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라고?”
“그렇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당황스러웠다.
정신계 능력자가 숨어 있던 곳은 내 생각과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서울.
그것도 강남 한복판.
“확실해?”
“저희 쪽에서 확인한 바로는 이곳이 확실합니다.”
“어떻게 알았는데?”
“그, 그것이…… 김 실장이 그러던데요?”
대장로.
그는 많이 변한 상태였다.
항상 허허로운 미소를 짓고 있을 정도로 성격이 많이 유해졌을 뿐만 아니라 전처럼 깍듯한 모습도 사라져 있었는데,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나와 유명에 가까워졌다는 뜻이었으니까.
“그건 그렇다 치고 리첼은?”
“연락했으니 곧 도착할 것입니다.”
“그래? 그럼 일단 리첼이 도착하면 시작하자고.”
“네.”
그나저나 여기가 정말 맞는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 눈에 들어오는 그것은 바로 성당이었기 때문이었다.
“도련님!”
“응?”
나를 부르는 듯한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멀리서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리첼의 모습이 시야에 잡혔는데, 문제는 그녀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과 손에 들려 있는 많은 쇼핑백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저건 다 뭐야?”
“별것 아닙니다. 저희가 이곳을 포위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연기를 좀 하는 것이니까요.”
이거 괜찮은 거 맞나?
저렇게 티를 내면 누구라도 눈치챌 텐데?
물론 내가 도착한 후에는 상관없을 거다.
미호가 성당을 비롯한 이 주변 구역 전부에 결계를 쳐두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믿는 구석도 있을 테니 쉽게 자리를 뜨지는 않았겠지.
“리첼 양, 오랜만에 보네요?”
“아! 편하게 불러주세요. 말도 편하게 하시고요. 저도 이제 유명의 사람이잖아요.”
“그럼 그렇게 할까요?”
“네.”
“그럼 리첼, 저 사람들은 다 뭔가요?”
“아! 그게 연기를 좀 하고 있으라길래 주변에서 쇼핑을 좀 했는데, 점점 사람들이 저에게 몰리지 뭐예요?”
사람들의 관심에 기분이 좋은지 밝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그녀를 보자 나도 모르게 한숨에 세어 나왔다.
“그래서 저 많은 사람을 다 달고 왔다?”
“네.”
마치 또 하나의 현지가 눈앞에 있는 것 같았다.
조금 다르긴 했지만.
“미호야.”
“끼웅?”
“저 사람들 밖으로 내보내. 슬슬 시작할 테니까.”
“끼웅!”
나와 리첼을 향해 폰을 내밀고 있는 자들을 보며 지시를 내리자 그들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그에 내 입이 다시 열렸다.
“시작하자.”
“네.”
“넵!”
내 지시가 떨어지자 대장로는 품에서 무전기를 주섬주섬 꺼냈고, 이어서 무전을 보내기 시작했다.
“돌입한다. 한 놈도 놓치지 마라.”
-1조 돌입합니다.
-2조 돌입합니다.
……
-6조 포위망 형성 완료.
-7조 포위망 형성 완료.
……
“들어가시죠.”
1조부터 5조까지 성당에 진입했고, 그들의 빈 자리를 6조부터 10조가 채워 넣은 걸 확인한 후 대장로가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가 볼까?.”
내가 입을 열자 내 주위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수많은 고블린을 둘러본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지만,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퍼포먼스라는 김 실장의 설명이 있었다.
미호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압도적인 힘을 보여줄 수 있었지만, 이 기회에 유명의 길드원들을 테스트해보겠다는 목적도 있었기에 방법을 바꾼 것이었다.
쾅!
문 앞에 다가가자 큰 소리와 함께 저절로 열린 문을 보며 천천히 안으로 진입하자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보였고, 그 뒤로 수녀들이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모습이 시야에 잡혔다.
일반인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저들 모두가 정신지배에 당한 자들이거나 그녀의 부하들이었다.
물론 무력은 존재하지 않는 자들.
진짜는 바로 성당의 지하에 모여있는 자들이었다.
“미호야.”
내 입이 열림과 동시에 이쪽을 바라보던 모두가 그대로 쓰려져 버리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고, 이어서 대장로가 들고 있던 무전기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찾았습니다.
“진입하라고 해.”
지하로 통하는 통로를 발견했다는 보고를 듣고 진입명령을 내리자 멀지 않은 곳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우리도 가볼까?”
“네.”
* * *
“허? 지하가 왜 이렇게 넓어?”
성당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온 나는 황당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족히 수백 미터에 이르는 계단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 넓은 공간은 또 뭐란 말인가?
강남의 지하 한복판에 이런 것을 만들어 두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그것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바로 저 앞에서 길드원들과 충돌하고 있는 자들의 수장이었다.
안나 크래프트.
10강의 일인이자 세계 최강의 정신 능력자.
그녀가 설마 전 세계를 뒤에서 조종하는 검은 손의 중심이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하고 있었으니까.
