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 현지가 이상해요!”
“나도 알아.”
다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온 지안이는 다짜고짜 현지가 이상하다며 나를 잡고 늘어졌다.
“장난하는 거 아니라니까요!”
“그 이상한 말투 말하는 거잖아? 나도 안다고.”
“어? 정말요? 그런데 왜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고쳐지고 있으니까.”
깨어난 지 1주일이 지난 지금도 현지는 가끔 그 이상한 말투를 사용했다.
그 덕에 김 실장이나 아버지도 깜짝깜짝 놀라며 현지를 이상한 눈으로 보며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런 건데요? 설마 또 이상한 만화에 빠진 거예요?”
“확실하지는 않은데 깨어난 후부터 저랬데.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점차 원래대로 돌아오고 있으니까.”
“네에.”
왜 실망한 표정을 짓는 건데?
묻고 싶었다.
현지가 점차 원래대로 돌아온다는 내 말에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지안이에게.
“그나저나 물어볼 것이 있는데.”
“저한테요?”
“어.”
“말씀하세요.”
“현지에게 듣기로는 마력을 단숨에 끌어올리는 너의 기술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하던데? 너는 어떻게 가능한 거야?”
“아! 그거요. 별거 없는데. 육체가 아닌 다른 것을 이용하면 되거든요.”
“그게 무슨 말이야?”
“저는 마력을 육체가 아닌 다른 곳에 담고 있거든요.”
이게 무슨 말이지?
육체에 마력을 담아두지 않는다고?
“자세히 말해봐.”
“그러니까 육체에 담은 마력이 늘어나면서 단번에 마력을 꺼내는 것이 점차 힘들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육체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 방법을 궁리하다 발견한 건데. 육체 말고도 마력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 있더라고요.”
“그게 어딘데?”
“영혼이요.”
“뭐?”
“영혼 모르세요?”
영혼이 무엇인지 모르는 자는 아마 없을 거다.
문제는 그것이 실존하는 것인지는 아무도 확신을 갖지 못한다는 거였는데.
“영혼이 무엇인지는 알지. 하지만, 그게 정말 존재한다고?”
“네. 저는 그것이 저의 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말은 네가 지금 혼에다가 마력을 담아두고 있다는 말이지.”
“정확히 말하면 이 활이죠.”
공간확장 주머니에서 아스트라를 꺼낸 지안이는 내게 아스트라를 보여주며 말했다.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아스트라에서는 적은 양의 마력만 느껴졌을 뿐이었기에 의문이 가득한 시선으로 지안이를 보며 물을 수밖에 없었는데.
“현지도 못 느끼더라고요. 아마 저만 느낄 수 있나 봐요. 제 혼이라서.”
“너 지금 나 놀리는 거지?”
“아닌데요. 보여드려요?”
“해봐.”
내 말이 끝나는 순간 아스트라에서 엄청난 양의 마력이 솟구치는 것을 느낀 나는 기겁하며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성 전체를 단숨에 날려버리고도 남을 엄청난 양의 마력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보셨죠? 이게 혼에 마력을 담아 둔 거라 혼의 제어를 풀어버리면 순식간에 모든 마력이 방출되어 버린다고요.”
분명히 느꼈다.
지안이에게서 흘러나온 마력이 아닌 아스트라 그 자체에서 갑작스럽게 마력이 솟구치는 것을.
“혼이라?”
“처음에는 마력을 영혼에만 담아두고 사용했는데, 그것도 조금 느린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마력을 가득 채운 혼을 분리해서 아스트라에 담아 봤는데 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사용하고 있어요.”
“혼을 분리했다고? 그러다 큰일 나면 어쩌려고?”
“괜찮아요. 일단 혼에 담긴 마력을 개방하면 혼은 다시 저에게로 돌아오거든요.”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하는 지안이었지만, 말대로 그리 간단해 보이진 않았다.
영혼에 마력을 담아둔다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그 혼을 분리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큰 부작용이 있을 것 같았기에 캐물을 수밖에 없었는데.
아니, 지안의 이야기가 진실인지조차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럼 왜 기절하는 건데? 떨어져 나갔던 혼도 다시 돌아온다며? 그럼 기절할 이유가 없잖아?”
“그걸 모르겠어요. 떨어져 나갔던 혼이 다시 합류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정신을 잃어버리는데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죠?”
“그게 문제 아니야? 정신을 잃는다는 건 그만큼 큰 충격을 받았다는 소리잖아?”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떨어져 나갔던 혼이 다시 합류하게 되면 느껴지는 영혼이 점차 선명해질 뿐만 아니라 더욱 많은 양의 마력을 담을 수 있게 되거든요.”
“그 말은 점점 더 강해진다는 거야?”
“네. 거기다, 분리할 수 있는 혼의 크기도 증가하게 되면서 아스트라를 더욱 강화시킬 수도 있고요.”
들어보니 문제는 없는 것 같긴 한데?
