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7화 (187/214)

수왕의 왼쪽 어깨 아래로 보여야 할 팔이 보이지 않았고, 오른쪽 무릎 아래에 있어야 할 하이엘프의 종아리와 발이 보이지 않았다.

하임의 이동술로 이곳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은 겨우 1분.

그 짧은 시간 동안 한쪽 팔을 잃은 수왕과 오른쪽 다리를 잃은 하이엘프.

그 모습을 목격한 순간 미르카엘과 우피엘은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곧바로 그 둘을 구하기 위해 참전했고, 나 역시 곧바로 지배의 영역을 퍼뜨리며 지시를 내려야만 했다.

“저 둘 회복시키기 전까지 어떻게든 버티기만 해! 알았어!”

-네!

크림슨이 대답과 함께 마력을 끌어올리며 뛰어들었고, 그 뒤를 이어 니안과 뚱이가 용마왕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하임! 내가 신호하면 저 둘 데려와!”

“뀨!”

“저는 거리를 좀 벌릴게요.”

“조심해. 놈이 너에게 향하는 것 같으면 바로 튀어! 알았지?”

“네!”

지안이 펜릴과 함께 허공으로 솟구치는 모습을 보던 나는 고개를 돌려 기회를 노렸다.

수왕과 하이엘프를 빼낼 기회를.

하지만,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놈은 정말 이성이 생겨나기라도 했는지 미르카엘과 우피엘의 휘몰아치는 공격 속에서도 둘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그나마 당행인 것은 크림슨들이 참전하자 둘과의 거리가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둘을 포기한 녀석은 그중 가장 강한 미르카엘을 향해 강력한 공격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지금!”

“뀨!”

하임의 이동술을 이용해 순식간에 둘을 나의 곁으로 끌어온 나는 미리 꺼내둔 엘릭서를 건네며 둘에게 의념을 보냈다.

-마셔!

-넌 뭐지?

-당신은 누구죠?

-날 신경 쓸 시간에 회복에나 전념해. 그걸 마시면 마력을 빠르게 회복시켜 줄 거야.

내 말에 의심의 눈빛을 지운 후 엘릭서를 마시는 둘.

참 이상한 것이 저번 공작의 사태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마계의 종족들은 남을 쉽게 믿는 경향이 있는 듯했다.

-오호?

-신기하네요.

만약을 상황을 대비해 출발하기 전에 최상급의 정수를 이용해 만들어둔 엘릭서였다.

왕급 마수와의 전투에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몰랐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닥치는 대로 챙겨두었는데, 가져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잃어버린 신체를 재생시키지는 못하겠지만, 둘이 소모한 마력은 빠르게 채워줄 수 있을 터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신체를 재생시키지 못한다는 말은 아니었다.

“미호야!”

“끼웅!”

-응? 이건?

-다리가?

미호의 현실조작능력은 잃어버린 신체 역시도 재생시킬 수 있었으니까.

근데 좀 징그럽네?

뼈가 점차 자라나며 힘줄을 비롯한 기관들이 하나씩 생겨나는 징그러운 모습에 고개를 돌린 내 시야에 용마왕을 상대하는 미르카엘과 크림슨들이 들어왔다.

콰과과과광-

그저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마력의 폭풍을 만들어내며 모든 지형지물을 변화시키는 용마왕의 강함에 미르카엘조차 피하는 것에 급급할 뿐이었고, 우피엘을 비롯한 크림슨들은 용마왕의 뒤를 치기는커녕 가까이 접근하는 것조차도 힘들어 보였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미르카엘이 뚱이와 니안, 하임을 적절히 이용하고 있다는 것일까?

자신의 속도를 넘어서는 용마왕을 겨우 피하며 뚱이와 니안의 주위를 돌고 있는 미르카엘.

그나마 하임이 만들어준 묵직해 보이는 보랏빛 갑옷 덕분에 뚱이와 니안은 용마왕의 힘을 겨우 견뎌낼 수 있는 듯 보였고.