“대장로, 가서 데려와.”
“네.”
“잠깐만요!”
내 지시에 대장로가 움직이려던 찰나 옆에 있던 리첼이 손을 번쩍 들며 대장로를 만류했다.
“왜?”
“제가 할게요!”
“그럼 그동안 실력이 얼마나 늘었나 좀 볼까?”
“네!”
대답과 함께 안나를 향해 질주하는 리첼.
그녀의 모습은 순식간에 마녀처럼 변해가기 시작했다.
찬란한 금빛을 내뿜던 머리카락이 검게 물들었고, 이어서 눈동자의 색 역시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콰앙-
어느새 그녀의 손에 모습을 드러낸 엑스칼리버가 길을 막아서는 자들을 순식간에 뚫어내며 순식간에 안나와 격돌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강한데?”
“저 정도면 저와 비교해도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리첼뿐만 아니라 안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리첼을 발견한 안나가 검을 뽑아 들고는 리첼의 공격을 가볍게 막아낸 것.
하지만, 가볍게 막아선 것과는 다르게 격돌의 여파는 전혀 가볍지 않았다.
주변을 가득 메우던 자들이 충돌의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이리저리 튕겨 나가며 그대로 정신을 잃거나 몸을 일으키지 못한 채 피를 토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유명의 길드원들은 무사했다.
이쪽에는 미호가 있었고, 지금 이 공간 전체가 미호의 결계 속이었으니까.
쾅- 콰앙-
검끼리 충돌하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묵직한 충돌음은 물론이고, 둘이 격돌할 때마다 터져 나오는 마력의 폭발 역시도 장난이 아니었다.
이 정도면 남작급의 마족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한 녀석들 정도는 되어 보였는데.
그나저나 정말 놀라운데?
안나가 저런 무력을 가지고 있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전생에서 나는 안나를 만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정신계 최강이라 불리던 안나 크레프트.
전생의 나는 의뢰를 받아 그녀와 함께 움직인 적이 있었다.
당시에 그녀는 내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자 나를 골탕 먹이기 위해 뚱이에게 정신지배를 걸었지만, 실패했다.
그 이후 뚱이가 보내는 살기에 겁을 먹은 표정을 짓던 것이 떠올랐는데, 지금 그녀를 보니 모든 것이 연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의 뚱이는 지금의 그녀에게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약했으니까.
뭔가 이상한데?
그때의 그녀는 분명 나처럼 소속이 없었다.
나와 비슷한 처지로 어비스를 떠돌아다니던 그녀였으니까.
그것이 모두 연기였다고?
그럴 리가 없었다.
그 당시의 그녀는 나와 비슷하다고 말할 정도로 절실한 상태였다.
10강이라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닥치는 대로 의뢰를 받던 그녀는 나와 의뢰를 함께 수행하는 동안에도 슬픈 표정을 자주 내보였다.
그 당시에는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긴 했지만, 나 역시 상황이 좋지 않았던 시절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이상했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왜 그녀가 떠도는 생활을 해야만 했을까?
당시에는 10강인 그녀가 어비스를 홀로 떠돌아다니는 것에 말들이 많았다.
세력을 만드는 건 그녀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지금이야 나라는 존재가 있었기에 그들이 이런 꼴이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존재가?
어? 설마?
순간 내 고개가 내 옆에 있던 대장로에게 돌아갔다.
천마신교하고 붙었구나!
세계의 패권을 가지고 천마신교와 붙어서 패배했다면 그녀의 당시 모습이 전부 설명이 되었다.
그럼 그때 그 이유 모를 돌연사가?
전생에 전 세계를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었던 이유 모를 사망 사건이 떠올랐다.
족히 백만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사망 사건.
그것이 천마신교를 협박하기 위한 것이라면 설명이 되었다.
1개월을 주기로 1년 동안 계속해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고, 확인된 사망자 수만 백만이 넘어간다는 사실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인류를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은 적이 있었다.
설마 그것이 저 여자의 짓이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긴, 당시의 천마신교에게 그런 협박이 통했을 리 없었겠지.
아니, 오히려 천마신교가 원하던 일이었을지 몰랐다.
그 당시 죽은 자들 대부분이 그녀의 정신지배에 당한 존재들이었을 테니까.
그나저나 정말 무서운 여자네?
안나는 리첼을 상대로 잘 버티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차 밀리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능력 중 정신계 능력이 리첼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왕눈이의 정신방벽에 막혀 아무런 힘도 사용하지 못하는 안나.
만약 왕눈이의 정신방벽이 없었다면 리첼은 지금처럼 안나를 압박하기는커녕 고전에 고전을 거듭해야 하는 처지가 되어 있었을 거다.
물론 정신방벽이 없었다고 해도 쉽게 지지는 않았겠지만, 이기는 것 역시 지금처럼 쉽지 않았겠지.
