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0화 (200/214)

‘아직이야?’

‘네. 성을 거의 다 뒤졌는데도 찾지 못했어요.’

이틀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대공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건 대공이 정말 성에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남은 곳은 없어?’

‘그걸 모르겠어요.’

‘무슨 말이야?’

‘뭔가 있긴 한 것 같은데 어딘지를 모르겠어요.’

‘확실해?’

‘그건 아니지만, 뭐랄까? 자꾸 꺼림칙한 느낌이 든단 말이죠.’

초월적인 감각을 가진 현지가 그렇게 느낀다는 것은 분명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첫째 공자라는 놈. 그놈을 잘 감시하고 있어. 분명 놈은 알고 있을 테니까.’

‘네.’

크림슨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나타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첫째 공자인가 뭔가가 찾아올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크림슨.’

‘네.’

‘단장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정말 이상한 것은 수호기사단의 단장이란 자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었는데.

군주의 궁전 어딘가에서 회복 중일 것이란 생각과는 다르게 그는 궁전에 없었다.

아니,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아는 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단장이라면 믿을 수 있을 거라는 크림슨의 확신에 사념을 정화하고 지배를 걸기 위해 그를 데려오라 지시했는데, 크림슨은 여전히 단장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거야?

‘분명 성 어딘가에 있을 거라며?’

‘그, 그것이…….’

‘됐어. 찾는 건 수호기사단에게 맡겨두고, 그 컬렉션이란 것이나 가져와 봐. 제일 수준이 높은 것들로.’

‘알겠습니다.’

만약 대공이 준비한 괴물이 우리의 예상을 벗어난다면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전력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우리 일행뿐 아니라 미르카엘들 역시 마찬가지.

신과 같은 존재가 만들었으니 저들에게도 통하겠지?

그나저나 잘 되어가고 있는 건가?

자리에 앉아 눈을 감은 채 명상하는 듯한 미르카엘들.

신기하게도 그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과 연락을 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

선에 연결된 자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나처럼 그들에게도 그런 수단이 있었다.

그들은 지금 수족들에게 자신들의 영역을 뒤져 바하무트의 사념이 강하게 느껴지는 곳을 샅샅이 뒤지란 지시를 내린 후 그들과 계속 연락하며 보고를 받고 있었다.

대공이 자리를 비웠다면, 분명 마계 어딘가에서 그 괴물을 만들어 내는 중일 테니까.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마족의 영토를 살피지 못한다는 것.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그 일을 어느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영지의 기사단과 병사들을 움직였을 뿐만 아니라 죽음의 땅으로 보내야 할 2천의 최상급 마수들까지 움직여 마족의 영토를 살피고 있었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마족의 영역이 다른 모든 종족의 영역을 전부 합친 것보다 넓었기 때문이다.

‘집사. 준비는?’

‘목표로 잡았던 수의 3할에 약간 못 미칩니다.’

어떻게 하지? 일단 저거라도 지배할까?

지금 집사는 이동형 마수들을 전부 동원해 마계에 퍼져 있는 마수들을 모으는 중이었다.

대공을 빨리 찾을수록 이쪽의 위험도가 낮아질 거란 생각에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할 필요가 있었다.

마수들이 이상행동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마계가 혼란에 빠질 수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최대한 빨리 대공을 찾아야만 했으니까.

“미호야 문 좀 열어줘.”

빠르게 결정을 내린 나는 미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어차피 시간 싸움이었다.

이쪽에서 움직인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더라도 대공만 찾으면 끝나는 게임.

“끼웅!”

공간의 문이 활짝 열리는 걸 확인한 나는 곧바로 그곳으로 뛰어들었다.

“바로 닫아!”

공간의 문을 통과하자 열렸던 공간의 문이 곧바로 닫혔고, 그와 동시에 나는 지배의 영역을 확장 시키기 시작했다.

내가 마계를 뒤지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바로 사념에 민감한 마수들을 풀어놓는 일이었다.

그것도 대량으로.

지배의 영역을 통해 모여 있는 마수들의 수를 확인한 나는 곧바로 마수들을 지배해 버린 후 지시를 내렸다.

-사념이 모이는 곳을 찾아!

지시와 동시에 마수들이 흩어지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던 나는 고개를 돌려 미호의 분신에게 신호를 보냈다.

동시에 열리는 공간의 문.

그렇게 열두 곳을 들린 후에야 나는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30만 정도 되려나?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끌어모은 마수치고는 수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족의 영토를 전부 커버하려면 아직 많이 부족했다.

지구의 수백 배가 넘어가는 거대한 땅덩어리를 전부 살피려면 최소 천만 단위는 필요하리라.

* * *

-어딜 그렇게 다녀오는 거지?

공간의 문을 통해 성으로 돌아온 나를 보는 미르카엘의 눈에는 의문이 담겨 있었다.

-볼일이 있어서 말이야.

-조심해라. 그렇게 자주 밖으로 나가면 저쪽에서 수상하게 생각할 거다.

