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6화 (186/214)

“괜찮을까요?”

“뭐가?”

나를 따라 저택에 들어온 지안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음을 던졌다.

“너무 가깝지 않아요? 잘못했다간 저택뿐만 아니라 저희까지 몽땅 날아가 버릴지도 모르는데요?”

로드의 육체가 난동을 부리는 곳과 불과 100㎞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미호의 능력을 이용해 저택을 만들어 낸 것에 걱정이 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브레스 한방이면 지름 수십㎞의 거대한 크레이터가 뻥뻥 뚫렸으니까.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지안이는 아직 모르고 있었지만, 미호가 왕급 마수에 근접하면서 생긴 새로운 능력은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나 있었으니까.

“아직 모르지? 미호의 새로운 능력.”

“네? 또 무슨 능력이 생겼어요?”

“어. 격리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조금 이상한 능력이 생겼어.”

따지고 보면 새로운 능력이라기보단 능력의 진화라고 하는 것이 맞으리라.

현실조작능력의 한 방향이나 마찬가지였지만, 그 견고함은 기존의 현실조작능력을 넘어서고 있었다.

안과 밖을 분리하는 특이한 결계.

밖에서의 공격은 안쪽에 조금도 영향을 끼칠 수 없었고, 안의 공격 역시도 안을 벗어나지 못하는 특이한 능력.

거의 무적이나 마찬가지인 능력.

다만, 안에서 안으로의 공격은 미호의 능력을 넘어서지 않는 선까지만 방어가 할 수 있었다.

물론 이것만으로도 굉장한 능력임은 틀림없었다.

그 덕에 지금껏 나를 비롯한 내 수하들이 오랜 시간 녀석의 공격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이었고.

로드의 웬만한 공격은 맨몸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가끔 놈이 흥분해 토해내는 브레스는 도저히 견디기 힘든 수준이었다.

그 때문에 브레스가 쏟아지는 순간에만 미호의 결계 속으로 진입해 몸을 잠시 피했고, 그 덕분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

사실 미호의 결계가 없었다면 아마 하루도 견디지 못하고 도주했을지 몰랐다.

“정말 브레스를 견딘다고요?”

“놀랍지? 나도 깜짝 놀랐어. 미호가 브레스를 쏟아내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견뎌내길래 이게 무슨 일인가 했더니 새로운 능력이 생겼더라고.”

“우와! 이러면 무적이나 마찬가지 아니에요?”

“그건 아니야. 공간을 파괴하는 공격에는 통하지 않거든. 다행히 저놈은 공간을 건드는 공격은 하지 않더라고. 그래서 안심하고 쉴 수 있는 거고.”

크림슨이 시험해본 결과 미호의 결계는 공간을 건드는 공격은 막아내지 못했다.

그에 로드의 육체, 그러니까 지금은 용마왕이라 이름 붙인 저놈이 공간을 찢어발기는 공격을 하는지 안 하는지 지금껏 관찰했는데, 지금껏 단 한 번도 공간을 건드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에 안심하고 쉴 수 있었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쉬도록 해.”

“네! 그럼 저는 샤워 좀 할게요.”

“그러도록 해.”

얼마나 쉴 수 있을지 불확실하긴 했지만, 수왕과 하이엘프가 이름값을 한다면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거다.

* * *

-호오? 괜찮군. 내 거처로서 조금도 부족하지 않아.

미르카엘은 미호가 만든 저택 앞에서 저택을 품평하고 있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아직 그들에 대한 의심이 풀리지 않은 상태이지 않습니까?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마족을 잡으려면 마족의 영토로 들어가야 한다는. 그것과 똑같다 보면 되네.

-하지만…….

우피엘은 미르카엘의 말이 조금도 와닿지 않았다.

처음 저택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 미르카엘의 눈에는 분명 호기심과 탐욕이 어려있었기 때문이다.

미르카엘은 탐욕이 거의 없는 자였다.