덕분에 미르카엘을 비롯한 우피엘과 크림슨, 지안이 힘을 쏟아내 녀석을 타격했는데, 문제는 강력해 보이는 마력의 폭발과 다르게 타격이 전혀 없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미르카엘이 만들어낸 은빛의 창은 녀석에게 생채기조차 내지 못했고, 우피엘과 크림슨의 공간을 베는 공격 역시도 녀석이 만들어낸 마력 폭풍을 베어냈을 뿐 놈의 신체에는 아무런 흠집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안의 공격이 놈의 마력 폭풍을 뚫고 들어가 폭발하며 놈을 조금 흔들었다는 것일까?

“이런!”

미르카엘을 쫓아야 할 녀석의 고개가 지안이 있는 방향으로 돌아간 것을 확인한 나는 급히 지안에게 피하란 지시를 내리려 했는데, 다행히도 미르카엘의 공격이 이어지며 녀석의 시선이 다시 미르카엘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또다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지며 상황을 유지하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뚱이와 니안에게 있었다.

겨우 두 번.

지금까지 뚱이와 니안이 놈을 막아선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지만, 둘이 입은 피해는 엄청난 수준이었다.

수왕이나 하이엘프처럼 신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육체 곳곳이 찢기고 터져나가 피를 쏟아내고 있는 둘의 모습은 처참함 그 자체였다.

거기다, 어찌 된 일인지 순식간에 회복했어야 할 부상이 더디게 회복되고 있다는 것도 문제였다.

그렇다고 둘이서만 용마왕을 감당한 것이 아니었다.

하임 역시 충돌하는 그 순간 둘에게 입힌 갑옷에 마력을 주입해 최대한으로 강화를 했기 때문이었다.

“회복은?”

처참한 상황에 급히 등을 돌린 나는 수왕과 하이엘프의 부상이 전부 치료된 것을 확인하고 급히 둘에게 의념을 보냈다.

-뭐해? 빨리 도와줘!

-조금 기다려 보아라.

-안 그래도 그러려던 참이었다.

새로 자라난 팔과 다리를 신기한 눈으로 보던 둘은 순식간에 자리에서 사라졌고, 이어서 미르카엘을 쫓던 용마왕의 곁에 모습을 드러냈다.

쿠웅-

처음이었다.

용마왕을 멈춰 세운 것은.

뚱이와 니안조차 용마왕의 앞을 막아선 순간 그대로 튕겨 나가며 잠시 멈칫하게 한 것이 다였는데, 수왕은 달랐다.

용마왕과 충돌한 후 힘겨루기에 들어간 것.

물론 조금씩 밀려나고 있긴 했지만, 수왕은 모두에게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라면 네놈도 무사하지 못하겠지?

언제 꺼내 들었는지 모를 활을 꺼내든 하이엘프가 용마왕의 머리 위에서 놈을 향해 화살을 겨누고 있었고, 그와 동시에 뚱이와 니안이 용마왕의 양팔을 붙잡으며 매달렸다.

그리고, 놈의 발을 타고 올라온 하임의 속박이 녀석을 결박하며 완벽한 족쇄가 완성되었는데.

피잉-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시위를 놓는 소리는 평범했다.

하지만, 그 파괴력은 소리와는 전혀 달랐는데.

꽈앙- 꽈르릉-

화살이 녀석의 머리통에 명중하는 순간 수왕을 비롯한 뚱이와 니안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놈에게서 떨어지며 거리를 벌렸고, 그와 동시에 놈을 향해 은빛의 뇌전이 떨어져 내렸다.

마지막으로 내 뒤쪽에서 빠르게 날아간 섬광이 녀석을 향해 꽂혀 들어가 폭발을 일으켰다.