이러다 지안이도 현지처럼 정신을 잃은 뒤에 깨어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에 걱정이 되었지만, 일단은 믿어보기로 했다.
“문제 생길 것 같으면 바로 중지해. 알았지?”
“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3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그에 따라 내 전력도 크게 증가했는데, 그중 마수들의 성장이 도드라졌다.
뚱이를 비롯한 왕눈이, 니안, 하임, 미호, 샤크, 펜릴이 모두 완전한 왕급 마수로 진화에 성공했고, 루시안과 코넬리아가 정수의 힘으로 마계의 지도자급에 근접한 힘을 얻은 상태였다.
거기다, 크림슨과 라구스 둘이 2차 각성에 들어가면서 내 전력이 더욱 상승하게 될 예정이었다.
문제는 그 둘이 언제 각성을 마칠지 모른다는 것일까?
나는 각성이라는 것이 순식간에 이루어지는 것인지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보통 각성에 들어가면 3개월 이상 걸리는데 그것도 최소한의 기간이었고, 길면 1년 이상까지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에 시간을 두고 기다리기로 했다.
1개월 전에 크림슨이 각성에 들어갔고, 라구스는 바로 3일 전에 각성을 시작했는데, 그들이 들어간 방에서 휘몰아치는 마력을 보면 그리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너무도 거대한 마력 덕분에 왕급에 완전히 올라선 미호가 결계를 쳤음에도 가끔 성을 뒤흔드는 지진을 만들어낼 정도였기에 하임까지도 투입되어 둘의 마력을 가두고 있는 상태였다.
“야! 너 똑바로 안 할래?”
“내가 뭐!”
“까불지? 덜 맞았나 봐?”
창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내민 나는 현지가 삐뚤게 서서 안나를 보며 이죽거리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둘은 틈만 나면 저런 상황을 연출했다.
그나저나 쟤도 성깔이 장난 아니네?
자신이 어떻게 될지 뻔히 알면서도 현지를 도발하는 안나를 보면 황당하다 못해 허탈한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처음 안나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문제가 없었지만, 메이드 복을 입은 현지를 보며 안나가 심부름을 시킨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차를 좀 내오라는 안나의 말을 들은 현지가 조용히 차를 내올 리 없었고, 당연히 둘은 서로를 향해 이를 드러냈다.
그 결과 안나는 현지에게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았고, 그때부터 둘의 악연이 시작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현지가 안나를 메이드로 교육하겠다고 나를 찾아오면서 더욱 심화 되어 버렸다.
왜 안나를 메이드로 교육하려고 하냐는 나의 질문에 현지는 웃으며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라 말했고, 나는 당연히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지를 누가 말리랴.
내 뜻과 상관없이 현지는 그날부터 강제로 안나에게 메이드 복을 입히고는 이리저리 끌고 다니기 시작했다.
어느 날 갑자기 내 방에 안나를 끌고 와서는 청소를 시키려던 현지.
이내 정신 깊숙한 곳에 숨어버린 안나는 당연히 현지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그에 현지는 안나에게 살기를 쏘아 보내기 시작했는데, 정말 놀랍게도 현지의 살기는 안나의 정신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며 안나를 현실로 불러들였다.
결국, 내 말류에도 불구하고 안나는 벌벌 떨며 청소를 시작했다.
하지만, 안나도 보통은 아니었다.
현지가 살기를 쏘아 보내지 않으면 절대 움직이는 법이 없었고, 오히려 바락바락 대들며 현지를 죽일 듯이 노려봤는데, 정말 이상한 것은 현지가 살기를 드러내면 안나가 고분고분해진다는 것이었다.
“현지야! 안나 좀 그만 괴롭혀!”
“언니!”
지안이가 나타나자 안나가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싹 바꾸며 지안에게 안겼고, 그에 지안은 안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현지와 대치하기 시작했다.
근데 말이야.
왜 안나는 지안이에게 언니라고 하는 거지?
안나는 지안이보다 10살은 더 먹었지만, 안나는 지안이를 언니라 부르며 졸졸 따라다녔다.
“내가 뭘?”
“또 안나 때리려고 했잖아!”
안나를 사이에 두고 현지와 지안이 싸우는 모습을 보던 나는 현지가 지안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전부터 생각했지만, 요즘 들어서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그것은 현지가 지안이에게 꼼짝도 못 한다는 사실이었다.
“너 운 좋은 줄 알아!”
지금도 그렇다.
지안이 아니었다면, 설령 내가 있었다고 해도 현지는 어떻게든 안나를 데려갔겠지만, 이상하게 지안에게만은 현지가 져주는 것이었는데.
이건 현지의 성격을 보면 조금 이상하다고 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친구라서 그런 건가?
쾅-
“야! 그러다 문 부서지겠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사이 어느새 내 방에 들어온 현지는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씩씩거리며 허락도 없이 내 침대에 누워버렸다.
“안 부서졌잖아요!”
어쭈? 이제는 나에게 화풀이를 하네?