그런 미르카엘이었기에 우피엘은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

-일단 들어가 보자고. 설마 함께 치열한 전투를 겪은 전우를 내쫓기야 하겠는가?

-그, 그건 그렇지만…….

-가세.

우피엘이 말리기도 전에 미르카엘은 이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천족의 지도자여.

그가 문을 여는 순간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크림슨이었다.

-오! 크림슨 경. 나를 마중 나온 거요?

-마중?

-내 신세를 좀 지려 하는데. 혹 안내를 부탁드려도 되겠소?

미르카엘의 뻔뻔함에 크림슨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졌지만, 곧 표정을 푼 크림슨은 그를 안내하기 시작했다.

선우에게서 허락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오시오. 그대가 쉴 수 있는 방을 안내해 드리리다.

-이렇게 감사할 때가. 우피엘 뭐 하는가?

-그대의 대범함에 감사를 표합니다.

우피엘은 크림슨에게 작게 고개를 숙인 후 안으로 들어섰다.

그와 동시에 크림슨이 발을 떼어 그들을 안내하기 시작했고, 이어서 거대한 문 앞에 도착해 그들에게 방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면 될게요. 혹 몸을 씻고 싶다면 안쪽에 있는 샤워시설을 이용하면 되오.

-샤워시설? 그것이 무엇이오?

-몸을 씻을 수 있는 공간이오.

크림슨의 말에 미르카엘이 바삐 움직여 화장실의 문을 열었고, 그와 동시에 그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아름답군. 정말 아름다워.

티 하나 없는 새하얀 변기와 세면대, 욕조 그리고 은색으로 빛나는 샤워기를 보는 미르카엘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 차 있었다.

-혹 시간이 된다면 이것들의 용도를 설명해 줄 수 있겠소?

-미르카엘님!

크림슨의 시간을 빼앗는다는 생각에 우피엘이 말려 보았지만, 미르카엘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크흠!

그에 크림슨의 표정이 살짝 굳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크림슨의 표정이 풀어지며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설명해 드리리다.

말과 함께 성큼성큼 이동한 크림슨은 변기의 앞으로 이동해 설명을 시작했다.

-이것은 가볍게 세안을 할 수 있는 세면대라고 한다오. 여기 이것을 누르면.

솨아- 콸콸콸-

-깨끗한 물로 바로 교체가 된다오.

변기 물이 순식간에 내려가며 다시 물이 차올랐고, 그를 본 미르카엘은 신기한 표정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 아름다워! 어찌 이리 아름다울 수 있단 말인가!

-어떠시오? 한번 해보시겠소?

내 한번 해보리다.

말을 마친 미르카엘은 그대로 허리를 숙여 변기에서 물을 떠올려 가볍게 세안을 했고, 그 모습을 본 크림슨은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그 이후 크림슨은 미르카엘에게 욕조와 샤워기에 대한 설명을 마쳤는데, 사실 천족들은 이렇게 물을 사용해 씻을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마력을 이용해 청결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물론 마족 역시도 마찬가지.

유일하게 물을 이용해 몸을 씻는 종족은 엘프뿐이었다.

엘프에게 목욕이란 것은 신성한 행위 중 하나였는데, 목욕을 하는 것으로 나쁜 기운을 씻는다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씻는다는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잘 알고 있는 미르카엘이었다.

-그럼 나는 이만 나가보겠소. 편히 쉬시오.

문을 나선 크림슨은 급히 자리를 떠났고, 이어서 멀리 떨어진 후 숨죽여 웃기 시작했다.

-천족이 마족의 말을 믿다니. 큭큭- 그러니 당하는 것이다 미르카엘. 푸하하하하-

* * *

“크림슨의 기분이 정말 좋은 모양이네?”

“왜요?”

샤워를 마치고 내 방으로 온 지안은 내 말에 고개를 갸웃하며 물어왔다.