“이제 곧 끝나겠는데?”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콰앙-
대장로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큰 폭음과 함께 안나 크레프트가 멀리 튕겨 나가며 땅에 긴 고랑을 만들었고, 이어서 리첼의 검이 급히 몸을 일으키려는 그녀의 목에서 날카로운 빛을 뿌리며 안나 크레프트의 움직임을 멈추게 했다.
“움직이지 마. 다치기 싫으면.”
“이익-”
“어떻게 할까요?”
나를 보며 묻는 리첼을 보며 나는 천천히 안나를 향해 다가갔고, 이어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할까?”
“날 죽이면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갈 거다.”
“알아. 그래서 널 죽이지는 않을 거야. 다만, 너의 선택에 따라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을 감당해야 하게 되겠지.”
“난 정신 능력자다. 그 어떤 고통도 차단할 수 있는.”
오호라! 그러니까 죽음이 아니라면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는 말인가?
“세계를 주무르는 배후께서는 나를 잘 모르나 봐?”
“뭐라고?”
“너의 정신지배를 믿고 있나 본데? 그거 푸는데 별로 안 힘들어. 보여줄까?”
“거짓말! 지금껏 내 정신지배를 견뎌낸 자는 없었다!”
“그럼 나는 뭐지? 얘는 또 뭐고?”
리첼을 가리키며 입을 열자 안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 그건”
“이쪽에는 너의 정신지배 따위는 얼마든지 풀어낼 수 있는 정신계 능력자가 있어. 그러니까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미호야!”
내가 소리친 순간 나를 바라보던 안나의 눈동자가 풀리며 멍한 표정을 지었고 벌어진 입에서 침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만.”
“헉!”
제정신으로 돌아온 그녀는 조금 전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깨닫고는 당황한 눈으로 나를 보았고, 그에 나는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은 채로 입을 열었다.
“어때? 이래도 내 말이 믿기지 않아?”
“이, 이게 무슨?”
“나를 끌어들여서 정신지배를 걸어 보려고 한 모양인데, 너의 능력은 나에게 조금도 통하지 않는다고.”
안나가 서울에 자리 잡은 이유는 아마도 나를 노린 것일 거다.
나를 끌어들여 정신을 지배해 반대로 유명을 집어삼킬 계획이었겠지만, 나를 너무 모른다는 것이 그녀의 패착이었다.
내 힘은 이제 인류에게 있어서만큼은 신이라 불릴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인류를 정복하는데 단 하루도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강해진 내 힘은 이제는 마계까지도 넘볼 수 있을 정도로 단기간에 급성장을 이루었다.
그럼에도 안나를 잡기 위해 직접 움직인 이유는 혹시 모르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녀를 회유하기 위해서였다.
1년 후 나는 약속했던 대로 그곳으로 향하게 될 것이었고, 그 이후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 없었기에 조금이라도 위협이 될 수 있는 싹들을 전부 치워버려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던 차에 듣게 된 정신 능력자.
그것도 그녀 같은 정신 능력자는 쓸모가 많았다.
뒤에서 수작을 부리는 자들을 관리하는 데는 이만한 카드가 없었으니까.
“자, 지금부터 너에게 제안을 할 거야. 잘 들어보고 결정해.”
내 말에 침을 꼴깍 삼키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안나를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은 나는 그녀에게 제안을 꺼냈다.
“내 밑으로 들어와.”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고 그녀가 멍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끝이야. 설마 세상의 반을 주겠다던가 금은보화를 안겨 주겠다는 이야기를 할 줄 안 거야?”
“그, 그건 아니지만…….”
“너는 전처럼 똑같이 살면 돼. 그저 유명에서 내리는 지시에 따르거나 유명을 적대하지 않으면 되는 거지.”
“그게 다라고?”
“그럼 뭐가 더 있을 줄 알았어? 괜히 너희들을 흡수하려고 하다 탈만 날걸? 이미 덩치가 커질 대로 커진 우리가 너희를 흡수한다고 해도 좋을 게 없거든. 그냥 너희는 너희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세상을 사는 거지. 다만, 우리 유명에 안 좋은 일을 하지 않으면 되는 거야. 가끔 부탁하는 것들도 좀 들어주고.”
이편이 깔끔했다.
괜히 가까이 두고 부리려다가 내가 없는 틈에 반란을 일으키기라도 하면 골치만 아팠으니까.
천마신교 역시도 이런 식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럼 이대로 나를 그냥 풀어주는 건가?”
“그건 아니고 너에게 이쪽의 힘을 조금은 보여줄 생각이야. 그래야 겁을 먹고 우리를 칠 생각을 못 할 테니까.”
안나는 당분간 레이의 영지에서 생활하게 될 것이다.
그곳에서 마족들과 함께 지내며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깨닫게 해줄 생각이었다.
자신 따위가 감히 올려다보지 못할 강자들이 넘쳐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그녀는 절대 유명을 향해 이빨을 보이지 못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