“너 요즘 왜 그래?”
“뭐가요?”
“왜 그렇게 니 맘대로냐고?”
“욕구 불만이라 그래요! 왜요!”
“그럼 니 방에 가서 그 욕구를 좀 풀던가? 왜 자꾸 내 방에 와서 이러냐고?”
현지는 화가 나면 저렇게 내 방 침대에 누워서 씩씩대다가 진정이 되면 나갔는데, 그게 더 어이가 없었다.
왜 하필 내 방이냔 말이다.
“여기가 더 편해서 그래요.”
“여기 내 방이거든?”
“저도 알아요.”
사춘기가 이제야 온 건가?
도대체 왜 저러는 거지?
“너 왜 그렇게 안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쟤가 메이드를 자꾸 무시하잖아요.”
“그게 이유야? 그래서 안나한테 메이드 복을 입힌 거였어?”
“당연하죠. 메이드가 되어 봐야 메이드를 무시하지 못할 거 아니에요?”
“그거라면 이미 성공한 것 같은데?”
그랬다.
안나는 이제 메이드를 무시하지 않았다.
현지는 잘 모르는 모양이었지만, 요즘 안나는 매일 내 방에서 시중을 들고 있었다.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내 방으로 와 시중을 자처하는 것만 봐도 안나가 메이드를 무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요.”
“너는 훈련하느라 안나를 자주 못 봐서 모르겠지만, 요즘 안나가 내 시중을 전담하거든.”
“네? 정말요?”
“그래. 네가 입히지도 않은 메이드복을 입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냐?”
“어?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요?”
현지는 항상 안나를 끌고 다니는 것이 아니었다.
처음 며칠은 계속 데리고 다니며 하기 싫어하는 메이드의 일을 시켰지만, 요즘은 훈련에 빠져서 하루 대부분을 훈련에 할애하고 있었기에 안나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너도 인제 그만해라.”
“근데 쟤가 도련님 시중을 들었다고요?”
“어. 왜?”
“허! 이 여우 같은 년이!”
쾅-
뭐야? 또 왜 저러는 거야?
질문에 대답을 해 주자 몸을 벌떡 일으키고는 씩씩거리며 문을 열고 사라지는 현지를 보며 황당함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야! 누가 도련님한테 꼬리치래! 뒤질래!”
창밖에서 들려오는 고함에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 * *
“이제 끝난 건가?”
-네.
각성을 끝마치고 나온 크림슨은 자신감 가득한 표정으로 내 앞에 부복하며 입을 열었다.
“얼마나 강해졌는데?”
-정상적인 각성이 아니기에 무력이 큰 폭으로 늘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단장을 넘어섰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단장이라?
그럼 미르카엘 정도는 되려나?
“미르카엘과 붙으면?”
-확신은 못 하겠지만, 쉽게 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미르카엘의 힘을 직접 본 크림슨이 저렇게 말할 정도라면 그와 비교해도 그리 꿇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대단한데? 그나저나 들었지? 라구스도 2차 각성에 들어갔다는 거?”
-물론입니다.
“얼마나 걸릴 것 같아?”
-라구스의 경우 저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저와 달리 정상적인 각성이기에 걸리는 시간뿐만 아니라 무력 역시도 큰 폭으로 상승하겠죠. 아마 저를 넘어서는 강함을 손에 넣게 될 것입니다.
“확실해?”
-확실합니다. 아마 마족 역사상 가장 강한 존재가 탄생하게 될 겁니다.
“아들이라고 너무 뛰어주는 거 아니야?”
라구스가 아버지인 자신을 넘어서길 바라는 마음은 잘 알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조금 과장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는데.
-아닙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라구스의 재능은 지금껏 마계에 존재했던 그 어떤 마족보다도 높은 수준입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나야 좋지만, 너무 드러내지는 마. 후에 그 기대에 충족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라구스에게 심어줄 수도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 여성분은?
방 한편에서 대기하고 있는 메이드복을 입고 있는 안나를 보며 크림슨이 의문을 드러냈다.
“안나. 이쪽으로 와.”
“네.”
내 부름에 천천히 나에게 다가오는 안나는 크림슨에게 겁을 먹었는지, 몸을 잘게 떨고 있었다.
각성의 영향으로 기운의 통제가 불안정해 가끔 새어 나오는 크림슨의 힘을 느끼고 겁을 먹은 모양이었다.
강함으로 따지면 현지가 더욱 강하겠지만, 안나는 아직 현지의 진면목을 보지 못했기에 둘을 바라보는 시선이 틀릴 수밖에 없었다.
“이쪽은 안나 크래프트 양이야. 잠시간 함께 지낼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안나. 이쪽은 크림슨이라고 이 영지의 기사단장이라고 보면 돼.”
-처음 뵙겠습니다. 안나 양. 크림슨이라고 합니다.
“아, 안나 크래프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안나는 크림슨의 인사에 얼굴을 붉히고는 자신의 소개를 했는데,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저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