“미르카엘을 골려줬거든. 변기 물에 세안을 하도록 유도한 모양이야.”

“네? 변기 물에요?”

“물론 미호가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에 정말 지저분한 건 아니겠지만, 기분의 차이는 있겠지.”

“대표님 그런데 미르카엘을 왜 이곳에 받아들이신 거예요?”

크림슨 역시 내가 미르카엘에게 방을 안내해 주라 의념을 보냈을 때 이런 질문을 던졌는데, 그 이유는 친밀도를 쌓아 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용마왕을 처리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직 모르지만, 만약 처리하게 된다면 그 이후 용마왕의 정수를 빼돌리기 위해선 친밀도가 정말 중요했다.

믿음이 있어야만 우리에 대한 경계심이 조금이라도 낮아질 테니까.

“와! 언제 그런 걸 생각해 두신 거예요?”

내 설명을 들은 지안은 놀랍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이 정도는 당연히 생각해 둬야지. 그리고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야. 저놈을 처리하는 것이 가능한지가 문제지.”

용마왕을 처리할 수 있을 가능성은 솔직히 말하면 3할도 되지 않았다.

일주일을 끌고 다녔음에도 녀석의 힘은 줄어들 생각을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놈의 힘이 얼마나 되는지 감조차 잡히지 않고 있었다.

“그냥 제가 하루에 한 번이라도 전력을 다해 공격해보는 건 어때요?”

“나도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야. 근데 잘못했다가는 지안이 네가 표적이 될 수도 있단 말이지. 아무리 파괴에 대한 본능만 남아 있다고 해도 자신에게 큰 타격을 입힌 상대에게는 반응이 다를 수도 있어.”

지금껏 미르카엘을 비롯한 우리 일행이 큰 부상을 당하지 않은 이유는 미호의 능력도 있었지만, 놈이 파괴에 대한 본능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공격을 당한 직후에는 우리를 공격하지만, 이쪽에서 계속해서 놈을 피해 도망치면 놈은 우리를 공격하는 것을 포기하고 생명체가 느껴지는 방향으로 몸을 틀었기에 큰 부상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만약 놈에게 큰 타격을 입히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지도 몰랐다.

지금도 우리의 공격보단 미르카엘의 공격에 더욱 큰 반응을 보이는 놈이었기에 지안이 지금과 다르게 예의 그 공격을 하게 된다면 놈이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이 되지 않는다는 것.

그랬기에 지금껏 지안을 쓰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잖아요.”

“이 이야기는 일단 조금 쉰 후에 하기로 하자. 너도, 나도 지금은 쉬는 게 우선이야.”

“네.”

육체의 피로는 금방 풀리지만, 정신적 피로는 그리 쉽게 풀리지 않았다.

일주일간 잠을 자지 못한 것은 물론 용마왕에 대한 압박 덕분에 정신적인 피로가 많이 쌓였고, 놈이 주변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는 물론 심한 압박감을 항상 느껴야 했으니까.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쉴 수 있을지 몰랐기에 최대한 쉬어 두어야 했다.

* * *

모두가 각자의 방에 들어가 잠을 자거나 명상을 하며 피로를 푸는 동안 나는 잠을 자지 않고 있었다.

아니, 잠을 못 잔다는 것이 맞으리라.

바로 나를 감싸고 있는 지배의 영역 덕분에.

지금 이 지배의 영역을 풀어버리면 또 다른 나로 인해 강해진 의지가 원래대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영역을 계속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정신을 놓으면 곧바로 풀려 버리는 지배의 영역.

그 때문에 나는 잠은커녕 명상조차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눈을 감고 지배의 영역을 최대한 안정시키며 유지하고 있어야만 했다.

그래도 밥은 먹었잖아?

텅텅 비어 있던 배를 채웠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던 나는 순간 등 뒤를 타고 올라오는 소름에 몸을 벌떡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쿠웅-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느껴지는 강한 파동.

