 움직이는 로드.

그에 급히 레이저를 피하는 크림슨들을 보며 나는 어찌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점점 상황이 절망적으로 물드는 것을 느낀 나는 이대로 피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감추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미르카엘이었다.

촉수의 레이저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내며 단번에 수십 개의 촉수를 소멸시키는 모습에 잠시 희망이 보였지만, 순식간에 다시 자라나는 촉수의 모습에 절망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녀석의 힘을 소모하도록 유도한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녀석의 기운은 처음 봤던 그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더욱 강해져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녀석이 힘을 소모하는 것보다 이쪽이 먼저 힘이 빠질 것이 뻔해 보였다.

거대해진 뚱이가 최대한 많은 촉수를 붙잡아두고 있었지만, 그래 봐야 수십 개일 뿐이었고, 크림슨과 니안, 하임이 촉수를 잘라내거나 터뜨리고 있었지만, 순식간에 다시 자라날 뿐이었다.

힘이라도 줄어드는 것이 보였다면 조금만 더 힘을 내달라고 응원이라도 하겠지만, 녀석의 힘은 계속해서 강해질 뿐이었다.

-도와줄까?

어?

순간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

분명 이 목소리?

아니, 또 다른 나.

그놈이었다.

‘도와줄 수 있다고?’

-당연하지.

‘부, 부탁한다. 도와줘.’

수십 개의 촉수에 묶여 고통스러워하는 뚱이와 촉수가 쏘아내는 레이저를 간신히 막아내며 겨우 견디고 있는 크림슨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니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레이저를 몸으로 받아내고 있긴 하지만, 니안 역시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당연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야.

순간 중심부에 들어온 후부터 되지 않던 지배의 영역이 활성화되며 영역을 늘려가기 시작했고, 이어서 내 의지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의지가 지배의 영역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뒤는 알아서 하도록.

또 다른 나는 마지막 말을 남긴 후 더는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아무래도 나를 돕기 위해 무리를 한 모양이었다.

‘고맙다.’

전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녀석에게 감사를 전한 나는 라구스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할 일이 생겼다.”

-네? 정말인가요?

내 입이 열리자 안타까운 표정으로 크림슨들을 보던 코넬리아가 급히 대답했다.

“그래.”

-어, 어떤 일인가요? 뭐든 맡겨만 주세요.

“어떤 위험에서도 나를 지켜. 그것이면 충분해.”

-그게 무슨? 설마 저 안으로 들어가실 생각이십니까? 안 됩니다! 저, 저희가 하겠습니다. 어떤 일인지는 모르지만, 저희만으로도 충분할 겁니다.

내 말에 라구스가 급히 나를 말리며 소리쳤다.

“그게 아니야. 난 이곳에 있을 거야.”

-네? 그럼 왜?

“내가 뭔가를 할 거야. 만약 저놈이 눈치챈다면 나를 공격할지도 몰라. 그것을 막아줘.”

-목숨을 걸고 군주님을 지킬 것입니다!

내 말에 무릎을 꿇으며 같은 대답을 하는 라구스들을 보며 미소를 지은 나는 로드까지도 덮어버리는 거대한 영역을 구축했다.

“부탁해!”

마지막 말과 함께 눈을 감은 나는 영역에 의지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또 다른 나의 의지를 넓게 퍼져 있는 영역 속에 퍼뜨리자 의지가 서로 공명하며 서로의 힘을 증폭시켰다.

그것을 확인한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럴 수 있었으면 진작에 도와주지!

놈을 살짝 원망했지만, 내 입가에는 미소가 어려 있었다.

상황을 반전시킬 카드가 생겼기 때문에.

그리고.

-나의 영역 안에 있는 나의 권속은 그 어떤 상처도 순식간에 회복되리라! 또한! 힘의 소모가 순식간에 회복될 것이며 더욱 강해지리라!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또 다른 내가 나에게 최대한 활용해 보라 말할 때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녀석의 생각이 나에게 흘러들어 왔으니까.

지금 상황에서 최대한의 활용이라던 그것의 의미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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