콰과과과광-

전이었다면 폭발의 여파에 큰 충격을 입었을 상황이었지만, 지금 내 곁에는 왕급에 근접한 미호와 하임이 있었다.

이 정도 후폭풍은 얼마든지 받아낼 수 있었기에 안심하고 시야가 확보되길 기다렸는데.

“저, 저거…….”

검은 기운을 뿜어내 전신을 감싸고 있는 녀석이 입은 피해는 전무.

생채기조차 입지 않은 녀석은 마치 우리를 비웃듯 입가를 비틀고 있었다.

-어찌?

-이럴 수가?

하이엘프와 미르카엘은 믿기지 않는 장면을 목격한 것 마냥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고, 수왕 역시도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멈춰 서 있을 뿐이었다.

“크헬헬헬헬!”

고개를 치켜들고 기괴한 웃음소리를 내뱉으며 웃는 녀석.

설마? 지금까지 우리를 가지고 논 거야?

녀석을 보자 문득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번 공격으로 녀석을 끝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피해는 입힐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드러난 녀석의 모습에서는 그 어떤 피해도 없어 보였기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도 피해를 입지 않다니? 이게 말이 돼?

무려 천족과 엘프의 지배자인 미르카엘과 하이엘프의 협공이었다.

거기다, 지안의 이번 공격은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공격에 비해 최소 배 이상의 파괴력이 실려 있었다.

그럼에도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는 건 놈을 처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는데.

-수왕, 놈을 잠시 막아주었으면 한다.

-저도 부탁드릴게요.

-얼마나?

-1분 정도?

-나 역시.

-흠. 가능하려나 모르겠군. 저런 괴물이 상대라면 30초를 버티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데 말이야.

어째선지 멈춰서 이쪽을 조용히 바라보기만 하는 용마왕을 보며 수왕이 난감한 듯 말했다.

-본 모습을 드러내도 힘들겠는가?

본 모습?

미르카엘의 말에 내 시선이 수왕에게로 돌아갔는데, 지금 수왕의 모습은 두 발로 서있는 사자 그 자체였다.

저기서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한 다라?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번 해보겠네. 저자들 역시 도움을 줄 테니 1분 정도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겠지.

-그럼 부탁하겠네.

크아앙-

미르카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수왕은 이어서 갑작스럽게 육성으로 포효를 터뜨렸고, 이어서 그가 뿜어내던 마력이 모두 몸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투둑- 투두둑-

근육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시작으로 수왕의 모습이 점차 변해가기 시작했다.

점점 거대해지는 수왕은 기존의 이족보행이 아닌 사족보행의 사자처럼 변하기 시작했고, 그 크기 역시도 기존의 2m 정도에서 길이가 10m에 다다를 정도로 불어났다.

크허허허헝-

10m를 넘어서는 거대한 사자.

외형적으로는 별로 대단해 보이진 않았지만, 특이하게도 사자로 변해버린 수왕에게서는 생명체라면 미약하게라도 느껴져야 할 마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금빛이었던 갈기 역시도 새빨갛게 변해있는 상태였다.

“크헬헬헬-”

그 모습을 본 용마왕은 뭐가 그렇게 기쁜지 놈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기기 시작했고, 둘의 거리가 점차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콰앙-

수왕의 거대한 앞발과 용마왕의 주먹이 충돌했다.

“막아냈어?”

조금의 마력도 느껴지지 않는 수왕이 용마왕의 주먹을 막아내었는데, 의아한 건 나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용마왕 역시도 의아한지 고개를 갸웃했고, 이어서 다시 주먹을 뻗었는데.

콰앙-

또다시 수왕이 용마왕의 주먹을 막아낸 것.

물론 가볍게 주먹을 뻗은 용마왕과 달리 수왕은 전력을 다한 듯 보였지만, 그것만으로도 대단해 보였다.

지금 느껴지는 용마왕의 힘은 조금 전과는 전혀 달랐으니까.