-군주님!

“대표님!”

파동이 느껴진 후 내 방문이 열리며 크림슨과 지안이 뛰어 들어왔고, 그 뒤를 이어 크림슨들과 하임을 비롯한 니안과 펜릴, 미호가 뛰어 들어왔다.

역시나 뚱이는 지금껏 밥을 먹는 중이었는지 커다란 송아지를 든 채로 마지막에 들어왔는데.

“지금 이거 뭐야?”

-그, 그것이…….

“응?”

크림슨 역시 영문을 모르는지 말을 더듬었는데, 그와 동시에 아무런 전조도 없이 또다시 등을 타고 소름이 돋기 시작했고.

지잉-

“어?”

흑색의 무언가가 저택의 벽을 뚫고 들어와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졌다.

“방금 그거 설마 용마왕이야?”

-가,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방금 그 공격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공간을 파괴하는 공격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수왕과 하이엘프는 비아냥거리긴 했지만 미르카엘과 우리 일행이 휴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후 용마왕을 끌고 이곳과 멀어졌기에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못해도 수백㎞ 이상을 떨어져 있는 거리였다.

여파가 있을 수는 있어도 방금처럼 미호조차 막아내지 못하는 그런 강한 공격이 이곳까지 날아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설마 상황이 변한 건가?”

-그런 듯 보입니다.

“가자!”

문으로 나설 시간이 없었기에 그대로 창문을 뚫고 밖으로 나가자 미르카엘과 우피엘 역시 밖으로 나와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고, 그와 동시에 나는 크림슨에게 의념을 보냈다.

-저들 불러.

-네.

내 말에 크림슨은 급히 미르카엘과 우피엘을 불렀고, 그들이 가까이 다가오며 입을 열려던 찰나 나는 하임에게 이동하란 지시를 내렸다.

-이 속도로는 부족하다. 먼저 가겠다.

순간 배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것을 확인한 미르카엘과 우피엘이 의문을 드러내며 입을 열었는데, 안될 말이었다.

만약 내 생각이 맞다면 이들을 먼저 보내는 건 큰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었으니까.

그에 나는 그들을 말리기 위해 내 생각을 크림슨에게 전했고, 크림슨은 내 설명에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 그들에게 입을 열었다.

-그건 너무 위험하오.

-그것이 무슨 말인가?

-만약 놈이 전과 다른 존재가 되었다면, 따로 가는 것은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소.

-그 말은?

-새로운 존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요.

크림슨의 말에 미르카엘의 움직임이 경직되었다.

-바하무트가 부활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요?

그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크림슨.

-물론 예상일 뿐이오. 아직 수왕과 하이엘프의 존재감이 느껴지는 것으로 봐서는 확률이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지 않소. 거기다, 그쪽은 이동형 마수도 없지 않소.

-알겠소. 일단 함께 움직이도록 하지.

* * *

“뭔가 이상한데요? 분명 가까이서 용마왕의 기운이 느껴지는데 왜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걸까요?”

지안의 말처럼 기운이 느껴지는 장소에 근접했음에도 용마왕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물론 아직 수 킬로의 거리가 남아 있긴 했지만, 용마왕의 크기를 생각하면 진작에 보였어야만 했는데.

-저, 저건?

-아!

나를 제외한 모두의 시선이 한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에 나의 시선 역시 그곳으로 향했고, 동시에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해야만 했다.

작아졌어?

니안과 비슷한 크기, 비슷한 외형의 무언가가 수왕과 하이엘프를 몰아치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거의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수왕과 하이엘프.

느껴지는 힘은 전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마치 이성이 생겨나기라도 한 듯 둘만을 집중적으로 노리고 있는 용마왕의 모습은 솔직히 조금 충격적이었다.

-뭐해! 왔으면 빨리 도와!

-빠, 빨리!

특히 수왕과 하이엘프가 입은 피해가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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