-그렇게 생각해 주면 차라리 좋겠는데?

분명 이쪽의 움직임을 파악했을 텐데도 꿈쩍도 안 하고 있다는 사실에 솔직히 조금 당황한 상태였다.

조금이라도 반응이 있을 줄 알았건만,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평소와 똑같이 행동하는 대공자.

-무슨 말이지?

-이쪽이 무슨 짓을 하든 조금도 반응하지 않는다는 건, 저쪽이 이쪽의 의도를 이미 파악했다는 거 아니겠어?

-그래서 그렇게 대놓고 움직이겠다는 건가?

-그래야 그 공자라는 녀석이 크림슨을 만나 주기라도 할 것 아니야?

대공자는 크림슨이 만남을 요청했지만,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당분간은 만날 수 없을 것 같다는 황당한 핑계를 내놓았다.

겨우 몇 킬로 정도의 거리.

인간으로 치면 백여 미터도 되지 않을 짧은 거리였지만, 놈은 계속해서 크림슨과의 만남을 피하고 있었다.

그에 짜증이 난 나는 그냥 쳐들어가 버릴까도 생각해 봤지만, 그랬다가는 대공이 완전히 숨어버릴지도 몰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 군주를 자칭하는 놈 역시 마찬가지.

어찌 된 일인지 기운조차도 느껴지지 않았기에 현지조차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이상하단 말이야?

놈을 호위하고 있다는 수호기사단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거지?

만약 나처럼 공간의 문을 이용해 어딘가로 이동하는 거라면 분명 느껴져야 정상일 텐데?

공간의 문은 공간을 건드리는 능력이기에 미호의 결계조차도 공간의 뒤틀림을 완벽히 막지 못했다.

주변에서 공간의 문이 열리면 당연히 느껴져야 한다는 것.

게다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겠지만, 지금 나는 성을 비롯한 마족들의 주거지 전부를 지배의 영역 안에 두고 있는 상태였고, 현지 역시 첫째 공자를 비롯한 대공의 수족 전부를 감시하고 있는 상태였기에 이쪽의 이목을 피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저쪽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서라?

-그쪽은 어때? 뭔가 찾았어?

-아직이다. 천족의 영토를 전부 뒤지고 있지만, 특별히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는군.

그렇겠지.

아무리 등잔 밑이 어둡다지만, 대공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곳에 자리를 잡지는 않았겠지.

-크림슨 경?

대화를 나누던 도중 크림슨이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마디 말도 없이 뚜벅뚜벅 걸어온 크림슨은 나에게 정수와 비슷한 무언가를 잔뜩 건네었다.

‘가져왔습니다.’

‘아니. 이럴 필요까지는 없다니까?’

‘제가 어찌 감히 군주님께 말을 놓을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크림슨은 지금껏 드러난 자리에서 나에게 대놓고 말을 건 적이 없었다.

동등하게 생각하고 말하라 했지만, 크림슨에게 그것은 죽음보다 어려운 일인가 보다.

-무슨 일인가?

-아, 아니다. 그럼 이만.

-왜 저러는 것이지?

문을 열고 나가는 크림슨의 이상한 반응에 의문을 드러내는 미르카엘이었다.

-그것보다 이걸 좀 봐주겠어?

-뭐지 이건?

내가 건넨 영약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는 미르카엘.

-지배의 군주가 만든 영약이라더군. 복용할 수 있는지 확인 좀 해 줬으면 하는데.

-네놈. 조금 무례하군.

-뭐?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내가 뭘 잘못했나?

-그분은 이 땅을 다스리는 신이시다. 아무리 너의 종족을 다스리는 신이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존칭 정도는 사용해라.

어? 지금 ‘님’자를 붙이지 않았다고 저러는 거야?

-그래. 알았다. 앞으로는 조심하지.

-그러고 보니 이상하군. 너는 도대체 뭐지? 이 천계에 내가 모르는 종족이 있을 리가 없을 텐데? 네놈…… 설마? 이모탈이냐? 이모탈은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텐데?

이모탈? 그게 뭐지?

미르카엘의 뜻 모를 말에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자 미르카엘이 혼자서 계속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모든 종족의 진화가 끝난 후로 이모탈은 태어나지 못하게 되었을 텐데? 남아 있는 이모탈이 존재했던 건가? 그러고 보니 조금 이상하군. 그 둘. 천족과 비슷한 힘을 사용했지만, 천족이 아니었고, 엘프와 비슷한 힘을 사용했지만, 엘프가 아니었지.

-이모탈이라는 것이 혼혈을 말하는 것인가?

미르카엘의 혼잣말을 듣던 나는 이모탈이라는 것이 혼혈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잘 알고 있는 걸 보니 이모탈이 틀림없나 보군.

내 물음을 들은 미르카엘이 갑자기 살기를 뿜어내는 것을 확인한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이모탈이 뭐길래 이러는 거지?

-잠깐만!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반응을 보니 그때의 생존자는 아닌가 보군.