놈의 기운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조금 전에 비해 거의 배 이상은 되어 보이는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상태였다.

근데 저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마력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데?

덥석-

“크륵?”

조용히 둘을 지켜보던 그때 거대한 사자가 되어버린 수왕이 입을 벌려 멈춰있던 용마왕의 머리를 덥석 물어버렸다.

하지만, 수왕의 날카로운 이빨은 용마왕에게 아무런 상처도 입히지 못하고 있었다.

안간힘을 쓰며 용마왕의 머리를 씹어보려 했지만, 수왕의 이빨은 용마왕의 비늘을 조금도 뚫지 못했고, 머리를 수왕의 아가리에 삼켜져 있는 채로 용마왕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직-

그대로 손을 들어 올린 용마왕이 수왕의 아래턱을 강타했다.

그 충격에 물고 있던 머리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용마왕은 빠르게 움직여 그대로 수왕의 가슴을 주먹으로 강타했다.

콰과과과광-

땅에 고랑을 파며 그대로 밀려나는 수왕.

그와 동시에 모습을 감춘 용마왕이 수왕의 뒤에 모습을 드러냈다.

콰앙-

용마왕은 마치 파리를 잡듯 손바닥으로 수왕의 뒤통수를 내리쳤고, 그 영향으로 수왕이 땅과 충돌하며 거대한 크레이터를 만들어내었다.

수왕을 가지고 노는 듯한 용마왕의 모습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지금도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는 용마왕은 그 끝이 짐작조차 되지 않고 있었다.

“뭐해!”

그러던 내 시야에 가만히 멈춰 둘을 보고만 있는 뚱이와 니안, 크림슨이 들어왔다.

-아!

내 외침과 동시에 움직인 크림슨들이 녀석을 향해 공격을 쏟아내기 시작했지만, 비늘에 닿지도 못한 채 소멸해 버리고 있었다.

그냥 지안이에게 한 방 쏘라고 해야 하나?

뒤가 없는 최후의 일격이었기에 최대한 아끼고 싶었지만, 아낄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미르카엘과 하이엘프가 시간을 달라고 한 이유는 분명 방법이 있기 때문일 거다.

저놈을 처리할 무언가를 준비하기 위해 시간을 달라고 했겠지.

설마 도망가려고 그랬겠는가?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순간 내 시야에 이상한 장면이 들어왔다.

저거? 그거 아니야?

수왕은 계속해서 상처를 입으면서도 빠르게 몸을 회복하고 있었는데, 그 장면을 어디선가 본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상대의 마력을 흡수해 자신의 부상을 회복하는 기술.

바로 현지와 뚱이의 대련 중 뚱이가 사용하던 기술이었다.

일단 보류.

금방 당할 것 같았던 수왕은 의외로 잘 버티고 있었다.

물론 계속 당하고 있었지만, 끝없이 회복하며 용마왕을 물고 늘어지고 있었다.

거기다, 치명적인 부상을 당할지도 모르는 공격에는 하임과 뚱이, 니안, 크림슨이 조금이라도 파괴력을 줄여주었고, 미호가 계속해서 수왕의 회복을 돕고 있었던 것.

물론 이 모든 것은 용마왕이 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나저나 미르카엘은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셈이야?

이제 겨우 30초가 지나고 있을 뿐이었지만, 체감상으로는 1시간 이상이 지난 듯했기에 나도 모르게 불만이 터져 나왔다.

1분을 약속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최대한 빨리 끝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다.

계속 이리저리 튕겨 나가며 괴로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수왕의 처참한 상황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키잉-

멀리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고, 용마왕의 고개가 순식간에 그 방향을 향해 돌아갔다.

용마왕조차도 위기를 느껴야만 할 정도로 강력한 무언가가 멀리서 그 힘을 발산하기 시작한 것.

그에 나 역시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미르카엘이 말한 막아달라는 것의 의미가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라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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