살기를 뿜어내던 미르카엘은 내 반응을 보고는 살기를 다시 갈무리하기 시작했다.

-설명이 좀 필요한 것 같은데?

-네놈이 정말 이모탈이라면 알아야 할 이야기겠지. 설명해 주마.

미르카엘은 다짜고짜 이모탈이란 종족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고, 나뿐만 아니라 미르카엘의 살기에 반응해 깨어난 수왕과 하이엘프 역시 조용히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기 시작했다.

이모탈.

그들은 모든 종족이 이곳 마계로 이주해 온 후 새롭게 탄생한 종족이었다.

이주해 오기 전에도 존재하긴 했지만, 그 당시에는 이모탈이라 불리지 않았던 종족.

하지만, 이곳으로 이주해 온 후 종족들은 생존을 위해 각자의 진화를 선택했고, 그로 인해 점차 강해져 가던 종족들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었다.

두 종족의 장점만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들.

그 덕에 그들은 다른 종족에 비해 터무니없이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모든 종족과 조화롭게 살던 그들은 어느 순간부터 자신들만의 터전을 이루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다른 종족들과 멀어지기 시작한 그들은 시간이 흘러 자신들의 불안전함을 깨달았는데, 그것은 바로 종족 번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다른 종족에 비하면 무한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가지만, 번식은 불가능한 안타까운 존재들.

그래서일까? 그들은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걷기 시작했다고 한다.

강한 힘을 탐하며 스스로 신이 되겠다는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

처음에는 모든 종족이 그들의 말을 가벼운 농담 정도로 치부했지만, 시간이 흘러 하나의 사건이 터지게 된다.

바로 이모탈이 신들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이었다.

당연히 상대도 되지 않았지만, 전 종족의 인식을 바꿔버리기에는 충분한 사건이었다.

자신들의 신에게 도전했다는 사실에 분노한 자들이 그들을 불길한 존재로 여기기 시작하고 사냥을 시작한 것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당시에는 지금과 비교도 되지 않을 광신도들이 넘쳐났으니까.

자신들을 멸망에서 구해준 신.

그런 신에게 감히 도전장을 내밀었단 사실만으로도 그들을 학살할 이유는 충분했다.

점차 이모탈을 사냥하는 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종국에는 모든 종족이 나서서 이모탈을 멸망시키기 위해 움직인 것이었다.

하지만, 신들은 달랐다.

신들은 이모탈의 도전을 재롱 정도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신들이 나서서 이모탈의 멸망을 막았고, 이모탈의 반란은 점차 잊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모탈의 반란이 완전히 잊혔을 무렵 또다시 신에게 도전장을 내민 이모탈이 등장하게 되면서 이모탈이란 존재는 마계에서 완전히 지워져 버렸다고 한다.

-이모탈이란 그런 존재다. 그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없고 은혜조차도 원수로 갚으려 드는 괘씸한 놈들.

이모탈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미르카엘은 이모탈이 어떻게 멸망했는지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2차 반란을 일으켜 사라졌다는 이야기만 전할 뿐.

-그때는 신들이 나서지 않은 건가?

-그럴 리가. 나는 그들을 전부 죽였다고 하지 않았다. 지워졌다고 했지.

-그 말은 어딘가에 살아 있을 수도 있다는 거네?

-종족에 대한 번식이 불가능한 자들이다. 살아남았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마계에서 쫓겨났다는 소리인가?

도대체 어디로?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그들이 어디로 쫓겨난 것인지 알 수 있었는데.

설마 지구와 연결된 게이트가 있는 장소가 원래는 이모탈이 살아가던 곳이었던 거야?

-그런데 말이야. 이모탈이란 것이 혼혈이라면 계속 태어났을 거 아니야? 그들은 어떻게 한 거야?

-그 이후 종족 간의 교류가 완전히 사라졌고, 각 종족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진화를 하게 되었다. 이제는 생물학적으로 혼혈이 태어나지 못하게 되었지.

-그렇군. 그리고 나는 이모탈인가 뭔가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확실한가?

-그래. 아니야.

그나저나 무섭네.

하나가 신에게 도전을 했다는 이유로 그 종족 전체를 지우려 하다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에게 도전할 정도면 많이 강했나 봐?

-겨우 수백을 죽이기 위해 모든 종족의 3할이 넘는 목숨이 사라졌다고 하면 믿겠는가? 거기다 그놈들은 죽을 때까지 강해지는 놈들이다. 시간이 조금만 더 흘렀다면 반대로 이쪽이 멸망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지. 물론 그분들께서 존재하는 한 그럴 일은 없겠지만.

-뭐?

그 당시의 인구를 알지는 못하지만, 3할은 조금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억 정도만 되도 3천만이 죽었다는 말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이모탈이라?

그런 게 있었을 줄은 몰랐네?

만약 지금도 그런 놈들이?

잠깐만?

아직 살아 있는 이모탈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런 놈을 매개체로 삼으면 바하무트의 부활도 가능한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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